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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 개발하면 사업비 4조 더 들고 사업 무산 땐 코레일 3조6000억 물어야

단계 개발하면 사업비 4조 더 들고 사업 무산 땐 코레일 3조6000억 물어야

개발 방식 따라 피해자 속출 불가피…서부이촌동 주민 사이 갈등도 커져
사업 좌초위기를 맞고 있는 용산국제업무 개발 예정 지구.



서울 이촌동 이촌2동주민센터 버스정류장 앞 도로변. 500m에 걸쳐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엇갈린 입장을 담은 수십개의 플래카드가 어지럽게 걸려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한강 방면 동원베네스트 아파트 뒤편 12만4000㎡ 일대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대상지인 서부이촌동(이촌2동)이다.

서울 서부이촌동 주민 사이에 갈등이 커지고 있다. 단계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과 아예 사업에서 빠지겠다는 주민이 서로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요즘 서부이촌동 2300가구 주민들은 개발 사업에 대한 이견으로 극단적으로 갈라져 있다. 개발 사업에서 서부이촌동을 포함해 개발해야 한다는 통합개발 찬성 주민들은 서부이촌동 보상 시기를 늦추는 단계적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을 비난하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단계개발 2020년 보상 웬말이냐?’, ‘코레일 정창영 사장 탄핵하라’ 같은 내용이다.

사업이 지연되면서 많이 늘어난 통합개발 반대파는 서부이촌동을 아예 용산 개발 계획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개발 대상지로 지정된 후 5년 이상 거래에 제약을 받아 왔는데 주택거래라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입장이다. ‘쪽박 차는 강제수용 결사반대 한다’ 같은 내용의 플래카드와 포스터를 지역 곳곳에 붙여놓았다. 이들은 ‘주민의견 수렴을 위한 찬반투표를 실시’해 개발을 중단해 달라고 서울시에 민원을 넣고 있다.

사업비 31조원 규모로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으로 통하는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사업주체들의 충돌로 좌초 위기를 맞자 주민들이 술렁이고 있다. 사업 추진이 상당기간 늦어질 것으로 예상되자 일부 주민은 사업 주체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이하 드림허브)의 1대 주주인 코레일을 상대로 보상이 늦어지는 데 따른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사업이 늦어지면서 통합개발 반대파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대림아파트 반대파 모임인 생존권사수연합 이갑진 회장은 “빨리 찬반투표를 해 서부이촌동을 개발 계획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애초 개발에 동의했던 상당수 사람들이 개발 반대파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 47년 살았다는 주민 김재철씨는 “애초 내년으로 예정됐던 보상 일정이 얼마나 더 늦어질지 암담해지니까 서울시와 대기업에 놀아났다며 답답해하는 주민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이 지역 아파트 거래는 끊긴지 오래됐다. 서울시는 2007년 8월 이후 이 지역 주택을 산 사람들이 입주권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자연히 매수세는 사라졌다. 올해 들어서는 토지보상이 곧 시작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세 거래조차 자취를 감췄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판에 전세로 들어올 리 없기 때문이다. 대림아파트 입구 믿음공인 최기종 사장은 “매매 계약은 2008년 이후 한 건도 못했고 전세 계약도 올 5월 이후 전혀 하지 못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집을 내놓아도 살 사람이 없으니 빚을 갚지 못하는 주민들은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 이 지역 주민 절반은 개발 호재로 집값이 급등하던 2007년 전후 개발·보상계획을 믿고 생활·교육·이주비 등에 쓰기 위해 3억~10억원씩 빚을 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보상이 이뤄지지않고 집이 팔리지 않으면서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 지역 2298가구 가운데 1250가구가 평균 3억4400여만원을 대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매달 가구당 150만~200만원의 대출 이자를 내고 있다.

이자를 내지 못하는 가구가 늘면서 경매로 넘어가는 주택도 생겼다. 대림아파트에서만 15채가 경매로 나오는 등 최근 2~3년간 이 지역 아파트 32채가 경매 처분됐다. 서부이촌동 11개 주민모임 김찬 총무는 “보상계획이 불확실하면 금융권이 당장 경매로 처분할 수밖에 없다”며 “최근 주민 중 대출이자를 내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 내년엔 경매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사업이 시작될 때만 해도 이 지역 주민들은 장밋빛 꿈을 꿨다. 집값이 급등했고 보상비를 많이 받아 한몫 챙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통합개발 반대파 목소리는 찾기 힘들었다. 원래 코레일은 이 회사가 소유한 용산 철도정비창 터(약 40만㎡)만 개발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서울시 오세훈 전 시장은 한강경관 개선을 위해 바로 옆 서부이촌동을 포함해 통합 개발하는 것을 인·허가 조건으로 내세웠다. 결국 코레일은 이를 받아들였고 현재의 개발 범위가 확정됐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문제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부동산 시장이 급속히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곳곳에서 개발 사업이 지연됐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 그동안 투자한 자금보다 개발 이후 얻게 될 수익이 낮아질 것이란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직격탄올 2월 정창영 사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코레일의 입장도 달라졌다. 기존에 서울시는 물론 다른 출자사와 합의했던 통합개발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면적을 한꺼번에 개발해 분양하는 것은 실패할 게 뻔하다는 판단이다.

