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ATURES] 박지은·박영식 남매의 새로운 도전

1990대 초 겨울, 초등학생 남매는 매일 새벽 6시 조깅을 했다. 아버지 박수남(65) 삼원가든 회장은 골프를 하는 남매에게 기초체력이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어린 남매는 가끔 아버지의 눈을 피해 게으름을 피기도 했다. 1년 후 중학생이 된 누나는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떠났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동생은 “골프를 그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저도 어릴 때 골프를 그만두고 싶은 적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엄해서 말을 못했어요. 그런데 얘는 ‘저 안 할래요’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뜻밖에 ‘그래, 하지마’ 하셨죠(박지은).”
“난 원래 골프 시키려고 한 게 아니니까 그렇지. 후후(박영식).”
4월 5일 서울 신사동 블루밍가든에서 만난 박지은·박영식 남매는 서로 옆구리를 찌르며 유년시절을 회상했다. 박 부사장은 “골프를 좋아하는 부모님 영향으로 누나는 9살에 처음 골프채를 쥐었다”며 “누나와 다르게 나는 먹는 것에 관심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블루밍가든은 박 부사장이 2008년 론칭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박지은 선수가 한국에 올 때마다 들른다.
박 선수는 3월 말 미국에서 열린 LPGA(여자프로골프) 나비스코 챔피언십에 참가하고 4월2일 귀국했다.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표정이 밝았다.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는걸요. 저를 채찍질하는 계기로 삼아야죠.” 필드에서 20년 넘게 보낸 ‘프로’답게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박 부사장이 “누나는 승부욕이 강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라고 하자 “사실 마음이 편치 않지만 컨트롤하는 노하우가 있다”고 되받았다. 박 선수는 스케이트 명문인 리라초등학교에서 스케이트 역시 1등을 할 정도로 일찍이 스포츠에 재능을 보였다.
남보다 일찍 제 길 찾아고교 때 미국 아마추어 랭킹 1, 2위를 다투던 박 선수는 99년 프로로 전향해 박세리, 아니카 소렌스탐 등과 경쟁했다. “계획보다 2년 정도 일렀지만 돌아보니 그때가 전성기였던 것 같아요.” 박 선수는 2000~2004년 LPGA에서 6번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말 그대로 골프에 ‘올인’했어요. 세계 랭킹 1위가 목표였는데 결국 2위에 머물렀죠.”
가만히 듣고 있던 박 부사장이 “말은 안 했지만 그때 누나가 참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누나가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박 부사장은 묵묵히 응원했다. 2006년 박 선수가 부상으로 힘들어할 때 역시 그랬다. 박 부사장이 “속으로는 ‘어떡하나’ 걱정했다”고 하자 박 선수가 “20년 동안 골프만 보고 걸어온 길에서 한번쯤 쉬어가라는 뜻으로 여겼다”며 웃었다. 이어 “얘도 지고는 못 산다”며 역공에 들어갔다.
박 부사장은 17살에 누나가 있는 미국 애리조나로 유학을 갔다. 당시 박 선수가 대학 기숙사에 있어 함께 살지는 않았지만 주말마다 만나 객지 생활의 외로움을 달랬다. “고집이 세고 제멋대로였는데 유학하며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요. 요즘은 화를 잘 안 내고 할 말이 있어도 참아요.” 박 부사장은 뉴욕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 한국에 돌아와 외식업에 뛰어들었다. 일식 레스토랑 ‘퓨어’를 열었지만 기대만큼 성과가 나지 않았다. 그때 나이 24살. “멋모르고 젊은 혈기로 덤빈 거죠.” 고민 끝에 퓨어를 계속 운영하면서 이탈리안 푸드로 방향을 바꿨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컨템포러리(현대적) 이탈리안 레스토랑 블루밍가든이다. 올리브 오일, 치즈 등 식재료를 이탈리아에서 직접 공수하고 퓨전이 아닌 이탈리안 푸드 본연의 맛을 살린 메뉴를 선보였다.
“처음에는 고깃집에서 무슨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냐고 했어요. 삼원가든을 따라 식당 이름에 ‘가든’을 넣었느냐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손님도 있었고요.” 꾸준히 메뉴를 개발하고 컨셉트를 잡아나간 결과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기존에 없는 것을 많이 시도했어요. 아버지 덕분에 남보다 일찍 출발했지만 쉬운 길을 가고 싶진 않았죠.”
