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삼성) 기본기(현대) 재도약(LG) 안정(SK)
공격(삼성) 기본기(현대) 재도약(LG) 안정(SK)
갑오년 청마(靑馬)의 새해가 밝았다. 주요 그룹은 지난 연말 사장단·임원 인사를 마무리하고 전열을 재정비했다. 작년 연말 새로 꾸린 진용이 얼마나 잘 작동하느냐에 올해 각 그룹의 성패가 달렸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안팎의 경영여건은 불확실하다. 새해 정부가 예상한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9%. 작년 2.8%(추정치)보다는 높지만 여전히 미국 양적완화 축소 등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많다는 게 각 그룹의 판단이다.
매년 재계 인사의 핵심 키워드는 ‘신상필벌’이다.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원칙에 따라 실적이 좋은 CEO는 승진하고 그렇지 못하면 경질된다. 올해도 삼성과 LG 등 주요 그룹에서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 CEO를 교체해 조직 내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리스크 관리’도 주된 키워드다. SK를 비롯해 총수가 유고사태를 맞은 그룹들은 비상경영을 위해 인사 폭을 최소화했다. 삼성과 한진 등 몇몇 그룹은 3세로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포석’을 인사에 반영했다. 주요 그룹 정기 인사를 통해 갑오년 새해 경영전략을 살펴본다.
전열 재정비 마친 재계재계 1위 삼성그룹은 지난해 12월 5일 사장단 인사를 실시했다. 이건희 회장의 둘째 딸인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에 오르는 등 총 8명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계열사 간 이동도 8명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조남성 부사장이 제일모직 대표이사 사장, 원기찬 부사장이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 이선종 부사장이 삼성벤처투자 사장으로 각각 승진했다. 전동수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사장)은 삼성SDS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으로는 박동건 부사장이 내부 승진했다.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대표이사 사장에는 윤주화 제일모직 사장이 이동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비교적 소폭의 사장단 인사를 실시했다. 연구·개발(R&D) 분야 수장들만 연쇄 이동시켰다. 작년 대규모 리콜 등 품질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물어 권문식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장을 전격 경질했다.
지난해 12월 18일에는 정명철 현대위아 사장을 현대모비스 사장으로, 윤준모 현대다이모스 부사장을 현대위아 사장으로, 여승동 현대·기아차 파이롯트센터장(부사장)을 현대다이모스 사장으로 각각 승진시켰다.
연말 정기인사에선 김해진 현대차 파워트레인 사장을 권문식 전 사장의 후임으로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예상됐던 부회장단 변화는 없었다.
LG는 예년 수준의 인사 속에서 변화를 추구했다. 주력 계열사인 LG전자는 ㈜LG에서 시너지 팀장을 맡던 하현회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TV 사업을 맡겼다. 전임 권희원 사장은 경질됐다. ‘G시리즈’ 등 시장 선도 휴대폰 개발을 주도한 박종석 MC사업본부장(부사장)도 사장으로 승진했다.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정도현 부사장도 미래·육성사업에 대한 투자 재원을 원활하게 조달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사장 승진 대열에 합류했다. 상사부문 등 다른 계열사 인사도 많았다. 이희범 LG상사 상임고문(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선임한 게 가장 눈에 띈다.
SK그룹은 박장석 SKC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 발령하는 등 7명의 CEO를 승진·전보시켰다. 정기봉 SKC 화학사업부문장이 사장으로 승진했으며 김철 SK케미칼 수지사업본부장과 김정근 SK가스 가스사업부문장이 각각 사장으로 내부 승진했다. SK증권은 김신 전 현대증권 사장을 신임 사장으로 영입했다.
이기화 SK에너지 마케팅본부장은 윤활유 사업을 하는 SK루브리컨츠 사장으로 승진 이동했다. 임원 인사에선 신상필벌 원칙을 분명히 적용했다. 작년 사상 최고 실적을 낸 SK하이닉스는 그룹 전체 승진자 141명 중 30%가 넘는 43명의 임원 승진자를 배출했다.
4대 그룹 인사의 숨은 코드삼성은 16명의 사장단 인사를 통해 올해 ‘공격 경영’에 나설 것임을 예고했다. 전자 출신이 계열사로 대거 전진배치 된 것도 특징이다. 사장 승진자 8명 가운데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과 안민수 삼성화재 사장을 제외한 6명이 ‘전자맨’이다.
