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CEO] 다쏘시스템코리아 조영빈 대표 - 본사 회장 설득해 지역본부 없앴죠

[CEO] 다쏘시스템코리아 조영빈 대표 - 본사 회장 설득해 지역본부 없앴죠

1997년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25세 청년이 한 프랑스 외국계 기업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입사에 성공하면 일본에서 살아야겠고 생각했다. 이력서를 검토한 그 기업은 뜻밖의 제안을 했다. 한국에 새로 법인을 설립할 계획인데, 그곳에서 일하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짧은 고민 끝에 그 제안을 받아 들였다. 새로 시작하는 한국법인엔 모든 것이 정리돼 있지 않았다. 회계를 담당하는 관리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딱 10년이 흐른 2007년 그는 한국법인의 대표가 됐다. 다쏘시스템코리아 조영빈(45) 대표 얘기다.

다쏘시스템의 모기업은 프랑스의 다쏘항공이다. 비행기 미라쥐와 라팔을 제작하는 세계적인 회사다. 수십 년 동안 항공기를 설계하면서 3D 소프트웨어 관련 기술을 축적했고, 이 기술을 이용해 1981년 다쏘시스템이란 회사를 세웠다. 가상 제품설계 솔루션 ‘카티아’, 3D 공학설계 솔루션 ‘솔리드웍스’, 가상테스트해석 솔루션 ‘시뮬리아’ 등이 이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이다. 이들 제품을 이용하면 컴퓨터로 가상 공간을 만들고 그 곳에서 많은 것을 설계하고 실험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모든 부품에 대한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한 다음 충돌 테스트를 한다. 건물 설계나 비행기 제작도 마찬가지다. 건물을 짓거나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 입장에선 3D 공간에서 미리 시험을 거쳐 위험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조영빈 대표는 “전 세계 하늘을 누비는 비행기의 90%, 땅 위를 달리는 것의 80%가 다쏘시스템의 소프트웨어를 통해 설계됐다”고 말했다.

본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한국 법인은 출범 때 새내기 벤처나 마찬가지였다. 변변한 매출도 없이 직원 7명으로 시작했다. 이런 회사가 어느새 150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연간 8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커졌다.

서울 마포구 마포동 사무실에서 5월 8일 만난 조 대표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운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CEO가 되기 전 다쏘시스템에서 재무팀 매니저, PLM(제품수명주기관리) 총괄 상무, 중국 관련 비즈니스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다. 회사 전반의 업무 프로세스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인물이다. 덕분에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효율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런 성과는 곧바로 안정적인 매출로 나왔다.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기존에 거래를 하고 있던 대기업 외에도 중견·중소기업을 발굴해 다쏘시스템의 솔루션을 판매했다. 거래 업종도 다양화 했다. 식품·의류·마케팅 등 다쏘시스템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를 개발하는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최근에는 의료 분야 비즈니스 고객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조 대표는 다쏘시스템의 지사장 84명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지만 2조6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 조직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게 2010년 대구에 2500만 달러 규모의 다쏘시스템의 연구개발(R&D) 센터 설립을 유치한 일이다. 사실 본사에선 아시아 지역의 R&D 센터 설립 후보지로 중국·일본·인도 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는 먼저 대구시장을 만나 연구개발 센터 설립 비용의 절반을 부담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이를 토대로 경영진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와 STX와 같은 우수한 고객이 있는 곳에 연구개발 센터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본사는 선택을 망설였고 “외국계 민간 기업이 연구개발 센터를 짓는데, 대구시가 비용의 일부를 부담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답변을 했다. 조 대표는 그 길로 당장 대구시장과 함께 프랑스 본사를 방문했다. 대구시장을 직접 만나고서야 경영진도 수긍을 했고 결국엔 승낙을 받아냈다.



