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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 “한국의 메이요 클리닉(미국의 최고 병원)이 꿈”

FEATURES - “한국의 메이요 클리닉(미국의 최고 병원)이 꿈”

국내 대학 병원과 해외 큰 손들이 대전 선병원을 찾는다. 조그만 동네 병원에서 출발한 지역 병원이 주목 받는 데는 뛰어난 의료와 서비스로 고객 만족이 높기 때문이다. 부친 선호영 박사의 뜻을 잇기 위해 선두훈·승훈·경훈 3형제가 의기투합하면서 생긴 변화다.
‘언제나 제약 없이 최선의 진료를 다한다’는 가르침을 남긴 선친의 흉상, 그 옆에 모인 3형제.





profile

(왼쪽부터)

선두훈 이사장 1957년 서울 출생, 가톨릭의과대학원 정형외과학 박사, 가톨릭의대 교수, 2001년~ 영훈의료재단 이사장, 2004년~ 코렌텍 연구소장

선승훈 의료원장 1959년 서울 출생, 미국 버클리대 경제학과 졸업, 인제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박사, 1987~1992년 씨티은행 자금부 부장 1993년~ 선병원 의료원장

선경훈 원장 1963년 서울 출생, 실베니아대 치과대학 졸업, 연세대 치과대학원 박사, 1997년~ 선치과병원장

서울대병원·신촌 세브란스 병원·경희대병원·중앙대병원 등 서울의 대학 병원들이 벤치마킹하는 지역 병원이 있다. 대전 선병원이다.

지난해 서울대병원은 이 곳을 두 차례나 방문했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일본·중국·러시아·베트남·태국·인도·몽골 등 해외 20개국 병원과 기관에서 선병원을 배우러 왔다.

지난해 선병원을 찾은 해외 환자만 2514명에 이른다. 올해 4월 보건복지부는 선병원 국제검진센터를 해외환자 유치 선도병원으로 지정했다.

최근엔 방문자가 급격히 늘어 병원 업무에 영향을 주자 방문 가능한 날을 정했다. 매달 마지막주 금요일이다.

선병원은 고 선호영 박사가 1966년 대전 중구 은행동 동양백화점 옆에 세운 정형외과로 시작했다. 조그만 동네 병원은 현재 영훈의료재단 산하에 대전선병원·선치과병원·국제검진센터·유성선병원 암센터를 두고 있다. 모두 900개 병상을 갖춘 종합병원이다. 지역 병원이 독립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비결은 뭘까.

변화의 중심에는 아버지 뜻을 잇는 3형제가 있다. 다섯 형제 중 둘째인 선두훈(56) 영훈의료재단 이사장, 셋째 선승훈(54) 선병원 의료원장, 넷째 선경훈(50) 선치과병원장이다.

첫째는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막내는 줄리아드 음대를 졸업한 바이올리니스트다. 3형제는 과거 누구나 선망하는 일을 했다. 선승훈 의료원장은 미국 버클리대를 나와 씨티은행 자금부장으로 일했다.

1990년대 초반 부친의 부름으로 먼저 대전으로 내려왔다. 선경훈 치과병원장은 미국 치과의사 자리를 포기하고 1997년 합류했다. 2002년 마지막으로 합류한 선두훈 이사장은 가톨릭대 의과대 교수 출신으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맏사위다. 그 역시 동생들 요청에 선병원 키우는 일에 동참했다.

6월 초 점심 무렵에 대전 선화동 3형제의 본가를 찾았다. 대전역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단독 주택이다. 3형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40년 전만 해도 이 마을의 유일한 양옥이었다. 대문을 열자 홈드레스 차림에 단아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 반갑게 맞이했다. 3형제의 어머니 김인 여사였다. 81세 나이가 믿기지 않을만큼 젊어보였다.

