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요즘 뜨는 해외 여행지 3선 - 낯선 땅에서 즐기는 특별한 자유
[Travel] 요즘 뜨는 해외 여행지 3선 - 낯선 땅에서 즐기는 특별한 자유
케냐
날것 그대로의 야성이 살아 숨쉰다
채인택 중앙일보 기자
아프리카 중동부 케냐(Kenya)가 요즘 여행지로 부쩍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정년퇴직, 고교 졸업 30·40·50주년, 부부 은혼식(결혼 25주년) 등 특별한 이벤트의 기념행사로 케냐 여행이 각광 받고 있다. 가족 휴가지로도 추천할 만하다. 인기를 반영해 6월엔 직항편도 생긴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로 가려면 이전에는 태국 방콕이나 인도 뭄바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등에서 환승해야 했다. 대한항공은 케냐항공과 코드쉐어를 통해 방콕을 경유해 나이로비까지 가는 경유 노선을 운항해 왔다. 하지만 6월 21일부터는 동북아시아 최초로 주3회 인천-나이로비 노선에 직항편을 투입한다.
은고비 키타우 주한 케냐 대사는 “케냐는 야생 동식물의 보고인 사파리와 호수, 산, 해안 등 아프리카의 매력을 고루 갖고 있으며 숙박과 레저 시설을 비롯한 관광 인프라가 잘 구비된 것이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사실 케냐는 19세기 유럽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했던 여행지였으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가장 보고 싶어했던 것은 야생동물이었다. 낮은 관목이 자라는 사바나에는 사자, 표범 같은 맹수들이 득실거리고 근처에는 그들의 먹이가 되는 얼룩말, 물소, 임팔라, 영양 등 갖가지 초식동물이 떼를 지어 살고 있다. 코끼리, 기린, 코뿔소 같은 거대 초식동물들도 빠뜨릴 수 없다. 호수에 가면 악어와 하마가 영역을 지키며 살고 있다. 바람이라도 세게 불라치면 홍학과 펠리컨이 수백 수천 마리씩 동시에 날아올라 장관을 이룬다. 케냐에 가면 바로 눈앞에서 이런 광경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케냐는 야생 동물의 서식환경을 지키기 위해 환경보호에 무척이나 신경 쓴다. 아울러 국토 대부분이 건조한 고원지대라 연중 18~22도를 유지한다. 지내기 쾌적한 온도다.
케냐 여행은 단체여행이 주를 이룬다. 공항에서 픽업 나온 바로 그 SUV 차량을 타고 전국 곳곳의 국립공원을 돌며 사파리, 호수 등을 방문하고 그 차량을 타고 공항으로 돌아와 출국할 수 있는 조직적인 단체관광이 발달했다. 영어가 공용어라 의사소통에 큰 불편 없이 관광을 즐길 수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 여기저기 찾아 다니며 관광하기는 아직은 불편하다.
이 나라의 핵심 관광지는 아프리카의 야생과 연결된 국립공원과 국립보호구역이다. 사자와 기린이 다니는 사파리가 여기에 있다. 사파리 곳곳에는 텐트형 숙소가 있는 리조트도 자리 잡고 있어 편리하게 관광할 수 있다. 말이 텐트지 텐트 흉내를 낸 호텔 객실이라고 보면 된다.
주요 국립공원으로는 국경 너머로 눈 덮인 킬리만자로산(케냐 서남쪽에 있는 탄자니아에 있다)이 보이는 암보셀리 국립공원, 마사이 족과 사자로 유명한 마사이마라 국립 보호지구, 수많은 홍학과 펠리컨의 군무로 유명한 나쿠루 호수 국립공원, 보트를 타고 야생 하마 가족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나이바샤 호수, 눈 덮인 봉우리가 있는 북부 마운트 케냐 국립공원, 해안지대에 있는 몸바사 해양 국립공원 등이 유명하다. 케냐 시내에도 국립공원이 있다. 적도가 케냐 국토의 중북부를 지나는데 국립공원 가운데 마운트 케냐는 북반구에 해당한다.
