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 김정은 누구인가 - 마이클 조던 좋아하고, 권력욕 강한 황태자
- 후계자 김정은 누구인가 - 마이클 조던 좋아하고, 권력욕 강한 황태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그의 셋째 아들인 김정은이 북한의 최고 권력자로 떠올랐다. 1984년 생으로 20대 나이인 김정은은 하루 아침에 한반도의 절반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상속인이자 최고경영자(CEO)로 자리 잡게 됐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12월19일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부고를 발표하면서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혁명 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시며 우리 당과 인민의 탁월한 영도자이신 김정은 동지께서 계신다”고 강조했다. 그가 북한 체제를 이끌어갈 유일한 후계자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김정일 사망으로 북한은 경제난 극복 구상을 포함해 그 동안 내걸어온 중요한 국가 정책 방향을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당장 김일성 출생 100년이 되는 2012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설정했던 것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김정일 사망 발표 이튿날인 12월20일자 노동신문이 “수령님 탄생 100돌을 기념하며 눈부시게 쏟아져 내릴 4월(김일성의 출생일인 4월12일을 의미)의 축포가 눈 앞에 있고 강성대국의 대문이 열리는 승리의 그날이 눈앞에 있고, 통일조국의 만세소리 삼천리를 진감 할 날이 멀지 않았는데…”라며 안타까움을 표현한 데서도 북한의 당혹감을 읽을 수 있다.
영어·프랑스·독어로 대화 가능김정은의 향후 행보와 관련해 가장 관심을 끄는 건 그가 북한 체제의 개혁·개방과 관련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가 김일성·김정일의 폐쇄적인 ‘우리식 사회주의’를 답습하면서 자력갱생을 강조한다면 북한의 미래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할아버지 김일성의 주체노선과 김정일의 선군(先軍)정치 틀을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무엇보다 자신의 권력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주어진 권력’이란 점에서 독자 노선을 걷기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선군정치의 프레임에 갇힌 슬픈 운명의 지도자가 될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물론 김정은이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통해 경제개혁을 함으로써 3난(달러·식량·유류 부족)을 극복하고 체제를 개방해 국제사회 일원으로 나선다면 새로운 기회를 맞을 수 있다.
김정은은 후계자 시절 자신의 업적 중 하나로 CNC (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컴퓨터수치제어장치)를 내세웠다. 영어 표기에 대해서는 절대 금기시하는 분위기 속에 노동신문에는 CNC란 표현이 북한식으로 고치지 않은 채 그대로 등장했다. 그 만큼 CNC를 ‘과학기술과 첨단 산업에 밝은 후계자’인 김정은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소재로 중시했다는 얘기다. 2011년 1월 북한 신년사를 대신해 발표한 노동신문 등 3개 신문의 공동사설에 “CNC기술의 패권을 틀어쥔 경험에 토대하여 모든 분야에서 세계가 도달한 과학기술 수준을 최단 기간 내에 뛰어 넘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할 정도다.

김정은이 김정일의 현지지도 마지막 행선지로 함께 찾았던 장소가 평양 광복지구 상업중심이란 점도 상징적이다.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관영매체들은 이 곳을 ‘슈퍼마켓’이란 서구식 표현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또 ‘중심’이란 표현 때문에 중국의 자본이 투자된 대형 마트라는 관측도 나왔다. 주체경제와 자력갱생이란 틀에 묶여있던 북한의 상업 유통망에 새로운 개방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현장을 김정일이 아들과 방문한 것이다.
김정은이 어린 시절인 1990년대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에서 5~6년간 유학한 경험도 그가 개혁·개방에 나설 가능성을 점치는 근거로 제시된다. 영어뿐 아니라 프랑스·독어 등도 어느 정도 가능한데다 미국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을 무척 좋아할 정도로 서구 문화에 대한 거부감도 적다는 것이다. 그의 주변에서 권력 실세로 자리할 김일성·김정일 시대 핵심 노(老) 간부들의 2~3세인 친구들도 대부분 해외유학이나 체류 경험이 있는 인물이란 점에서 경제 문제나 개혁·개방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나타낼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북한의 경제 상황이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엉망이란 점이다. 김정은 후계자 띄우기를 위해 2009년 11월 전격 단행한 화폐개혁은 경제 부문의 승부수였다. 물가 상승과 화폐가치 하락으로 나타난 인플레이션을 잡고 개인장사를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속칭 ‘돈주’라는 중소 상공인들의 장롱 속 돈을 끌어내려는 조치였다.
