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ria’s Fake First Family 지옥의 퍼스트레이디
- Syria’s Fake First Family 지옥의 퍼스트레이디

2010년 12월 1일 늦은 오후, 보그지 피처 담당 편집자의 전화를 받았다. 시리아에 가서 퍼스트레이디 아스마 알-아사드를 인터뷰해 달라는 내용이었다.“안되겠어요.” 내가 대답했다. “나도 아사드 부부를 만나고 싶지 않고 그들도 유대인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을 걸요.”보그지 편집자는 아스마가 젊고 매력적이며, 어느 매체와도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보그지는 그녀를 인터뷰하려고 2년 동안 애썼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이제 아스마가 국제 홍보회사를 고용했고, 그 회사가 인터뷰를 적극 권한다는 설명이었다.“정치 기자를 보내면 되겠네요.” 내가 제안했다.“우린 정치 이야기는 원치 않아요.” 편집자가 말했다. “아스마는 문화, 골동품, 박물관 주제만 이야기하고 싶어해요. 당신은 박물관을 좋아하고, 문화를 좋아하잖아요. 그녀는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어해요. 바로 일주일 후에 가야 해요.”일주일이라… 그렇다면 아스마가 퇴짜를 놓은 기자들 명단에서 내 이름이 가장 마지막에 있었던 게 분명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관해 전혀 모르는 기자들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들이 퍼스트레이디인 아스마 인터뷰를 거부했을 가능성은 생각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죠.” 내가 말했다. 난 그해 이미 표지 기사를 네 건이나 썼다. 젊은 여배우 세명과 방금 엄마가 된 수퍼모델의 기사였다.사실 이 임무는 훨씬 흥미진진했다. 또 이런 기회가 아니면 팔미라 유적을 언제 구경할수 있을까?아스마 알-아사드의 자료와 정보를 찾아봤다. 1975년 런던에서 본명 아스마 아크라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시리아의 심장전문의 파와즈 아크라스, 어머니는 외교관인 사하르 오트리였다. 이력은 간단했다. 전문학교: 퀸스 칼리지, 대학: 킹스 칼리지, 남편:시리아 대통령.
시리아… 이름 자체가 불길하게 들렸다(The name itself sounded sinister). ‘시린지(syringe, 주사기)’ 또는 ‘히스(hiss, 쉭쉭거리는 소리)’처럼 말이다. 나는 대영박물관을 통해 시리아를 알게 됐다. 라가시의 왕 구데아의 두상, 우르의 보물,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아시리아, 바빌론. 전부 지금의 시리아를 점령했던 고대 국가들이다. 북부 도시 알레포, 수도 다마스쿠스는 5000년 이상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고대 도시다. 6000년 전 문명이 탄생한 곳이다.
시리아의 현대사는 모두가 알듯이 음침하고, 폭력적이며, 비밀스럽다. 독재자 하페즈 알-아사드는 1970년 정권을 잡았다.2000년 사망할 때까지 그의 우상인 스탈린과 마찬가지로 시리아를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통치했다. 그는 이슬람교의 알라위트파였다. 1982년 하마에서 수니파 무슬림 형제단이 반란을 일으키자 그는 남녀와 어린이 2만 명을 살육했다.그의 후계자 바샤르 알-아사드는 유순해(meek) 보였다. 그가 런던에서 안과의사가 되려고 공부하던 중인 1994년, 대통령직을 계승하기로 돼 있던 그의 형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아버지는 바샤르를 귀국시켜 복을 입힌 뒤 승진을 거듭시키며 후계자 수업을 받게 했다.
하페즈가 사망하자 34세인 바샤르의 대통령 승계를 두고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투표라고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가 쉽게 ‘승리’했다. 처음엔 그가 개혁가(reformer)로 인식됐다. 그러나 그의 개혁은 금융 부문에 그쳤다.시리아 국민은 바샤르 알-아사드 아래서도 여전히 억압 받았다. 그러나 침묵과 공포가 너무도 심해 압제가 외부로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무하바라트’로 불리는 비밀경찰들만 숱하게 눈에 띄었을 뿐이다.시리아와 헤즈불라는 2005년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의 자동차 폭탄 암살의 용의자였다. 다마스쿠스는 무장단체 헤즈불라와 하마스의 근거지였다.