안민수 사장도 삼성생명과 회장 비서실 등에서 주로 근무했지만 직장생활은 삼성전자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총 7명이 전자 출신이다. 다른 계열사에 전보 배치된 전동수·윤주화 등의 CEO들과 삼성디스플레이 신임 사장에 오른 박동건 사장도 전자에서 커온 이들이다.
전자 출신의 계열사 전진 배치는 삼성전자의 성공 DNA를 전파하겠다는 의도다. 삼성전자가 그룹 전체 수익의 60% 가량을 차지하는 편중 구조를 전자 출신 CEO를 투입해 바꾸겠다는 것. 이에 따라 제일모직·삼성디스플레이·삼성SDS·삼성물산 등 전자 출신 CEO들이 배치된 계열사들이 새해 공격 경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제일모직의 경우 패션 사업부문을 삼성에버랜드로 이관한 만큼 향후 소재 분야 강화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인사에 숨겨진 ‘코드’도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영향력 확대. 작년 말 승진·전보한 사장단 중 상당수는 2010년 말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아 실질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 때부터 호흡을 맞춰왔던 이들이다. 삼성관계자는 “에버랜드에 이부진 사장에 이어 이서현 사장을 둔 것과 함께 ‘이재용의 사람’이라고 할 만한 이들이 그룹 각 계열사에 전진 배치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 있을 ‘이재용 시대’를 대비해 계열사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는 시도라는 해석이다.
현대자동차는 연말 인사를 통해 R&D 부문 쇄신에 주력했다. 정몽구 회장은 단순히 사람만 바꾼 게 아니라 근본적 변화를 주문했다. 정 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던 권문식 전 연구개발본부장을 전격 경질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현대자동차 내부에선 연간 판매량 800만대를 앞둘 정도로 ‘몸집’은 커졌는데 독일차 등 수입차에 비해 품질이 뒤쳐지는 문제를 이번 인사를 통해 경고와 함께 개선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많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미국에서의 대규모 리콜, 싼타페 누수문제 등 생각보다 품질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에서 남양연구소를 총괄하는 권 전 사장까지 경질한 것”이라며 “새해에도 R&D와 품질 분야 수시인사는 계속될 것 같다”고 전했다. 현대자동차가 사장 인사에 이어 실시한 임원 인사에서도 전체 승진자 419명 중 43.4%를 R&D 인력으로 채운 것도 새해 R&D와 품질 강화에 주력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LG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LG전자의 경우 올해 TV 명예회복, 휴대폰 분야 성과 확대에 중점을 둘 전망이다. MC사업본부장을 맡아 휴대폰 사업을 다시 세계 3위로 올려놓은 박종석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삼성전자 등 경쟁사에 밀려왔던 스마트폰 시장에서 추격 속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을 분명히 했다. 임원 인사에선 MC사업본부에서 LG전자 5개 사업본부 중 가장 많은 9명의 임원을 승진시켜 철저한 ‘성과 보상’ 인사를 실시했다. TV 부문은 수장 교체로 낮아진 시장점유율을 회복하는 강수를 뒀다.
LG상사 대표이사에 이희범 부회장을 앉힌 것은 자원개발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전략을 펴기 위한 포석이다. LG상사는 전통적인 상사영업에서 벗어나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집중하고 있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임 이희범 부회장은 옛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실장과 장관을 지내는 등 자원개발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SK 인사는 올해 ‘안정 속 성장’을 꾀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최태원 회장의 경영 공백에도 주력 계열사 CEO를 교체해 신성장동력 발굴 임무를 맡겼다. SKC CEO인 박장석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켜 태양광필름·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용 소재 부문을 강화하도록 했다. 신규 선임된 임원의 63%를 이공계 전공자로 채운 것도 기술·소재 분야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공격’, 현대자동차는 ‘기본기’, LG는 ‘재도약’, SK는 ‘안정’에 무게를 둔 인사”라고 분석했다.
