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ORTS - 너무나 평범하면서도 치명적이었던 사고

역대 최고의 포뮬라 원(F1) 레이서 미하엘 슈마허는 사고 당시 시속 19㎞의 속도로 전진하고 있었다. 어쩌면 약간 더 빨랐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참담한 사고의 영향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지난 4월 8일은 미하엘 슈마허가 프랑스의 메리벨에서 스키를 타던 중 쓰러진 지 꼭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세계 선수권 대회 7회 우승을 차지했던 그가 프랑스 르망과 독일 뉘르부르크의 직선코스를 질주할 당시 그의 페라리 엔진은 시속 300여㎞의 속도를 예사로 넘나들었다. 어느 햇빛 찬란한 일요일 아침, 느긋한 속도로 설원을 미끄러져 내려오던 중 그의 스키가 코스 밖의 바위에 부닥쳤다. 독일 출신인 슈마허는 물구나무 자세로 몸이 뒤집혀 10m를 날아갔다. 그의 헬멧이 또 다른 바위와 충돌하며 두 동강이 났다.
그때가 12월 29일, 그 은퇴한 레이서의 45회 생일 5일 전이었다. 슈마허는 그랑프리 역사상 가장 화려한 경력을 쌓은 뒤 2012년 레이스계를 떠났다. 사고 당시 두 자녀 중 막내인 14세 아들 믹과 스키를 즐기고 있었다. 전 세계 팬들에게 ‘슈미’로 불리는 그는 하루가 끝나갈 무렵 의식을 잃었다. 현재 프랑스의 그르노블 대학병원에 의식불명인 채 누워 있다. 아이러니의 포로가 되어 생과 사의 갈림길을 한없이 헤매고 있다.
“미하엘이 고비를 넘기고 깨어나리라는 우리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지난 3월 슈마허의 가족이 한 성명서에서 말했다. “미하엘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과거 수없이 위험한 상황을 극복했던 그가 그처럼 평범한 상황에서 그렇게 끔찍한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이 우리로선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
상황은 평범한 수준에서 기이한 수준으로 빠르게 악화됐다. 슈마허는 헬리콥터에 실릴 당시 구조팀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의사들이 뇌 주위의 부종을 치료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혼수상태로 유도했다. 그뒤로 의식불명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유럽에선 슈마허의 인기가 미국 프로농구의 르브론 제임스나 축구의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와 맞먹는다. 유럽 팬들은 그의 용태에 관한 최신정보를 목 빠지게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이윽고 가족 대변인 사빈 켐이 미디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익명의 기자가 성직자로 가장해 슈마허가 있는 5층 집중치료실 진입을 시도했었다고 전했다.
한편 슈마허의 용태 관련 정보가 감질날 정도로 조금씩 공개되자 미국인 의사 게리 하트슈타인 박사가 직접 나섰다. 2005~2012년 F1의 의료진이었던 그는 블로그 마당에서 슈미의 예후에 관해 직접 나름의 의학적 분석을 늘어놓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하엘이 상당한 수준의 차도를 보일 가능성이 떨어진다.” 하트슈타인이 자신의 블로그 ‘전직 F1 의사의 기록’에 썼다. 벨기에에서 진료를 하는 하트슈타인은 지난 3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로 비관적이었다. “8주가 지났는데도 깨어나는 조짐이 없으면 거의 대부분 생명유지장치를 거둔다.”

얼추 같은 시대에 걸쳐 데이비드 베컴도 축구계에서 이름을 날렸다. 그랑프리 경주에서 슈마허의 유명도도 그와 대등했다. 차이점이라면 베컴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경기장에 들어선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여자들이 레이서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내 이론을 말해주지.”
1970년대 F1 세계 두 챔피언의 경쟁의식을 다룬 영화 ‘러시: 더 라이벌(Rush)’에서 제임스 헌트(크리스 헴스워스 분)가 니키 로다(다니엘 브륄 분)에게 말한다. “우리가 사선을 넘나들기 때문이야. 말하자면 죽음에 더 가까울수록 살아 있는 느낌이 더 강하고 생명력이 더 넘치거든.”
