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LITERATURE - 짧은 생애, 긴 여운…
Features LITERATURE - 짧은 생애, 긴 여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출판 200주년을 맞아 두 권의 책이 새로 나왔다. 오스틴 마니아인 저널리스트 데보라 예피의 ‘어몽더 제인아이트(Among the Janeites)’, 그리고 역사저술가 로이와 레슬리 앳킨스가 쓴 ‘제인 오스틴의 영국(Jane Austen’s England)’이다.
이 책들은 오스틴이 살았던 섭정시대 영국의 풍속을 파헤치고 오스틴의 열성 팬을 상대로 톡톡히 재미를 보는 사업들을 소개한다. 한편 BBC의 1995년작 미니시리즈 ‘오만과 편견’에서 주목을 끌었던 콜린 퍼스의 이른바 ‘젖은 셔츠 신’이 책 출판 200주년을 맞아 새롭게 관심을 모으고 있다.
어린 시절의 제인 오스틴을 본 사람 중 누구도 그녀가 문학계의 거물이 될 줄은 몰랐다. 오스틴은 사후 거의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는 보기 드문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성공회 목사의 일곱 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가세가 기울어 매우 궁핍한 생활을 했으며 일생의 대부분을 햄프셔의 작은 시골 마을과 서머셋의 온천 도시 바스에서 보냈다.
‘어 레이디(A Lady)’라는 필명으로 몇 편의 소설을 썼고 41세에 이름 모를 병으로 사망했다. 오스틴의 책은 당대의 몇몇 유명인사로부터 사랑받긴 했지만(월터 스콧경은 그녀의 “잘 쓰여진” 작품을 칭찬하면서 “이렇게 재능있는 작가가 그토록 일찍 세상을 떠나다니 유감”이라고 탄식했다) 그녀 생전에 발표된 작품 평은 10여 편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 출판 200주년을 맞은 올해 우리는 도처에서 제인 오스틴을 만나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8월 16일 그녀를 주제로 한 영화 ‘오스틴랜드(Austenland)’가 개봉됐다. 케리 러셀이 오스틴을 주제로 한 판타지 리조트에서 자신의 ‘미스터 다시’(‘오만과 편견’에서 여주인공 엘리자베스가 사랑하는 냉담하고 오만한 신사)를 찾아나서는 오스틴의 열성 팬을 연기한다. 또 TV드라마 시리즈 ‘매드 멘’의 피트 캠벨 역으로 잘 알려진 빈센트 카테이저는 미네소타주 거스리 극단이 무대에 올리는 연극 ‘오만과 편견’에서 미스터 다시 역할을 맡았다.
그런가 하면 런던 하이드파크 서펀타인 호수에는 유리섬유로 만든 높이 3.7m의 다시 동상이 세워졌다. 1995년 BBC 미니시리즈 ‘오만과 편견’에서 다시 역을 맡은 콜린 퍼스의 유명한 ‘젖은 셔츠 신’을 기리는 작품이다. 또 ‘웰컴 투 새니턴(Welcome to Saniton)’이라는 제목의 웹 시리즈는 오스틴의 열성 팬들로 하여금 그녀의 마지막 작품인 미완성 소설 ‘새니턴’의 줄거리를 완성하도록 한다.
한편 영국 중앙은행이 10파운드짜리 지폐에 들어가는 초상화의 주인공을 찰스 다윈에서 제인 오스틴으로 교체하기로 한 결정은 큰 논란을 불렀다. 오스틴을 10파운드 지폐의 새 주인공으로 선정하도록 로비를 벌인 운동가들과 정치인들에 대한 살해 협박이 트위터에 올라오는 등 인터넷에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두 신저 중 첫 번째 ‘어몽 더 제인아이트’는 극단적인 오스틴 중독증의 핵심을 파헤치는 재미있는 책이다. 일부 독자가 오스틴 소설 속 캐릭터와 섭정시대 영국 풍속에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답을 얻기 위해 “제인 오스틴의 소수 광팬”들의 비밀스러운 세계를 깊이 파고든다.
제인 오스틴을 주제로 한 다양한 보드 게임, ‘위키드 위컴’ ‘미스터 나이틀리즈 리저브’ 등의 이름을 붙인 티백, 제인 마니아의 슬로건[‘카페 다시’(Carpe Darcy, ‘다시를 놓치지 말고 잡아라’는 뜻)]이 새겨진 티셔츠 등이 판치는 세계다.