집 내부도 주인을 닮아 정갈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앤틱 가구들 위에는 사진 액자가 많았다. 선병원 역사가 담긴 가족 사진이다. 3형제의 어린 시절은 물론 결혼 사진과 손자들 사진이 빼곡히 진열됐다. 그는 액자를 바라보며 “영감이 열심히 해서 재미나게 살았어”라고 읊조렸다.

김 여사는 2004년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이후 남편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웠다. 꽃을 좋아했던 남편을 떠올리며 수천송이의 꽃을 그렸다. 늦은 나이에 입문했지만 수준급 솜씨다.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여러차례 상을 받았다.

낮 12시가 되자 선경훈 병원장을 시작으로 선승훈 의료원장, 선두훈 이사장이 현관문을 열며 들어왔다. 세 사람은 한 달에 두세 번 어머니와 점심을 먹는다. 이미 식탁 위에는 음식이 차려 있었다. 각종 나물 무침부터 된장국·전복·갈비·생선 요리 등이 잔치상을 방불케했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장을 보고 손수 음식을 장만했다. 약속이 있어 일찍 점심을 먹고 온 선두훈 이사장은 어머니의 정성에 밥 한 공기를 더 들었다. 김 여사는 아들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점심 식사 후에 차를 마시며 선호영 박사의 얘기를 들었다. 선승훈 의료원장은 “부친은 의료에 열정이 많고 도전 정신이 강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아버지는 1959년 독일 하이델베르크로 유학을 떠났어요. 당시 해외 나가는 게 쉽지 않았어요. 경비행기로 독일까지 가는 데 이틀이 걸렸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아들 셋은 고국에 남겨두고 떠난 거에요. 세계적으로 손꼽는 독일의 정형외과 의술을 배우기 위한 도전이었죠.”
어린 시절을 보낸 대전 선화동 본가를 찾은 3형제. (왼쪽부터) 선승훈 의료원장, 선두훈 이사장, 어머니 김인 여사, 선경훈 원장.





선병원 배우려고 서울대병원도 내방김 여사는 “당시 셋째 선승훈 의료원장이 태어난 지 겨우 열흘 지났을 때에요. 남편은 공부하고 돌아올테니 당분간 친정에 가 있으라고 했죠. 그때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어요. 2000원짜리 학고방(판잣집 작은방)을 전전하면서 살던 때에요. 하지만 남편의 결심을 만류할 수 없었어요. 그는 경상북도 김천에서 알아주는 수재였어요. 복사뼈가 까맣게 썩을 정도로 공부를 했다고 해요. 4년 뒤에야 박사 과정을 마친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공항에 마중나갔는데 선두훈 원장이 남편을 보더니 ‘아저씨’라고 부르더군요. (웃음)”

박사 학위를 딴 선호영 박사는 가톨릭대 의과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대전적십자병원장을 지냈다. 대전 생활을 하며 지방에 병원이 적어 위급한 환자들이 제때 치료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개원을 마음먹었다. 1966년 선병원의 모태인 선정형외과를 설립했다. 당시 중부지역에 정형외과 의사가 흔치 않았다. 해외유학파 출신 의사는 그가 유일했다. 선 박사의 체계적인 진료는 지역에서 화제가 됐다. 선경훈 원장 역시 부친의 활약상을 들려줬다.

“아버지는 선진의료 기술로 치료했어요. 수술의 기초인 소독부터 달랐다고 해요. 대부분 수술 부위만 소독하는데 아버지는 옷을 벗긴 후 넓은 부위를 꼼꼼하게 소독한 후에 수술했어요. 수술로 인한 감염 문제를 신경 쓴 거에요. 또 다리 뼈가 부러졌을 때 핀(나사)을 박는 수술 방식을 선보였고요. 중학교 2학년때 친구가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아버지는 머리를 열고 피를 빼내는 수술까지 성공했어요.”

