[SCIENCE CHINA] 생명과학의 정상 노리는 중국
[SCIENCE CHINA] 생명과학의 정상 노리는 중국
베이징 유전체연구소(BGI)는 중국 광둥성 선전의 옌티엔구 구석의 척박한 동네에 있다. 트럭 정비공장과 고철 처리장 주변에는 놓아 기르는 닭들이 한적하게 돌아다닌다. 세계 최대의 유전체 분석 시설이 과연 이런 곳에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곳의 옛 신발공장에서 중국의 가장 야심 찬 생물의학 프로젝트가 조용히 진행 중이다.
음울한 잿빛 외관과 달리 그 속에는 첨단 시설이 가득하다. 병원의 집중치료실처럼 유리벽에 밝은 네온등이 내리쬐는 청결한 방 안에는 똑같은 기계들이 줄지어 늘어서서 바삐 돌아간다. 일루미나 하이세크 2000은 최고급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기계다. 대당 가격이 50만 달러지만 이곳에 128대나 있다. 주변에도 그 비슷한 첨단 장비가 즐비하다. 그 덕분에 BGI가 쏟아내는 고품질 DNA 분석 데이터는 미국의 모든 대학 연구소가 생산하는 양보다 더 많다.
BGI의 벽에 나붙은 표어는 ‘유전자가 미래를 건설한다!’고 외친다. 실제로 중국은 바로 그런 미래를 추구한다. 최근 포브스지는 유전체 시장의 규모가 향후 10년 동안 1000억 달러에 이르리라 내다봤다. 그때가 되면 과학자들이 방대한 유전체 데이터를 분석해 질병을 퇴치하고 세계 인구를 먹이며 산업 용도로 미생물을 제어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할 전망이다. “유전체 연구의 현 상황은 인터넷 초기와 흡사하다”고 미국의 유전체 회사들과 BGI에 자문을 제공하는 하버드대의 유전학자 조지 처치가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무엇이 시장을 평정하는 ‘킬러앱’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IBM, 인텔 같은 회사는 이미 이 분야에 깊이 뛰어들었다. 데이터 처리와 관리라는 고유한 사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생물학이 정보과학이 됐다”고 BGI 공동설립자이자 대표인 양후안밍이 말했다. “유전체학이 생명의 디지털화를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모든 유전자 정보가 잠재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BGI가 반드시 성공할 회사로 보이진 않았다. 때로는 존립이 위협받기도 했다. BGI를 설립한 양후안밍 대표와 왕지엔 소장은 처음엔 동료들로부터 “정신 나갔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정부의 지원을 마다하고 국제적 공동작업인 인간지놈프로젝트(HGP)에 무작정 합류해 최초의 인간 유전체 완전 분석 중 1%를 담당했다. 그 다음 자금 지원이 든든한 국제 컨소시엄을 제치고 독자적으로 벼의 DNA 염기서열 분석에 성공했다. 그러자 갑자기 정치적인 힘이 생겼다. 양과 왕은 그 힘을 이용해 연구소를 설립했다. 명목상 비영리 기관이지만 상업적 활동을 통해 연구 자금을 충당한다. 2007년 신발공장으로 이전하는 조건으로 지방정부에서 연간 300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았다. 처음엔 형편이 어려웠다. 상업적인 유전자 분석과 병원의 분자진단으로 자금을 마련했다. 그러다가 2009년 중국개발은행에서 15억 달러의 대출을 받으면서 BGI는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DNA 염기서열 분석 능력과 제약업계에 필요한 첨단 DNA 데이터 관리 솔루션이 결합되면서 지금은 국제적인 주목을 끈다. 지난해 다국적 제약회사 머크는 BGI와 합작연구를 발표했다. 그때 BGI의 매출은 1억5000만 달러였고 올해는 그 세 배로 예상된다. “그들의 모험정신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오리건 대학의 물리학자 스티븐 슈가 말했다. “그런 열정이 조직 전체에 뱄다.”
하지만 그런 BGI의 원대한 야망을 좀 더 깊은 과학적 성찰로 다듬어야 한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획기적인 발견을 하려면 기술만이 아니라 좀 더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오랜 협력자인 코펜하겐 대학의 올루프 보르브예 페데르센이 말했다.
