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전 승부 롯데로 일단 기울어
인천대전 승부 롯데로 일단 기울어
인천지방법원 민사21부(재판장 심담 부장판사)는 신세계가 인천광역시를 상대로 낸 인천종합터미널 매매계약 이행중지 가처분 신청을 3월 11일 기각했다. 인천시가 경쟁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터미널매각을 추진했지만 적법했다는 판단이다. 계약 과정에서 공유재산법과 지방자치단체 계약에 관한 법률에도 위배된 점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신세계는 계약 당사자가 아닌 제3자로서 (인천터미널) 매매계약이 무효가 되면 새 계약을 맺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천시가 터미널을 매각하면서 롯데에 불법적인 특혜를 주는 업무상 배임 행위를 저질렀다는 신세계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통 업계 라이벌인 롯데와 신세계의 ‘인천 대전’에서 롯데가 승기를 잡았다. 두 회사가 인천에서 맞붙은 건 지난해부터다. 인천시가 지난해 초 신세계백화점 인천점과 인천터미널 부지를 매물로 내놓자 롯데쇼핑은 같은 해 9월에 이를 8751억원에 사들이는 투자약정을 인천시와 맺었다. 롯데 측은 롯데백화점·마트를 포함한 복합쇼핑몰로 키운다는 계획도 내놨다. 인천터미널 매매를 둘러싼 롯데와 신세계의 법정 싸움은 이 때부터 계속됐다.
신세계 “인천점 빼앗기면 대안 없다”법정 공방은 팽팽했다. 첫 승자는 롯데였다. 법원은 지난해 10월 신세계가 인천터미널 매매계약이 적법하지 않다며 제기한 부동산 처분금지 가처분신청에서 기각 결정을 내리며 롯데 손을 들어줬다.
두 번째 싸움에선 신세계가 이겼다. 법원은 지난해 12월 인천터미널 매각절차 중단 가처분신청에서 청구인인 신세계의 주장을 인정하는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인천시와 롯데쇼핑이 서명한 투자약정서 제7조 조항에 대해 ‘인천시가 롯데에 조달금리 비용을 보전해준다’는 내용을 담은 게 문제가 있다고 해석했다. 이에 인천시와 롯데는 올해 1월 30일에 투자약정서의 조달금리 보전 조항을 없애고 매매가격을 9000억원으로 올려 다시 계약했다.
세 번째 공방에선 이번 법원의 기각 결정으로 롯데가 다시 승리했다. 롯데쇼핑은 “인천터미널 개발 계획을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며 “본계약 로드맵에 따라 2015년까지 이곳을 인천의 중심지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인천시는 매각대금 가운데 900억원을 계약금으로 이미 받았다. 임대보증금과 장기 선수임대료를 제외한 나머지 6000억원 가량은 3월 말까지 받을 예정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결합’ 심사에 들어간 가운데 예정대로라면 매매계약은 3월 중 마무리된다.
신세계그룹은 법원 결정을 이튿날인 3월 12일 항고 뜻을 밝혔다. 신세계는 애초 2차 가처분신청 때 법원이 투자약정서 상의 매매대금 조달금리 보전 조항을 문제 삼아 인용 결정을 내린 점을 내세웠다. 같은 사안에 대해 뒤바뀐 법원 결정을 존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신세계는 “서울고법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인천시와 롯데는 매매계약을 마무리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신세계는 인천시와 롯데쇼핑이 매매계약을 마친 후에도 매매계약 무효 확인 등의 본안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다.
상권 경쟁 격화로 수익성 떨어질 수도신세계가 지난해부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이유는 인천점이 이 지역 핵심 상권일뿐더러 회사 매출에도 크게 기여하는 점포라서다.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은 1997년 개점 후 신세계 점포 중 서울 강남점·본점, 부산 센텀시티점에 이어 매출 4위(수익 기여도 3위)인 핵심점포다. 2011년 기준 매출이 7200억원으로 전국 7위다. 인천에선 2위인 현대백화점 중동점과 큰 격차로 1위다. 롯데가 인천에서 운영 중인 점포 두 곳을 합해도 신세계 인천점보다 매출이 적다.
신세계의 절박함은 장재영 신세계백화점 신임 대표가 2월 28일가진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그룹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재차 내비쳤다. 그는 “인천점을 잃을 경우를 감안해 대안도 검토해봤지만 대체할 만한 곳이 없다”고 덧붙였다.
유통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 인천점이 롯데백화점으로 바뀌면 롯데백화점의 전체 매출은 9% 늘어난다. 이에 비해 신세계 매출은 15% 줄어든다(2011년 기준 환산치). 인천터미널은 인근에 구월동 로데오 거리와 중앙공원, 뉴코아 아울렛 등이 밀집한 이 지역 교통·상업의 거점이다. 평일엔 하루 유동인구가 5만여명에 이른다. 주말에도 2만~3만여명이 다녀간다. 신세계는 이곳을 임차해 15년간 백화점을 운영하며 지리적 이점을 누렸다. 신세계백화점 인천점 본관의 임차 기간은 2017년 11월까지이며 이마트도 같은 곳에서 영업 중이다.
롯데는 매매계약을 마무리하는 대로 이 일대 개발을 서두를 계획이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상반기 중 착공해 2015년에 롯데마트·롯데시네마를 열고 2017년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롯데백화점을 열어 복합쇼핑몰로 육성한다. 터미널 부지 500m 이내에 있는 4만3000㎡ 규모의 롯데백화점 인천점과 시너지 효과도 기대한다.
이미 롯데는 법정 밖에서도 인천터미널 부지·건물 인수를 위한 절차를 속속 진행 중이다. 롯데그룹이 터미널 부지·건물 매입과 개발을 위해 설립한 회사인 롯데인천개발은 2월에 특수목적회사(SPC)인 에이치앤디 에이블을 통해 7300억원어치 자산담보부 기업어음(ABCP)을 발행했다. 인수대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다.
신세계는 항고와 본안 소송 계획으로 맞불을 놨지만 인천점 사수여부는 불투명하다. 박유미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센트럴시티 인수에 따른 재무 부담이 변수”라고 말했다. 신세계는 지난해 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이 입점한 반포동의 센트럴시티를 1조250억원에 인수했다. 이에 따라 부채비율이 90%에서 146%로 높아졌다.
유통 업계는 인천시가 신세계를 배제하고 롯데와 이번 매매계약을 추진한 데는 신세계의 재무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본다. 장재영 신세계백화점 대표는 “유통업 특성상 현금 흐름은 양호해 우려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며 “인천점은 효율을 떠나 포기할 수 없는 점포로 현재보다 미래 가치를 따졌을 때 (사수가) 합당하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롯데와 신세계의 대결에는 국내 백화점 업계의 고민이 담겨있다고 분석한다. 김기영 SK증권 애널리스트는 “경제성장률이 3~4%대에 머물고 소비증가율도 낮아지면서 유통 업계가 국내 시장에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백화점은 오랜 기간 핵심수익원이었지만 상권 안에서 경쟁이 심화되고 출점 후보 지역도 줄면서 효율이 떨어지고 있다”며 “신세계 인천점에 대한 경쟁사 공략도 대표적인 상권 격화 현상의 하나”라고 덧붙였다.
국내 백화점 사업이 성장 단계를 넘어 불경기까지 겹친 성숙기로 접어든 시점에서 인천터미널 싸움의 승자가 수익 창출을 담보할 수 있는 건 아니란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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