김 여사는 “그가 존경받는 데는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을 빼놓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남편은 환자가 가난하면 돈을 받지 않았어요. 한번은 수술이 끝나자마자 환자가 도망 갔다고 합니다. 쫓아간 직원한테 전화가 왔어요. 환자집에 가보니 가정 형편이 엉망이라 식구들이 밥을 굶고 있더라고요. 남편은 수술비는 됐고 쌀 한가마니 팔아주고 오라고 하더군요. 남편의 철학은 ‘언제나 제약없이 최선의 진료를 제공한다’는 겁니다.”

그는 “남편의 삶 자체가 아이들에게 훌륭한 교육이 된 거 같다”고 했다. “남편은 아이들을 한번도 혼낸 적이 없어요. 최대한 자식들의 의사를 존중했답니다. 아이들은 물론 며느리에게 존댓말을 사용할 정도였으니까요. 아~ 유일하게 적극 권한 교육이 있어요. 독일에 유학간 남편에게 편지가 왔는데 아이들이 악기를 하나씩 배웠으면 좋겠다는 거에요.

유학시절 독일 사람들이 모이면 연주회를 여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더라고요. 덕분에 다섯 아이가 모두 한 가지 이상 악기를 다룰 줄 알아요. 선두훈 이사장은 바이올린, 선승훈 의료원장은 피아노, 그리고 선경훈 치과병원장은 첼로를 배웠어요. 셋이 모이면 피아노 3중주가 가능하지요.”



형제애로 뭉쳐 고향병원 우뚝 세운 3형제세 형제 중에서도 부친을 빼닮은 사람이 둘째 선두훈 이사장이다. 그는 아버지처럼 가톨릭의대 정형외과를 나와 교수로 지냈다. 점심 시간 내내 말없이 “허허허” 웃기만 했다. 언론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는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선승훈 의료원장은 “형은 휴일이나 명절에도 위급한 환자가 생기면 만사 제치고 달려온다”고 했다. 환자의 차림이 남루하거나 가정형편이 어렵다고 하면 돈을 받지 않고 치료하는 일까지 아버지를 닮았다고 덧붙였다.

사실 선 이사장은 고관절 분야에서 손꼽는 의사다. 2000년에 코렌텍을 세우고 인공관절 제조에 매달렸다. 8년 후 무릎을 구부리거나 양반다리를 해도 불편함이 없는 고굴곡 인공관절 개발에 성공했다. 그동안 선진국에서만 만들던 인공관절을 국내에서 처음 자체 생산했다. 코렌텍은 현재 인공관절이 국내 시장점유율 1위다.

선 이사장은 “신뢰받는 병원으로 자리 잡으려면 구성원 간의 어울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선 잘 고쳐서 환자들의 병을 낫게 해야 합니다. 수술 성공률이 높아질수록 병원에 대한 믿음은 커지지 마련이죠. 뿐만 아니라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조직 문화가 중요해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구성원간 신뢰가 쌓일 수 있도록 충분한 소통이 필요합니다.”

격식을 따지지 않는 선 이사장은 직원들과 편하게 지낸다. 대전 유성구와 중구를 오가며 진료할 때 병원차가 없으면 본인이 직접 기아차 소울을 운전한다. 병원 리무진 차량을 운전하는 신희옥 씨는 자랑스럽게 선 이사장에게 보낸 메시지를 보여줬다. 26개월 동안 10만㎞를 무사고로 운행했음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그는 “가장 먼저 환자를 만나고 안내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항상 최선을 다해 고객이 만족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얘기했다. 선 이사장은 “그동안 고생 많았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격려하는 답이 왔다.

병원 경영은 선승훈 의료원장이 맡는다. 그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중시했다. 선병원에는 CCO(Chief Client Officer)라는 직책이 있다. 환자가 병원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문 밖에 나서기까지 환자와 동행한다. 마치 환자처럼 고객을 따라다니며 불편함을 파악하는 일이다. 예컨대 대기실 의자가 딱딱할 때는 쿠션을 준비하고,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전 나오는 음악 소리가 크면 바로 낮춘다. 단 고객이 원할 경우에만 동행한다.