보스턴의 브로드연구소처럼 잘 알려진 유전체 연구소들은 좀 더 좁게 인간의 건강에 치중하지만 BGI의 과학자들은 생물학의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한 첨단 실험실에선 과학자들이 수많은 미생물을 분석해 산업용으로 유용한 유전자를 찾는다. 다른 실험실에선 의학적인 목적으로 인체 줄기세포를 배양한다. 그들은 오이, 누에 40종부터 자이언트 판다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의 유전체 지도를 작성했다. 아울러 인체 내장에 서식하는 박테리아의 유전자 수만 개를 확인했고, 고대 인간(4500년 전 그린란드에 살았던 구석기 시대 에스키모인)의 유전자 수수께끼도 풀었다. 학문적 가치가 높은 그런 연구는 과학논문집 게재를 목표로 한다. 동시에 인근 농장에선 현실적인 실험으로 질병 모델 연구용 돼지를 복제한다. 그 외에도 늘어나는 중국 인구의 식량을 확보할 목적으로 라오스에서 유전적으로 강화된 식물을 시험 중이다. 이미 BGI는 농업·산업·의학 분야의 잠재 수익이 높은 특허 약 250건을 확보했다.
산하 연구소도 미국, 유럽, 홍콩, 그리고 중국 내의 4곳으로 확장했다(이미 세워졌거나 세워지는 중이다). 선전 본부에서 일하는 과학자 수도 지난 1년 반 동안 두 배 이상 늘었다. BGI는 현재 과학자와 기술자 약 4000명을 고용하며 계속 커져간다. “처음부터 계속 이곳에서 일했지만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 때로는 나도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 23세인 생물정보학자 뤄루이방이 말했다. BGI 연구원의 평균 나이는 26세다.
24세인 리잉루이는 생물정보팀장을 맡아 컴퓨터 과학자 1500명을 지휘한다. 지적인 도전이 충분치 않다며 대학을 중퇴한 그는 직원들에게 폭넓은 자유와 책임을 부여하면 창의성이 발휘된다고 확고히 믿는다. “그렇게 일하면 발전이 더 빠르다.” 그가 이끄는 연구원 중 자오보원은 18세다. 고등학생으로 여름방학 프로젝트로 생물정보팀에 합류했지만 뛰어난 문제해결 능력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부모와 상의한 뒤 정식 연구원직을 택했고 일과 후 시간을 이용해 고등학교를 마쳤다. 자신의 천재성에 걸맞게 그는 고지능의 유전자 기초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한다. 그의 팀은 IQ 145 이상인 중국 성인 1000명을 추출해 그들의 유전체를 같은 수의 무작위 선별 대조군과 비교한다. 자오는 지능과 유전자를 연결하는 연구가 논란을 불러일으킬지 모른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중국은 다른 나라보다 조건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여러 연구단체가 제휴를 제안했다며 “지능은 누구나 관심을 갖는 분야”라고 말했다.
어떤 면에서 BGI는 중국의 경제·사회적 야망을 상징한다. 신발공장이 유전체 연구소로 탈바꿈하면서 그곳의 육체 근로자들이 과학자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보스턴의 경영 컨설팅 회사인 모니터 그룹은 2010년 보고서에서 “중국은 10년 안에 생명과학의 새로운 발견과 혁신에서 세계를 주도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2009년부터 내년까지 중국 정부의 병원·보건소 건설 투자액은 1240억 달러에 이른다. 그런 전략적 투자로 해외의 중국인 과학자들을 끌어들인다. 지금까지 유럽과 미국에서 교육 받은 박사 8만 명 이상이 귀국했다. 대부분은 지난 5년 동안 돌아왔다. 중국은 내년이면 세계 제2의 제약시장이 될 전망이다. 미국의 경우 정부의 기초과학 투자가 줄어들고 민관 협력이 잘 이뤄지지 않아 계속 고전하기 때문에 조만간 중국이 선두를 차지할지 모른다. 모니터 그룹 아시아 지점의 조지 베더 부사장은 “중국은 신약 발견과 개발에 더 효율적인 모델을 창안할 잠재력을 가졌다”고 말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교수이며 과학정책 전문가인 캐럴라인 왜그너도 곧 발표될 논문에서 이 분야를 미국이 독자적으로 주도하던 시절은 곧 끝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반 세기 이상 이 분야에서 유일한 선두주자였지만 이제는 여러 주자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그러면서도 왜그너는 “과학이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파이가 커질수록 합작의 기회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BGI의 양 대표도 “유전체학은 국제적인 연구이기 때문에 살아남고 발전하려면 제휴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BGI가 중국만이 아니라 세계로 눈을 돌린다는 기초적인 증거가 있다. BGI 본부의 바닥에는 최근 들여온 첨단기계가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그 상자의 양측면에는 ‘MADE IN USA’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필자는 곧 발간될 책 ‘나의 아름다운 유전체(My Beautiful Genome)’의 저자다.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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