이 책에는 오스틴 큰오빠의 직계 후손이 소개된다. 길이 9m의 쌍동선 엘리자베스 베넷호를 소유한 그는 배타적인 영국 제인 오스틴 협회에 반기를 들어 북아메리카 제인 오스틴 협회(JASNA)를 설립했다.
그밖에도 오스틴의 작품을 독서요법 그룹의 치료 수단으로 사용하는 전직 암 전문 간호사와 오스틴 소설의 숨겨진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빈치 코드’ 스타일의 음모론을 쓴 전직 부동산 전문 변호사 등이 등장한다. 오스틴을 자신의 ‘마약’이라고 부르는 샌디 러너(글로벌 IT 업체 시스코의 공동설립자)는 오스틴의 오빠가 살았고 그녀가 말년의 걸작을 쓸 때 방문했던 초튼 하우스를 1000만 달러의 거금을 들여 복원했다.
열성 팬들의 세계에서는 ‘맨스필드 파크’를 주제로 한 토론 모임에서 학자들이 첫눈에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미스터 다시 결혼하다(Mr. Darcy Takes a Wife)’ ‘의무와 욕망(Duty and Desire)’ 등 오스틴의 팬픽션이 수십 만권씩 팔려나간다.
또 현실 세계의 미스터 다시로 자처하는 사람들을 온라인에서 만나고, 텍사스주의 평범한 주부가 정교한 조지 왕조 시대의 의상으로 유명인사가 되기도 한다. 그녀는 JASNA의 행사 때면 엠파이어 웨이스트(허리선이 가슴 바로 아랫 부분에 있는) 평상복 드레스와 보넷, 모피를 댄 여성용 외투, 멋진 실크 이브닝 드레스들로 눈길을 모은다.
제인 (오스틴) 애호가라는 뜻의 제인아이트(Janeites)는 1894년 문학비평가 조지세인스베리가 만든 용어다. 당시 빅토리안 르네상스로 오스틴의 인기가 치솟았고 젊은 귀족들은 오스틴을 ‘신성한 제인’이라고 불렀다. 제인아이트들은 “탐닉에 가까운 열의”와 “다방면에 걸친 강렬한 열정”을 지녔다. 박사학위를 받은 종신직 교수, 고교 중퇴자, 텍사스주의 농부, 도시 상류층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포함된다.
이들은 JASNA나 영국 제인 오스틴 협회에 소속돼 연례회의에 참석해 동료 추종자들과 교류한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의 윌러비를 지지하는 그룹과 브랜든을 지지하는 그룹으로 나눠 토론을 벌이는가 하면 ‘설득’에서 앤 엘리엇이 웬트워스 대령과 결혼하면 행복할까를 놓고 의견을 주고받는다.
또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와 다시가 처음 만났던 무도회를 흉내낸 행사에서 월츠를 춘다. 이들은 자신의 자녀와 애완동물에게 피츠윌리엄 다시, 피라인 등 오스틴의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친구와 친척들의 특성을 오스틴이 사용한 짧은 문구를 이용해 표현한다.” (노리스 아주머니 = “남에게 모욕감을 주고 강압적임” 매리앤 = “충동적이고 감정적임” 등)
중년의 백인 여성이 주를 이루는 제인아이트들은 영화 ‘로키 호러 픽처 쇼’의 팬들처럼 함께 모여 관객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오만과 편견’(주로 1995년 BBC 미니시리즈)을 감상한다. 또 대영도서관에 가서 오스틴의 휴대용 책상을 관람하고 그녀의 머리카락(과거에 소더비 경매장에서 경매품으로 팔렸다)을 보러 초튼 코티지를 찾아간다. 이들은 해마다 돌아가며 그녀의 소설 한편, 또는 전편을 읽는다.
또 오스틴에게서 영감을 받아 스스로 글을 쓴다. 오스틴에 관한 역사적 안내서와 비평부터 제인 오스틴 뱀파이어 소설[‘제인 오스틴: 피의 설득(Jane Austen: Blood Persuasion)’]까지. 사실 오스틴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에든 호들갑을 떨며 열광하는 이들의 경향은 토머스 하디나 조지 엘리엇 같은 18세기 영국의 다른 소설가들을 추종하는 사람들보다 ‘해리 포터’나 ‘트와일라잇’, ‘반지의 제왕’ 같은 대중문화 열성 팬들과 더 닮았다.