시리아는 이란과 가까웠다. 그러나 그런 관계 때문에 시리아는 서방 측의 중재자(interlocutor)가 될만했다. 심지어 중동 평화 과정의 잠재적 통로이기도 했다. 2010년 12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주 시리아 미국 대사를 새로 임명했다. 2005년 조지 W 부시가 외교관계를 단절한 이래 처음이었다.2010년 시리아의 지위는 신뢰할 수 없는 불량국가와 새로운 멋진 나라 사이를 오갔다(Syria’s status oscillated between untrustworthy rogue state and new cool place).
2008년 콘데나스트 트래블러 영국판은 다마스쿠스를 최신 유행의 도시가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시리아는 후무스(병아리콩 으깬 것과 오일, 마늘을 섞은 중동 지방 음식)와 물담배가 있는 소련인 셈이었다. 패션 잡지들은 시리아를 실크, 향수, 궁전, 유적이 가득한 금단의 왕국(a forbidden kingdom, full of silks, essences, palaces, and ruins)으로 생각했다. 현대적인 대통령과 매력적인 젊은 퍼스트레이디가 통치하는 나라였다. 낸시 펠로시 전 미국 하원의장과 존케리 전 미국 민주당 대통령후보 만이 아니라 가수 스팅, 배우 앤절리나 졸리와 브래드피트, 영화감독 프랜시스 코폴라도 시리아를 방문했다.
동시에 시리아는 판도라 상자(Pandora’s box)이기도 했다.시리아는 독재국가였다. 그 지역 전체의 기본 체제(default mode)가 그랬다. CIA에서 30년을 일했고 현재 브루킹스 연구소의 연구원인 브루스 라이델은 최근 “1년 전만해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든 아랍 국가는 기본적으로 경찰국가(police state)였다”고 말했다.
2010년 그때 나는 브루스 라이델에게 자문을 구할 생각을 못했다. 대신 바벳 슈로더에게 전화를 걸었다. 독재자에 관한 최고의 다큐멘터리 영화 ‘장군 이디 아민 다다’를 만든 감독이었다.“하페즈 알-아사드는 세계에서 가장 사악한 천재였지만 그의 아들은 개혁가가 되려고 하는 듯하다”고 슈로더가 말했다.시리아의 알레포에 집이 있는 한 사람은 퍼스트레이디 아스마 알-아사드가 똑똑하고, 활기 넘치는 여성이며, 어느 모로 보나 영국적이고, 직접 운전을 하고 다닌다고 이야기했다. 또 그가 아는 다른 국가수반과 달리 “아사드 부부는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다”고 말했다.
시리아의 유적지를 가본 한 예술 애호가는 다마스쿠스를 격찬하면서 팔미라 유적지도 침이 마르게 칭찬했다.나는 인터뷰 제안을 처음부터 단호히 거절해야 마땅했지만 결국 수락하고 말았다.그냥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면 되지 않는가? 호기심도 컸다. 내가 작가가 된 이유가 호기심이었다. 보그지는 미심쩍은 나라의 멋쟁이 퍼스트레이디를 세계에 소개하고 싶어했다. 나로서는 문명의 요람을 보고 싶었다. 시리아는 유독한 기운을 뿜어냈지만(Syria gave off a toxic aura) 내가 큰 일에 휘말릴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했다. 보그지를 위해 깊은 진실을 빼고 기사를 쓰면 됐다.
난 이미 오래 전부터 내게 정직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살인자를 만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유순한 안과의사이자 컴퓨터광인 바샤르 알-아사드가 자기 아버지보다 더 많은 국민(어린이 포함)을 죽였으며, 수만 명을 더 고문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2010년 12월 당시에는 ‘아랍의 봄’이 곧 시작되며 그로써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의 독재자들이 제거될 것이라는 사실도 알 방도가 없었다.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를 응원하면서도 아사드 부부를 좋게 소개하는 기사를 썼기 때문에 나도 기자로서의 명예를 잃으리라는 점도 알 길이 없었다. 그 기사 때문에 기자를 그만둬야 하고 23세 때부터 이어졌던 보그지와의 인연이 끝나리라는 점도 알 수 없었다.나는 악마와 그의 아내를 만났다. 그들이 수많은 눈 앞에서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어항 같은 희한한 아파트를 완전히 패션잡지 식으로 취재해 기사를 썼다. 중동판 ‘트루먼쇼’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상속 삶을 나에게 자랑했다.
