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日 소니 기업 지배구조 - 히라이 사장 후계자로 요시다 CFO 급부상
- 요동치는 日 소니 기업 지배구조 - 히라이 사장 후계자로 요시다 CFO 급부상

“실망스럽다. 소니가 바뀔 거라는 기대감이 들지 않는다.” 6월 19일 열린 소니 주주총회에서 취임 3년째를 맞은 히라이 카즈오 사장은 주주들로부터 거센 질문 공세를 받았다. 소니는 지난해 1283억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흑자 전환을 선언한 TV사업은 10분기 연속 적자다. 수시로 실시된 임직원 구조조정에도 부진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소니는 올해에도 500억엔이라는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 와중에 히라이 사장의 지난해 임원 보수는 1억8400만엔이다. 일본 전기 업계를 이끄는 히타치제작소의 나카니시 히로아키 회장(1억7300만엔)을 웃도는 고액이다. 주주들의 비판이 잇따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히라이에 대한 평가가 점점 나빠지면서 경영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 4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진 히라이 사장은 ‘넘버2’ 교체를 단행했다.
최고전략책임자(CSO) 요시다 켄이치로를 대표집행역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승격시킨 것. 이전까지 히라이 사장은 경영전략과 재무 담당을 구분해 왔지만 4월 요시다에게 권한을 집중시키면서 소니는 히라이와 요시다의 ‘2인 체제’가 됐다. 요시다는 인터넷 접속 서비스 사업을 하는 자회사 ‘소넷’ 사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지난해 12월 히라이의 요청으로 약 14년 만에 소니 본사로 복귀했다. 히라이 사장이 요시다를 발탁한 이유에 대해 소니 측은 “소넷에서 벤처 사업의 창업과 육성을 담당해왔기 때문에 그 경험을 살리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이데이 사장 비서 출신으로 소넷 성장의 주역그는 2000년에 소넷(당시 소니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으로 옮겨 2005년 사장에 취임했다. 소넷은 1995년에 소니, 소니 뮤직, 소니 파이낸스 3사가 합병해 설립한 회사다.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확대했고, 벤처 육성에서도 성과를 냈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형 소셜게임회사 디앤에이(DeNA)와 의료 포털사이트를 운영하는 M3다. 33%를 출자한 DeNA는 2005년, 자회사였던 M3는 2004년에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7월 30일 기준 DeNA의 시가총액은 2041억엔, M3는 5376억엔에 이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 두 회사에 대한 투자를 결정한 것은 요시다가 아니라 전 사장인 야마모토 센지다. 요시다가 수완을 발휘한 것은 소넷 자체의 사업 확대다. 사장에 취임한 2005년 도쿄증권 시장에 상장했다. 인터넷 접속 서비스와 함께 광고와 게임 비즈니스에 진출해 매출을 2005년 393억엔에서 2011년 2.3배 증가한 933억엔으로 끌어올렸다.
요시다의 지인들은 한결 같이 그의 탁월한 소통 능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니에서 IR 경험을 쌓은 요시다는 금융권에 인맥이 많다. 그들과 자주 모임을 갖고 정보를 교환하면서 비즈니스 방향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시다를 잘 아는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굉장히 겸손하고 붙임성이 좋으며 대화하기 편한 상대”라고 평가했다. 그의 상사였던 사람은 “잘 훈련된 직업 외교관을 연상시키는 수재”라고 말했다.
소통 능력 출중하지만 사업 실패하기도소니 그룹 내 인맥도 넓다. 하워드 스트링거 전 소니 CEO와는 2008년 소넷이 증시 1부로 승격했을 당시 기념 파티에서 그가 직접 축사를 맡을 정도로 친분이 깊다. 지난해 열린 소넷의 신서비스 발표회에서는 히라이 사장이 허겁지겁 도착하는 일도 있었다.