박 부사장은 압구정동에 중소업체로는 이례적으로 ‘테스트 키친’을 오픈했다. 테스트 키친은 새로운 요리법을 개발하는 공간으로 쉽게 말해 SG다인힐의 연구개발팀이다. 또 블루밍가든 청계천점에서는 국내 최초로 치즈 바를 선보였다. SG다인힐은 블루밍가든 외에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부띠끄 블루밍’, 스테이크 하우스 ‘붓처스컷’, 스페니쉬 바 ‘봉고’, 버거 하우스 ‘패티패티’, 등심전문점 ‘투뿔등심’ 등 연이어 새로운 브랜드를 선보였다. 총 매장 수는 15개, 매출액은 200억원 가량이다.

박 부사장은 “예전에는 무조건 크고 많은 게 좋은 줄 알았지만 지금은 규모가 작더라도 가치 있는 식당을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 브랜드 당 매장 수가 10개를 넘으면 컨셉트를 유지하기 어려워요. 희소성을 살린 브랜드를 개발해 한국 외식문화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박 선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최근 4, 5년 동안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동생이지만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박 부사장이 “이제 10%쯤 왔다”며 쑥스러워하자 박 선수는 “나 역시 현역 선수 활동은 90%를 지나왔지만 골프 인생으로 보면 10%쯤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선수는 계속되는 부상으로 2007~2009년에 톱 10에 한 번밖에 들지 못했다. 2009년, 2010년, 2011년 연이어 수술을 했다. 은퇴 얘기가 나왔지만 그는 올해 국내 무대에서 뛰겠다고 발표했다. “우승은 골프선수라면 누구나 당연히 세우는 목표입니다. 그걸 넘어서 경기에 열심히 임하며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는 길을 찾고 싶어요.” 그는 골프선수가 아닌 골프인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듯했다. 구체적 계획은 없다고 했지만 “패션에 관심이 많아 골프웨어 사업을 하거나 더 멀리 보면 이름을 걸고 골프학교를 운영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 부사장과 박 선수는 제 스타일대로 밀고 나가는 고집이 있다. 박 선수는 여자선수치고 과감하게 샷을 날리는 편이다. “공격적으로 플레이를 하면 리스크가 따르지만 한계를 시험하며 얻는 것도 많아요.” 박 선수는 “아버지 지원으로 편하게 시작해 헝그리 정신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하지만 혼신을 다해 뛰지 않았다면 세계 무대에서 우승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동생 역시 자질 없이 자본만으로 여기까지 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 여름 새로운 승부수 띄운다남보다 일찍 자신의 길을 찾은 남매의 뒤에는 항상 아버지가 있었다. 박수남 회장은 몇 년 전 암 선고를 받고 박 부사장에게 경영을 맡겼지만 지금은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경영일선에 돌아왔다. 그는 81년 압구정동 6600m²(2000평) 대지에 ‘정원’이 있는 고깃집 삼원가든을 열어 ‘가든’ 열풍을 몰고 왔다. 2000년대 초반에는 사업을 뒤로하고 미국에서 박 선수를 뒷바라지했다. “아버지는 2등을 하면 왜 1등을 못했냐고 야단쳤어요. 서러울 법도 한데 저 역시 ‘왜 내가 1등을 못했지?’하며 더 열심히 했어요. 성격이 잘 맞았던 거죠(박지은).” “사업 초기에는 많이 관여하셨는데 요즘은 매장이 오픈하면 와보시는 정도예요. 그래도 다 꿰뚫고 계신 것 같아요(박영식).”
박 선수는 올 8월 국내 대회에서 다시 한 번 우승을 노린다. 비슷한 시기에 박 부사장은 여의도 IFC(서울국제금융센터)에 캐주얼 이탈리안 레스토랑 브랜드 ‘꼬또’를 선보일 계획이다. “매장이 5개씩 늘어날 때마다 벽에 부딪히는 느낌입니다. 지금 또 그 벽을 넘으려고 해요.” 골프계 맏언니 박 선수와 외식업계 유망주 박 부사장이 다시 출발선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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