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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가치 치솟는 한옥>> 4대문 안 한옥 전세도 매물도 없다

부동산 가치 치솟는 한옥>> 4대문 안 한옥 전세도 매물도 없다

북촌한옥마을

9월 1일 늦은 오후 서울 종로구 계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신혼부부가 한옥 전세를 구하기 위해 공인중개사와 상담하고 있었다. 젊은 부부는 답답한 아파트보다 쾌적하고 문화적인 정감을 느낄 수 있는 한옥에 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당장 전세 매물을 보지 못했다. 계동공인 김재창 사장은 “한옥 물량이 너무 없고 한번 입주한 사람은 대부분 재계약을 하기 때문에 예약하고 기다려도 언제 매물이 나올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주택시장에서 한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한옥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고, 새 한옥을 짓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주택사업자도 증가하고 있다. 틈새상품으로 한옥의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부동산부테크연구소 김부성 소장은 “주택시장이 침체되면서 주택에서 재테크 수단이 아닌 문화 등 다른 가치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며 “넓은 마당과 쾌적한 자연환경을 누릴 수 있는 한옥을 주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3.3㎡당 5000만원 호가하는 곳도서울 4대문 안쪽 한옥은 부르는 게 값이다. 북촌 마을의 1200여 가구와 서촌의 600여 가구 한옥에 이어 요즘은 현대건설 앞쪽의 운현궁 주변 150여 가구 한옥까지 인기가 치솟고 있다. 계동 현대공인 전형순 사장은 “3~4년 전만 해도 3.3㎡당 1000만원도 안 되던 곳이 현재 3000만원은 기본이고 5000만원을 호가하는 곳도 생겼다”며 “한옥에 살았던 경험이 있는 중장년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서울 인사동 등지의 화가 사이에도 한옥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인사동에서 화실을 운영하는 연세희(72) 화백은 얼마 전 인근 북촌 지역에서 한옥을 사려다 포기했다. 최근 인사동 작업실의 임대료가 오르면서 예전에 봐뒀던 주변의 싼 한옥을 사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매물 자체가 없을뿐더러 그나마 나온 건 부르는 게 값이었다. 연 화백은 “인사동 주변 친구 가운데 한옥을 작업실로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데 시세가 너무 올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해외 유명 관광지의 경우 왕궁 주변이나 전통 양식이 남아 있는 곳은 부동산 가치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며 “강남이나 한남동 등에 거주하는 부유층 가운데 별장용이나 작업용으로 한옥을 구입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전통 한옥을 다각도로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는 2018년까지 3700억원을 투입해 4대문 안 3080채, 4대문 밖 1420채를 포함해 모두 4500채의 한옥을 보존·진흥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는 한옥 밀집지역으로 지정된 곳에 보조금 8000만원, 융자 2000만원 등 총 1억원을 한옥 수리비로 지원한다. 한옥 700여 채가 모여 있는 전북 전주시 전주한옥마을도 마찬가지다. 한옥을 신·개축할 경우 3000만~5000만원의 보조금을 준다. 전주시는 최근 주변에 난립한 상업시설을 정비해 한옥관광지로서 색깔을 뚜렷이 하겠다고 밝혔다. 지자체의 이런 지원은 해당 지역의 한옥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서울시 이병근 한옥문화과장은 “지난 2년간 서울의 보전 대상 한옥이 1233채에서 2358채로 두 배 늘어나고 북촌 한옥마을 관광객도 한 해 32만 명으로 23배나 증가했다”고 말했다.

