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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갱님’ 양산하는 단통법 유감

‘호갱님’ 양산하는 단통법 유감

국회가 150일 만에 문을 열었습니다. 법안을 처리 못해 민생이 파탄 난다던 정치인들이 ‘이제 일 좀 하겠구나’ 싶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믿음이 안 갑니다. 민생을 위한다며 서둘러 통과시켰던 법안조차 뜯어보 니 엉망진창이었습니다. 10월 1일 시행된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이야기입니다.

단통법은 비싼 요금제를 몇 년 동안 약정해야 휴대전화를 싸게 살 수 있는 ‘호갱님(호구+고객님)’을 없애기 위한 법입니다. 정책적으로 휴대전화 가격과 통신요금을 떨어뜨릴 목적으로 만든 것이죠. 그런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단통법 3조 ‘지원금의 차별 지급 금지’ 조항을 보면 가입 유형과 요금제 등에 따라 지원금(보조금)이 달라져선 안 된다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법 시행령 3조는 법률안을 비웃는 듯 말을 바꿉니다. 법률에서 정한 ‘요금제에 따른 지원금 차별 금지’ 조항이 시행령에서는 엉뚱하게도 ‘동일 휴대전화에 대한 지원금 차별’로 의미를 바꿉니다. 그러고는 정부가 요금제·시장 상황에 따라 지원금 기준을 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시 말해, 정부와 업계가 협의만 하면 요금제에 따라 지원금을 차별 지급할 수 있도록 해준 겁니다. 시행령이 법률안을 무력화시킨 셈이죠.

부담은 모두 소비자에게 전가됩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1인당 평균 보조금액(지난해 5~10월 기준)은 SK텔레콤이 42만 원, KT가 43만 원, LGU+가 38만 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단 통법 시행령에 따라 정부가 결정할 수 있는 보조금 상한선은 25만~35만 원입니다. 보조금이 줄었으니 휴대전화 구입 비용은 더 늘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요금제별로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니 보조금을 최대한 받으려면 월 9만 원 이상짜리 요금제를 2년 이상 써야 합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일까요? 국회에서도 이런 내용을 잘 알고 있더군요.

그래서 시행 첫날부터 단통법 재개정안을 주물러 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개정의 대상이 수상합니다. 시행령이 아니라 법률입니다. 이동통신사와 휴대전화 제조사, 정부가 합의한 시행령에 법률을 맞춰주자는 겁니다. 일부 ‘호갱님’을 없애겠다던 민생법안이 전 국민을 ‘호갱님’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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