이를 두고 한 은퇴 임원은 요시다를 두고 “아첨을 잘할 뿐”이라고 비꼬듯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은 요시다의 소통 능력이 뛰어남을 나타내기 한다. 한편 요시다의 전 부하직원은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판단능력이 뛰어나다”며 “필요하면 가차없이 사업이나 사람을 내치는 일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소넷 사장에 취임했을 때 실력자였던 야마모토 전 사장이 회장 자리에 올랐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요시다의 사장 취임에 맞춰 대형 IT회사 ‘인터넷 이니셔티브(IIJ)’로 자리를 옮겼다. 한 관계자는 “요시다가 교묘하게 야마모토를 일선에서 물러나게 해 자신이 자유롭게 경영할 수 있는 위치를 손에 넣었다”고 말했다.
경영인 요시다로서는 아픈 기억도 있다. 소넷 시절 힘을 쏟은 사업 중 하나가 동영상 서비스 ‘액트빌라’다. 컴퓨터에서 제공된 동영상 서비스에 대항하기 위해 소니·파나소닉·샤프 등 TV 업체가 합병 회사를 설립했다. 이들 업체가 판매하는 액트빌라 대응 TV나 녹화기를 인터넷에 접속하면 영화 등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구조다. 소넷은 25%를 출자해 2대 주주로 참여했다.
그러나 액트빌라는 당시 가장 기술 수준이 낮은 회사 레벨에 맞춰 시스템을 개발하다 보니 이용자의 입장을 고려한 서비스를 실현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아직까지 이용자수가 정체 중이다. 한 관계자는 “요시다는 인터넷의 미래를 확신하고 가전을 네트워크에 연결시키는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며 “하지만 콘셉트만 잡고 실행력이 받쳐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경영와 집행’. 소넷 시절 요시다가 자주 한 말이다. 경영전략을 만드는 요시다 곁에는 실무를 집행할 오른팔로 도토키 히로키 전 소넷 CFO도 있다. 도토키는 요시다와 함께 지난해 12월 사업전략담당인 사무집행역으로 본사에 복귀했다. 소넷과 관계가 있는 벤처기업 사장은 “요시다가 소넷을 성장시킨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도토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토키는 1987년 소니에 입사해 재무 분야에서 실력을 쌓아 왔다. 입사 10년째에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소니은행 설립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2001년 사업을 시작한 소니 은행은 외부로부터 많은 인재를 끌어왔다. 도토키도 2002년에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설립 초기에는 적자였다. 예금 증가와 함께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소니 본사에 추가로 자본을 요청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하지만 이후에는 사업이 궤도에 올라 2005년 흑자전환 했다.
그런데 도토키는 2005년 자식이나 다름없는 소니은행을 나온다. 요시다의 설득으로 소넷으로 이적한 것이다. 소넷으로 온 후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후 벤처기업 투자와 육성에 매달렸다. 통신판매 사이트 ‘바이마’를 운영하는 에니그모에 6억엔을 출자했다. 33%의 주식을 취득하고 직접 사외이사에 취임했다. 에그니모의 스다 쇼케이 사장은 “도토키에게 은혜를 갚고 싶다”고 말한다. 회사의 경영이 어려울 때 도토키가 “앞으로 2~3차례 더 증자해주겠다”며 적극 도왔기 때문이다.
요시다의 심복 도토키도 복귀도토키는 여러 벤처기업에 투자했지만 당연히 모든 기업이 다 잘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 개성이 강한 창업자들에게 논리적인 설명을 요구해도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애를 먹은 일도 많다. 그래도 여러 벤처기업에선 “도토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켜본다”고 입 모아 말한다. 소니은행 설립 당시 고생한 경험에서 얻은 그의 경영 스타일이다.
도토키는 와세다대학 상학부를 졸업한 인문 계열 출신이지만 기술 쪽에도 밝다. 2007년 그는 도쿄 고단타의 기하라 연구소를 방문했다. 이 연구소는 테이프 레코더 등을 개발한 전설적인 기술자 기하라 노부토시가 1988년에 소니와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다. 그는 연구소에 도착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돈 냄새가 난다.”
