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Issue] KTX 민간사업자 참여 논란 - “113년 철도 독점 깨야 효율 높아진다”
[Hot Issue] KTX 민간사업자 참여 논란 - “113년 철도 독점 깨야 효율 높아진다”
#1. 국토해양부는 1월 12일 오전 과천 정부청사에서 동부건설, 대우건설, 두산산업, 금호그룹 등 20개 민간업체를 대상으로 ‘철도 경쟁체제에 대한 간담회’를 열었다. 2015년부터 수서발 KTX 경부·호남선 운영을 민간에 개방하는 정부 계획과 관련한 첫 설명회 자리였다. 설명회는 애초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철도노조의 물리적 저지가 예상되자 하루 전 과천 정부청사로 간담회 장소를 바꿨다.
#2.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의 KTX 기장과 고속기관차 승무사업소 직원 427명은 1월 10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민간 운영사로 이직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국토부가 사회적 합의도 없이 졸속으로 민간 대기업에게 철도운영권을 넘기는 등 특혜를 제공하려 한다”며 “모든 직원은 민간 운영자 소속의 철도운영기관으로 이직을 절대 거부한다”고 강조했다. 철도노조는 각 역에 민영화 반대 펼침막을 내걸고, 본격적인 반대운동에 돌입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철도구조개혁 논의철도시장에 민간·공공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국토해양부가 지난해 12월 27일 새해 업무보고에서 2015년 개통할 수서발 KTX 경부·호남선 운영을 민간에 맡기겠다”고 밝히면서부터다.
국토해양부는 ‘2012년 정부 업무보고’에서 철도산업의 서비스 개선과 효율성 증대를 위해 경쟁체제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코레일이 독점하고 있는 지역간 철도운영시장을 민간이 참여하는 경쟁체제로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14년 말 수서와 평택을 연결하는 수도권 고속철도가 완공되면 2015년부터 수서에서 출발하는 호남선(수서~목포)과 경부선(수서~부산) 고속철도 운영권을 민간에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경인선 개통 이래 113년간 이어진 코레일의 독점체제가 깨진다.
KTX 경쟁체제의 효과를 둘러싼 전망은 엇갈린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철도 운송사업에 민간업체가 참여하면 효율성이 높아져 요금이 평균 20% 내려갈 것이며 방만한 경영 탓에 일어나는 잦은 사고도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철도가 경쟁체제로 운영되면 요금 낮추기 경쟁이 심화돼 안전설비 투자가 소홀해질 수 있다고 반박한다. 또 효율성만 중시하면 결국 비수익 노선의 운행이 줄어 철도의 공공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민 혈세로 대자본의 배만 불릴 것이란 비난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쟁점별로 서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우선 정권 말기의 특혜 논란이다. 전국철도노조는 지난해 12월 27일 서울역에서 ‘KTX 분할 민영화 음모 저지를 위한 간부 결의대회’를 열고 “정부가 주장하는 경쟁체제는 사실상 민간자본에 대한 특혜이며 철도의 공공성을 파괴하는 민영화”라면서 “국민 혈세로 민간자본의 배만 불릴 것”이라고 비난했다. 노조는 “인천공항 매각, 영리병원 도입에 이어 정부가 공공부문을 팔아 외국 자본의 이윤만 챙겨주려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주장은 다르다. KTX 경쟁체제 도입은 독점 운영에 따른 비효율을 제거하고 철도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역대 정부의 철도개혁 시도의 연장선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1989년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5차례의 법 제·개정으로 철도구조 개혁을 추진했다. 다만 철도청과 철도노조의 반발, 정부의 추진 동력 부족 등으로 철도공사를 설립한 것 빼고는 가시적인 성과가 미흡했다.
