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파워피플[40] 타미르 파르도 이스라엘 해외 정보기관 모사드 국장
글로벌 파워피플[40] 타미르 파르도 이스라엘 해외 정보기관 모사드 국장
국가정보원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끝없는 논란에 빠져있다. 대선 과정에서의 댓글 사건부터 탈북자 간첩 관련 재판까지 여러 사안을 둘러싸고 국정원이 정치권 기 싸움의 대상이 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은 물론 정보원의 이름이나 신분까지 마구 노출되고 있다. 정보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구상에서 자국의 정보기관을 타도대상으로 삼는 정치인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국정원을 개혁하겠다는 국회 국정원개혁특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1월 이스라엘 해외 정보작전기관인 모사드(MOSSAD)와 미국 중앙정보국(CIA) 등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도 여당 의원들은 국정원 본연의 정보 능력 저하를, 야당 의원들은 국정원의 정치 관련 개입이라는 서로 상반된 주제를 내세웠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도 정보기관은 정치와는 별개로 오로지 국민과 국가를 위해 묵묵히 할 일을 할 뿐이다.
정보기관의 수장도 정권과 상관없이 자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정보기관은 정권에 대한 충성이 아닌 국가의 사활이 걸린 정보 수집과 정세 판단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나타낸다. 따라서 정치권조차 정보기관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국민이 정치권이 아닌 정보기관을 더 믿고 지지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정보기관 중 가장 국민 신뢰를 받는 조직이 이스라엘의 모사드다. 이 조직의 현 수장인 타미르 파르도(61)는 전 세계를 상대로 첩보 수집과 공작 활동을 펴는 강력한 존재다. 모사드는 직접 공작을 펴는 기관이다. 미국과 서방이 답답해 하고 있는 이란·이집트·시리아 등의 정보를 어느 나라보다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 정보공작기관인 모사드는 이스라엘의 국내 보안국인 신베트(Shin Bet, 샤박(Shabak)이라고도 함), 군정보국인 아만(Aman)과 함께 음지에서 이스라엘의 안보를 담당하는 조직이다. 이스라엘 밖에서 벌이는 정보 수집과 암살·납치 작전이 모사드의 주요 임무다.
이스라엘 국내와 점령지인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와 골란고원에서 벌이는 모든 정보 수집과 작전은 신베트의 관할이다. 군은 별도로 활동한다. 예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거주하는 무장단체 지도자나 자폭용 폭탄 제조자를 아파치 헬기나 무인공격기, 또는 휴대전화 폭탄으로 표적 살해하는 일은 모사드가 아닌 신베트나 이스라엘군이 벌여왔다.
18세 때 공수부대에 자원파르도는 2011년 11월29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지명을 받고 인준 절차를 거쳐 2012년 1월1일 업무에 들어갔다. 그는 모사드에 들어오기 전 18세 때 군에 입대했다. 그는 훈련 강도가 가장 강하고 군기가 엄격하며 험악한 작전에 직접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진 공수부대에 자원했다.
공수부대에서 장교 훈련을 받고 임관한 그는 전선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통신병과를 자원했다. 공수부대에서도 최고 정예부대인 사예레트 마트칼(수색부대)을 지원했다. 이 부대는 야전에서 적의 정보를 입수하는 임무를 기본으로 하면서 적진 깊숙이 침투해 가치 높은 전술 정보를 빼내는 임무에 직접 투입된다. 아울러 대(對)테러리즘 임무와 인질 구출작전에 최우선 동원된다.
파르도는 군 복무 중 역사적인 경험을 했다. 1976년 7월4일 그 유명한 엔터베 작전에 투입된 것이다. 당시 팔레스타인 게릴라가 납치해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 있던 에어프랑스 여객기에서 106명의 승객 중 102명을 구출하고 52명의 게릴라와 우간다 병사를 사살한 작전이다.