하지만 제인아이트 그룹 내에서도 갈등과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다. 헌신적인 오스틴 학자들은 모슬린 드레스를 차려입고 콜린 퍼스의 ‘젖은 셔츠 신’에 탄성을 지르는 경박한 팬들이 “논의의 수준을 떨어뜨린다”고 경멸한다. 또 오랫동안 오스틴을 숭배해온 열성 팬들은 엠마 톰슨의 ‘센스 앤 센리티’나 귀네스 팰트로의 ‘엠마’등 영화 한 편에 혹해 오스틴 추종자 대열에 합류한 사람들을 우습게 여긴다.
예피의 말을 들어보자. “영화는 제인 오스틴을 과거 어느 때보다 대중과 가깝게 만들었다. 팬층의 기반을 확장하고 오스틴의 매력을 다각화했다. 하지만 난 고교 시절 자신이 속한 그룹에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도록 신경을 곤두세우며 심통을 부리던 못된 여자애가 된 듯한 기분이다.”
할리우드에 오스틴 열풍이 절정에 달했던 1998년 당시 JASNA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제인 열병은 즉흥적인 제인 전문가들을 생산했다. 오스틴에 관한 그들의 지식은 영화 한두 편을 보거나 소설 한 편을 읽은 게 전부다. 이런 부류를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부류가 “제대로 된 제인아이트”인지에 관한 논쟁은 오스틴의 생애와 그녀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의 진정한 내적 본성에 관한 논쟁에 비하면 약과다. 오스틴이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자신감 있고 삶에 만족하는” 여자였다고 생각하는 쪽과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는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분노에 차고 반항적인” 인물이었다고 보는 쪽이 팽팽하게 맞선다. 또 오스틴이 체제전복적인 사고를 지닌 여권주의자이자 “불안정한 아이러니”의 대가라고 생각하거나 “영국적 가치관”의 수호자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재치 넘치는 입담이 ‘리얼리티 바이츠’(1990년대 로맨틱 코미디) 세대를 연상케하는 그녀는 냉소적인 인물이었을까? 아니면 1·2차 세계대전 사이의 독자들이 생각했듯이 “강인하고 현실적인” 인물이었을까? 또 그녀는 캐릭터 창조와 플롯 구성의 대가였을까? 아니면 헨리 제임스의 비유대로 “정원 나뭇가지에 앉아 지절거리는 개똥지빠귀”처럼 그녀의 이야기들은 그저 타고난 재능의 결과일 뿐일까?
오스틴이 창조한 등장인물들의 해석에도 유사한 논쟁이 따라다닌다. 다시는 잘난 척하는 특권층의 속물일까, 한 언어병리학자가 강력히 주장하는 대로 자폐증을 앓고 있었을까? 또 문학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주장한 대로 ‘맨스필드 파크’와 ‘설득’의 특정 캐릭터들이 서인도제도의 노예무역에 관여했을까? ‘맨스필드 파크’의 도덕적이고 바른 말만 하는 여주인공 패니 프라이스는 또 어떨까? 한 오스틴 리스트서브(특정 그룹 전원에게 메시지를 이메일로 자동 전송하는 시스템)는 신입회원들에게 이런 경고문을 보냈다.
“미스 프라이스에게 다음과 같은 표현을 함부로 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찮은’ ‘고고한 척하는’ ‘나약한’ ‘따분한’ ‘자신감 없는’ 등등. 이런 표현이 꼭 객관적으로 틀렸다가보다는 미국 대법원에서 ‘도발적 언사’로 규정한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오스틴의 열성 팬들은 혼자 조용히 작품과 캐릭터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면 기껏해야 몇몇이 모여 각자가 느끼는 감정을 이야기하며 공감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1995년 BBC 미니시리즈에서 체격 좋고 섹시한 콜린 퍼스가 다시 역을 맡으면서 제인아이트의 규모는 급증하기 시작했다(이 시리즈가 방영된 뒤 1년 동안 초튼을 찾은 관광객 수는 두배로 늘어 5만7000명에 달했다. 이들은 퍼스의 ‘젖은 셔츠 신’을 “숨막힐 정도로” 에로틱한 장면으로 꼽았다).
