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첨단산업은 없고 백화점만 호황

해운대, 자갈치 시장, 광안대교. 모두 부산을 대표하는 전통적인 랜드마크다. 얼마 전부터 여기에 한 곳이 추가됐다. 바로 센텀시티다. 최근 3~4년 사이 센텀시티는 부산을 찾는 관광객이 반드시 들러봐야 할 명소가 됐다. 세계 최대 백화점으로 기네북에 올랐다는 신세계 백화점을 비롯해 초고층 빌딩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전에 한 번이라도 부산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면 달라진 모습에 깜짝 놀랄 정도다.
센텀시티는 100(Centum)과 도시(City)의 합성어다. ‘100% 완벽한 미래도시’를 만들겠다는 개발 의지가 담겼다. 1997년 프로젝트가 시작돼 16년이 지난 지금 센텀시티는 거의 완성 단계에 와 있다. 센텀시티는 작게는 새로운 해운대, 크게는 미래의 부산을 여는 핵심 키워드다. 하지만 직접 찾아 둘러본 센텀시티는 ‘100% 완벽한 미래도시’가 아니었다.
‘부산의 미래’라 하기에도 빈틈이 많았다.“건물만 저리 번듯하게 지어놓으면 뭐합니까. 경기가 살아야지. 젊은 애들은 일할데가 없어서 부산 떠난다고 난린데. 괜히 땅값만 올려놓고, 사람들 씀씀이만 헤프게 만드는 기라.” 수영교를 지나 센텀시티 입구에 들어서자 택시 운전사 김유호(가명·64)씨는 안타까운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의아한 생각에 “부산 사람들에게 또 다른 자랑거리가 생긴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김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시가 말끔하게 바뀌는 거야 누가 반대합니까? 그런데 나는 진심으로 걱정됩니다. 우리 때야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버는 만큼 쓰고, 저축하면 진짜 살만했습니다. 근데 지금은 아닙니다. 대학 나온 젊은 애들이 험한 데서 일할라 캅니까? 그러면 맞는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오죽 답답하면 고향을 떠나겠습니까? 먹고 살 게없는데 크고 높은 빌딩이 무슨 소용….”
택지개발 사업에서 1000억 흑자공식적으로 센텀시티 개발 프로젝트는 종료됐다. 1997년 1월 부산시와 지역업체가 출자해 설립한 센텀시티㈜가 프로젝트를 대행했는데 2007년 임무를 마치고 청산했기 때문이다. 당시 센텀시티 프로젝트는 민·관 공동사업의 성공사례로 꼽혔다. 이유는 간단했다. 땅 장사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당시 센텀시티㈜는 개발비용 전액을 지방채 발행과 은행 융자 등으로 조달했는데 분양 대상 토지를 대부분 매각해 약 1000억원 정도의 흑자를 냈다. 대부분의 택지개발 사업에서 지자체가 흑자를 거두는 일이 드물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름 성공을 거둔 셈이다.
땅 장사에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그러는 사이 사업 본연의 목적은 퇴색됐다. 첨단산업단지를 만들어 국내외 대기업을 유치하고 부산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키우겠다던 목표는 사라지고 유통과 상업시설, 대규모 아파트단지만 자리를 잡았다. 부산 경실련 차진구 사무처장은 “원래 산업단지를 조성할 때그 곳에 입주하는 종사자들이 살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짓는 것이 주거단지인데 산업단지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집값만 크게 올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포스코가 센텀시티 내에 지은 더샵센텀파크는 부산에서는 최초로 평당 분양가 500만원을 돌파한 아파트로 기록됐다. 이후에 지어진 다른 아파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센텀이란 글자가 앞에 붙은 아파트는 모두 분양에 성공하는 진기록을 만들기도 했다.하지만 아파트에 관심이 쏠리는 사이 핵심인 첨단산업단지 개발은 뒤로 밀렸다. 센텀시티 내에 짓기로 한 지식산업센터는 총 17개다.
이중 2008년 8월 IS타워가 입주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11개가 준공됐다. 나머지 6개는 공사가 진행 중이거나 계획 중이다. 현재 840여 개의 업체가 입주해 80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건물이 모두 들어서도 상주인구는 1만 2000명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프로젝트 초기 6만 명 이상의 고용과 연간 7조원 이상의 생산유발 효과가 있다던 구호와는 거리가 멀다.
애초부터 지식·IT 등 첨단산업을 키우기 위해 배정된 산업용지는 센텀시티 전체 부지 중 17%에 불과했다. 부지를 분양하면서는 원칙없이 용적률을 적용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애초 400%로 계획된 용적률은 일부 건물에 한해 1000%로 상향 조정됐고 이 과정에서 특혜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진통 끝에 몇몇 건물이 완공돼 입주를 시작했지만 인프라가 잘 갖춰진 것도 아니다.
지식산업센터 내한 아파트형 공장에서 일하는 이재헌(33)씨는 “지하철역에서 너무 멀어 걷기는 무리인데 버스도 자주 오지 않아 매일 아침 불편하다”고 말했다. 유정아(29)씨는 “교통도 불편하지만 물가가 더 큰 문제”라며“점심 한 끼에 7000원 수준으로 부산 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비싸다”고 말했다.
둘러보니 완공된 건물에도 공실이 눈에 띄었다. 3.3㎡당 분양가가 보통 400만원을 넘어섰고 500만원을 넘어서는 곳도 보였다. 올해 2분기 부산 지역 사무실 평당 평균 임대료가 293만원 수준임 고려하면 턱없이 비싸다. 인근 A부동산 김은철(가명·44) 실장은 “임대료가 비싸다 보니 입주를 문의하러 왔다가도 돌아가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고 말했다. 단지 내 입주한 기업의 면면을 살펴보면 내용은 더욱 심각하다. 입주 기업의 대부분은 직원 수가 50명에 못 미치는 중소기업이다.