정부가 2015년부터 수서에서 출발하는 호남선과 경부선의 고속철도 운영권을 민간에 개방해 경쟁체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건 2004년 마련한 ‘철도산업구조개혁기본계획’의 일환이다. 철도산업구조개혁은 2004년 철도 시설(철도시설공단)과 운영(당시 건설교통부)의 분리(1단계), 2005년 철도 운영의 코레일(당시 철도공사) 이관(2단계), 2010년 여객과 화물 운영 분리(3단계), 철도 운영 민간에 개방(4단계) 등의 단계로 추진하고 있다. 철도 운영의 민간 개방은 철도구조개혁의 마지막 단계다.
이번 사안을 둘러싼 용어도 서로 엇갈리고 있다. 코레일과 철도노조 측은 KTX 노선의 민간업체 참여를 민영화라고 보고 있다. 민영화란 민간사업자가 기존 공공서비스를 수익 원리에 따라 운영하는 것이란 뜻에서다. 민영화에는 공기업의 지분을 파는 방식이 있고, 정부가 시설은 소유하되 운영권만 불하하는 방식도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지분 매각이 주를 이뤘지만 요즘 들어선 운영권을 넘기는 방식이 국제적 흐름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철도산업은 국가 핵심시설로 간주돼 민영화 하더라도 선로 시설을 제외하고 운영권만 불하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정부는 KTX 시설은 국가가 계속 소유하고 운영권만 민간에게 주는 것이므로 ‘경쟁 도입’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국토해양부는 1월 2일에 경쟁 도입을 위한 신설 KTX 민간운영자 선정계획과 관련 “일부 언론과 코레일 등에서 민영화나 특혜 등을 언급하며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로·공항·항만처럼 철도기반시설은 국가 소유이며, 코레일도 공사 형태로 존속하는 등 민영화 대상이 없고, 공공지분과 기반시설을 민간에 매각하는 것도 아니므로 민영화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국토해양부는 “정부가 추진하는 경쟁 도입은 서비스 개선, 요금 인하 등 국민편익 증진을 위해 113년간 코레일이 향유해온 독점의 폐해를 타파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경쟁 도입을 민영화라고 왜곡하는 것은 독점 폐해의 방만함과 기득권 유지를 위해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코레일의 방만경영도 도마에경쟁체제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도 입장이 다르다. 코레일의 정정래 전략기획처장은 “경쟁체제 도입을 무조건 반대하진 않지만 지금의 정부안은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낮은 요금과 수요 부족으로 적자가 나는 일반철도는 그냥 두고 왜 수익을 내는 KTX를 민간에 넘겨야 하느냐”고 반발했다. 정부의 계획은 ‘팔이 아픈데 다리를 치료하는 격’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코레일의 영업적자(4700억원)는 대부분 공공성 유지를 위해 수익성이 낮은 적자 노선이나 인력 의존도가 높은 새마을·무궁화·화물열차 등에서 났는데 정부는 돈벌이가 되는 사업을 민간에 넘기려 한다는 주장이다. 코레일은 고속철도에서 흑자를 내서 일반철도와 화물철도의 적자를 보전하고 있는데 수익 노선인 고속철을 민영화하면 철도공사의 재정적자는 불 보듯 뻔해 제2의 한국토지주택공사 같은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국토해양부의 구본환 철도정책관은 “코레일이 방만한 경영을 해왔다”며 “해마다 수천억원씩 적자를 내는 조직에 더 이상 새로운 사업을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철도구조개혁은 독점에 따른 방만경영을 깨고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목표로 추진해왔다. 부채가 9조7000억원에 이르는데도 인건비는 2005년 공사 설립 때보다 20% 늘고, 평균 연봉이 5800만원에 이르는 건 독점에 따른 코레일의 방만경영 탓이라는 분석에서다. 경쟁체제를 도입하면 서비스 품질 향상, 요금 인하, 불필요한 비용 절감 등의 다양한 효과가 있다는 게 국토해양부의 설명이다. 현재 민간이 운영하는 서울 지하철 9호선과 신분당선 등의 반응이 좋다는 것이다.