그러나 제인 열병이 폭발적으로 확산된 것은 인터넷 덕분이다. 리스트서브 ‘오스틴-L’(진지하고 보수적인 오스틴 팬들을 위한 모임)과 웹사이트 ‘리퍼블릭 오브 펨벌리’(“퍼스의 젖은 셔츠 신”에 열광하는 팬들을 환영하며 15만 명의 방문객이 매달 500만~1000만회 방문한다)을 시작으로 인터넷 열기가 확산됐다. ‘오스틴프로즈’ ‘오스틴블로그’ ‘스티칭 위드 제인 오스틴’ ‘빗치 인 어 보넷’ 등의 블로그.
‘퍽 예, 제인 오스틴’과 ‘제인 오스틴 라이언 고슬링’ 등 텀블러. (“이봐요 아가씨, 난 재산 많은 독신남이에요” 등의 메시지가 올라온다.) 그밖에 제인 오스틴 유튜브 드링킹 게임, 제인 오스틴의 파이트 클럽 비디오, ‘애스크 미스터 다시 매직 8-볼’ 앱도 등장했다. 또 다시와 엘리자베스 베넷, 대시우드 자매, 웬트워스 대령, 그리고 오스틴을 패러디한 트위터 계정도 수두룩하다. 오스틴은 ‘다크 제인 오스틴’, ‘제인 오스틴 NBA’ 등 다양한 아바타로도 등장했다.
가족관계와 지역사회의 역학을 다룬 소설가 오스틴이 그와 유사한 동류의식을 지닌 온라인 세계를 탄생시킨 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예피는 이렇게 썼다. “이 웹 세계는 오스틴이 소설의 배경으로 삼은 시골 마을들과 유사하다. … 친절한 이웃과 불평 많은 괴짜들이 있는가 하면 수다스러운 주인공들과 아무 말 없이 지켜보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웹사이트 ‘리퍼블릭 오브 펨벌리’의 설립자는 온라인이나 JASNA 무도회에서 다른 제인아이트를 만나는 기쁨을 “평생 알고 지낸 사람들을 처음으로 직접 만나는 기분”에 비유했다.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제인 오스틴 음모론을 쓴 플로리다의 변호사는 온라인 토론 그룹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기분을 이렇게 설명했다.
“형언하기 어려운 황홀한 기분이었다. 마치 환각제를 먹은 듯한 기분이랄까? 다른 행성에 와 있는 듯 흥분됐다.” 오스틴 자신이 ‘설득’에서 썼듯이 “함께 하기에 가장 좋은 친구는 똑똑하고, 견문이 넓으며,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이다.” 오스틴의 열성 팬 대다수가 인터넷에서 이런 사실을 통감한다.
동시에 그들은 소설을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오래된 충동에 빠진다. 1799년 오스틴이 23세가 된 지 한 달 뒤 에든 버러 매거진에 실린 글에 나와 있듯이 “우리는 똑 같이 반복되는 현실에서부터 소설이라는 구도 속으로 도망친다.”
예피의 책에 등장하는 제인아이트 중 다수가 오스틴을 상상 속의 대안적 세계로 통하는 관문으로 이용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경기침체와 실업, 학대 받는 결혼생활, 암으로 죽어가는 배우자, 자살한 부모, 외롭고 사랑없는 삶에서 도망칠 수 있다. (오스틴의 영국 투어에 나선 예피의 독신녀 동료 한명에게 한 학생이 “당신은 다시 같은 사람을 기다리는군요”라고 말한다.)
오스틴의 작품 속에서 그녀의 팬들은 온갖 종류의 똑똑하고 대담한 여주인공과 가슴 뛰게 만드는 남자 주인공들을 만난다. 그 주인공들은 그들 내면의 최고의 자아를 반영하며, 그들이 애타게 찾는 강인하고 절조있는 남성과 순수하고 지적인 여성을 구현한다.
젊은이들은 밀고 당기는 열정적인 구애에 마음을 쏟고, 남자들은 “당신이 내 영혼을 꿰뚫었소. 내 마음 속에선 고뇌와 희망이 교차한다오” 등의 문구로 이어지는 편지를 쓴다. 열정적이고 재치있는 농담과 아름다운 구애의 말이 오간다. 온라인 그룹 중에는 “제인 오스틴 소설에 나오는 남자 중 한 명과 결혼할래요” 혹은 “제인 오스틴이 내게 사랑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심어줬어요” 같은 이름이 수두룩하다.