건조한 고원지대에 펼쳐진 대자연케냐의 국립공원과 보호구역 가운데 단연 백미는 서부에 있는 마사이 마라다. 인기 있는 맹수를 고루 만나고 전통생활을 고집하는 마사이족의 삶을 함께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케냐의 매력을 요약해서 볼 있는 곳이다. 직접 찾은 마사이 마라는 하늘도, 초원도 하염없이 푸르렀다. 그 속에서 야생동물들은 거친 삶을 살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날것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마사이 마라에 있는 사로바 마라 로지에 여장을 풀었다. 인도계 자본이 투자해 세운 사파리 내 리조트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선뵀던 아프리카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야성적인 장소였다. 리조트는 전기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야생동물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밤이면 야수들이 싸우거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여장을 풀자마자 나이로비 조모 케냐타 공항에서부터 타고 온 사파리 차량인 랜드크루저를 타고 초원으로 나갔다. 사파리에 들어선 지 5분이 안 돼 치타 두 마리를 만났다. 긴 뿔이 달린 수컷 임팔라(영양의 일종) 한 마리를 사냥해 배를 갈라서 내장부터 먹고 있었다. 검붉은 간이 선명하게 보였다. 운전기사 겸 가이드 윌슨은 “사냥 당한 동물들은 목숨이 붙어 있는 상황에서 먹히기도 한다”고 말했다. 순간 탑승자 전원의 눈길이 임팔라에게로 다시 갔다. 임팔라는 아무 움직임이 없었지만 숨이 완전히 끊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가벼운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지만 충격이 주는 환청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파리는 야생동물의 사냥터조금 지나서 무려 16마리의 사자 가족을 만났다. 사파리 내 비포장 도로 바로 옆이었다. 물소는 이미 해체 상태였다. 배가 터지도록 먹었는지 어린 암사자 한 마리는 도로에 벌렁 누워있었다. 주변에 비릿한 피 냄새가 진동했다. 아프리카, 초원, 야생, 마사이 마라를 촬영한 어떤 동영상도 알려주지 못한 야생의 냄새를 직접 맡을 수 있었다. 사실 초원은 의외로 깔끔했다. 풀 냄새가 조금 날뿐 공기는 신선했다. 하지만 이 순간 만은 그 맑은 공기를 뚫고 비릿한 냄새가 온통 풍겼다. 이튿날 다시 그곳에 지나가면서 보니 물소는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거대한 뿔과 머리 부분, 그리고 피묻은 갈빗대만 남아 있었다. 귀엽게 생긴 새끼 사자 두 마리가 뜯겨 나온 물소 꼬리를 물고 장난치고 있었다. 입에는 핏물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이를 뒤로 하고 계속 달렸다. 사파리의 하이라이트인 또 다른 사냥 장면을 찾아서다. 거대한 코끼리가 떼를 지어 나타나고, 나무 뒤에서 갑자기 키다리 기린이 고개를 들고 튀어나왔다. 무뚝뚝한 눈초리의 얼룩말과 겁먹은 눈망울의 임팔라, 그리고 맑은 눈동자의 톰슨가젤이 떼를 지어 풀을 뜯다 갑자기 뛰어 달아나기도 했다. 뿔이 무서운 야생물소 떼와 코뿔소가 동상처럼 서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멀리 풀을 뜯고 있는 어린 얼룩말을 향해 암사자 두 마리가 천천히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작은 임팔라 주변을 하이에나가 서로 거리를 두고 천천히 포위하는 모습도 보였다. 어리거나 약하면 곧바로 노림을 다하는 게 사파리의 법칙이었다.
