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상화에 비친 천재들의 우정

작은 그림에 지나지 않지만 보면 볼수록 빠져든다. 영국의 표현주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이 1967년 화가 루치안 프로이트(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를 그린 초상화는 유화를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보여주는 교과서다. 물감을 듬뿍 먹인 점묘법의 두터운 임파스토(impasto, 유화물감을 두껍게 칠하는 기법) 그림이다. 베이컨의 추상-사실주의 기량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영국의 위대한 예술가 3명에 관해서도 많은 사실을 말해준다.
초상화는 베이컨이 완성한 직후 소설가 로알드 달이 사들여 그뒤로 줄곧 그가 소장해 왔다. 프로이트는 베이컨의 친구이자 달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림은 베이컨이 그 공통의 친구를 그린 단 두 점의 개인 초상화 중 하나다. 1964년에 그려진 또 하나의 작품은 개인 컬렉션에 속해 있다. 지난 11월 베이컨의 실물 크기 세폭 짜리 그림(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 1969)이 1억4200만 달러에 팔려나갔다. 그보다 훨씬 작은 이 초상화(14인치 x 12인치)가 지난 7월 1일 크리스티 경매에서 1960만 달러에 한 애호가에게 낙찰됐다.
프로이트와 베이컨의 우정에 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다. 프로이트도 종종 베이컨을 그렸으며 1950년대 중반의 어느 시점에는 사실상 늘 함께 붙어 다녔다. 프로이트의 당시 부인은 작가 캐롤린 블랙우드 부인이었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루치안과의 결혼 생활(1953~1958) 거의 내내 거의 매일 베이컨과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점심식사도 같이 했다.”
베이컨과 달의 관계는 그보다 덜 알려졌다. 불온하고 왜곡된 초상화의 거장과 어둡고 해학적인 문학의 대가는 20년이 넘는 지기였다. 달은 1958년 한 예술위원회 전시회에서 베이컨의 작품을 처음 마주했다. 즉시 그의 재능을 알아봤다. 베이컨을 “작품에 경제성과 심오한 감정을 버무려 넣은 당대의 거인”으로 불렀다.
달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근대미술을 열심히 사들였다. 2차대전 당시 그는 전투기 조종사이자 정보장교로 복무했다. “단편 하나를 팔 아 은행에 돈이 좀더 들어올 때마다 그림 한 점을 구입하곤 했다”고 언젠가 달이 말했다. 그는 폭넓은 취향을 갖고 있었다.
러시아의 전위 미술가들(카지미르 말레비치, 알렉산드르 에르밀로프, 나탈리아 곤차로바, 류보프 포포바)로부터 앙리 마티스의 회화, 윈스턴 처칠의 풍경화까지 다양하게 사들였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을 여행길에 휴대했다. 각지의 호텔 객실 벽에 그림을 밤새 걸어 놓았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가서야 베이컨 취향을 정말로 만끽할 만큼 그에게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다. 그 무렵 달의 동화책들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James and the Giant Peach)’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이 영화 시나리오 ‘007 두번 산다(You Only Live Twice)’와 함께 그에게 큰 수입을 안겨줬다. 1964~1968년 달은 베이컨의 그림 4점을 구입했다.
그 작가와 미술가는 또한 서로 믿음직한 친구가 됐다. 둘 다 반 고흐를 존경했다. 그리고 모두 소호의 활기 넘치는 저녁을 좋아했다. 달은 1970년대와 80년대 버킹엄셔 자택에서의 만찬에 수시로 베이컨을 초대했다. 베이컨과 마찬가지로 달도 도박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그들은 항상 마음이 맞았다.” 달의 손자이자 달 문학유산 관리재단의 이사장인 루크 켈리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베이컨이 천재라고 생각했다. 둘은 의견을 교환하고, 애주 취향도 같았다. 그리고 세 사람(달·베이컨·프로이트) 모두 비주류로서 공통점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베이컨은 아일랜드인, 프로이트는 독일인, 할아버지는 노르웨이인이었다. 그리고 모두 상당히 강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
달의 출판사가 그에게 최상의 만찬 초대손님 리스트를 작성해보라고 맡겼다. 그 자리에 영화배우 조안나 럼리(‘앱솔루트 애니씽’)가 초대됐다. 그녀는 달의 오른쪽 그리고 베이컨으로부터 세 자리 건너 앉았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정시에 도착했다. 꾀죄죄한 몰골로 느지막이 도착하리라는 모두의 예상이 빗나갔다. 그는 깜짝 놀랄 만큼 깔끔하게 차려 입었다”고 그녀가 돌이켰다.
