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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Tech - 익명성 보장에 상속·증여세도 면제

Money Tech - 익명성 보장에 상속·증여세도 면제

전두환·이재현의 비자금 관리, 자녀 증여 수단 의혹 … 현재 거의 유통되지 않아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1672억원) 환수 수사에 나선 가운데 전 전 대통령이 그동안 1400억원대 무기명 채권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무기명 채권을 비자금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특히 2004년 이후 은행과 증권사에 무기명 채권 300억원어치를 현금화한 사실도 드러났다.

무기명 채권은 돈을 요구하는 채권자가 누구인지 표시되지 않는 채권이다. 채무자와 만기 때 받을 금액만 표기돼 있다. 시장에서는 ‘묻지마 채권’으로 불린다. 1997년 12월 개정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부칙 제9조에 따르면 정식 명칭은 특정 채권이다.



외환위기 때 한시적 발행올 7월 횡령·배임 및 탈세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500억원대의 무기명 채권을 두 자녀에게 나눠줬다. 이 회장이 장녀 경후(28)씨와 차남 선호(23)씨에게 무기명 채권을 건네주면서 이들 남매는 상속세를 물지 않고 CJ그룹 주식을 사들였다.

7월 현재 경후씨는 CJ(0.13%)·CJ제일제당(0.15%)·CJ E&M(0.28%)·CJ파워캐스트(12%) 지분을, 선호씨는 CJ E&M(0.7%)·CJ파워캐스트(24%)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무기명 채권은 1998년 6월 정부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 자금을 마련할 목적으로 한시적으로 발행한 게 시초다. 당시 5년 만기로 발행된 채권은 고용안정채권(근로복지공단 발행)·증권금융채권(한국증권금융)·중소기업구조조정채권(중소기업진흥공단)의 세 종류다.

이 중 증권업계 구조조정이나 채권인수대금 등을 지원하기 위해 발행된 증권금융채권이 2조원 규모로 가장 많이 발행됐다. 중소기업구조조정채권 1조원, 고용안정채권 8735억원 등 총 3조8735억원 가량이 풀렸다. 2004년부터 무기명 채권인 국민주택채권은 기명채권으로 바뀌었다. 국민주택채권까지 포함하면 200조원의 규모의 무기명 채권이 발행된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발행된 무기명 채권 이자율은 연 5.8~7.5% 수준이었다. 그 무렵 채권 금리가 10~20%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낮다. 그러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무기명 채권이 큰 인기를 끈 건 익명성이 보장된 때문이다. 정부는 무기명 채권 보유자가 어떤 돈으로 채권을 사들였는지 알 수 없다. 외환위기 당시 대규모 자금이 필요했던 정부가 무기명 채권을 발행하면서 매입 자금의 출처에 대해 국세청 세무조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서울 명동에서 사채업을 하는 A 사장은 “무기명 채권은 기업이나 자산가들이 비자금을 조성한 대표적인 수단”이라며 “채권을 현금화시켜 뇌물이나 정치 자금 등으로 건넨다”고 말했다. 삼성도 2002년 대선 자금을 전달할 때 국민주택채권을 이용했다. 사채시장에서 800억원어치를 사들여 385억원을 정치권에 전달한 사실이 적발됐다.

무기명 채권은 합법적으로 세금을 탈루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무기명 채권을 구입해 자녀에게 물려줄 경우 최고 50%에 달하는 상속·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금융실명제법에서 ‘특정 채권(무기명 채권)의 소지인은 자금의 출처를 조사하지 않고, 이를 과세 자료로 해서 조세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10억원 이상을 현금으로 증여하면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하지만, 무기명 채권으로 넘겨주면 세금을 한 푼도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1998년 발행된 무기명 채권의 회수율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 회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만기 5년짜리라 2003년에 만기가 돌아왔지만 이후에도 5년간은 원금이 보장된다. 이자는 만기 이후 2년 동안만 보장해주는 조건인 만큼 2005년이 이자를 받을수 있는 마지막 해였다.

한국증권금융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 증권금융채권 발행 물량 2조원 중 10억5000만원만 회수되지 않았다. 중소기업진흥공단 관계자는 “90% 이상 상환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청구기간이 끝난만큼 99% 이상 상환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기명 국민주택채권은 얼마나 회수됐는지 알 수 없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국민주택채권 발행 시기와 규모를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회수율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자산가들은 여전히 상속·증여를 위해 보유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높은 인기에도 현재 무기명 채권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무기명 채권은 한시적으로 발행됐고 국민주택채권도 기명채권으로 바뀌면서다. 조재영 우리투자증권 강남센터 부장은 “무기명 채권이 시장에 나오지도 않지만 찾는 고객도 거의 없다”고 전했다. 암암리에 무기명 채권이 판매된 사채시장도 비슷한 분위기다. 사채업을 하는 A 사장은 “과거에는 간혹 시장에 나오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나오지 않으며 설사 나온다 해도 거래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무기명 CD도 등록제 이후 유명무실무기명 채권과 함께 또 다른 비자금 조성 수단으로 꼽힌 양도성 예금증서(CD)도 거의 유통되지 않는다. CD는 은행이 정기예금에 양도 가능한 권리까지 부여해 발행하는 예금증서로 무기명 상품이다. 정기예금의 만기가 대개 6개월 이상이지만 CD는 만기가 30∼90일이다. 은행은 CD로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고객은 단기간에 현금화가 가능한 이점이 있다. 만기 전에 시중에 팔아 현금화할 수 있어 편리하다.

금융감독원은 그러나 2006년 자금 흐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CD 등록발행제도를 도입했다. CD 등록발행제도는 CD를 발행하고 유통시킬 때 발행인과 매매당사자의 이름을 금융회사에 등록하는 것이다. 통장이나 발행확인서만 발급돼 실물 CD가 유통되지 않는다. CD 거래 규모가 5000만원을 넘으면 다른 금융거래처럼 금융정보분석원(FIU)에 통보된다. 시중은행의 한 PB는 “은행 금고에 일부 CD가 보관돼 있지만 CD 금리가 높지 않고 실명으로 거래해야 하기 때문에 고객들이 거의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민주택채권 정부가 국민주택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발행하는 채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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