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곡의 폐단 민간 주도로 해결 모색

“오늘날 백성들이 환곡(還穀)보다 더 싫어하는 것은 없습니다.” 고종 4년, 당시 호조판서 김병국이 올린 상소의 첫 문장이다. 환곡은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만든 제도로 흉년이나 춘궁기인 봄에 곡식을 대여하고, 추수기인 가을에 거둬들이는 것을 말한다. 백성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이 제도가 왜 미움의 대상이 되어 버렸을까.
조선 초기의 ‘환곡’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의창(義倉)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의창은 각 고을의 수령이 운용 책임을 맡았는데 수령이 마음먹기에 따라 나쁜 방향으로 운영될 여지가 많았다. 가령 곡식을 빌려줄 때는 작은 되로 재고 돌려받을 때는 큰 되로 재면 곡식을 빌린 백성은 손해를 보고, 그 차익은 수령이 가져가는 것이다.
조정에서는 당사자인 백성이 직접 되를 재고 무게를 달도록 법으로 규정함으로써 그러한 폐단을 차단하고자 했지만, 수령이 마음만 먹으면 힘없는 백성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또한 환곡의 출납은 수령이 감사에게 보고하고, 감사는 호조에 통보하여 회신을 받은 다음에야 이루어졌기 때문에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도 행정 처리에 드는 시간으로 인해 때를 놓쳐버리는 일이 잦았다.
세종 때 첫 거론이러한 의창의 단점을 해소하기 위해 논의 된 것이 ‘사창(社倉)’이다. 사창은 주자(朱子)가 설계한 것으로 관에서 운영하는 ‘의창’과는 달리 민간의 지역공동체가 중심이 된다. 사창은 빌려준 곡식을 돌려받을 때 제반 경비 및 자연손실분 충당을 위해 모곡(耗穀:이자, 원곡의 10~20%)을 함께 받는다.
주자는 처음에는 나라로부터 곡식을 빌려서 이것을 기반으로 일정기간 모곡을 거둔 다음, 정부로부터 빌린 곡식을 갚고 그 다음부터는 모아진 모곡만으로 사창을 운영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향촌에서 자치적으로 경영하는 것이므로 백성들이 관리의 수탈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관의행정 처리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필요가 발생할 때마다 신속히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 주자의 생각이었다.
사창을 설치하는 문제는 세종 때 처음 거론되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세종10.1.21). 이후에도 “의창은 이자 없이 빌려준 쌀만 그대로 돌려받지만, 사창은 1년에 1석당 1두의 식미(息米:이자로 받는 쌀)를 거둬들이므로 백성들이 원하지 않습니다.” “사창법이 주자가 시행한 것이기는 하나 시대가 다르고 형세가 다르므로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문종1.6.2)” “관에서는 병사들이 있어 곡식 창고를 잘 지키겠지만 민간에 창고를 둔다면 도둑을 막기 힘들 것입니다(세조 14.6.18)”
“사창의 책임을 맡는 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출납하여 이익을 도모합니다(성종1.2.24)” 등 사창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했다. 물론 여기서 지적된 바가 타당하기는 하지만 신하들이 사창을 반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사창이 만들어지게 되면 고을 수령의 힘이 약화되고, 이것이 자신들과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조선 중기를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자 없이 원곡만 그대로 돌려받았던 초기의 ‘의창’과는 달리 진휼청 등 각 기관에서 환곡을 주면서 원곡의 10%를 모곡으로 징수했다. 그렇다면 어차피 모곡을 징수하는 이상 운송, 소요 시간, 수탈 방지 등의 측면에서 백성에게 보다 유리한 사창을 만드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주장이 산림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숙종8.11.19).
그러나 이번에도 사창의 설치는 쉽지 않았다. 주자 성리학에 대한 신봉이 강화되면서 주자가 만든 제도를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는 산림들의 발언이 커졌지만 ‘문제가 있어도 민간보다는 그나마 나라에서 하는 것이 더 낫다’라는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순조5.4.10).