제인 오스틴 소설 속에는 “정신을 못 차리릴 정도로 한순간도 상대방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는, 매리앤과 윌러비 같은 수준의 사랑의 열병”이 많이 등장한다. 이런 사랑의 열병에 끌리는 쪽은 여자들뿐이 아니다. 예피는 여자들이 다시 같은 남자를 동경하듯이 남자들(물론 여자보다는 숫자가 적다)도 패니 프라이스 같은 여자를 찾아 헤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남자들은 또 메리 크로포드(‘맨스필드 파크’의 등장인물)를 수십년 동안 사랑해 왔다고 고백하는가 하면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가 다시의 무례한 첫 번째 청혼을 신경질적으로 거절하는 장면을 자신이 읽은 책 내용 중 “가장 근사한 대목”으로 꼽기도 한다.
오스틴의 천재성은 캐릭터 창조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녀의 캐릭터들은 복잡 미묘하면서도 생생해서 독자들의 마음 속에 살아 숨쉰다. 플롯 구성과 연인이 될 것 같은 캐릭터들을 계속 떼어 놓는 기술의 측면에서 오스틴은 음유시인들의 덕을 톡톡히 봤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코미디 주인공들이 비극의 주인공들과 달리 입체감과 깊이가 없어 보이는 반면, 오스틴의 캐릭터들은 결혼이라는 필연적인 결과를 향해 달려가면서 다양한 측면으로 발전을 거듭한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결혼은 모든 마음의 고통을 달래주고 오해를 푸는 장치다. 주인공들은 꼭맞는 짝을 찾았다는 승리감에 기뻐한다.
오스틴이 창조한 세계는 200년이 지난 시점에도 수많은 팬들이 한동안 살고 싶어하는 곳이다. 그곳엔 유머가 있고 감정이 넘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러트거스대의 한 학자는 예피에게 “제인 오스틴은 사람들이 반할 만한 글을 쓰는 뛰어난 문인”이라고 말했다. “문학작품은 읽혀지지 않으면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또 다른 학자가 말했다.
궁극적으로 바로 이런 매력이 예피 같은 오스틴의 열성 팬들을 엘리자베스와 다시, 앤 엘리엇과 웬트워스 대령, 엘리노어와 매리앤 등에게 몇 번이고 되돌아가게 하는 힘이다. 예피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현실 세계에서 오스틴의 캐릭터들만큼 사랑하는 사람은 몇 안 된다. 난 그 친숙하고 멋진 이야기가 다시 한번 펼쳐지는 것을 보고 싶을 뿐이다.”
오스틴의 캐릭터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잘 살아남을지 모르지만 젊은 시절 그녀가 살던 영국은 우리에게 아주 낯선 곳이다. 당시 영국은 오래 계속되는 전쟁(미국 독립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에 연루돼 있었고, 정신병에 걸린 국왕(조지 3세) 밑에서 백성들은 가난과 계급 간 갈등으로 신음했다.
로이와 레슬리 앳킨스는 ‘제인 오스틴의 영국’에서 이렇게 썼다. “목가적인 숲이 급속한 산업화로 변화를 겪은 시골 햄프셔(오스틴의 인생과 소설의 배경)부터 조지 왕조 시대의 시끌벅적한 런던까지 제인 오스틴의 영국은 결코 조용한 곳이 아니었다” ‘제인 오스틴의 영국’은 오스틴이 살았던 40년 동안 영국 사회의 풍속과 대변동을 추적한다.
“산업화와 인클로저 운동, 그리고 무엇보다 높은 식료품 가격에 반대하는 폭동이 수없이 일어났다.” 정신병에 걸린 조지 3세를 대신해 “게으르고 제멋대로인 데다 낭비를 일삼는” 왕자가 나라를 다스렸다. 불만에 찬 운동가들은 프랑스 혁명을 지지했고 귀족들은 프랑스식 단두대 처형을 우려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이런 험한 사건들은 풍속과 결혼을 다룬 오스틴의 소설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상류층이었던 오스틴 집안의 오빠나 친척들이 해군에 징집되거나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는 등 이런 세태는 그녀에게도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영국’은 섭정시대 영국의 역사를 학술적으로 다룬 서적이 아니다. 또 오스틴의 작품에 이런 거대한 변화들에 대한 그녀의 지식이나 의견을 나타내는 숨겨진 문구들이 있는지 분석하는 책도 아니다. 이 책은 제인이 잘 알았던 일들에 집중한다. 일상생활과 18세기 말~19세기 초 영국 시골에서 성장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회학적 역사에 초점을 맞춘다. 결혼식과 출산, 교육, 집안일, 패션, 교회 생활, 교통수단, 취미, 오락, 그 시대의 범죄와 의학, 장례의식 등을 상세히 다룬다.