그런 흥분과 갑작스런 죽음이 결합돼 F1 레이서들에게 록스타와 같은 인기를 가져다주는 밑거름이 됐다. 1994년 5월 1일 이탈리아 이몰라에서 열린 산마리노 그랑프리에서 슈마허는 아일톤 세나의 꽁무니를 바짝 뒤쫓고 있었다. 어쩌면 레이싱계에서 가장 치열한 새로운 라이벌 관계였다.
당시 브라질 출신의 카리스마 넘치는 세나(34)는 이미 세계 선수권 대회를 3회 제패한 참이었다. 당시 25세였던 슈마허는 시즌의 첫 2개 그랑프리 대회를 석권했다. 이 세 번째 그랑프리 대회에서 두 사람이 1~2위를 달리고 있었다. 슈마허가 간발의 차로 뒤진 채.
일곱 바퀴 째 세나의 차가 좌회전하는 데 실패했다. 트랙을 벗어나더니 콘크리트 옹벽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슈마허의 차가 바로 뒤에 있었다. 세나의 윌리엄스 FW 16이 벽과 충돌할 때는 이미 그 지점을 지난 참이었다. 그날 슈마허가 우승 깃발을 넘겨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때였다. 세나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슈마허는 계속해 그해 생애 첫 F1 세계 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슈마허는 다음 해 자신의 두 번째 세계 선수권 대회 타이틀을 획득한 뒤 동향인 라인 지방 출신 코리나 벳슈와 결혼했다. 잘 생기고 결혼 잘 하고 엄청나게 성공한 슈마허가 돈도 많이 벌게 됐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의 재산은 어림잡아 8억 달러로 추산됐다. 마이클 조던이나 타이거 우즈 또는 베컴보다도 많은 규모다. 슈마허 가족은 스위스 제네바 호안에 650㎡의 사유지를 소유한다. 전용 지하 차고와 주유소가 딸려 있다.
사고 이후 슈마허의 가족은 제네바 호수에서 병원까지 240㎞를 왕복하며 밤샘 간호를 해 왔다. 아버지 롤프 그리고 역시 은퇴한 F1 레이서인 동생 랄프도 함께였다. 4월 초 슈마허가 “잠깐씩 의식을 되찾고 깨어나는 듯하다”고 가족 대변인 켐이 전했다. 그것이 회복의 관점에서 무엇을 예고하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덧붙였다.
“가족 중 한 명이 말을 걸 때 미하엘이 적어도 몇 번이라도 알아볼 수 있게 지속적으로 미소를 짓는다면 최소한의 의식 상태가 된다”고 하트슈타인 박사가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로서는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뉴스다.”
세나의 차에는 카메라가 장착돼 사망 당시 충돌 장면이 기록됐다. 슈마허가 사고를 당할 때도 그의 헬멧에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그 비디오는 망가지지 않았다. 2명의 F1 전설, 그리고 전혀 다른 속도에서 일어난 2건의 사고, 그리고 참혹하면서도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다른 2개의 결과.
슈마허는 위장에 영양관, 기도에 호흡기를 연결한 채 혼수 상태에서 헤매고 있다. 프랑스 그르노블 병원의 공기 매트리스 침대 위에 밤낮으로 누워 있다. 사고 뒤 체중이 25%가량 줄어 지금은 54㎏ 안팎이다. 생 또는 사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물론 기적은 있다. 그리고 부자이기 때문에 비용에 구애 받지 않고 가능한 최고의 치료를 받는다.” 최근 한 친구가 자동차 스포츠 사이트 스피드에 말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돈을 갖고 있다 해도 그에게 일어난 사고를 되돌릴 순 없다.” 슈마허에게는 아들 외에 17세의 딸 지나 마리도 있다. 4년 전 현역 레이서였을 당시 한 독일 잡지에 유서를 작성해 뒀다고 말했다. “하지만 포뮬라 원 때문은 아니다”고 그가 설명했다. “살다보면 일어날 수 있는 사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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