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NGUAGE - 프랑스인은 왜 영어를 못하지?

지난 3월 2일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의 독립영화 상영관 IFC 센터에서 프랑스 감독 레지스 로인사드의 데뷔작 ‘포퓌레르(Populaire)’ 시사회가 열렸다. 영화관을 메운 프랑스인 관광객과 뉴욕의 친프랑스 인사들이 박수를 보냈다. 영화가 끝난 뒤 로인사드는 무대에 올라 질문을 받았다.
그는 용감하게 영어로 답했다. 강한 프랑스 억양에 다 시제를 자주 혼동했고, 빈번히 통역사에게 의존했다. 그의 작품에 감동한 관객은 너그러이 받아들였다. 요점 파악에는 큰 문제가 없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인이 늘 그렇듯 로인사드는 프랑스어를 하듯이 영어를 구사했다. 영어 사용자들은 그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로인사드가 영어 때문에 겪은 곤혹스러웠던 일은 프랑스 정치인들이 영어를 잘 못해 저지르는 실수나 무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후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신임 대통령은 오바마에게 보낸 축하 메시지 말미에 ‘friendly, François Hollande’라고 서명했다. 트위터에서 프랑스인들의 조롱이 쏟아졌다.
‘friendly’는 프랑스어 ‘amicalement’의 문자 그대로 번역으로 프랑스어로는 정중한 마무리 말이지만 영어로는 친구 사이에서나 사용되며 국가 수반 의전에 적합하지 않다. 르 피가로지에 따르면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도 영어 능력을 조롱받았다. 2010년 1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방문했을 때 좋지 않은 날씨를 사과하는 뜻으로 “Sorry for the time(시간 때문에 유감입니다)”이라고 말했다. 사르코지는 영어 실력이 부족해 엘리트 정치대학 시앙스포를 졸업하지 못했다.
더 당혹스러운 사례도 있다. 장-피에르 라파랭 전 프랑스 총리는 2005년 유럽 연합(EU) 헌법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Oui, the yes needs the no to win against the no(그렇죠, 예스가 노에 이기려면 노가 필요합니다).”
세계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물이 영어를 너무 못한다는 사실은 프랑스의 글로벌 경쟁력에 대한 우려를 자아낸다. “프랑스인의 언어능력 부족은 유럽 정상회의나 국제 비즈니스계에서 늘 나오는 농담”이라고 누스피어사(소셜 미디어에 초점을 맞춘 조사 서비스 업체) 설립자 파스칼-에마누엘 고브리가 프랑스 웹사이트 아틀란티코에서 지적했다.
외국어 능력에서 프랑스는 늘 다른 유럽국보다 떨어진다. 덴마크와 스웨덴 같은 북유럽 고학력 천국에만 뒤지는 게 아니다. 2008년 TOEFL 국가 성적 순위에서 프랑스는 109개국 중 69위, 43개 유럽국 중 25위였다. 특히 EU의 제1차 유럽 외국어 능력 조사에서 프랑스는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그렇다고 프랑스가 학교에서 언어 교육을 중시하지 않는 건 아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2009년 학생들의 영어 능력 개선을 위해 ‘비상대책’을 세웠다. 영어 원어민 교사를 더 많이 불러들여 프랑스 학생과 영어 원어민 사이의 교류를 활성화하고 영어 말하기를 장려할 목적으로 영어능력 평가도 필기에서 구두 시험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다. 현 프랑스 교육장관 뱅상 페이옹은 외국어 시험에서 프랑스 학생의 성적이 “특히 걱정스럽다”며 “교육 시스템의 기초를 다시 놓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프랑스 언론인 그레구아르 플뢰로는 프랑스가 처한 외국어 실력 문제의 본질을 취재한 뒤 온라인 잡지 Slate.fr에 3부작으로 게재했다. 플뢰로는 구조적 요인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프랑스의 교육 시스템과 사회 둘다에 학생들의 외국어 학습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사소한 불안감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중 하나가 아이들에게 늘 조용하도록 강요하는 교육이다. 보이긴 하되 들리진않게 하라고 가르친다는 뜻이다. 파멜라 드러커먼이 쓴 프랑스식 육아법 ‘프랑스에서 아기 키우기(Bringing Up Bébé)’에서도 그런 점이 지적돼 논란이 일었다.