첨단산업단지 구상 어긋나부산시 측은 “40% 이상이 부산 이외의 지역에서 센텀으로 이사 온 역외 기업”이라며 기업 유치효과를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대부분 울산·경남 등 동일 경제권에서 이사한 기업들이다. 나머지는 부산 내에서 취·등록세 면제 등 각종 혜택을 위해 사무실을 옮겼다. 새로운 산업이 열릴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했다기보다는 기존에 있던 기업들이 편의에 의해 이전하는데 그쳤다는 뜻이다.
김 실장은 “부산시가 구체적인 기업 유치 전략 없이 시내에 있는 기업들을 센텀시티로 옮기는 것은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셈”이라며 “벌써 기존 사무실 밀집 지역에서는 공실 문제로 걱정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조업이나 벤처분야에서 대기업 투자는 전무하다. 사실상 센텀시티 내에 입주한 대기업은 백화점을 지은 신세계와 롯데가 전부다. 신세계 센텀시티점은 지난해 76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0년에 비해 19% 증가했는데 전국 5~6위권 매출 규모다.
롯데백화점 역시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두 유통공룡이 치열한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동안 센텀시티는 새로운 쇼핑의 메카로 빠르게자리 잡았다. 관광객 유치 효과도 컸다. 하지만 이들의 급성장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부경대의 A교수는 “두 곳 합쳐 만명 정도 고용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마저도 대부분은 비정규직”이라며 “주거래은행이 지역은행인 것도 아니고 현지법인화해 지역에 안착한 것도 아닌데 ‘부산 시민의 지갑에서 나온 돈을 서울로 가져간다’는 비난이 틀린 말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2010년부터 부산 지역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이들 백화점의 현지법인화를 주장했지만 실현가능성은 여전히 요원하다. 그는 “늘어나는 백화점이 시민들의 소비 수준만 끌어올려 부산이 점점 소비도시로 변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득은 전국 14위, 소비는 2위실제로 부산은 인구가 줄고 생산력이 저하되면서 빠르게 소비도시로 변하고 있다. 2009년 한국은행 부산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부산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1609만1000원으로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14위지만 1인당 소비액은 1041만1000원으로 서울에 이어 전국 2위를 차지했다. 벌이는 줄어드는데 소비 수준만 올라간다는 의미다. 70%가 넘는 서비스업 비중과 인구대비 가장 많은 대형마트 숫자에서도 소비도시로 전환하는 부산을 엿볼 수 있다.
차진구 사무처장은 “대형 백화점과 주상복합 아파트 등으로 전국적인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부산의 한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게 바로 센텀시티”라고 말했다. 그는 “‘제2의 도시’라는 타이틀 아래 ‘고용 없는 정체’를 계속하는 부산시나 초고층 빌딩 뒤에서 소비만 부추기는 센텀시티나 같은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제로 부산의 경제 사정은 역대 최악이다. 생산력이 떨어지니 고용은 줄고 마땅한 대체 산업이 없으니 도시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진다. 당연히 투자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1975년 부산의 지역내총생산 전국 비중은 9.5%에 달했다.
부산에 있는 신발·합판 등 전통적인 제조업이 한국 경제를 견인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급속히 떨어져 2010년에는 5.18%까지 하락했다.부채는 해마다 늘어 2011년 기준으로 2조 9119억원(예산대비 31.8%)에 달한다. 부산도 시공사의 부채를 포함하면 6조원에 육박한다. 1년 예산의 3분의 2 수준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부산의 고용률은 56.4%로 전국 16개 시도 중 꼴찌다. 특히 20대 고용률은 50%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수준이다. 그러니 지역 대학을 졸업해도 부산을 떠날 수 밖에 없다. 부산 고용포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산에서는 매년 4361명의 고교 졸업자가 순유출되고 부산 소재 대학 졸업자 중 5302명이 부산을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9663명의 청년 인력을 떠나 보내는 셈이다. 이들에 대한 투자비용과 질적 가치를 환산하면 2조 2695억원 가량의 간접 손실이 해마다 발생한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전문가들은 센텀시티와 같은 도시 외형 가꾸기에 치중하기 보다는 내실 있는 성장 전략을 마련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부산시는 여전히 해운대 관광리조트, 마린시티, 동부산관광단지 등 대형 택지개발 사업에만 온 힘을 쏟는 모양새다.
특히 해운대 관광리조트와 마린시티는 해운대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0대 도시’로 키우겠다며 추진하고 있는 10조원대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이다. 부산 내에서도 ‘부채만 늘어난다’ ‘지역 격차를 조장한다’ 등 비판 여론이 거센 상황이지만 부산시는 관광과 국제화가 유일한 살 길이라는 입장이다.
A교수는 “명분이야 좋지만 알맹이 없는 개발이 낭비하는 예산과 행정력을 생각해야 한다”며 “어려울 때는 벌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허리띠를 졸라매고 기존에 진행 중인 사업의 내용을 차근차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7월 8일 대한민국 경제적 행복지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부산의 경제적 행복지수는 16개 시도 중13위에 머물렀다. 다음 날인 7월 9일에는 또다른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중소기업청과 벤처기업협회가 국내 1000억 매출 벤처기업을 발표했는데 전년 보다 66개가 늘어 381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 중 부산에 있는 기업은 지난해와 같은 18개에 불과하다. 전국에서 부산만 제자리 걸음을 했다. 현재도 어렵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 더 어려운 셈이다. 반짝반짝 화려한 불빛이 수놓은 센텀시티.하지만 그 안에서 밖을 보니 부산의 앞날은 더 어두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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