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올리면서 노동규제도 완화
월급 올리면서 노동규제도 완화
일본 경제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올해도 그 기세를 이어갈까. 지난해 초부터 경기회복의 선두역할을 한 것은 가계의 소비다. 주가가 상승하면서 부유층의 귀금속·명품 소비가 늘었다. 봄부터는 아베 정권의 추가 예산 집행으로 공공사업이 활기를 띠었다. 올 봄부터 시행될 예정인 소비세율 인상을 앞둔 막바지 주택건설 수요도 소비를 부추겼다.
올해에도 3월까지 자동차를 비롯한 내구재 수요가 이어지면서 비교적 높은 성장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올해 4~6월은 그 반동으로 마이너스 성장이 나타났다가 초여름 이후 5조5000억엔에 이르는 ‘아베노믹스 제2의 화살’ 추가 예산이 나와 1조엔이 넘는 공공사업이 일정 효과를 가져다 줄 가능성이 크다.
“임금 인상 미미한 수준” 분석도초점은 공공사업이 기운을 다하는 올 가을 이후다. 여기서 경기회복의 열쇠를 쥔 것은 임금 인상의 향방이다. 아베 정권이 설치한 정·노·사(政勞使) 회의가 역할을 톡톡히 한 덕분에 일본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이나 일부 대기업이 기본급 인상을 포함한 임금 인상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임금 인상이 확산되면 소비가 회복을 떠받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바바 나오히코 골드먼삭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고용의 3분의 1은 경기회복의 혜택이 적은 중소기업”이라며 “전체로 보자면 적은 수준의 임금 인상”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총리 관저에서 열린 ‘경제 선순환 실현을 향한 정노사 회의’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경제계·노동계도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실행에 옮겨주길 바란다”며 그 자리에 모인 기업 경영인들에게 임금 인상을 강하게 요구했다. 이에 참석한 경영인들로부터 “실적 개선을 임금 형식으로 환원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사장)” “기존 정기급여를 중심으로 한 임금 체계를 재고해보겠다(가와무라 타카시 히타치제작소 회장)” 등 종업원의 임금 수준을 일률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에 대한 발언을 들었다.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도 올해 봄 임금협상에서 기본급을 1% 이상 인상을 주장하기로 결정했다. 노조연합의 이런 요구는 5년만이다. 자동차총련이나 전기연합과 같은 유력 산업의 노조도 기본급 인상을 요구하겠다는 방침이다. 아베 총리의 임금 인상요청이 흐지부지 끝나버린 지난해 임금 협상과는 달리 올해에는 많은 기업에서 일정 수준의 임금 인상이 전망된다.
대신 아베 정권이 노동자 측의 이해를 구하며 강력하게 추진하려는 정책이 노동시장의 유연화다. 노동자 파견법 개정, 해고법·유기노동법(고용계약기간 관련법) 재고, 한정 정사원제도 도입 등 다양한 고용규제 완화책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중점 정책은 노동시간규제적용 면제제도(white collar exemption, 이하 WE)다.
현재 기업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의 법정노동시간을 초과해 일한 노동자에게 일정 수준의 야근수당을 지불할 의무가 있다. 노동기준법이 정하고 있는 이 규제의 대안이 바로 WE다. 현재 ‘재량노동제’를 통해 준경영인이라 할 수 있는 관리감독자와 전문·기획직에는 노동시간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데, WE는 여기에 추가로 사무직 등 폭넓은 직종을 대상으로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WE는 일본 회사원의 노동 형태를 근본부터 바꾸는 제도다. 2007년 제1차 아베 정권 때 이 제도를 추진한 전례가 있다. 하지만 당시 ‘야근수당 제로 법안’ ‘과로사 촉진법안’이라 불리며 여론의 거센 비판과 함께 결국 추진하지 못했다. 그 후 일본의 근무 환경이 크게 개선됐다고 볼 수는 없다.
현재 신입사원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거나 야근수당을 주지 않는 이른바 ‘블랙 기업’은 여전히 문젯거리로 남아있다. 많은 블랙기업의 경우 재량노동제를 악용하고 있다. WE는 이런 부작용 확대를 조장할 수 있다. 노사간의 실질적인 협력 관계를 고려하면 실효성을 동반하는 치밀한 제도 설계 논의가 필요하다.
또 하나 일본 경기회복에 중요한 포인트는 수출이다. 미국을 필두로 올해에는 다소의 글로벌 경기 개선이 전망된다. 엔화 가치 하락으로 수출 실적이 개선되는 와중에 수출량도 늘면 일본경기회복을 견인할 것이다. 큰 정책 이벤트도 기다리고 있다. 내년 10월 소비세를 10%로 더 올리느냐 마느냐를 올해 7~9월 경제 상태를 반영해 올해 말에 결정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일본은행이 봄부터 초여름에 걸쳐 추가 금융완화책을 내놓지 않을까 시장 관계자들은 주목하고 있다.
소비세와 관련해 경감세율 제도가 최대 쟁점이 되면서 자민당과 공명당의 공방도 초읽기에 돌입했다. 양당의 의견 차가 크다. 공명당은 “(10%로 인상이 예정된) 2015년 10월부터 도입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자민당은 “그리 간단히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자민당에서는 “지금 재정문제에 큰 불이 나서 다 같이 힘을 모아 불을 끄기 바쁜데, 물동이에 구멍을 내는 격”이라며 경감세율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연립정권을 구성하는 공명당과의 관계에 금이 가게 할 수도 없다. 누구보다 공명당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베 총리 본인이다. 특정비밀보호법에 이어, 집단적 자위권, 헌법 개정 등 향후 총리가 적극적으로 처리해야 할 중요 안건들이 기다리고 있다. 공명당의 지원을 얻기 위해 경감세율을 교섭 카드로 이용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높다. 11월에 세제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중소기업 및 소매업자를 포함한 각종 경제단체들은 일제히 반대에 나섰다. 경감세율을 도입하면 사업자의 회계작업이 매우 복잡해진다. 특히 중소기업에서는 이에 대응할 여유가 없다. 경감세율은 특정 산업의 우대와도 이어지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의견도 많다. 최종적으로는 정부 재정문제도 최대 장벽이다. 식품에 경감세율을 도입하면 세수는 1조엔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경감세율 제도 놓고 자민당·공명당 입장 차이경감세율 논란은 일본의 재정이 끌어안고 있는 구조문제 자체를 방증한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재원을 확보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빚을 달고 다녔다. 여론에 떠밀려 증세를 회피하고, 대신 경감세 대책을 남발해 세수 기반을 약화시킨 것이 문제다. 경감세율 제도는 언뜻 보기에는 서민에게 반가운 정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딘가에서 세금이 줄면 반드시 다른 어딘가에서 증세가 필요해진다. 언제까지나 채찍 없는 당근만으로 해결되리라 생각한다면, 나중에 큰 코 다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아베노믹스 세 가지 화살 아베노믹스의 세 가지 핵심 요소인 양적완화, 재정지출 확대, 성장 전략 추진을 말한다. 아베 신조 총리는 2012년 12월 취임하면서 옛날 일본 무사가 아들들에게 화살 한 개를 부러뜨리긴 쉽지만 세 개를 한꺼번에 부러뜨리기는 힘들다는 점을 보여주며 힘을 합쳐 가문을 세우라고 한 일화를 언급했다. 이어 일본 정부가 1990년 이후 20여 년 동안 시차를 두며 따로따로 실시한 양적 완화, 재정지출, 성장 전략 등의 정책을 시차를 최소화해 밀고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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