초원에선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사냥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사람만은 사냥을 살 수 없었다. 야생동물이 현저히 줄어든 20세기 중엽 이후 사냥은 금지됐다. 하지만 그 흔적은 사냥이라는 뜻도 있는 영어 단어 ‘게임(game)’이 붙은 롯지나 보호구역에 여전히 남아있다. 이런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추억이 사람들을 케냐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매력이다.
케냐로 가려면 출발 1주일쯤 전에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국립의료원과 인천공항에서 취급한다. 미리 서둘러야 한다. 말라리아 예방약을 복용하는 것은 선택이지만 권장된다. 바르는 모기약을 가져갔지만 쓸 일이 없어 도로 가져왔다. 간혹 쓸 일이 있는 곳도 있다. 인사말인 ‘잠보’와 환영을 뜻하는 ‘카리부’라는 스와힐리어를 알아주면 도움이 된다.
태국 빠이
머물수록 빠져드는 블랙홀
정숙영 여행작가
2009년 떠난 약 석 달 간의 인도차이나 배낭여행에서 빠이라는 곳을 처음 만났다. 사나흘 머물 것이라 생각하고 들어갔다. 그것도 길지 싶었다. 그러나 신비로운 일이 일어났다. 닷새가 마치 한 시간 마냥 순식간에 흘러간 것이다. 또다시 며칠이 지나고, 열흘이 될 무렵 결국 결단을 내렸다. 이후의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빠이에만 머물겠노라고. 그때 한 교민을 만나 이런 말을 들었다. “빠이는 블랙홀이야. 머물면 머물수록 빠져들어.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요.” 그는 벌써 5년째라고 했다.
빠이에 그렇게 볼 것이 많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꽤 근사한 편이긴 하다. 워낙 고산 마을이다 보니 풍경 자체가 수려하다. 스쿠터를 한 대 빌려 근처에 있는 온천, 폭포, 전망대, 등을 돌아보는 것도 좋고, 열대 밀림 속에서 즐기는 래프팅, 트래킹, 코끼리 타기 등의 레포츠도 잘 발달되어 있다. 카렌족이니 몽족 같은 유명한 고산족 마을들도 매우 가깝다.
이런 관광거리들은 겨우 사나흘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런 꺼리들을 소진한 후에도 사람들은 빠이를 잘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지런하게 사나흘을 보내고 나면 다들 모습이 엇비슷해진다. 삼각베개와 깔개가 놓인 평상 위에 길게 누워 책을 읽거나, 해먹에 누워 낮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거나, 기타를 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어느새 단골이 되어버린 카페에서 여행자들과 수다를 떨거나,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빠이는 그런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빠이만의 특별한 에너지. 느릿하지만 왠지 어깨가 들썩이는, 대놓고 게으르지만 묘하게 심장과 발바닥은 간지러운 그 희한한 기운. 빠이의 그런 에너지를 누군가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 때는 “마치 작은 볼륨으로 틀어놓은 레게 음악 같다”고 표현하곤 한다.
빠이는 태국 북부의 중심 도시인 치앙마이와 매홍손을 연결하는 좁은 산악 도로 사이에 휴게소처럼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다. 고산족인 샨족이 가끔 물건을 팔러 내려오는 것 외에는 그다지 인적이 많지 않던 이곳에,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와 자리 잡기 시작한다.
세상의 속도를 거부하다미술가, 디자이너, 타투이스트(문신시술자), 음악가, 영화인, 그리고 히피. 그들이 이 산속 마을까지 찾아온 이유는 하나였다. 분주함, 그리고 틀에 박힘이라고 하는 자본주의가 만든 도시의 규칙을 거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산속을 딱 적당한 만큼만 도려내어 그들만의 세상을 꾸려나갔다. 세상의 속도가 아닌 마음과 욕망의 리듬을 정직하게 따르며 천천히 살아갔다. 그들의 삶을 일컬어 ‘슬로 라이프’라고 표현하지만 처음부터 딱히 대놓고 그런 슬로건을 내걸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냥 살다 보니 그렇게 살아졌을 뿐.