아사드는 내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했다. 하지만 난 기사에 그의 말을 인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1년 뒤 그는 똑같은 말을 바버라 월터스에게 했다. 아무도 그의말을 곧이 듣지 않았다.비자는 아사드 부부가 고용한 홍보회사 브라운 로이드 제임스가 대신 받아주었다.그 회사 사무실의 벽에 걸린 평면 TV는 알자지라 방송만 틀었다. 알자지라는 그들의 고객 중 하나였다. 카다피의 아들 사이프, 카타르 정부도 그랬다. 로이드와 제임스는 부재중이었다. 브라운은 이름이 피터 브라운이었다. 한때 비틀스의 매니저를 맡았던 나른한 목소리의 털보 영국인이었다.브라운은 아스마 알-아사드가 시리아 유물과 관련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협정을 체결할 계획이라고 알려줬다.
우리는 브라운의 부하직원인 마이크 홀츠먼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나는 고대 도시 알레포와 다마스쿠스에 관해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은 인턴을 붙여주었다. 주미 시리아 대사의 딸 셰헤라자데 자아파리(22)였다. 그녀와 홀츠먼이 다마스쿠스에서 나와 같이 다니기로 돼 있었다.
내가 시리아로 떠나기 전 친구들은 가이아 세르바디오를 소개했다. 2008년 예술축제 개최를 위해 아스마 알-아사드에게 고용된 이탈리아 작가로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녀를 만나려고 런던을 경유했다. 세르바디오는 시리아의 퍼스트레이디를 좋아하며, 권력 집단에서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파벌 때문에 예정된 축제가 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2010년 12월 12일 밤 눈발 속에서 다마스쿠스에 내렸다. 셰헤라자데가 정부 공무용차량을 타고 어울리지 않게 꽃다발을 들고 활주로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시리아 휴대전화를 건넸다. 그녀는 “미국 휴대전화는 여기선 작동이 안 돼요”라고 말했다.다음 날 전통 공중 목욕탕 하맘 아무네에서 몸집이 큰 여성 마사지사가 내 발가락을 잡아 당기고 등을 으스러뜨렸다. 그곳의 판돌은 800년 동안 계속 사용돼 부드럽게 닳아있었다. 셰헤라자데는 다마스쿠스 곳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초저녁의 어두운 거리에서 나는 불안을 느꼈다. 우리가 가는 길에 콧수염을 기른 남자들이 서 있었다.
1980년대의 신발을 신고 두꺼운 스웨터 위에 희한하게 몸에 맞지 않는 가죽 재킷을 입고 있었다.우마이야 사원에 갈 때는 홀츠먼도 동행했다. 저녁 기도 후라 사원이 텅 비어 있었다. 6000명을 수용할 정도로 넓었다.우리 세 명은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거의 매일 밤 그랬다. 나는 나의 지리 좌표를 재설정했다. 이제 내가 있는 서쪽에 이집트가 있다. 수돗물을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샐러드 같은 날음식도 피했다.12월 14일, 나는 랩톱을 책상 위에 그대로 둔 채 아스마 알-아사드를 만나러 갔다. 정부공무용 차량이 우리를 퍼스트레이디 사무실로 데려갔다. 주택가의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하얀색 건물이었다. 나는 그녀를 독대했다.
아스마 알-아사드는 격의 없고 쾌활했다(informal and cheery). 35세의 미모에 연한 푸른색 재킷과 검은 바지 차림이었다. 턱까지 내려오는 고수머리는 스프레이로 단정하게 고정시켰다. 눈썹은 시리아 스타일로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은행가처럼 사무적인(brisk and perfect) 동시에 친구의 칵테일파티에서 새로 만난 사람처럼 다정했다. 런던의 고급 식당 옆자리에서 들릴 법한 젊은 영국여성의 말투였다.
아스마는 완벽한 ‘쇼’를 했다. 미국 패션잡지에 자신과 가족, 조국의 친밀하고, 현대적이고, 느긋한 모습을 다재다능하고 화려한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그것도 런던 억양으로 말이다.그녀의 부모는 홈스 출신이었다. 남동생 두 명과 런던 서쪽의 일링 지역에서 성장했다. 승마를 했고, 학교 친구들은 그녀를 에마로 불렀다. 옥스퍼드 스트리트에 나가 노느라 수업을 빼먹었고, 킹스 칼리지에서 컴퓨터과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잠시 도이체방크 뉴욕 지점에서 일한 뒤 런던의 모건 스탠리로 자리를 옮겼다. 2000년 하버드 MBA 과정에 들어가기 직전 다마스쿠스의 숙모집에서 휴일을 보내면서 가족의 친구인 바샤르 알-아사드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25세, 그는 35세였다. 그녀는 대통령의 아들인 바샤르를 만나려고 주말마다 다마스쿠스에 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그녀의 입에서 마치 영화 스타처럼 화려하게 발음됐다. ‘독재자’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하페즈 알-아사드가 사망하고 바샤르가 대통령이 된 뒤 그녀는 모건 스탠리를 그만두고 다마스쿠스로 갔다. 그들은 결혼했고 자녀 세 명을 낳았다. 하페즈가 아홉 살, 제인이 일곱 살, 그리고 카림이 여섯 살이었다.그녀는 비밀을 좋아했다. 결혼식을 비밀리에 올렸다고 그녀가 음모를 이야기하듯 말했다. 정확한 날짜는 여전히 밝히지 않았다. 아사드 부인이 되고 첫 세 달 동안 자신이 퍼스트레이디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시리아를 여행했다. 그녀는 결혼반지를 끼지 않았다.