본업인 전기사업이 적자를 내는 등 2000년대 초반 경영 악화 영향으로 2006년 기하라 연구소는 소니에 흡수됐다. 대부분의 기술자는 각 사업부로 배치됐다. 그런데 정지화면에서 컴퓨터그래픽을 자동 작성하는 애니메이션 기술만 불필요해져 기술자들이 공중에 떠버린 상태가 돼버렸다. 이 기술에 주목한 것이 도토키다. 소넷이 2억엔을 출자해 모션 포토레이트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사용자의 얼굴 사진을 움직이는 좀비 영상으로 바꾸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좀비부스’ 시리즈는 다운로드 수가 1000만을 넘었다.
소니부동산 세워 부동산 사업 시작2인 3각으로 소넷을 꾸려온 요시다와 도토키지만 2012년 전환기가 찾아왔다. 소니가 소넷을 완전 자회사화한 것이다. 이때 독립심이 왕성했던 사내 분위기도 일시적으로 활기를 잃었다고 한다. 소니 임원에 따르면 “소니가 소넷을 자회사화한 의도는 단순히 M3가 필요해서”다. 소넷을 완전 자회사화 후 소니는 M3 주식의 일부를 두 차례에 걸쳐 매각하고 총 1350억엔(주주 재평가분 포함)을 영업이익으로 회계 처리했다. 13%를 넘게 보유했던 DeNA 주식도 모두 매각하고 409억엔의 영업외이익을 얻었다.
이 시점에서 요시다의 본사 복귀는 그가 차기 CEO가 되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요시다는 스트링거 CEO 시절 CFO 취임 타진을 받았지만 거절한 바 있다. 소니 중진 임원들 사이에서는 “CFO는 바로 CEO가 될 수 없기 때문에 CSO 경험을 쌓고 승진을 노린 것”이라는 추측이 오가기도 했다. “소넷을 자회사로 흡수하면서 히라이 사장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라는 게 소니 측의 공식 해명이다.
히라이가 이끄는 소니의 과거 2년 간의 행적 중 눈에 띄는 것은 자산 매각을 통한 이익 창출이다. 본업인 전기사업 재건은 뒷전이다. 팔리는 상품이 적다. 매출이 증가하는 것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4’와 스마트폰 ‘엑스페리아’ 정도다. 요시다와 도토키는 개혁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소니는 올해 2월 컴퓨터 사업을 사모펀드인 일본산업파트너즈에 매각했다. 줄곧 적자였던 TV사업은 분사한다.
히라이 사장은 5월 경영방침 설명회에서 “구조개혁을 단행하겠다, 내년 이후로 미루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15년까지 판매회사 비용을 20%, 본사 고정비를 30% 삭감한다는 계획이다. 해외 판매회사의 정리해고는 전기사업의 구조를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결단을 내리기 어렵다. 이를 두고 소니 관계자들은 게임회사 출신인 히라이 사장보다는 전기업종을 잘 아는 요시다의 결정인 것으로 보고 있다.
도토키는 4월 새로운 사업을 담당하는 전문 부서를 설립해 직접 진두지휘에 나섰다. 그 시발점이 8월 1일 사업을 시작한 ‘소니 부동산’이다. 부동산 매매 중개와 임대관리 등을 한다. IT시스템과 컨설턴트로 차별화를 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3년 후 주식시장 상장을, 5년 후 매출 500억엔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사내에서는 “전기 업체인 소니가 부동산 사업에 왜 뛰어드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며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많다.
주식시장의 반응도 현재는 냉소적이다. 경영 방침 설명회 이튿날에도 주가는 반응이 없었다. 올해 들어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소니의 투자 등급을 투기등급인 ‘Ba1’으로 강등시켰다. S&P도 ‘BBB-‘로 부정적으로 등급을 매겼다. 소니에 대한 평가가 점점 나빠지는 가운데 전망조차 어둡다. 소니의 한 중진 임원은 “10년 전에 비해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소니를 외면하고 있고, 기술력도 떨어졌다”고 털어놨다. 재건에 시간이 걸리면 걸릴수록 파도는 거세진다. 과감한 체제변화로 위기를 수습하고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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