맹장수술로 병원에 후송된 승객 1명이 구출되지 못하고 3명의 승객이 사망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구출됐다. 이스라엘군은 1명의 전사자를 냈는데 바로 부대장인 요나단 네타냐후였다. 바로 지금 이스라엘 총리인 베냐민의 형이다. 이 작전의 성공은 모사드가 입수한 정확한 비행기 위치 정보를 군에 전달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파르도는 1980년 군대에서 제대한 뒤 모사드에 들어갔다. 여러 가지 공적으로 세 차례나 훈장을 받은 그는 공작을 전담하는 부서장을 맡았다. 하지만 모사드의 특성상 그가 어떤 공작을 맡았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군 참모부의 정보연락관으로 일하던 그는 모사드의 2인자를 거쳐 마침내 수장에 올랐다.
공작 전문가답게 그는 모사드 수장을 맡은 직후부터 암살 공작 지휘설에 휘말렸다. 그 해 1월 11일 오전8시20분쯤(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 중심가에서 난데없이 강력한 폭탄이 터졌다. 이란 핵과학자 무스타파 아흐마디 로샨이 탄 은색 푸조405 승용차가 거리를 달리던 중 폭탄 공격을 받아 즉사한 것이다. 오토바이 한 대의 앞뒤 좌석에 나눠 타고 갑자기 나타난 두 괴한이 차량 바깥쪽에 플라스틱 폭탄을 붙인 지 9초 뒤에 강력한 폭발음이 테헤란 시내에 울려 퍼졌다.
로샨은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180km쯤 떨어진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의 부소장으로 이란핵개발의 핵심 요원이었다. 수법으로 보나, 로샨의 지위로 보나 이는 이란 핵개발을 저지하려는 세력이 저지른 짓이 분명해 보였다. 이란에서 그 이전 2년 간 살해된 핵과학자는 로샨을 포함해 4명 이상이라고 영국 BBC방송 등 외신들은 보도했다.
모사드 수장 맡은 후 암살 공작 지휘설에 휘말려이 사건은 파르도가 지휘하는 모사드의 공작으로 의심 받았다. 물론 모사드가 이 작전을 벌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스라엘 정부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정보 전문가는 아무런 의심 없이 이를 모사드의 솜씨라고 판단하고 있다.
적국인 이란 한복판에서 이런 대담한 작전을 벌일 정도로 폭넓은 현지 인적 네트워크와 작전 수행능력을 가진 조직은 모사드 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보유를 자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여기고 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모사드를 앞세워 공작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파르도가 오랫동안 맡아온 모사드의 작전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는 인물을 제거하는 게 임무였다. 모사드는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 대신 짖지 않고 물어뜯는 개를 상대하는 게 임무다. 원색적인 욕과 저주가 담긴 성명이나 발표하는 전면의 정치집단보다 무기 개발·밀수 등으로 이스라엘의 안보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이면의 상대를 조용히 제거해왔다.
2010년 1월 19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의 고위 군사지휘관인 마무드 알마부를 살해한 것이 대표적이다. 알마부는 해외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할 무기와 폭탄을 구입해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으로 들여오는 일을 담당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호주·프랑스·영국·아일랜드·네덜란드 여권을 지닌 여려 명의 남녀가 객실에서 알바부를 전기쇼크로 기절시키고 근육마비제인 숙시닐콜린을 투여한 뒤 베개로 얼굴을 덮어 질식시켜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남녀들은 알마부 살해 뒤 유유히 두바이를 빠져나갔다. 당시 CCTV 등에 출입 흔적을 남기고 위조여권 사용이 들통 나는 바람에 이스라엘 정부가 곤욕을 치르긴 했으나 모사드의 암살 작전이 얼마나 지독한지를 잘 보여줬다.
모사드의 암살 작전은 역사가 오래 됐다. 1960년대 중동 국가들의 로켓 개발을 돕던 전 나치 과학자들을 제거하는 다모클레스 작전은 전설에 속한다. 알려진 것으론 1962년 9월11일 독일 뮌헨에서 이집트의 미사일 개발을 돕던 서독 국적의 로켓 과학자 하인츠 크루크를 사무실에서 납치한 것이 첫 작전이다. 크루크의 행방은 아직도 묘연한데 살아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1962년 11월 28일 이집트 할루안의 비밀 로켓공장인 팩토리333에서 우편물 폭탄이 터져 기술자 5명이 숨지고 책임자가 실명했다. 우편물에는 독일 함부르크 소인이 찍혀 있었다.
