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타임제 오해와 진실] 경제효과 있지만 국민정서는 부정적
[서머타임제 오해와 진실] 경제효과 있지만 국민정서는 부정적
낮이 긴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시계를 한 시간 앞당기는 서머타임제도. 이 제도는 2009년 정부가 도입을 추진하다 무산된 후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상태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공공부문 근무시간을 오전 8시~오후 5시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서머타임제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1989년 폐지된 이후 20년 넘게 찬반 양론이 팽팽한 서머타임제 도입 효과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알아봤다.소니가 일본 제조업체로는 처음으로 7월 1일부터 9월 말까지 출근시간을 오전 9시에서 8시로 앞당기기로 했다. 대지진 여파로 전력난이 심해지자 낮 시간 전력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소니뿐이 아니다.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도쿄도청 직원들은 지난 6월 6일부터 오전 7시30분에 출근해 오후 4시15분에 퇴근한다. 역시 출퇴근을 한 시간 앞당긴 것이다. 일본은행(BOJ)도 7월부터 석 달간 오전 8시에 근무를 시작할 방침이다.
우리 정부 역시 부처·공공기관 등 공공부문의 근무시간을 현행 9시 출근, 6시 퇴근에서 8시 출근, 5시 퇴근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 중이다. 에너지 절감과 내수 활성화가 정부가 내건 도입 취지다. 이를 계기로 ‘서머타임제도’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서머타임제는 낮 시간이 긴 여름에 시계를 한 시간 앞으로 당기는 것으로 74개국에서 시행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서머타임제 도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급작스럽게 추진한다”는 반발에 밀려 무산됐다. “근무시간만 늘어날 것”이라는 노동계의 반대도 심했다. 그렇다고 현 정부가 서머타임제 도입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녹색성장위원회 관계자는 “이견이 많지만 서머타임제는 실보다 득이 많은 제도”라며 “도입 효과가 없다면 왜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소속 국가 모두가 서머타임제를 실시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제도를 도입하려면 적어도 1년 전부터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항공사의 경우 항공 스케줄을 조정하는 데 5~6개월이 걸리고, 기업은 전산시스템을 조정해야 한다. 북위 30~60도에 위치한 나라의 경우 4~9월에 시행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만큼 늦어도 전년 10~11월에는 시행이 확정돼야 한다. 서머타임제를 내년에 도입하려면 지금쯤 다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1987~1988년 시행되다 폐지된 이후 지난 22년간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서 있는 서머타임제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알아봤다.
# 반대 여론이 압도적이다?이전 정부 때는 찬성 여론이 우세
서머타임제는 단 한 명도 영향을 받지 않는 국민이 없다는 점에서 예민하고 중차대한 문제다. 여론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어야 제도 시행에 무리가 없다. 서머타임제 도입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데”라는 주장을 앞세운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지식경제부와 에너지관리공단이 2006~2009년 초에 실시한 다섯 차례의 조사에서는 찬성이 47.8~52.5%, 반대가 30.1~32.5%로 나왔다. 2006년 에너지시민연대, KBS, CBS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찬성 의견이 반대 의견보다 대략 23~27%포인트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2009년 상황은 다소 달랐다. 그해 2월 에너지관리공단이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찬성 52.5%, 반대 30.1%였다. 하지만 여론조사 회사인 리얼미터가 같은 해 7월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반대가 46%로 찬성 38.2%보다 높았다. 비슷한 시기에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11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반대가 61%로 많았다.
이에 대해 서머타임 도입 효과 연구에 참여했던 한 대학교수는 “정부가 서머타임제 추진 발표를 한 후에 전보다 반대 여론이 높아졌다”며 “갑작스럽게 정책을 발표하면서 반감 여론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대 이유에 대해서는 ‘근무시간만 늘어날 것’ ‘생체리듬이 파괴될 것’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 벌건 대낮에 퇴근하기 힘들다?하루 8시간 근로시간에는 변화 없어
서머타임제 도입에 가장 큰 장애물은 ‘근무시간만 늘 것’이라는 근로자들의 우려다. OECD 국가 중 연중 근로시간이 가장 많고 정시 퇴근 문화가 덜 정착한 우리나라로서는 당연한 걱정이다. 하지만 이는 착시현상과 비슷한 것이다. 서머타임제는 전 국민이 시계를 한 시간씩 앞당기는 것이기 때문에 근로시간에는 변화가 없다. 하루 가용 시간은 이전과 같다는 얘기다.
정부가 공공부문 근무시간을 오전 8시~오후 5시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일부 기업이 유연·탄력·시차제 근무를 속속 도입하면서 굳이 서머타임제를 도입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서머타임제와 유연·탄력 근무제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유연·탄력·시차제 근무제는 하루 9시간(점심식사 포함) 근무를 기준으로 출퇴근 시간을 자율로 하는 것이다. 유연 근무제를 도입한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10시나 11시에 출근하는 인원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그만큼 퇴근은 늦어진다. 일광 시간을 절약한다는 서머타임제 취지와 전혀 다르다. 또한 시계를 그대로 놔두고 8시 출근, 5시 퇴근으로 할 경우 근로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퇴근시간 연장’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클 수 있다.