하지만 화폐개혁은 심각한 후유증만 남긴 채 실패로 막을 내렸다. 초기 물가가 폭등한데다 시장 폐쇄를 둘러싸고는 당국에 상인들이 집단 항의하는 체제불안 요소로까지 번졌다. 자칫 후계자 김정은의 위상에 먹칠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북한은 화폐개혁 실패의 희생양으로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을 공개 총살하는 극약처방까지 내놓아야 했다. 후계 체제 출범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에서 김정일은 어린 아들의 안정적 권력기반 마련을 위해 군부대 등을 쉴새 없이 돌아다녔고 공장과 기업소를 찾았다. 이제 김정은은 아버지의 유훈(遺訓)을 쫓아 경제복구를 위한 발걸음을 재촉해야 할 상황이 됐다.
김정은은 2010년 9월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직을 맡으며 공개석상에 처음 등장했다. 그 때 아버지인 김정일 최고사령관으로부터 북한군 대장 지위도 부여 받았다. 후계자로 공식 등장하기 이전 주민 사이에 ‘청년대장’으로 불리던 게 ‘북한군 대장’으로 순식간에 떠오른 것이다.
승부욕 강해 지고 나면 꼭 ‘복기’공석 등장 이후 김정은은 김정일의 군부대와 공장방문 등 이른바 현지지도에 동행하면서 현장 후계수업을 받았다. 특히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직전에는 김정일과 함께 도발 거점인 북한군 4군단(당시 군단장 김격식)을 방문했던 것으로 파악돼 연평도 도발 뿐 아니라 천안함 폭침 도발도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11년 6월에는 김정은의 ‘은덕’을 의미하는 ‘대장복(大將福)’이란 비석이 평양 시내에 등장한 것이 파악됐다. 10월에는 북한 관영 조선중앙TV가 김정은을 ‘존경하는 동지’로 찬양하는 호칭 장면을 내보내 후계자 지위구축을 가속화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전격적으로 북한의 최고통치자로 전면에 부상한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주목 받기 시작한 건 김정일의 건강 문제가 심각해진 2008년 여름 이후다. 한국은 물론 미국·일본 등 서방 정보기관들이 김정일 사후 북한을 누가 통치할 것인가를 주시하면서 이전까지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있던 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990년대 초까지도 국가정보원이 김일성 가계도에 김정일과 고영희의 소생인 정은의 이름이 없었던 데서도 전혀 주목 받지 못한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김정은이 후계자 지위를 낙점 받은 건 두 형들의 잇단 낙마 때문이었다. 후계자로는 당초 영화배우 출신 성혜림(2002년 사망)과 사이에 낳은 장남 김정남이 유력한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김정남이 2001년 5월 도미니카 가짜 여권을 이용해 일본 나리타 공항을 통해 밀입국하려다 적발된 사건을 계기로 국제적 망신을 사자 김정일의 눈 밖에 났다는 얘기가 나왔다.
김정남이 후계자 후보에서 밀려나면서 김정일이 고영희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 중 첫째인 김정철이 떠올랐다. 이복 형인 김정남보다 10살이나 어린 정철이 주목 받은 건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 작업 때문이다. 2002년 8월 조선인민군출판사에서 대외비로 펴낸 자료는 고영희를 ‘존경하는 어머님’으로 표현하고 있다.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에게만 부여되던 ‘어머님’이란 찬양을 받은 고영희가 후계자를 낳은 인물로 부상할 것임을 예고하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2004년 5월 고영희가 암 치료차 머물던 프랑스에서 숨진 이후 김정철이 후계구도에서 밀려났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호르몬계 이상으로 목소리가 여성화되고 가슴이 불거지는 등의 증세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한동안 혼미해지던 후계체제에 변화가 찾아온 건 김정일의 건강 이상이었다. 2008년 8월 김정일은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졌다 3개월 뒤 복귀한 후 김정은 후계 준비를 서둘렀다. 결국 “믿을 건 핏줄 뿐”이란 생각을 굳힌 그가 선택한 것은 당시 24살의 막내아들 김정은이었다. 하지만 우연이 아니라 김정은이 두 형을 제치고 권좌를 차지하겠다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강했고 이에 대비한 준비를 했기 때문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3년간 평양에 머물며 김정일의 요리사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2003년 6월 펴낸 『김정일의 요리인-가까이서 본 권력자의 본 모습』이란 저서에서 김정은의 어린 시절 모습을 상당 부분 공개했다.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일은 늘 정철을 가리키며 ‘쟤는 안돼. 여자애 같아서…’”라며 못마땅해 했다고 전했다. 또 “김정일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한 아들은 김정은으로 김정일과 체형까지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런 김정은의 성격이나 기질도 김정일이 후계자로 낙점한 배경으로 파악되고 있다.