남편도 그랬다. “그이를 만나면 왜 그런지 알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나는 루브르의 전문가들이 시리아에서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에게 마사르에 관해 말하고 싶어했다.그녀가 설립한 어린이 ‘발견 센터’를 말한다.첫 마사르는 라타키아에 세워졌다. 아사드가문의 고향이다. 다마스쿠스에도 대형 센터가 지어질 예정이었다.
“아랍어로 ‘마사르’는 길, 또는 운명을 의미하죠”라고 그녀가 말했다. “운명은 선택에 의해 만들어져요(destiny is created by the choices you make). 우리 프로젝트는 어린세대가 역동적인 시민이 돼 나라가 겪어야 할 변화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죠.”시리아 인구의 거의 절반이 14세 미만이라고 그녀가 설명했다. 마사르의 ‘녹색팀’이 린이 20만 명에게 역동적인 시민 신조를 전파하려고 전국을 누볐다고 했다.
나는 팔미라 유적이나 박물관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지금 가죠”라고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박물관에 가서 이탈리아 고고학자들, 이탈리아 대사와 만났다. 하지만 그곳에는 사무실 뿐 볼거리가 전혀 없었다.수요일 나는 홀츠먼과 함께 쫄쫄 굶으며 시리아 신탁재단의 모금운동에 관한 오랜 회의를 참관해야 했다.“점심시간도 없이 회의를 하나요?” 내가 그녀의 보좌관 중 한 명에게 물었다.“절대 쉬지 않아요”라고 그 보좌관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다음 회의가 시작되기 전 샌드위치가 나왔다. 나는 상추를 빼고 먹었다. 홀츠먼은 전부 먹었다.아스마는 자신도 모르게 아사드식 사고 방식의 일부를 보여주었다. “어제 아이들에게 보그지가 내 기사를 쓸 거라고 말해줬어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러자 장남 하페즈가 ‘어떤 내용을 쓰는데요?’라고 물었어요. 그래서 ‘나도 몰라’라고 답했죠. 그는 ‘기자가 무엇을 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엄마에 관해 쓰도록 해요(How can you get her to write about you if you don’t know what she’s going to say)?’라고 되물었어요.”멋진 다마스쿠스 여성이 나를 수크(전통시장)에 데려갔다. 드디어 대낮에 도시를 보게 됐다.
오래된 건물들은 축 쳐지고 먼지에 쌓인 채 버려져 있었다. 공공 서비스가 전혀없는 지진지대처럼 보였다. 나는 나중에 다마스쿠스를 너무도 교묘하게 ‘이스턴 블록의 지중해 구릉 도시’라고 묘사했다. 수크의 입구는 희부연 플라스틱으로 덮였고 위는 퀀셋 막사처럼 주름진 양철 지붕이었다. 하지만 성서에 나오는 유명한 ‘곧은 거리(the street called straight)’를 따라 형성돼 있었다.터키 가족들이 두꺼운 코트를 입고 느릿느릿 걷고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바샤르 알-아사드의 대형 사진 아래 떼를 지어 앉아 있었다.
희한한 신발과 가죽 재킷 차림의 똑같은 콧수염을 기른 남자들이 상품, 카피에(아랍남성 두건), 보석, 야한 속옷, 검은 히잡 사이를 어슬렁거렸다.다마스쿠스에는 범죄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뒤 나무 숟가락을 사야 한다는 핑계로 혼자 수크에 다시 갔다. 하지만 운전기사는 도저히 떨쳐낼 수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범죄가 없는 이유를 찾은 듯했다.수크 바깥에 바퀴 달린 희한한 금속 박스가 세워져 있었다. 길이가 2.1m, 높이가 1.8m, 뒤쪽에 창살을 댄 창문이 나 있었다.