이 독특한 마을에 대한 소문은 여행자들의 입을 타고 조금씩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태국 북부를 찾은 배낭여행객들은 교통도 끔찍하게 불편한 이 마을에 어떻게든 들어가려고 기를 썼고, 겨우 도착한 빠이에서 터 잡고 사는 이들이 뿜어내는 기묘한 에너지에 금세 감동하고 동화됐다. 그러기를 수년, 어느새 빠이의 주인은 여행자들로 교체되었다. 골목골목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가득하고 그럴듯한 리조트도 생겼다. 식당, PC방, 기념품점, 마사지 숍 등 마을 대부분의 상점이 여행자 대상으로 장사하는 곳이다. 덕분에 원래 이곳의 주인이던 예술가와 히피들은 더 외딴 곳을 찾아 떠나가고, 예술가 마을이나 슬로우 타운이라는 이름은 조금씩 빛이 바래는 중이다. 이런 산골짜기에서 세계를 매료시킬 만큼 강한 향을 뿜었던 것이라면, 그 향의 주체들이 자리를 옮겼대도 그 잔향이 남아있을 터다. 아직도 이 마을 곳곳에는 예술적이고 히피적인 것들이 당연한 듯 널려있다. 카페에서는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할 일 없는 타투이스트는 기타를 치며 존 레논의 노래를 읊조린다. 앞 뒷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미국인 여행자와 태국인 영화감독은 함께 박찬욱의 ‘올드보이’를 논하다 어느새 친구가 된다. 간판 하나, 낙서 하나 조차 범상한 것이 드물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여행자들은 자신들이 살던 곳에서 느끼지 못하던 요상한 여유를 즐기며 지상에서 두 번은 없을 것 같은 행복한 게으름을 누린다. 그래서 빠이는 되도록 빨리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초창기 예술가들과 히피들이 뿜어놓은 잔향마저 다 사라지고, 그저 그런 태국 북부의 예쁘장한 관광지가 되어버리기 전에 말이다.
일요일 아침 같은 여유빠이 여행은 치앙마이에서 시작한다. 한국에서 갈 때는 대한항공의 치앙마이 직항편을 이용하거나, 방콕으로 들어가서 기차나 국내선 항공기, 또는 야간 버스를 이용하여 치앙마이까지 가면 된다. 치앙마이에서 빠이로 가는 법은 두 가지. 비행기 또는 버스이다. 태국 국내선을 타고 30분쯤 날아가면 빠이에 도착하지만 버스를 타는 것이 낫다. 그태국 현지인들이 타는 빨간 로컬버스 추천한다. 대관령 옛길 정도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꼬불꼬불 산길을 몸소 겪다 보면 처음 이 마을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도대체 세상이 얼마나 싫었길래 이런데 까지 찾아왔을까 궁금해진다.
마을에 들어서면 그때부터는 어려울 것이 없다. 천지에 널린 게스트하우스를 직접 돌아보며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고르면 된다. 비수기에는 한국 돈 2만 원이면 욕실이 딸린 근사한 방갈로 독채를 쓸 수 있다. 에어컨 딸린 방은 좀 더 비싸지만, 아주 더운 철(4~6월)이 아니라면 빠이에서 에어컨은 그다지 필요치 않다. 아침저녁으로는 한기가 느껴질 정도이고, 낮에도 선풍기 하나면 충분히 버틴다. 이곳만을 목적으로 오는 한국 여행자들은 아주 드물고, 대부분 태국이나 인도차이나 배낭여행 중 2~3일 정도 일정으로 찾아온다. 그 여행자들의 대부분이 1~2일 정도는 여행 기간을 연장하고, 그렇게 연장한 여행자들 중에 적지 않은 수가 블랙홀에 빠진다.