“달의 용모는 범상치 않았다. 훤칠하고 잘 생긴 용모에 위압적이었다. 마치 약간 속을 헤아리기 어려운 성격의 바이킹 같은 인상이었다. 나는 멍청이처럼 보이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애를 썼다. 자신의 영웅 앞에서는 실언을 하지 않을까 항상 불안해지게 마련이다. 그는 후광을 뒤에 늘어뜨린 채 방 안으로 들어섰다.”
베이컨의 그림을 구입할 때 달의 선택은 탁월했다. 그가 구입한 작품 중에는 베이컨의 절친인 모델 헨리에타 모라에스, 그리고 베이컨의 비극적인 연인으로 1971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지 다이어의 초상화도 있었다. 그러나 달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은 작품은 1967년작 프로이트의 초상화였다.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다. 일정 부분 베이컨의 다양한 유화 기법 중 다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배경은 물감이 두텁게 칠해진 점묘법의 검정색이다. 얼굴 한편에는 프로이트의 광대뼈 두드러지고 윤곽 뚜렷한 프로필이 충실하게 묘사됐다. 하지만 반대편에선 조형미술과 베이컨의 특징적인 반추상 반사실주의(semi-abstract semi-realism)가 충돌한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다. 아래 왼쪽에는 유성 물감이 가벼운 터치로 엷게 칠해져 색조를 부드럽게 했다. 턱수염의 느낌을 주려는 의도다. 이마에는 물감이 임파스토로 덮여 있다. 반사광의 빛을 나타내려는 목적이다. 그의 오른쪽 눈에도 티타늄 백색 물감이 똑같이 두텁게 칠해져 있다.
달은 베이컨의 작품 중 여러 점을 팔았다(“그림 한 점을 팔아 동네 빵집에 새 오븐을 사줬다”고 켈리가 말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초상화는 계속 갖고 있었다. “기막히게 아름답다”고 켈리가 말했다. “바탕이 짙어 놀라울 정도로 강렬하다. 할아버지는 경외감을 갖고 그림을 바라봤다. 그는 베이컨을 천재로 생각했다. 거실 한복판 옅은 핑크색 벽에 그림을 걸어 놓았다.”
켈리는 버킹엄셔에 있는 집시 하우스에서 할아버지와 10년을 함께 생활했다. “녹색·흑색·백색의 조화가 대단히 강렬하다. 액자 유리까지 굉장히 투명하다. 그림의 촉감이 손에 느껴지는 듯하다.”
달은 저술과 수집에선 성공을 거뒀지만 1960년대 그의 인생은 혼돈의 연속이었다. 1960년 4개월짜리 아들 테오가 뉴욕 택시에 치어 심각한 뇌손상을 입었다. 달이 개발에 일익을 담당한 웨이드-달-틸 기기가 아들의 수두증(hydrocephalus) 완화에 도움을 줬다. 그는 상업적인 측면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 장치가 가능한 한 널리 사용되도록 하려는 생각이었다.
1962년에는 딸이 7세에 홍역 뇌염(measles encephalitis)으로 숨을 거뒀다. 1965년에는 아내의 뇌동맥류가 3번이나 파열됐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여배우 패트리샤 닐이었다. 이번에도 그녀의 회복에 달이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아내의 재활훈련에 앞장서 걷고 말하도록 했다.
“할아버지는 차단됐던 두뇌 부위를 재생하는 공격적인 프로그램에 착수했다”고 켈리가 말했다. “프로이트의 초상화로 볼 때 할아버지가 머리와 관련된 문제들을 알아보려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면 지나친 단순화일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두뇌작용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루치안 프로이트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라는 사실에 흥미를 보였다. 그리고 그 많은 미술품을 수집했음을 볼 때 미술, 미술가, 그리고 모델에 관해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달은 1981년의 한 인터뷰에서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관련자들의 성격과 그들이 겪은 난관을 알아보지 않고는 진정한 의미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없다.”
그런 난관은 프로이트와 베이컨 사이에서 특히 심했다. 1950년대 긴밀한 우정을 나눈 뒤 두 사람은 멀어졌다. 우정의 결렬(그리고 세 사람의 타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작품뿐 아니라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초상화로 고귀한 유산을 남겼다. “할아버지는 경이롭고 기막히게 창의적이며 놀라운 상상력을 지닌 남다른 분이었다”고 켈리가 말했다. “항상 아이디어, 지략, 재미가 샘솟았다. 그 그림은 언제나 내게 할아버지를 연상케 할 것이다. 그분이 작가, 정보요원, 전투기 조종사였을 뿐 아니라 훌륭한 미술품 수집가였음을 상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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