대구에 2500만 달러짜리 R&D센터 유치다쏘시스템이 세계 각지에 보유하고 있던 지역본부를 없앤 것도 조 대표가 제안한 것이다. 2009년 그는 다쏘시스템 버나드 살레(56) 회장에게 “지역본부를 없애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시스템에선 한국법인에서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를 통해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한번의 결제를 받기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이 많아 시간이나 비용적으로 손실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버나드 살레 회장은 그 자리에서 사장단에게 전화를 걸어 지역본부를 없애는 내용을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내렸고, 조 대표의 제안은 현실이 됐다. 조 대표의 독특한 경영방식이 회사 경영진들의 신뢰를 얻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해마다 본사에 “올해는 어떤 일을 추진할 것이며, 얼마의 매출을 올릴 것”이란 목표를 먼저 제시한다. 대부분의 지사장이 본사

에서 내려오는 지침에 따라 움직이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원래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해요. 또 그렇게 하는 게 옳은 일이라 생각하고요. 하지만 의외로 보수적인 성격이 강한 프랑스 기업 문화에선 제가 하는 모든 행동이 신선하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처음엔 저를 이상하게 생각했던 경영진들도 이제는 먼저 다가와 ‘내년엔 또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것인지’를 물어봅니다.”

처음 대표직을 맡았던 2007년만 해도 그는 다쏘시스템의 유일한 현지출신 CEO였다. 국가 지사장의 경우 본사에서 프랑스나 미국인 인력을 파견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 보이지 않는 룰을 최초로 깨뜨린 사람이 조영빈 대표였다. 이 후 조 대표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덕분에 오히려 지금은 현지인력이 지사장을 맡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 됐다. 한 기업의 조직문화를 바꿔놓은 셈이다. 운 좋게, 그리고 순탄하게만 흘러왔을 것 같은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보수적인 일부 프랑스 경영진이 동양인인 조 대표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사소한 말이나 행동 하나까지도 지적을 받아야 했다. 이런 조 대표의 구원투수를 자처한 사람은 다름아닌 버나드 살레 회장이었다. 조 대표를 조직에 꼭 필요한 인재라고 판단했던 회장이 직접 나서서 힘을 실어준 것이다. 그가 대표직함을 달자 사장단 중 몇 명이 조 대표의 영어실력에 트집을 잡았다. 많은 회의를 함께 진행해야 하는데 조 대표는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 버나드 살레 회장은 사장단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단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면 큰일이지요. 통역을 쓰면 되니 앞으로 조 대표는 한국말로 발표하세요. 단, 저도 미숙한 영어보다는 제가 편한 프랑스어로 발언하겠습니다.” 물론 실제로 다쏘시스템의 회의 시간에 통역이 등장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본사 회장이 든든한 버팀목2005년 중국에 1년간 파견근무를 했던 시기도 조 대표에겐 위기의 순간이었다. 중국에선 많은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현지 기업을 상대해야 하는데 그는 프랑스인도 중국인도 아니었다. 한국인이라는 어정쩡한 위치다 보니 매번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대신 이 때의 경험은 그 동안 자신감에 차 있었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내 스스로 뛰어난 사람이라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던 것 같아요. 중국을 다녀온 이 후로는 항상 객관적인 입장에서 나를 평가해보고 반성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조 대표는 다쏘시스템의 3D 기술을 더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올해의 목표로 정했다. 3D 기술은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기존에는 건설이나 공산품 생산에 주로 쓰였지만 최근에는 의약품이나 식품에도 적용한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의약품 개발을 위한 동물 실험이 금지되는 추세라 가상 임상실험 산업도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처음 입사했을 땐 어떻게 하면 나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를 주로 고민했습니다. 최근엔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킬까를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검은 반도체’ 김 수출 역대 최고기록 달성…10억달러 수출 청신호

2이복현 "상법 개정보다 자본시장법 개정이 합리적"

3롯데, 해외 부실면세점 철수 검토…케미칼, 자산매각 추진

411월 기록적 폭설에 車사고 60% 급증…보험료 인상 조짐

5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4년만에 승인…통합 LCC도 출범

6이재명 “‘국장’ 떠나는 현실...PER 개선하면 ‘코스피 4000’ 무난”

7롯데바이오로직스 설립 2년 만 수장 교체…신임 대표는 아직

8상법 개정 되지 않는다면 “국장 탈출·내수 침체 악순환 반복될 것”

9열매컴퍼니, 미술품 최초 투자계약증권 합산발행

실시간 뉴스

1‘검은 반도체’ 김 수출 역대 최고기록 달성…10억달러 수출 청신호

2이복현 "상법 개정보다 자본시장법 개정이 합리적"

3롯데, 해외 부실면세점 철수 검토…케미칼, 자산매각 추진

411월 기록적 폭설에 車사고 60% 급증…보험료 인상 조짐

5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4년만에 승인…통합 LCC도 출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