직원들의 친절함도 남다르다. 선병원을 방문하면 의료진이 웃는 얼굴과 함께 깍듯이 인사하며 환자를 맞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선승훈 이사장은 서비스 교육에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 항공사나 호텔에 의뢰해 직원 친절 교육을 했다. 환자 응대시 자신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 모니터하면서 말솜씨·인사법·표정·미소·손짓을 개선하도록 했다. 말뿐이 아니라 최고급 서비스를 받는 것도 교육법 중 하나다. 고객과 대면이 많은 직원과 팀장을 뽑아 해외 최고급 호텔과 병원을 경험하게 했다.

좋은 의사를 찾기 위한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스카우트 전담팀을 만들었다. 올해 초 서울 성모병원 출신 정형외과 전문의 이승구 박사를 영입했다. 그는 소아정형과 골관절종양 분야의 권위자다. 30여 년의 교수직을 마무리하고 선병원 명예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국내 의료계에 가정의학을 최초로 도입한 윤방부 박사도 영훈의료재단 회장겸 국제의료센터 원장으로 합류했다.

지난해 2500여 명의 해외 환자가 찾은 대전 유성구 지족동 국제검진센터(왼쪽).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게 설계한 하늘 정원(오른쪽 위). 호텔급 숙박 시설을 자랑하는 특실(오른쪽 아래).





검진부터 치료까지 원스톱 국제검진센터선경훈 원장은 미국 치과대학에서 임플란트를 전공했다. 그가 선병원에 합류하면서 1997년 대전에 최초로 치과병원 문을 열었다. 치과 교정·보철·치주·구강내과 등 치료 분야를 세분화해 전문성을 키웠다. 이곳은 치의대가 없는 대전에서 치과수련의 병원으로 지정됐다. 수련의를 뽑아서 교육하는 일이다. 특히 선원장은 설립 초기부터 환자들의 근본적인 치아 문제를 치료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충치가 생겼을 때 보철 치료(크라운 치료)를 합니다. 이때 잇몸이나 신경 치료를 꼼꼼하게 해줘야 이가 상하지 않아요. 또 근본 치료를 해서 환자 치아를 최대한 살려보고 그래도 안되면 임플란트 시술을 합니다.” 3형제는 병원에서 한 방을 쓴다. 별도의 개인 사무실이 없다. 선승훈 의료원장은 “셋 모두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한지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김 여사는 “신기하게도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싸운 적이 없다”고 했다. “선두훈 이사장은 착했어요. 한번은 맨발로 집에 돌아왔어요. 알고 보니 집에 오는 길에 신발 없는 아이가 있어서 벗어 줬다고 합니다. 요즘도 길을 가다 폐지 줍는 할아버지가 보이면 용돈을 준다고 들었어요.

선 의료원장은 모범생이었고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책을 끼고 살았어요. 전교 1등을 놓친적이 없어요. 넷째는 정이 많아요. 그래서 주변에 친구들이 끊이질 않았어요.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잘해주니까 인기가 많아요. 형은 동생을 아끼고 동생은 형을 존경하니 3형제가 뭉쳐서 잘하는 거같아요.”

지난해 7월에는 3형제의 합작품인 국제검진센터가 대전 유성구 지족동에 문을 열었다. 세종시 첫마을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다. 500명 동시 검진이 가능한 국내 최대 규모다. 검진 분야에서 단독으로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CI) 인증을 받았다. 3형제의 점심 초대에 앞서 5월 말 이곳을 방문했다. 설립 총괄을 맡은 선승훈 의료원장이 안내를 맡으며 소개를 해줬다.

(건물 외벽을 가리키며)그는 “예루살렘 골드라는 대리석으로 낮에는 금빛으로 반짝이다가 해가 지면 은은한 아이보리색으로 바뀐다”고 들려줬다. 그는 검진센터를 지으면서 중국 샤먼(하문)을 수차례 다녀왔다. 그곳에 세계에서 가장 큰 돌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건물 곳곳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5층 규모의 이 센터는 병원 전문 설계회사인 미국 HDR이 맡았다. 아부다비의 클리블랜드 클리닉, 서울성모병원 등을 설계한 곳이다.