이처럼 나라에서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은 사이에 환곡은 점점 더 변질되었다. 환곡은 본래 국가의 예비곡을 활용하여 백성들을 구제하고, 종자를 제공함으로써 농민의 생산 활동을 보조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자인 모곡을 거두게 되고, 그 모곡이 국가 재정의 부족분을 충당하는 용도로 사용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중앙과 지방의 각 관청에서는 경쟁적으로 자신들의 비축미를 환곡으로 이용하고자 했는데, 환곡을 통해 묵은 곡식을 햇곡식으로 교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자수익을 관청의 경비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편법을 동원하여 법적 이자를 늘려 받았고 환곡을 이용한 영리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환곡이 하나의 조세처럼 강제화, 의무화된 것이다. 곡식을 빌려주지 않고, 이자곡만 거두는 상황까지 나타났다.
이에 농민들이 대거 반발했다. 철종 13년에는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농민봉기가 일어났는데, 이때 농민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것이 바로 환곡이었다. 철종이 크게 놀라 대책을 재촉하자 신하들의 의견은 ‘제도에는 잘못이 없으며 운영과정 상에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로 모아졌다. 농민들의 바람과 달리 혁신보다는 기존 질서의 유지를 택한 것이다.
그런데 이후에도 조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환곡 제도를 개선해 백성들의 부담을 줄여야한다고 너도 나도 떠들어댔지만, 농민봉기가 일단 진정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환곡을 폐지하여 불법적인 수탈을 없애고 모곡으로 인한 수익을 전세(田稅)로 대체함으로써 재정수입을 보장하도록 하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새로운 전세가 생겨나면 지주들은 다시 작인에게 그것을 전가할 것이 뻔한 일이어서 섣불리 추진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고종 4년, 사창제가 전면적으로 실시됐다. 당시에도 사창을 부정적으로 보는 의견이 강했지만 더 이상 환곡의 폐단을 좌시할 수 없다는 대원군(고종)의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 “이는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원대한 계책이며 백성들을 편안하게 보전시킬 대책이다. 더구나 주자가 이미 시행했던 법이니 더 말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고종4.6.6)라는 선언과 함께 사창 운영에 관한 상세한 세부규정이 반포됐다. 특히 사창이 일부 개인들에 의해 오남용 되지 않도록 법적인 뒷받침이 뒤따랐다(고종4.6.11).
고종의 사창제 실시는 오랜 세월 수많은 폐단을 양산하던 제도의 유지를 포기하고, 새로운 제도로 대체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조치였다. 백성에 대한 관의 통제를 줄이고, 농민들이 향촌경제의 일원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북돋는 결정이기도 했다. 물론 한계는 있었다. 정부가 가지고 있었던 곡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각 지역에서 사창을 만들 때 정부에서 원곡을 대여해주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어 곡식을 사도록 조치했는데 곡물과 화폐가치의 차이, 정부의 기준가와 실거래가 등의 차이로 인해 많은 혼란이 생겨난 것이다.
기준가와 실거래가 차이로 혼란 일기도아프리카에 사는 산양 스프링 팍은 먹이를 찾아 무리 지어 달리다가 어느 순간 ‘먹이’라는 본래의 목적은 잊어버리고 오로지 달리는 것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고 한다. 그러느라 속도와 방향을 제어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절벽 아래로 떨어져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환곡의 본래 목적은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자수익에 치중하다 보니 어느새 환곡은 백성 구휼제도에서 백성에게 강제로 부과되어 의무적으로 이자를 받아가는 조세제도가 되어버렸다. 환곡이 가져온 수많은 폐단은 이처럼 환곡이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초래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혹시 밥 친구가 필요하세요?... 그렇다면 오늘은 ‘이자반’ [김지혜의 ★튜브]](https://img.edailystarin.co.kr/data/isp/image/2026/04/19/isp20260419000032.400.0.png)
!['2NE1' 맏얻니의 샤넬♥...셀럽의 출국룩 가격은? [얼마예요]](https://image.economist.co.kr/data/ecn/image/2026/04/18/ecn20260418000015.400.0.png)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美 소비심리 또 사상 최저…휘발유 급등·관세 우려에 ‘흔들’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공연 취소’ 손배소 일부 승소 이승환 “구미시장, 부당한 결정 몸통…항소할 것” [전문]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루비오 美국무 “이란, 오늘 평화안 답변할 것”…협상 분수령 오나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국민연금, 갑질 신고 받으면서 '쉬쉬'…"정작 피해자는 몰라"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516억 조달로도 임상 1상 자금 부족"...로킷아메리카, 공모 흥행 우려도[only 이데일리]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