요금에 대한 전망도 제각각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의 이재훈 철도연구실장은 “민간 기업이 효율적으로 경영을 하면 KTX 요금이 20% 싸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토해양부는 요금인상 우려에 대해서 “고속철도 요금은 철도사업법에 따라 정부가 공공요금으로 지정·고시하기 때문에 민간사업자가 임의로 요금을 올릴 수 없다”며 “오히려 경쟁을 통해 요금을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민간사업자는 기존 적자 노선을 보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더욱 합리적인 가격을 매길 수 있다는 것이다. 국토해양부는 “적정 수익률을 초과하는 금액은 국가가 선로사용료 형태로 징수하므로 대기업에 대한 특혜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고속철도는 국가 기간산업인데 민간사업자가 운영하면 공공성이 약화되지 않을까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정부는 “더 많은 사람이 더 싸게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요금을 내리고 다양한 요금 제도를 만드는 게 진정한 공공성”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코레일의 한문희 기획조정실장은 “앞서 민영화된 영국은 1995~2010년 사이 장거리 철도 운임이 107%나 인상됐다”고 설명했다. 코레일 소속 부장급 이상 중간 간부 2000여명은 한국교통연구원이 고속철도 경쟁체제 도입에 대한 보고서에서 ‘민간기업 진입 때 운임을 20% 인하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으로 코레일이 마치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왜곡했다며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안전문제도 쟁점이다. 민간기업이 KTX 운영에 참여하면 안전관리 체계를 바꿔야 한다. 그동안 코레일이 담당하던 관제권을 정부가 회수해 철도시설공단이나 별도 조직에 맡겨야 한다. 정부는 관제와 운영이 분리되면 크로스 체크를 할 수 있어 더욱 안전해진다고 주장한다. 한국교통연구원 측은 “지난해 2월 11일 광명역에서 발생한 KTX 산천 탈선 사고를 비롯해 지난해 이틀에 한 번꼴로 열차사고가 발생했다”며 “코레일의 방만한 운영을 바로잡기 위해서 경쟁체제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반면 코레일 관계자는 “명령체계에 혼선이 생겨 사고가 늘 것”이라며 “영국도 민영화 후 6건 사고로 56명이 희생됐다”고 반박했다. 이같은 사고를 겪은 영국은 2002년 선로관리 회사만 다시 공영화했고 이후 인명사고는 2건(희생자 7명)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방만한 경영 탓에 사고가 잦다는 주장에 대해선 오히려 정부의 예산 축소가 KTX 사고를 부추겼다고 반박했다. 국회 국토해양위 현기환(한나라당) 의원은 “고속철도 선로의 유지보수 예산이 5년 동안 절반 이하로 줄었다”며 “부품 노후화와 제작 결함 등과 더불어 이런 예산 축소가 KTX 고장 사고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올 상반기 안에 민간사업자 선정논란 속에 국토해양부는 올 상반기 안에 민간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사업자가 운영준비를 갖추려면 적어도 30개월은 걸리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는 1월 12일 오전 열린 설명회에서 “2015년부터 코레일이 운영할 서울발 경부선을 편도기준 63회, 민간 개방 검토 중인 수서발 경부선을 27회 운영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남선은 용산발 44회, 수서발 24회를 고려 중이다. 또 코레일과 민간사업자가 공동 사용할 구간(평택 이남 구간)의 운행 시간은 정부가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차량기지와 역사는 국가가 소유하고 민간사업자에게 임대하게 된다.
한편, 이날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박근혜)는 정부의 철도 경쟁체제 추진에 대해 “당정 협의를 통해 수정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반대입장이라는 해석이다. 국토해양부 측은 “그동안 설명이 부족했다”며 “비대위 측을 설득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올해 총선·대선 정국 속에서 정부 계획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남승률 이코노미스트 기자 namo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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