이런 멍한 여유, 이런 한없는 게으름과 편안함,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노 스트레스’의 자유. 빠이의 이런 매력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고민하다, 컴퓨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Sunday Morning’을 들으며 답을 얻었다. 일요일 아침. 일주일 내내 밟아오던 액셀러레이터를 잠시 놓는 그 헐렁한 시간. 빠이는 꼭 그 시간을 닮은 곳이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세계를 매혹시킨 지중해의 파라디소
김랑 여행작가
지중해 최대의 섬이며, 영화 ‘대부’의 돈 콜리오네의 고향. ‘시네마천국’의 토토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 시칠리아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지중해 길목에 놓여 고대문명과 중세를 지배한 세력 대부분이 거쳐갔고, 그로 인해 이탈리아 본토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문화의 보고가 됐다. 언뜻 거칠고 황량하지만 다른 한편은 비옥하고, 또 한편으로는 극적이다. 그래서 시칠리아인들은 “신은 세상을 창조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으며, 그 눈물 중 하나가 시칠리아”라고 한다.
시칠리아는 ‘하얀 대리석’이라는 그 이름처럼 고대로부터 축적된 다채로운 유산이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그 어떤 곳보다도 독특한 볼거리가 풍부한 여행지다. 메두사와 포세이돈의 바다, 불칸의 땅인 웅장한 활화산, 파란 지중해를 굽어보는 언덕 위의 올리브 나무, 햇살을 닮은 처녀들과 거칠지만 유쾌한 사내들, 바다를 가득 담은 싸고 맛있는 음식, 그리고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 이탈리아의 이미지로 떠올리는 그 모든 것들이 바로 시칠리아에 있다. 로마, 베네치아 등 기존의 화려한 여행지를 뒤로한 채 시칠리아를 찾는 국내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는 콘카도로(Conca d’Oro)라 불리는 거대한 원형극장 형태의 지형 속에 놓여있다. 기원전 8세기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건설된 이 도시의 구도심은 그리스로마 양식에서 아라비아, 노르만, 바로크, 아르누보 등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이 혼재하는 문화 전시장이다. 중세 초기에는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였으며, 독일의 대문호인 괴테는 주저 없이 팔레르모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했다.
도시 대부분의 여행명소는 구시가에 몰려있다. 프레토리아 광장(Piazza Pretoria)은 대리석 조각으로 꾸며진 16세기 분수가 눈길을 끌고, 이곳에서 도보 10분 거리에는 시칠리아와 노르만 양식이 혼합되어 화려하면서도 독특한 대성당이 있다. 항구와 가까운 구도심 동쪽에는 네 개의 똑 같은 건물과 분수가 대칭형으로 놓인 콰트로 칸티(Quattro Canti)가 있으며, 주변에 아라비아인의 흔적이 남은 재래시장인 부치리아(Vucciria)가 있다.
팔레르모 남서쪽에 위치한 몬레알레(Monreale)는 구릉 위에 위치하여 팔레르모 시내와 항구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마을로 아름다운 대성당을 만날 수 있다. 성당은 노르만, 비잔틴, 아랍 양식이 절묘하게 혼합되어 있으며, 특히 장엄하고 섬세한 모자이크 장식이 유명하다.
괴테가 반한 중세도시 팔레르모겨울에도 따뜻한 날씨에 주홍빛 히비스커스와 자줏빛 부겐빌레아, 레몬이 언덕 집 담장을 넘어 푸른 지중해를 바라보는 타오르미나는 시칠리아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관광지다. 아담한 도시는 200m 남짓 높이의 언덕에 놓여 이오노를 바라보고,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에 서면 저 멀리 에트나산이 우뚝 솟아있다. 발 아래에는 투명한 물빛과 깨끗한 백사장을 가진 아름다운 두 해변, 마차로(Mazzaro)와 지아르디니 낙소스(Giardini Naxos)가 놓여있고, 그 가운데는 동화 같은 작은 섬 이솔라 벨라(Isola Bella)가 자리하고 있다. 타오르미나가 품고 있는 바다의 아름다움은 영화 ‘그랑블루’를 통해서도 알려졌다. 이곳은 세계적인 휴양지답게 각양각색의 리조트, 레스토랑과 상점이 즐비한데, 영화의의 촬영지였던 산 도메니코 팔라스 호텔은 수도원을 개조해서 만든 곳이다.
