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irement | 일본에서 배우는 은퇴의 지혜 - 장수천국 일본은 간병지옥?
Retirement | 일본에서 배우는 은퇴의 지혜 - 장수천국 일본은 간병지옥?
‘결국 간병은 가족의 몫이더라.’ 정부가 다양한 방법으로 돕는다고 해도 간병에는 가족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인생의 한 가운데 선 40~50세 중년 가장의 가장 큰 압박 중 하나가 부모 간병이다. 자신의 은퇴 문제만 해도 걱정이 태산인데 부모의 간병 문제까지 겹치면 고민은 배가 된다. 이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난다. 많은 가정이 부모의 간병 문제로 고통을 겪는다. ‘동방예의지국’이나 ‘효도’라는 단어가 부담이 된다. 돈이라도 많으면 전문시설에 의탁할 수 있지만 이 조차도 여의치 않다.
더욱 큰 문제는 ‘노노(老老) 간병’이다. 나이가 들수록 배우자가 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이렇게 되면 나 자신도 늙고 힘이 없는데, 배우자까지 간병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간병가족의 고령화다. 일본의 경우 주요 간병자 중 절반 이상이 60세를 넘긴 동거가족이다. 금전적·신체적 간병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다.
환자가 더 심각한 환자 간병가장 큰 문제는 홀로 사는 독거노인이다. 주로 여성 고령자인 경우가 많다. 2012년 일본의 통계에 따르면 노인시설 입주자를 포함해 고령·단신가구는 남성 130만명, 여성 370만명이다. 전체 고령 남성 12%, 여성 25%가 단신가구다.
2015년에는 고령·단신가구가 562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들이 아프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혼자 하는 경우 간병은 기대하기 힘들다. 적절한 치료 없이 위험지대에서 생을 마칠 우려가 크다. 이른바 고독사에 대한 공포다.
간병을 이유로 정상적 경제활동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가족 간병을 위해 전직·이직·사직 사례가 크게 늘었다. 2002년 9만명 수준이던 간병 이유의 전직과 이직은 2006년 14만명으로 늘었다.
최근에는 정확한 관련 통계가 없지만 3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령 특성 탓에 대부분 40~50세 중년의 간병 퇴직이 많다. 한창 소비지출 부담이 커지는 와중에 자녀 부양과 본인 노후까지 해결해야 할 중년으로선 부담이 만만찮다. 소득이 사라지고 지출이 늘면 빈곤가구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들 중 80%는 여성이다. ‘간병=여성’이라는 인식이 공고한 탓이다. 가족 간병에 의지할수록 가정환경은 열악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가 가족 1인당 93일의 간병휴가를 법으로 정했지만 이용률은 5.8%뿐이다. 현실적으로 시설간병이 아니면 직장을 떠나야 한다. 중증 이상의 병을 앓는 사람은 시설간병이 불가피하다. 하루 종일 침대생활을 해야 하고 중증 치매를 앓고 있거나 일상 간병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재택보호는 무리다. 이때는 시설간병이 최선이다.
문제는 돈이다. 공적서비스인 간병보험이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비용의 10%만 지불하면 환자와 가족 모두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공공시설에 입소를 원하는 사람에 비해 시설은 턱 없이 부족하다. 일본이 자랑하는 ‘개호노인복지시설’은 입소대기만 2~3년이 보통이다. 심각한 중중이 아니면 들어가기가 힘들다.
대부분이 막대한 금전 부담을 지는 민간시설을 찾는다. 간병비용이 최소 월 20만엔이 넘는다. 정부의 지원이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주간동양경제』의 ‘2010년 유료노인홈 베스트랭킹’을 보면 전국 1878개 시설 중 5년 총비용 1000만엔 이하 시설은 629개에 불과하다. 134개는 3000만엔을 초과했다. 5년 총 경비가 1억1793만엔(사쿠라비아세이조)인 경우도 있다.