# 생체리듬이 깨진다?한 시간 시차여행은 일주일이면 극복
서머타임제는 전 국민이 ‘한 시간의 시차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 이 제도를 반대하는 의견 중에 ‘생체리듬이 깨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걱정할 일은 아니다”고 말한다.
순천향대가 보건복지부의 의뢰를 받아 2009년 8월 제출한 ‘서머타임제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서머타임제에 따른 생체리듬 변화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976~2008년 국내외 문헌을 종합 검토한 결과다. 우리 몸에는 뇌의 시상하부에서 관장하는 ‘생체 시계’가 있는데 이것이 생체 리듬을 좌우한다. 외국 출장이나 여행을 다녀온 후 겪는 ‘비행시차 증후군’은 생체 시계와 외부 시계가 불일치하며 생체 리듬에 장애가 생기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서머타임 시행 첫 주는 잠자는 시간이 다소 준다. 핀란드에서 2003~2004년 조사한 결과인데, 조사 대상자 상당수가 30분~1시간 정도 수면이 단축됐다. 하지만 대부분 시행 첫 주 목~금요일에 극복됐다. 독일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시행 초반에 낮에 졸림증을 호소하는 학생이 많았고, 특히 올빼미형 학생의 경우 이런 증세가 3주까지 지속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 에너지 절약 효과 없다?세계 74개국에서 에너지 절약 목적으로 시행
에너지 절감은 서머타임제를 시행하는 가장 큰 이유다. 물론 이에 대한 논란은 많다. 정부 보고서부터 오락가락이다. 1997년 에너지경제연구원 보고서는 “서머타임제를 실시하면 5~9월 전력 소비 절감률이 0.3%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2005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에너지 절약 효과는 미미하거나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돼 있다.
2009년 MB정부는 서머타임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서울대 경제연구소와 KDI(한국개발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등 7개 연구기관이 공동 연구한 결과를 정책 효과의 근거로 제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4~9월 서머타임을 실시하면 연간 341억~653억원의 에너지 절감 효과가 있다. 하지만 불과 2년 전 KDI와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연구용역 보고서는 “에너지 절감, 소비·생산 파급 효과는 근거가 취약하다”며 “서머타임제 도입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분석했다. 국책 연구기관이 정부 입맛에 따라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목이다. 외국에서는 ‘에너지 절감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 제도가 지속적으로 시행되는 이유다.
# 출퇴근 교통이 혼잡해질 것이다?교통량 분산되고 사고율 감소
시계를 한 시간 앞당기면 출퇴근 시간에 교통량이 몰릴까, 분산될까? 이와 관련한 연구 자료 대부분은 교통량이 분산되고 따라서 교통사고 건수도 줄 것으로 본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교통사고는 퇴근시간대인 오후 4~11시에 가장 자주 발생하는데 서머타임은 교통량을 분산하고 야간 운전 수요를 감소시켜 교통사고율 감소에 기여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서머타임 전인 1986년에 비해 1987년 교통사고 발생률이 0.3~0.5% 감소했다는 통계가 있다.
외국의 연구도 유사하다. 1976~2003년 미국 교통사고 자료를 활용한 연구에 따르면 서머타임제는 보행자와 관련된 자동차 사고의 8~11%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연구에서는 서머타임제 시행이 보행자 교통사고의 13%, 자동차 운전자 사망사고의 3%를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 발생률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는 데도 이견은 거의 없다. 서머타임제 도입으로 오후 일광 시간이 길어질 경우 해가 지기 전에 귀가하는 인구가 늘어나 범죄 노출 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2009년 정부 용역 보고서는 “서머타임제 도입으로 범죄 발생률이 연 2.5% 줄 것”으로 내다봤다.
# 일본 정부가 안 하면 우리도 못한다?같은 표준시 사용해 공동 추진이 효과적
2년 전 정부가 추진한 서머타임제가 무산되자 ‘정부가 일본 눈치를 보다가 접은 것’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무슨 말일까? 우리 정부가 일본과 서머타임제를 공동 추진하자는 입장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양국 모두 내부 반대가 심해 무산됐다. 정부가 일본과 공동 도입을 추진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OECD 국가 중 양국만 서머타임제를 실시하지 않는 상황에서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이 대국민 설득에 용이하다고 봤던 측면이 있다. 또 하나는 양국의 표준시간이 같고 인적 교류가 많기 때문에 함께 도입하는 것이 효과적으로 본 것이다. 세계 각국은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세계시)으로 동~서로 15도에 1시간씩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의 표준시는 일본과 같이 동경 135도를 표준자오선으로 채택해 쓴다. 동경 135도는 일본 고베를 지난다. 서울은 127도에 위치한다. 동경 127도와 135도는 실제로는 약 30분 차이가 난다. 다시 말해 한국 표준시로 오후 2시는 실제로는 1시30분이다. 서머타임제를 도입하면 우리나라는 1시간30분 정도 일광 절약 효과가 있는 셈이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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