겉면은 마무리 손질이 되지 않아 쪼개진 금속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위험해 보였다. 이동식 감옥(mobile prison) 같았다. 나중에 현지인에게 그 박스가 뭔지 물었다. 그는 이전에 본 적이 없다고 했다.그날 밤 셰헤라자데는 저녁 약속이 있었고, 홀츠먼은 샌드위치의 상추 때문에 식중독(food poisoning)에 걸려 몸져 누웠다. 나는 호텔 방에서 스튜 한 사발을 먹으며 미국의 웹사이트에 사진과 자료 비디오를 올렸다. 옷장 서랍에 있는 이더넷 케이블을 사용했다.
다음날 금요일은 이슬람교의 휴일이었다.셰헤라자데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이 쉬어 노인 같은 목소리였다. “어젯밤 친구들과 샐러드를 먹었는데 식중독에 걸렸어요. 곧장 병원으로 가서 위를 세척하느라 목에 무리가 가서 그래요.”퍼스트레이디는 대통령 관저에서 점심을 준비했다. 가족이 좋아하는 퐁뒤를 같이 먹자고 했다.
호텔 로비에서 홀츠먼을 만났다. 아직도 안색이 창백했다. 그는 퍼스트레이디에게 줄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우리는 바샤르의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가 살았던 옛 아파트로 향했다. 아사드 부부가 5년에 걸쳐 어린이 친화적인 3층짜리 현대식 공간으로 개조했다.아사드 부부는 똑같이 청바지와 스웨터를 입었다. 스웨터를 입은 바샤르는 목이 너무 길어 스코틀랜드 호수에서 사람들이 봤다고 주장하는 수면 위로 머리를 내민 괴물처럼 보였다. 말할 때는 약간 혀짤배기소리가 났다. 그는 내게 자기 카메라를 보여주며 요즘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렌즈를 설명했다.
또 액자에 넣은 사진도 보여주었다. 카타르에서 가족 휴가를 보낼 때 직접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대단한 괴물처럼 보이진 않았다(He didn’t strike me as much of a monster).그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나는 그 앞에 녹음기를 들이밀고 가장 편할 질문만을 했다.
왜 안과의사가 되고 싶어했나요?
“안과는 응급 상황과 무관하죠(Because it’s never an emergency)”라고 그가 말했다.
“아주 정밀하고 피도 거의 보지 않아요.”응급상황과 무관하고 피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는 컴퓨터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매킨토시, 아내는 PC 팬이었죠.”
고수머리의 일곱 살짜리 제인은 아버지의 아이맥 컴퓨터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봤다. 아스마의 아이맥은 측면의 창문을 향하고 있었다.아파트의 뒤쪽 절반 전체가 유리로 돼 있었다. 수백 개의 창문이 있는 다른 아파트 주민들이 아사드 가족의 일상생활을 훤히 볼수 있었다. 아사드 가족의 아파트는 국민을 관객으로 부유한 대통령 가족의 가정생활을 보여주려고 맞춤 제작된 무대 같았다.아스마는 분명 비밀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왜 이런 아파트에서 쇼를 하며 살까? 나는 저 밖의 그 많은 창문 뒤에 누가 살고, 그들이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궁금했다.
창 반대쪽의 주방이 대중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는 유일한 공간이었다.아스마는 퐁뒤 믹스 세 상자를 열었다. 그녀가 사용하는 냄비는 완전히 새 것처럼 빛났다. 바샤르가 깡통에 든 고체연료에 불을 붙이려 했다.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이번이 처음이죠”라고 그가 말했다.만약 이곳이 무대라면 소품이 너무도 잘 갖춰져 있었다. 아래층 현관 곁에는 장화와 레인코트가 쌓여 있었다. 레고로 만든 트럭,건물, 상어 등 완벽하게 완성된 작품들이 판유리벽 모서리를 따라 놓여 있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멋지게 장식돼 있었다.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모나 하녀, 요리사도 없었다. 금요일이라 쉬는 날일까?
아홉 살짜리 하페즈는 의회가 어떤 일을 하는지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그 아이는 금발이었다. 동생 카림도 마찬가지였다. 카림은 이틀 전 여섯 살이 됐다고 아스마가 귀띔했다.나는 준비한 선물이 없었다.여섯 살짜리에게 생일 선물로 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핸드백을 뒤졌다. 그렇지! ‘스타워즈’ 플래시 드라이브(USB 같은 휴대용하드드라이브)가 있지. 푸른색과 흰색으로 장식된 R2-D2였다.