간병 서비스의 품질에는 문제가 많다. 이용자들의 불만이 끊이질 않는다. 그나마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아직 문제가 많다. 직원이 퇴근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저녁 5시에 식사를 주거나 용변과 상관없이 정해진 시간에만 기저귀를 갈아주는 사례가 많다. 전문인력이 아닌 사람이 간병 서비스를 하는 문제도 있다. ‘간호야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안이한 사고가 팽배했다. 실업대책으로 간병 취업 알선이 늘어난 것이 한 원인이다.
간병 문제와 관련한 전망도 밝지 않다. 치매로 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치매는 가족 해체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은 질병이다. 일본에서는 치매가 일상질병이다. 노인인구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발병환자도 많다. 2012년 65세 이상 노인인구 3074만명 중 10%인 305만명이 치매환자로 추계됐다. 조사를 시작한 2002년 149만명보다 2배로 늘었다. 애당초 2020년 3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실에서는 더욱 빠르게 치매환자가 늘고 있다.
75세를 넘기면 발병 확률이 급증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거론된다. 일본 전체 인구 중 70세 이상이 2256만명으로 18%라는 것이 특히 문제다. 외출 후 연락처를 잃어버려 행방불명이 된 사례가 많다. 노인사기 피해사례 중 상당수가 치매노인이다. 현금을 숨겨뒀다 찾지 못했다가 주택개조 때 마룻바닥이나 마당에서 거액이 발견되는 웃지 못할 사례도 있다.
간병 지출은 삶의 최종 단계에서 발생하는 지출이다. 자녀 입장에서는 부모를 위한 마지막 효행이다. 그만큼 일찍부터 잘 준비해야 후회가 없다. 일본의 사례에서 배울 교훈은 간단하다. 간병공포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핵심은 촘촘한 ‘간병 안전망’의 확보다. 인생 2막 전체를 커버하는 질병보험은 물론 간병 수요발생 때 버팀목이 됨직한 자산소득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무연간병이 되지 않도록 네트워크도 구축해야 한다. 건강할 때 간병 비용과 재산관리 등 후견인제도를 활용하면 좋다. 정부도 정책 마련에 고심해야 한다. 간병 선진국 일본조차 수급 조정과 재정 확보에 실패했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 막상 간병난민이 급속도로 늘고 난 뒤에는 늦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정부는 재정 부담으로 사실상 손을 놨다. 시설간병보다 재택간병을 우선시하면서 가족책임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시설을 늘려도 부족한 상황에서 간병책임을 집안 문제로 돌려 적잖은 파장이 일고 있다.
촘촘한 ‘간병 안전망’ 짜야은퇴생활과 관련한 행복함수를 푸는 변수는 복잡하다. 인생을 5개의 공을 돌리는 저글링에 많이 비유한다. 본인·가족·친구·일·건강이 5개의 공이다. 이 중 일만 고무공이고 나머지는 유리공이다. 유리공은 한번 떨어뜨리면 끝이다. 독일의 소설가 괴테는 노후를 5가지 상실 과정으로 봤다. 건강·돈·일·친구·꿈이다.
최근에는 재무와 비재무 조건으로 나누기도 한다. 재무 조건은 자산과 근로소득, 비재무 조건은 건강·가족·취미다. 이런 변수들에서 공통분모를 뽑아보자. 돈과 사람, 그리고 건강이 겹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건강이다. 이걸 지키거나 혹은 잃고 만회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늙으면 아프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돈이 필요하다. 75세 이상 후기고령자로 넘어갈수록 의료·간병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나마 정신이라도 건강하면 좀 낫다. 아무 것도 혼자서 하지 못하는 병에 걸리면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의 삶까지 망칠 수 있다. 치매질병은 불가항력적으로 빈곤을 불러올 수 있다. 간병지옥이 펼쳐지고 있는 일본이 한국에 알려주는 중요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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