GS·한진 소폭 인사로 ‘안정’에 주력4대 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은 CEO 교체 인사를 소폭으로 실시했다. 변화보다 조직안정에 중점을 두는 곳이 많았다. 상대적으로 인사 폭이 컸던 곳은 한진그룹이다. 한진은 지난해 말 조양호 그룹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장(부사장)을 한진칼 대표이사를 겸직하도록 했다. 한진칼은 그룹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 대한항공을 인적분할해 출범시킨 지주회사다. 전임 석태수 한진칼 사장은 한진해운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서용원 대한항공 대표이사 수석부사장은 ㈜한진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LS그룹도 일부 CEO를 교체했다. 작년 원자력 발전 납품비리에 계열사가 연루되면서 인사 요인이 있었다. 불량 케이블을 납품한 최명규 JS전선 대표를 경질하고 후임에 이익희 LS엠트론 전무를 임명했다. 구자균 LS산전 부회장과 구자은 LS전선 사장은 각각 회장과 부회장 승진 연한을 채웠지만 스스로 직급 승진을 고사했다. 다만 성과가 좋은 계열사에 대해 과감한 발탁 인사를 단행했다. 김성은 가온전선 대표와 이철우 대성전기 대표가 주인공이다.
신세계그룹은 계열사 대표이사들을 대부분 유임시켰지만 몇몇 계열사는 단독 대표이사 체제를 각자 대표이사로 바꿨다. 주력 계열사인 이마트의 경우 경영총괄과 영업총괄로 조직을 이원화해 허인철 단독대표 체제에서 김해성·허인철 각자 대표체제로 전환했다.
이마트의 복합쇼핑몰과 해외 진출 등 그룹 차원의 신규 사업 투자가 지지부진 하다는 판단에 따라 새해엔 영업력을 강화하겠다는 인사로 풀이된다. 신세계건설도 골프장 사업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건설 부문과 골프장 부문으로 조직을 나눴다. 건설 부문은 종전 CEO인 윤기열 대표가 담당하고 골프장 부문에는 신세계백화점 대표를 지낸 박건현 상근고문을 새로 임명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일부 세대교체 인사를 실시했다. 김수천 에어부산 사장을 아시아나항공 신임 사장으로 이동시켰다. 지난 5년 간 아시아나항공을 이끈 윤영두 사장은 고문으로 물러났다. 김 사장의 이동으로 공석이 된 에어부산 대표이사에는 한태근 아시아나항공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 임명했다.
나머지 그룹들은 아직 사장단 인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한화·포스코·롯데 등이다. 롯데가 2월 초 인사를 실시할 예정인 가운데 한화와 포스코의 인사 폭에 관심이 쏠린다. 두 그룹 모두 총수 공백 사태를 맞았기 때문이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구속집행정지 중이며,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이미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각 그룹 ‘경영권 승계’ 포석 시동작년 연말 인사에선 2·3세 경영인들의 승진이 비교적 적었다. 하지만 일부 그룹은 향후 후계 구도와 관련한 미묘한 변화도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삼성이다. 이건희 회장의 첫째 딸인 이부진 사장에 이어 둘째 딸인 이서현 사장도 이번에 에버랜드로 이동했다.
이서현 사장의 이동은 지난해 9월 제일모직이 패션사업 부문을 에버랜드로 넘기기로 결정하면서 이미 예고된 사안이지만 삼성 안팎에선 후계 구도와의 연관성에 주목한다. 삼성 측은 “사업 조정에 따라 자매가 한 회사에 적을 두게 된 것일 뿐”이라며 “각자 별개의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지 후계구도와는 전혀 관련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재계에선 그러나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정점에 있는 사실상의 지주회사란 점에서 이 회장이 향후 세 자녀에게 각자 사업영역을 떼어주기 위한 사전작업을 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예를 들어 에버랜드를 지주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리조트·건설부문과 패션부문은 따로 떼어내 두 딸에게 주고, 이재용 부회장이 에버랜드 보유지분을 통해 삼성그룹 경영권을 승계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현재 이부진 사장은 에버랜드 리조트·건설부문과 함께 호텔신라 사장,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을 맡고 있으며 삼성석유화학 최대주주다. 이서현 사장은 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과 제일기획 경영전략부문 사장을 맡고 있다.
한진그룹은 새해 본격적인 3세 경영을 예고했다. 조양호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이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대표이사에 오른 데 이어 조 회장의 둘째 딸 조현민 대한항공 커뮤니케이션 담당 상무도 전무로 승진했다. 조 회장의 첫째 딸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은 이미 기내서비스와 호텔사업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나머지 그룹의 2·3세 경영인들은 대부분 이동이 없었다.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은 임원 승진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인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장남 구광모 LG전자 부장도 승진 명단에서 빠졌다. LS그룹에선 구자엽 LS전선 회장의 외아들인 구본규 LS산전 부장만 이사로 승진했다.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의 장남 구본혁 LS니꼬동제련 상무와 구자철 예스코 회장의 장남 구본권 LS 과장도 승진·이동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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