모사드는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적국의 무기 개발을 돕는 경우 아랍인이고 서구인이고 가리지 않고 제거했다. 1990년 3월 2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캐나다 출신의 야포 개발자인 제럴드 벌이 자기 아파트 문 앞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이 그중 하나다. 벌은 사담 후세인의 주문을 받고 사거리 750km의 초대형 대포를 개발하고 있었으며 스커드 미사일 개량 프로젝트에도 관여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고 모사드는 홀로코스트, 뮌헨 올림픽 이스라엘 선수단 살해사건, 이스라엘에서 자폭테러를 벌여온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원 등을 상대로 납치와 살해 공작을 꾸준히 벌여왔다. 1960~70년대 여객기를 납치해 팔레스타인 포로를 풀어달라고 요구한 무장단체 간부들도 주요 살해 목표였다. 자동차 폭탄, 전화 폭탄, 휴대전화, 포인트 블랭크(처형방식의 근접 사살) 등 수법도 다양했다. 그러면서 모사드는 암살공작의 살아있는 교과서를 온몸으로 써왔다. 그런 방식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안전하게 했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사실 모사드도 실수를 한다. 작전 중 실수를 범해 국제 망신을 초래한 적도 여러 번이다. 첫 케이스는 노르웨이 릴리함메르 사건이다. 1973년 릴리함메르에서 모로코인 웨이터 아메드 부키치를 PLO간부이자 검은구월단 지도자로 뮌헨 학살을 이끌었던 알리 하산 살라메로 오인해 사살한 사건이다. 당시 모사드 요원들은 부주의로 작전 당시 사용한 자동차로 공항까지 가다 모두 체포돼 망신을 당했다.
이들은 체포와 재판 과정에서 신분이 노출돼 영영 해외 근무가 불가능해졌다. 재판 과정에서 여성 요원 한 명이 현지인 변호사와 눈이 맞아 결혼하기도 했다. 군기가 빠져도 단단히 빠진 모사드의 모습이었다. 요원들은 이후 2년 안에 모두 풀려났지만 이 사건으로 안가를 비롯한 모사드의 유럽 내 비밀 작전 인프라가 쑥대밭이 됐다. 모사드의 해외 공작은 이 사건 이후 한동안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사드는 1997년에도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9월 25일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하마스 정치 지도자인 할레드 마샬을 독살하려다 실패했다. 뿐만 아니라 캐나다 여권을 지닌 두 명의 모사드 요원이 체포되기까지 했다. 이스라엘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압력에 못 이겨 마샬을 살릴 해독제를 제공했다. 모사드 암살공작조가 자국 여권을 사용한 데 분노한 캐나다는 대사를 소환했다. 이스라엘은 외교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2010년 두바이에서 CCTV에 요원들 얼굴이 찍힌 것도 명백한 실수의 하나다.
하지만 이런 사건에도 철저히 지키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해외에서 잡힌 요원들을 데려오기 위해 어떤 대가도 감수한다는 점이 그 하나다. 아무리 모든 것이 들통나도 공식적으로는 절대 공작을 시인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그 둘이다. 앞에서 소개한 수 많은 작전 중 모사드가 했다고 시인한 작전은 하나도 없다. 모사드가 아니면 할 조직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 입 무거운 조직의 수장이 바로 파르도인 것이다.
모사드 소행이라고 시인한 작전 없어파르도는 이 조직을 위해 오랫동안 수없이 많은 공작을 벌였다. 위에 언급한 암살 공작 사례 중 1980년 이후에 일어난 것은 그가 개입했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를 증명할 아무런 자료도 없다. 정부나 변호사들이 정보기관원과 공작원 이름을 공개하는 경우는 있어서도 안 되며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있었던 적도 없다.
현재 파르도는 이스라엘 정부가 외교에 필요한 거의 모든 해외 정보를 구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임무에 너무도 바쁜 나머지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틈도 없다. 든든한 정보수장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 경제 이익을 위해 어떤 공작을 벌이는지는 비밀이다. 하지만, 국익을 위해서 분명히 뭔가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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