홀츠먼에게 R2-D2를 보여줬다. 그는 “괜찮은데요”라고 말했다. 나는 바샤르에게 내플래시 드라이브를 아들에게 줘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주기 전에 담겨 있는 내용을 지우고 싶으냐고 내게 묻고는 아내의 아이맥으로 안내했다. 소켓에 R2-D2 플래시드라이브를 꽂자 화면에 곧바로 워드 문서가 떴다.
시리아 대통령이 뒤에서 넘겨다 보는 데서 그 문서를 열고 싶지 않았다. 내 기억에 아스마가 수학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녹취한 문장 몇 개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추가했던가? 아스마의 비밀 취향에 관한 나의 단상을 쓴 글이 담겨 있을까? 수크 바깥에 있었던 금속 박스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 있지는 않을까?
나는 아스마의 의자에 앉아 어떻게 할까 망설였다. 바샤르는 그 문서를 휴지통에 버리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나는 문서를 휴지통에 넣었다. “휴지통 비우기를 하세요”라고 바샤르가 말했다. 내가 아니라 그가 휴지통을 비웠다. 나는 아스마를 쳐다볼 수 없었다. 나는 그 R2-D2 플래시 드라이브를 카림에게 주었다. 카림은 크게 좋아하진 않았다.우리는 주방의 식탁에 모여 앉아 사각형으로 자른 빵조각을 퐁뒤에 담궜다가 꺼내먹었다.
아사드의 농담이 썰렁했지만 모두 가 크게 웃었다.점심 후 아스마가 라타키아에 있는 마사르에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2010년 12월 17일이었다. 그날 튀니지에서 ‘아랍의 봄’이 시작됐다. 26세의 청과물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자살이 도화선이었다.진눈깨비 속에서 라타키아에 도착했다.SUV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마스쿠스에서 탔던 차와 똑같았다. 아스마가 운전해서 마사르로 향했다. 마사르 센터는 날렵하고 세련된 설계로 돈을 무척 많이 들인 게 분명했다. 아이들이 바글바글해서 소란스러웠다.아스마는 아이들이 ‘실천과 절차(action and process)’를 배운다고 설명했다.
또 그들이 라타키아에서 비닐봉지 사용을 중단시켰고 병원의 투석 치료기 구입을 위해 마라톤으로 모금운동을 벌였다고 했다.10대 남자아이들은 얼굴이 충분히 발달되지 않고 넓으며, 머리 모양이 형편 없고,목소리가 갈라졌으며, 팔을 뻗혀 자신의 영역을 만들고 있었다. 여자아이들의 어깨는 굽어 있었고, 손발은 끝이 가늘었다. 아스마가 들어가자 모두 일어서서 목을 가다듬고 스웨터를 당겨 매무새를 단정히 한 다음 토론하고 주장하는 모습을 퍼스트레이디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려고 했다. 마사르 센터는 아스마가 그들에게 준 선물이었다. 그들은 마을을 변화시키고 미래를 건설하려고 그곳에 모였다.
아스마는 그들과 똑같은 청바지와 카디건 차림으로 ‘시리아’라는 단어의 철자를 표준화하는 문제에 관한 긴 토론을 경청했다. 그런 다음 일어서서 중대 발표를 했다.“마사르의 운영 자금이 충분하지 않아서 해안 위쪽에 다른 센터를 개장하려고 이 센터를 폐쇄할 계획입니다.”몇몇 아이들의 입이 벌어졌다. 어깨가 올라가고 머리가 수그러졌다.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몇몇은 훌쩍거렸다.한 남자아이가 일어섰다.통역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유는 알겠는데 공정하지 않다고 말하네요.”다른 남자아이가 말했다. 통역사가 전했다. “이 아이는 독자적인 센터를 시작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도와달라고 말했어요.”아스마 알-아사드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 센터를 폐쇄하자는 형편 없는 아이디어를 낸 직원을 해고할까요?”다른 남자아이가 말했다. “그대신 그와 토론을 하면 좋겠어요.”아스마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통역사는 이렇게 전했다.“이제 그녀는 이 센터가 실제로 폐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아이들이 이곳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 떠보기 위해 한 말이었어요.”
아이들은 곧바로 기쁨

나는 다마스쿠스의 가장 큰 박물관에 갔다. 진기한 보물이 가득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평범하고, 난방도 되지 않았으며, 방문객도 드물었고, 먼지투성이였다.런던의 눈보라 때문에 다마스쿠스에서 이틀을 더 머물러야 했다.팔미라에는 결국 가지 못했다. 대신 한 연주회에 갔다. 어린이 200명이 크리스마스 캐롤, 브로드웨이 뮤지컬 히트곡, 아랍어 랩을 들려줬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징글벨 록’ 노래에 맞춰 작은 벨을 흔들었다.