타오르미나의 가장 멋진 볼거리인 그리스극장(Teatro Greco)은 BC3세기에 그리스인들이 착공하고, 후에 로마인들이 재건했다. 최대 지름이 백 미터를 넘는 규모로 웅장한 느낌이 든다. 그 밖의 고대유적으로는 음악공연장인 오데옹(Odeon)과 도로를 지지하는 동시에 거대한 수조를 덮은 거대한 벽인 나우마키에(Naumachie)가 있다. 마을 중앙을 관통하는 움베르토1세 거리는 다양한 카페와 상점을 구경하면서 걷기 좋고,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와 요새처럼 생긴 13세기의 두오모가 인상적이다. 마을 동쪽에는 멋진 해변이 펼쳐지는 한 눈에 볼 수 있는 케이블카가 있다.
체팔루는 시칠리아 북동부, 팔레르모에서 동쪽 70km, 메시나에서는 185km 거리의 티레노에 면해 있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라 로카(La Rocca)라고 하는 거대한 바위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멋진 해변을 마주하는 드라마틱한 풍경과 영화 ‘시네마천국’의 배경으로 알려진 덕분에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마을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레스토랑과 호텔 등 휴양시설도 잘 갖추고 있다.
마을의 이름은 그리스의 해외 식민지였던 세팔로에디움(Cephaloedium)에서 유래했으며, 기원전 4세기에 이미 그 이름이 언급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마을 뒤에 우뚝 선 바위산에는 과거 다이아나의 신전이 있었고 지금은 고성이 남아있다. 마을은 중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며, 여름에는 고색창연한 마을에 활기가 넘쳐 더욱 낭만적이다. 걷는 맛이 쏠쏠한 골목길을 지나 마을 중앙에 이르면 시칠리아의 대표적인 노르만 양식의 건축물로 꼽히는 12세기의 두오모가 있다. 루제로 2세가 시칠리아의 종교적 구심점으로 삼기 위해 공들여 지은 것으로 그 느낌이 장엄하며, 특히 예수 모자이크는 비잔틴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멀리 지중해를 바라보는 언덕에 자리잡은 아그리젠토(Agrigento) 는 BC6세기에 건설되어 아크라가스(Akragas)로 불렸으며, 고대 그리스의 황금시대에 시라쿠사(Siracusa)와 함께 마냐 그라에치아(Magna Graecia)를 대표하는 도시였다.
아득한 고대의 풍경 아그리젠토아그리젠토에는 그리스 신전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신전의 계곡(Valle dei Templi)이 있는데, 아그리젠토 남쪽의 낮은 산등성이에 걸터앉은 고대 그리스의 건물단지로 그리스 이외의 지역에서는 최대 규모다. 반경 약 6km의 구릉지대에 기원전 6세기와 5세기에 걸쳐 건설된 도리아식 콘코르디아 신전, 원래 34개의 기둥 중에서 25개 기둥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주노네(주노, 헤라) 신전, BC6세기 후반의 에르콜레(헤라클레스) 신전 등 열 개의 신전과 건물유적이 남아있다. 유적지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도 함께 발굴됐는데, 대표적인 것이 기독교 이전의 매장풍습을 엿볼 수 있는 지하묘지다. 신전의 일부는 기단과 기둥, 지붕까지 완벽하게 남아있는 등 2500여 년의 세월에 비해 보존상태가 무척 양호하다. 여름에는 밤늦게까지 개장하는데, 조명이 켜지면 신전들의 분위기는 더욱 환상적이다. 그리스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 웅장한 신전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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