코레일 용산역세권개발처 김기태 처장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자금조달이 어려운 상황에서 50만㎡ 규모를 한꺼번에 일괄 개발해 아파트와 사무실을 공급하는 것은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변동된 시장상황을 반영한 새로운 사업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판단에 따라 드림허브에 파견된 코레일 이사 3인은 서부이촌동 주민보상안 승인을 계속 미뤘다. 그러다 일단 철도기지창을 먼저 개발하고 나중에 서부이촌동을 개발하는 단계적 개발로 사업 계획을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한꺼번에 다 개발하기보다 사업성이 있는 곳부터 단계적으로 개발하자는 것이다. 사업규모에 비해 자본금이 적으니 드림허브 30개 출자사를 대상으로 자본금을 3조원으로 늘리자는 안건도 이사회에 상정한다.

하지만 이 계획은 모두 이사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개발 계획 변경은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반발이 크기 때문에 쉽지 않고 자본금 증자는 출자사들 모두 침체된 시장 상황에서 꺼려하기 때문이다. 계획이 번번이 무산되자 코레일은 올 9월 2대 주주인 롯데관광개발이 반대 목소리를 주도하고 있다며 드림허브를 대신해 사업을 추진하는 용산역세권개발(AMC) 경영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한다. 이때부터 드림허브의 1·2대 주주인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의 갈등이 커졌다.

드림허브는 코레일의 사업계획 변경 요구와 롯데관광개발 등 다른 출자사들의 반대로 내부 갈등을 지속하면서 사업은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 10월 시작한 기반공사(토지오염정화 공사)는 올 9월 자금 집행이 안 돼 전면 중단되고, 2500억원 전환사채(CB) 발행도 하지 못해 AMC는 심각한 자금난에 빠져 있다.

AMC관계자는 “12월 17일 121억원의 은행이자만 겨우 해결하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며 “빨리 CB를 발행하지 못하면 내년 3월 디폴트(지급 불이행)에 빠져 파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다시 정상궤도에 오를 수 있을까. 현재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크게 네 가지다. 기존 계획인 통합개발, 코레일의 요구인 단계적 개발로 전환해 철도정비창부터 먼저 개발, 아예 철도정비창만 개발하는 분리개발, 그리고 코레일이 아예 사업 추진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통합개발 방식으로 추진=먼저 기존 개발 계획대로 통합개발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코레일이 단계적 개발 계획을 포기해야 한다. 사실 기존 개발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분쟁없이 사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코레일은 3조원대의 철도기지창 땅을 8조원에 팔 때도, 30개 출자사를 모집해 드림허브를 만들 때도, 서부이촌동 주민들에게 개발 동의서를 받을 때도 모두 통합개발을 전제로 했다. 한강변과 바로 연결되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사업 참여를 결정했고 무수한 협약을 맺었다. 이 계획을 바꾸려면 결과적으로 손해를 보는 쪽은 코레일을 상대로 소송을 전을 준비할 가능성이 크다. 애초 계획대로 사업을 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인 것은 이 때문이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2013년 하반기 랜드마크 빌딩 분양을 진행하며 토지보상도 이때 시작한다. 코레일은 용산국제업무지구 땅을 8조원에 드림허브에 팔았다. 드림허브는 금융권으로부터 2조4000억원을 조달해서 전체 땅값의 30% 정도 지불했다. 금융권은 돈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전체 땅에 근저당을 설정했다.

분양을 하기 위해서는 이 근저당을 풀어야 한다. 드림허브는 내년 상반기 랜드마크 빌딩의 건축허가가 떨어지면 이 빌딩의 매출채권(코레일이 4조2000억원에 선매입 해 20% 계약금 납입)을 유동화해 상업시설 부지인 B4, B5블록의 근저당을 풀고 여기서 부티크오피스텔과 일반 입주자용 펜토미니엄 주상복합 아파트를 분양한다. 그리고 이 분양자금을 이용해 서부이촌동 토지보상을 실시한다.

보상이 끝나면 서부이촌동 땅을 담보로 다시 대출을 받는다. 이 돈으로 용산역과 가까운 R4블록에 대한 근저당을 풀고 1124채와 오피스텔 256실을 분양한다. 이렇게 블록별로 분양을 하면서 마련된 돈으로 다른 블록의 가압류를 풀어 전체 17개 블록을 4년여에 걸쳐 순차적으로 분양을 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서부이촌동과 철도기지창 부지를 함께 개발해 통합개발이라고 하지만 시간차를 두고 개발한다는 차원에서 단계적 개발과도 비슷하다. 롯데관광개발 관계자는 “서부이촌동과 철도기지창 부지의 땅덩어리가 너무 크고 전체 땅에 근저당이 설정돼 있어 말 그대로 통으로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분양과 자금조달 방식에 있어 사실상 단계적 개발이라고 봐도 된다”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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