합창단 책임자는 내년에는 모든 노래를 아랍어로 부르겠다고 약속했다.나는 아사드 부부와 함께 오페라하우스로비로 나갔다.“이제 이해가 가세요?”라고 아스마가 자신과 남편의 약지를 보며 물었다. 결혼반지를 끼지 않는 이유를 말하는 것이었다.“예, 이해해요”라고 내가 대답했다. 사실 난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우리의 작별이었다.호텔 바에서 프랑스 대사를 만나 시리아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내 시리아 휴대전화의 배터리를 제거한 뒤 자신의 전화 배터리도 빼냈다. 그런 행동으로 경보가 울렸는지 갑자기 셰헤라자데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예요?”라고 그녀가 물었다.“아픈데 왜 나왔어요?” 내가 응수했다.“그냥 가서 쉬어요.”프랑스 대사는 시리아의 바뀌어 가는 국경선을 지도로 그렸다. 바뀐 날짜도 적었다.다음 날 셰헤라자데가 말루라로 안내했다. 성서의 언어인 아람어(Aramaic)를 아직도 사용하는 마을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프랑스 대사와 이야기하지 마세요.”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내가 쏘아붙였다.뉴욕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스트리아 빈공항에서 내 랩톱 컴퓨터를 열었다. 화면에 생소한 아이콘이 떴다. ‘알리’의 서버라고 돼 있었다.2010년 12월 21일 뉴욕에 도착한 뒤 해킹된 내 랩톱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스마가 한 말의 녹음을 풀면서 내 다른 컴퓨터로 알자지라 방송을 봤다. 12월 말 알제리의 소규모 봉기가 신속히 진압됐다. 튀니지에서는 2011년 1월 4일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사망하면서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다.레바논, 요르단, 오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녹취를 하고 있었기때문에 내 귀에 아스마 알-아사드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그녀는 미래의 시민사회를건설하도록 어린이들을 육성하는 일에 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알자지라 방송을 계속 지켜봤다. 아스마기사를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시작한 일은 끝내야 직성이 풀린다.1월 14일 기사를 넘겼다. 그날 튀니지의 벤알리 대통령이 해외로 탈출했다. 1월 21일 보그지에 이렇게 통보했다. “아랍의 봄이 번지고 있어요. 이 기사를 보류하는 게 낫겠어요.”그들은 아랍의 봄이 대단치 않다고 판단했다. 그 기사는 3월 호에 반드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문가를 불러 내 옛 랩톱에서 ‘알리’ 서버를 제거해 달라고 했다. “시리아인들의 기술이 뛰어나진 않지만 상당히 철저하네요”라고 그 전문가가 말했다.1월 25일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시위대가 대규모로 집결했다. 레바논의 수니파 무슬림들은 헤즈불라에 대항하는 ‘분노의날(day of rage)’ 시위를 벌였다. 1989년처럼 느껴졌다. CNN 방송이 우리에게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줬을 때 말이다. 그때는 줄거리가 이진법으로 간단했다. 냉전에서 공산주의가 졌다.
그러나 냉전의 종식과 함께 이진법도 폐기됐다. 이제는 트위터, 블로그, 온라인 알자지라, 그리고 BBC였다. CNN은 타흐리르 광장에서 봉변을 당했다. 줄거리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아랍인들의 정치적 각성일까? 정교 분리(secularism)가 끝나고 불길한 범아랍 원리주의자들(pan-Arab fundamentalists)이 부상할까?
1월 31일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를 했다. 그의 말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행동이란 건 없다(There is nothing called behavior)”고 그가 말했다. “국가로서 우리는 우리의 이익에 의지하지 우리의 행동에 의지하지 않는다(As states we depend on our interest, and not on our behavior).”
2월 11일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타도됐다. 나는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에 박수를 보냈고, 그들의 시위에서 영감과 감동을 받았다. 예멘, 수단, 이라크, 바레인, 그리고 놀랍게도 리비아까지 민중 시위에 휩쓸렸다.나는 보그지 편집장에게 아사드 기사를 어떻게 할지 만나서 의논하자고 했다. 회의는 열렸지만 난 참석하지 못했다. 나는 언론접촉을 하지 말라는 요청을 받고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2월 25일 리비아 시위대가 카다피의 하야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아스마 알-아사드에관한 내 기사가 보그지 웹사이트에 올랐다.그들은 내 기사에 ‘사막의 장미(A Rose in the Desert)’라는 터무니없는 제목을 붙였다.내 기사가 온라인에 뜨자마자 나는 공격을 받았다. 어떻게 아스마 알-아사드 기사를 쓸 수 있나? 시리아의 퍼스트레이디를 보그지에 소개함으로써 나는 그녀를 추켜세운 셈이었다.