새로 한옥마을을 조성하는 곳도 늘어난다. 서울과 인천·충북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2014년까지 서울 진관동 일대 은평뉴타운과 성북2동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에 각각 한옥 100여 채와 50여 채를 지을 계획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송도 중앙공원에 500억원을 들여 한옥촌을 만들기로 했고, 충북도는 관광지 주변에 ‘한옥 민박마을’을 꾸미기로 했다. 은평뉴타운에서 한옥마을 조성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SH공사 한옥사업팀 곽홍준 팀장은 “아파트에 식상한 사람들이 한옥마을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99㎡에서 129㎡ 정도 크기를 중심으로 공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옥을 대중적으로 공급하려는 움직임도 가속도를 내고 있다. 한옥의 단점인 비싼 건축비를 줄이면서도 화장실이나 주방을 서구식으로 만들어 편의성을 높이는 식이다. 3.3㎡당 600만원 수준의 ‘보급형 한옥’ 및 에너지 사용량의 10%만 쓰는 ‘그린한옥’ 등의 연구가 활발하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에너지 사용량을 크게 줄인 그린한옥을 대구 팔공산 인근 도학동에 짓고 있다. 창호, 벽체, 지붕구조 등에 현대기술을 접목했다. 116㎡ 크기 한옥으로 난방을 위해 ㎡당 연 1.5~2L의 기름만 쓴다. 기존 한옥에 비해 10배, 신축 아파트보다 4~5배 에너지 효율이 높다는 게 연구원의 예상치다.

부동산개발업체인 홈덱스는 충북 제천 충주호(청풍호) 수변에 한옥 31가구를 짓고 있다. 오는 10월 견본주택을 열고 분양할 계획이다. 나무·돌·기와 등 한옥의 기본 재료는 그대로 사용하지만 저렴한 수입 목재나 단열효과가 좋은 최신 건축자재를 쓴다. 홈덱스 이승훈 사장은 “건축비용을 줄이면서도 에너지 절감 효과를 높이기 위한 최신 한옥공법을 적용해 짓고 있다”며 “건축비를 대폭 줄여 분양가를 3.3㎡당 1000만원 정도로 책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보급형 한옥, 그린한옥 개발 활발전통 한옥이 아닌 한옥 인테리어나 설계를 도입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부동산개발업체인 피데스개발은 전남 목포시 남악신도시 옥암지구에 전통 한옥형 친환경 아파트인 ‘목포 우미 파렌하이트’ 548가구를 선보였다. 이 아파트는 한옥에서 볼 수 있는 사랑채와 툇마루에 해당하는 공간을 아파트에 도입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올 상반기 경기도 하남시 감일보금자리지구에 공급한 아파트에는 한옥의 특성을 살린 새로운 아파트 평면 4개 타입이 적용됐다. 집 안에서 한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안마당, 다실, 사랑방, 한실 등을 적용했다. 좌식생활에 익숙한 장년층이 대상이다. 피데스개발 김승배 사장은 “최근 부동산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한 결과 앞으로 주택시장을 이끌 주요 트렌드로 ‘전통의 한옥 디자인 도입’을 꼽은 사람들이 10.8%를 차지했다”며 “한옥 디자인이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옥이 앞으로 ‘과거의 주택’이 아닌 새로운 틈새상품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한옥의 장점이 부각되면서 한옥을 선호하는 수요층이 늘어나서다. 관광수요와 함께 한옥의 정취를 느끼려는 특정 계층이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펜션 전문업체인 광개토개발 오세윤 사장은 “한옥은 아파트는 물론 일반 단독주택 등과 비교해 건축비가 많이 들고, 건축 이후에도 관리나 수리 등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크게 확산되긴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았고 예술가 등 기본적인 수요층이 어느 정도 형성되면 꾸준히 사랑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존 한옥의 희소성이 부각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한옥건설 박주복 대표는 “최근 한옥에 대한 관심이 늘었지만 기존 한옥 밀집지역의 개축 및 신축을 제외하고 새로운 곳에서 한옥을 지으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다”며 “기존 한옥 밀집지역의 희소성은 계속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서일대 건축과 이재국 교수는 “한옥 보존에 대한 인센티브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한옥을 보유하면 세금부담을 경감해 주는 등 인센티브를 줘야 돈 있는 사람들의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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