선 의료원장이 꼽은 국제검진센터의 장점은 세 가지다. 우선 검진부터 치료까지 한번에 가능하다. “검진 센터 안에 암 센터를 뒀어요. 조기 암 발견에 필요한 기본 검진은 물론 뇌·심·소화기·폐 등 7대 암 정밀 검진이 가능해요. 아예 4층을 숙박검진 전용층으로 설계했습니다. 호텔급 숙박 시설을 갖춰 환자들이 편안하게 쉬면서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한겁니다. 센터 뒷편으로는 은구비 공원이 있어 산책할 수 있어요.”

기자가 방문한 날에는 러시아 오렌부르크시의 미쉐라코브 유리 니콜라예비치 시장이 신장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한 달 후 성공적으로 수술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간 그는 선승훈 의료원장에게 감사편지를 보냈다. 8월 말 오렌부르크시 270주년 기념행사에 선 의료원장와 임직원을 초청했다.

둘째 협진 시스템이다. 매일 아침 암 센터에서는 전문의 통합 회의가 열린다. 중복 체크 시스템을 통해 정확한 결과를 찾기 위해서다. 이 회의에는 내과·외과·혈액종양내과·방사선종양내과·영상의학과·재활의학과·가정의학과 등 암과 관련된 과가 모두 참석한다. 환자 한 명의 치료를 위해 수많은 전문의가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모은다.

마지막은 뛰어난 서비스다. 깨끗하고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인 검진 센터는 고급 리조트 같다. 숙박 병실에는 병원 침대가 아니라 고급 침대가 놓여있고 커다란 창을 통해 햇볕이 들어온다. 세면대는 1m15㎝로 휠체어가 밑으로 들어갈 수 있고, 침대 카트가 샤워실에 들어갈 너비에 맞춰 샤워실을 만들었다. 선 의료원장의 세심한 배려다. 최첨단 장비 도입에도 아낌없이 돈을 쏟았다. 예를 들어 60억원 상당의 암 치료장비 래피드아크를 갖췄다. 암 조직에 정확히 고주파열을 가해 산소 공급을 막아 암 세포 증식을 억제하고 파괴하는 장비다.

선승훈 의료원장은 “검진센터를 경험한 해외 환자가 늘면서 병원 설립 지원 요청이 많다”고 얘기했다. “중국의 한 제약그룹 경영자가 검진과 치료를 받고 나서 베이징 병원 건립을 도와달라고 요청했어요. 베트남의 국립섬유회사 비나텍스는 이동검진버스 설계와 운영을 제안해 진행 중이에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전문병원 설립을 요청해 왔어요. 해외 갑부 한 분은 삽으로 떠서 그대로 자기 나라에 가져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삽 으로 떠서 가져가고 싶은 병원”3형제의 꿈은 하나다. 선병원이 한국의 메이요 클리닉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미국 메이요 클리닉 역시 찰스 메이요와 월리엄 메이요 외과의사 형제가 경영한 병원이다. 미국 병원 평가에서 존슨홉킨슨 병원과 1·2위를 다툰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인구 7만명 밖에 되지 않는 뉴욕 주 로체스터시에 병원이 있다는 점이다. 병원이 유명해지면서 세계 각국 왕족과 갑부 등 한 해 50여만 명 환자가 방문한다. 소규모 비행장이었던 로체스터 공항은 국제공항이 됐다.

선 의료원장은 “메이요 클리닉을 찾는 환자들은 기대를 뛰어넘는 서비스에 놀란다”며 “선병원 역시 ‘언제나 제약 없이 최선의 진료를 제공한다’는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고객이 신뢰할 수 있는 병원이 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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