시리아는 계속 조용하다가 3월 중순 작은 사건이 끔찍한 학살을 촉발했다. 지금까지17개월 동안 계속되는 학살이다. 2월 말 남부의 소도시 다라에서 어린이 15명이 시리아의 침묵을 깨뜨렸다. 아랍의 봄이 가져온 희열 때문이었는지, 마사르 센터가 아이들의 시민사회 건설 의식을 깨우치기 위해 파견한 ‘녹색팀’ 때문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9~15세인 그 남자아이들은 학교 담벼락에 이렇게 썼다. “국민은 정권 타도를 원한다(The people want to topple the regime).”경찰이 그들을 체포했다. 2주가 지나도 아이들이 풀려나지 않자 3월 15일 부모와 가족들이 시위를 벌였다.3월 18일의 두 번째 시위에서 시리아 군인들의 발포로 4명이 사망했다.
그 아이들이 마침내 풀려났지만 가족들은 아이들이 고문당한 흔적을 보고는 거리로 뛰쳐나갔다. 3월 23일 다라의 한 사원에서 시위대 한가운데 수류탄이 날아들었다.아사드의 군대가 매일 시리아인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장례식 참석자들, 사원에 모여든 사람들, 거리의 여자와 어린이들에게 총을 쐈다.
그들은 더 많은 어린이를 체포하고 더 많은 아이를 고문했다.4월 29일 함자 알리 알-카티브(13)가 다라 부근의 사이다에서 시위 도중 체포됐다.5월 24일 함자의 난도질된 시신이 부모에게 보내졌다. 알자지라 방송은 이렇게 보도했다. “그 아이는 시리아 보안군에 거의 한달을 잡혀 있었다. 그들이 부모에게 시신을 넘겼을 때 잔인한 고문의 상처가 역력했다.발, 팔꿈치, 얼굴, 무릎에 칼에 베인 자국, 멍,화상이 남아 있었다. 눈은 시커멓게 멍이 들어 부어올라 있었고, 양쪽 팔을 관통한 총상이 있었다. 그 총알들은 아이의 옆구리를 뚫고 들어가 복부에 꽂혔다. 가슴에는 검은 화상 상처가 깊게 나 있었다. 그의 목은 부러졌고, 성기가 잘려 있었다.”아스마 알-아사드는 ‘마사르’가 운명을 의미한다고 내게 말했었다.
바샤르 알-아사드는 시리아의 민중 봉기를 알카에다와 미국의 테러리스트들 탓으로 돌렸다.2011년 내내 나는 아스마 알-아사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시리아의 어린이들에게 그토록 관심을 쏟지 않는가? 그런 그녀가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 수 있단말인가? 시리아 정권이 아이들을 잡아먹는 동안 어떻게 좌시할 수 있단 말인가?
2011년 5월 보그지는 내 기사를 웹사이트에서 내렸다. 나는 언론과 접촉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그해 말 보그지는 나와의 계약을 경신하지 않았다.그때부터 나는 내가 가진 유일한 매체인트위터를 통해 시리아 학살에 반응할 자유가 생겼다.지난해 12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미국 ABC 방송의 바바라 월터스에게 ‘진실’을 말했다. “정신이상자가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라면 정부가 국민을 죽이는 법은 없다(No government kills its people,unless it’s run by a crazy person).” 정말 맞는 말이 아닌가?
나는 아사드 아파트의 그 거대한 창문이 이제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다. 그들이 아직도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리얼리티쇼 속에서 살까?아스마가 감옥에 갔거나 고향으로 돌아갔을까? 남편과 자선 꾸러미를 만들거나 투표하는 사진이 나왔을 때 나는 그녀가 마약에 취했는지, 남편의 말에 고분고분 따른 건지,무관심한지, 남편과 공모하는지 궁금했다.
무엇보다 마사르 센터가 궁금했다. 시리아의 600만 어린이를 ‘역동적인 시민’으로 양성하겠다는 야심적인 그 프로젝트 말이다.아스마 알-아사드는 시리아의 어린이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도록 힘을 실어줌으로써 그 아이들을 남편의 수하로일하는 고문자들에게 갖다 바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지옥의 퍼스트레이디에게 양심이 있을까?나로선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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