농구경기를 즐겼던 정철·정은 두 형제의 에피소드를 살펴보면 리더십 등에서 차이가 난다. 형 정철은 경기에서 지고 나면 “수고했다”라는 의례적인 말만 남기고 현장을 먼저 훌쩍 떠나곤 했다. 하지만 승부욕이 강한 정은은 패배의 원인을 조목조목 따져보고 다음 번에 어떻게 해야 할 지 대책을 세우는 이른바 ‘총화시간’을 갖는 등 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군부 권력기반은 취약이런 성향을 갖고 있던 김정은은 점차 장악력과 리더십을 키워가며 지지기반을 넓혀가는 수완을 발휘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영희가 살아있을 당시 어린 김정은은 군복 차림에 권총을 차고 다니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 김정일의 군부대 시찰에 앞서 경호를 사전 점검한다는 이유로 현장을 답사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김정은이 김정일 앞에서 선군정치를 찬양하는 발언을 했고 혁명계승의 필요성을 역설함으로써 후계자 지위에 대한 야망을 드러냈다는 전언도 흘러나온다. 이런 과정을 거쳐 후계자가 됐지만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체제를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김정일은 1974년 2월 노동당 5기 8차 전원회의에서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김일성 사망까지 20년간 후계수업을 받고 탄탄한 권력 기반에서 출발했다. 이에 반해 김정은은 2008년 김정일의 건강 이상을 계기로 후계자로 낙점됐고, 본격적인 후계수업은 채 2년이 안 된다. 독자적인 후계 권력을 구축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주민들의 의식도 김일성 사망 때와는 판이하다. 200만명이 굶어 죽는 극심한 식량난 속에 ‘고난의 행군’이라고까지 불린 어려움 속에 배급체제가 무너졌고 자본주의적 요소의 유입 등으로 체제는 느슨해졌다. 남한 음악·드라마를 즐기는 북한 주민이 늘어나는 등 ‘북한판 한류(韓流)’가 거세다는 전언도 있다. 무엇보다 2만3000여명의 한국 정착 탈북자들이 북한 내 가족·친지들에게 외부 정보를 전해주고 있고 생활비조로 달러를 송금하고 있다.
2011년 초부터 본격화 한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M(모바일)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역할을 한 휴대전화도 100만대에 육박할 정도로 보급됐다. 그만큼 북한 주민들의 정보 흐름이 빨라지고 외부 정보와 접촉하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군부 고위 장성이나 노동당 간부 같은 권력 엘리트들이 김일성·김정일 시대처럼 ‘당신(수령)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는 식의 공동운명체 의식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김정일은 권력을 넘겨받은 뒤 아버지의 빨치산 동료인 군부 핵심 인사들에게 벤츠·별장 선물과 무더기 진급으로 환심을 사며 군부의 지지를 다졌다. 그렇지만 김정은으로서는 군부 내 권력기반이 취약할 수 밖에 없다. 물론 북한은 수령 독재체제를 60년 넘게 다져왔고 정치범 수용소를 포함한 폭압적 통치와 상호 감시 체제도 계속 작동하고 있다. 특히 북한의 안정을 바라는 중국이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자처할 경우 ‘김정은 체제’가 상당기간 순항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 정보를 다루는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얼마 전까지 김정일 후계체제와 관련해 “분명한 것은 김정일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 뿐”이라고 말해왔다. 북한 체제의 내부 정보가 취약한 상황에서 권력 핵심에서 일어나는 후계구도 구축과 관련한 내용에 접근하고 예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주는 얘기다. 이제 김정일이 사망함으로써 후계와 관련한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는 형국이다. 김정은이 경제문제를 포함해 체제생존을 위해 어떤 정책노선을 선택하고 대외적인 전략을 펼쳐나갈지 주목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美, 韓 근로자 구금 재발 방지에 “국토안보부·상무부 공동 대응”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JYP, 대통령 직속 문화교류위 공동위원장 내정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애플, 초슬림 '아이폰 에어’ 첫선…갤럭시 S25엣지보다 얇다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단독]'수백억 차익' 배우 박중훈, 강남 오피스 '타워 432' 매물로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김태유 아이엠비디엑스 대표 “조기 검진 매출 급증…내년 분기 흑자”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