오스틴의 동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설교하고 기도했는지, 무엇을 먹고 즐겼는지 등을 보여주는 대목들이 흥미진진하다. 그 시대 여자들은 드레스 밑에 페티코트를 받쳐 입고 레이스 옷을 즐겨 입었다. 또 개가 울부짖으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거나 하지 전날 밤 귀신들이 출몰한다는 미신을 믿었다. 경마와 투계 같은 스포츠를 즐기고 극장에 가서 연극을 보고 독서 클럽에 참여했다. 그리고 천연두와 말라리아 같은 전염병에 시달렸다. 오스틴과 그녀의 형제들은 그 시대의 풍습대로 마을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
더 비셔의 제분소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착취당했는지, 펨벌리 같은 대저택의 살림은 어떻게 꾸려졌는지, 어떤 약초 치료법이 만병통치약으로 이용됐는지도 알 수 있다. 우리는 또 오스틴이 “패션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녀는 런던에 갔을 때 포목점에 자주 들러 고급 모슬린과 실크, 다양한 색상의 리본을 구경했다. 그 시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노상강도와 공개교수형 이야기는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강점은 오스틴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결혼식과 미혼 임신, 부와 사회계층의 복잡한 관계를 설명한 대목이다. 당시 영국에선 여성에게 토지 상속이 허용되지 않아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할 경우 미혼 여성은 빈곤층으로 전락할(오스틴도 이런 경우다) 가능성이 높았다.
책은 이런 사회에서 결혼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녔었는지를 조명한다. 또 결혼시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 나이에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해 스코틀랜드 그레트나 그린으로 도피한 커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오만과 편견’에서 베넷가의 막내딸 리디아도 이런 사랑의 도피를 계획한다.)
이 책은 또 당시 미혼모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를 자세히 소개한다. 오스틴의 여주인공들에게 해를 입힌 위컴과 윌러비 같은 난봉꾼들의 피해자다. 그리고 자신보다 높거나 낮은 신분의 상대와 결혼하려 했던 남자와 여자들이 얼마나 심한 비난을 받았는지도 설명한다.
여기서 우리는 오스틴의 캐릭터들을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또 평생 결혼하지 않고 오빠들의 도움도 받지 못했던 오스틴과 그녀의 언니 카산드라가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을지 말이다.
갑자기 베넷가 딸들의 결혼 전망이나 에드워드 페라스와 프랭크 처칠의 약혼, 앤 엘리엇이 독신으로 살 가능성 등이 사랑과 실망, 기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가난과 불명예, 파멸의 위협에 맞서 미래의 행복과 안정을 지키는 일과 관련된 문제였다.
우리는 그 시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와 있다. 물론 심적 고통과 창피한 감정, 구애와 사랑의 스릴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지만 말이다. 오스틴은 특정 시대와 장소의 상황을 정확하게 기록했다. 하지만 독자들이 비통한 마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사회적 풍자를 즐기는 한 그녀의 캐릭터들은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오스틴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쓴 마지막 시에서 윈체스터의 수호성인이 자신의 축일에 추종자들이 경마를 보러 가버려서 화가 난 상황을 주제로 했다. 우스꽝스러운 주제처럼 보이지만 그 중 한 구절은 눈에 확들어온다. “사람이 땅속에 묻히면 영영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라 나는 영원히 살지니!”
오스틴은 2013년에도 분명 건재하다. 우리 모두 러드야드 키플링의 시구를 되새겨 보는 게 어떨까? “그녀를 만드신 주님을 찬미하고 그녀가 만든 모든 것에 대해 그녀를 찬양하라/ 윈체스터 거리에 돌멩이가 남아 있는 한/ 잉글랜드의 제인에게 영광과 사랑과 명예가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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