플뢰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집에서도 아이들에게 떠들지 말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라고 가르친다. 예를 들어 ‘완벽하다’를 프랑스어로는 ‘sans faute(과오가 없다)’고 표현한다. 프랑스에는 ‘말하기 전에 입 안에서 혀를 일곱 번 돌려라’는 격언도 있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분명히 정리하기 전에는 말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 문화가 내향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런 사소한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미국인은 아이들에게 기탄없이 말하라고 격려하지 않는가?”
물론 영어권 학생도 프랑스 발음을 익히기가 매우 어렵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학생도 영어 발음은 도저히 안 되며 영어 발음 연습조차 수치스럽게 느낀다. 모두 ‘과오 없이’ 말하려고 애쓰는 나라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뉴욕대 프랑스어 교수이며 발음교육기관 JP 링귀스틱스 설립자인 장-필립 슈미트는 “프랑스 학생은 영어 발음이 아주 어렵고 심지어 ‘웃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영어의 ‘th’ 발음은 프랑스인에게는 혀가 짧거나 언어장애가 있는 것처럼 들린다. 프랑스인은 ‘안전지대’에서 뛰쳐나와 그런 발음을 잘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 프랑스 학교는 언어 교육에서 말하기보다 규칙, 문법, 암기에 초점을 맞춘다. 비판자들이 자주 지적하듯이 그런 접근법은 사어(dead language, 과거에 사용됐다가 사라진 언어) 학습에 적합하다. 슈미트는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에 프랑스 낭시 부근의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다.
“말은 교사가 하고 학생은 그냥 듣기만 했다”고 그는 말했다. “교사로서 좌절감이 컸다. 언어는 실제로 말을 하면서 배워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기 때문이다. 배우려는 언어와 그 문화에 몰입해야 효과가 있다.” 고브리는 프랑스 학교에서 언어를 배운 방식을 돌이키며 “고문이었다”고 말했다. 또 학생으로서는 의사소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난해한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실력을 과시하려고 외국어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거의 모든 프랑스어 사용자는 영어를 유창하게 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발음에서 그렇다. 뉴욕에서 개인교습을 하
는 에스텔 맨션은 프랑스 보르도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영어 성적이 우수했다. 그러나 10대 시절 미국 플로리다에 가서 호텔에서 일할때 그 영어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스로 영어를 잘 한다고 생각했지만 안내 데스크에 오는 손님들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들은 나 말고 다른 안내원과 이야기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플뢰로는 다른 유럽 나라는 영어를 성장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이지만 프랑스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 때문에 프랑스 학생이 외국어에서 불리하다고 말했다. 예를들어 프랑스에선 대다수 외국어 TV 프로그램과 할리우드 영화가 프랑스어 자막으로 처리되지 않고 프랑스어로 재녹음된다. 대중의 요구도 있지만 프랑스 정부가 외국어, 특히 영어의 침투를 막으려고 하기 때문에 생긴 관행이다.
프랑스 정부가 말하는 ‘문화예외주의(cultural exceptionalism)’다. 미디어 시장이 프랑스 문화를 망치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그런 생각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따른다. 갈수록 영어가 지배하는 글로벌 무대에서 절실히 필요한 언어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영어를 잘 하는 프랑스인은 한결같이 영어 TV 방송이 언어 학습에 최고라고 말한다. 플뢰로는 열세 살 때 런던으로 이사했을때 영국 TV를 보며 영어 어휘와 용법을 익혔다고 말했다. 고브리는 숙제를 하지 않고 자막이 나오는 미국 TV 프로그램을 봤다. 슈미트는 영어 영화를 즐겼고 영어 원어민이 눈에 띄면 다가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EU 집행위원회는 그런 방식을 지지한다. EU 언어능력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어를 자연스럽게 듣고 말할 수 있는 “언어친화적인 환경”이 프랑스처럼 외국어 능력이 뒤지는 국가에 필수적이다.
플뢰로에 따르면 이제 프랑스 TV도 프랑스어 자막으로 처리한 영어 프로그램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정부도 외국 프로그램을 프랑스어로 재녹음하도록 방송사에 강요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교육 개혁이다. 고브리는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교사들에게 보수를 지급하기보다 프랑스어로 자막 처리된 외국어 원본 DVD 영화 시리즈를 배포하는 게 낫다. 그러면 프랑스인은 외국어를 훨씬 더 잘 구사할 수 있고 시간 낭비도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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