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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에 다가오는 ‘금주령’의 그림자

한국 대학에 다가오는 ‘금주령’의 그림자

대학 축제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술을 마시는 기간이다.

금주법의 역사는 길다. 문헌상 가장 오래된 금주령은 기원전 21세기 경 중국 하나라 우왕이 내렸다. 기원전 1700년 즈음 제정됐다고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에도 주류 매매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저 옛날 어느 한 때의 법은 아니다. 조선 영조는 사치를 막는다는 이유로 금주법을 시행했다. 미국은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초까지 금주법을 도입했으며, 비슷한 시기 러시아도 마찬 가지였다. 오늘날엔 일부 이슬람권 국가에서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금주법이 거론된다. 대상은 공공장소다. 여기엔 대학교 정도 해당된다.

대학 내 음주 금지법은 2012년 9월 처음 거론됐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에 ‘공공장소 음주 제한’이 포함됐는데, 여기서 대학이 중·고등학교, 청소년수련시설, 병원 등과 함께 공공장소로 지정됐다. 이에 따르면 대학 교정 내에서 주류 판매 및 음주가 모두 금지된다. 대학 내에서 열리는 행사의 경우 학교장의 허가 하에 10일 동안만 주류 판매와 음주가 가능하다. 이를 위반하면 최대 1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당시 이 개정안은 부처 간 이견과 대학생 반발 탓에 국회로 넘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2014년 6 월 공공장소 음주 제한이 포함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국회에 다시 제출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학생들의 반발을 고려해 ‘교내 행사가 있을 경우 학교장 허가 하에 10일 이내로 음주가 가능’하다는 예외조항도 신설했다. 이 계획은 세월호 문제로 국회가 마비돼 있어 아직 실현되지 못했지만 발의는 시간문제다.



심각한 대학생 음주 문제

건전한 음주문화를 조성하려는 절주동아리가 전국 대학으로 확산된다

임종규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장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청년기 시절부터 좀 건전한 생활습관을 형성하자”는 것이 교내 음주 금지의 취지라고 밝혔다. “대학은 학문의 자유를 추구하는 곳”인데 “남들이 학문하는 데 술을 먹고 방해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임 국장은 말했다. 즉 큰 틀에서 공공장소 음주 제한은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것이며, 교내 음주 금지는 거기에 건전한 면학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이유가 더해진 셈이다.

대학 내 음주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한국 음주문화연구센터가 2010년 4 월에 발표한 ‘전국 대학생 음주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대학생 4016명 중 83%가 일반적인 대학생의 음주에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교직원의 경우 음주에 문제가 있다고 답한 비율은 95.2%에 달했다. 전체 63개 대학 중 약 50% 정도에 소란, 기물파괴, 교통사고, 폭행 등 음주로 인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대학생이 일반 성인보다 더 자주, 더 많이 술을 마신다는 사실이다. 대학생의 월간음주율이 85.4%로 성인(75.6%)보다 높았다. 음주빈도, 음주량 조사에서도 대학생 쪽이 더 높다고 나타났다. 1회 음주에 1~4잔 마신다고 응답한 구간에선 성인이, 5~10 잔 마신다고 응답한 구간에선 대학생이 10%p 이상 높았다. 2014년 초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대학생의 취업스트레스와 중독행동의 관계’ 연구보고서는 전국 14개 대학 446명의 63.5%가 ‘음주 위험수준’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천성수 삼육대 보건관리학과 교수는 언론 기고문을 통해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생 4명 가운데 3명가량이 폭음자로 분류되며 그중 절반이 상습폭음자”라고 밝히며 “미국 대학생의 약 2배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천 교수는 “학내 음주를 선택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그로 인한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고자 하는 권리, 그리고 건강과 생명을 지키려는 선택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며 “캠퍼스에서 음주를 금지하는 것은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대학 캠퍼스와 공공장소에서의 음주 금지 조처는 대학생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특별히 존중해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학 내 음주로 인한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방송업계에 종사하는 류정한 씨는 2004년부터 약 7년 동안 건국대 자율순찰조직 규찰대에서 활동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는 규찰대장을 맡아 야간 방범을 총괄하기도 했다. 류 씨는 “학교에서 음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교내에서 폭음을 하기보다 학교 근처에서 마시고 교내로 들어와 음주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고 시기도 주로 축제, 개강 전후, 시험 후 등으로 한정된다. 음주 문제는 주로 학교 내 호수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폭력이나 기물파손 등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만약의 경우엔 학교가 고용한 사설방범업체가 나선다.” 또 류씨는 “밤에 학교에서 술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은 극히 일부”라고 말하며 “그 일부를 막자고 음주를 전면 금지한다는 건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음주 문화 개선이 시급해

성인들의 음주문화는 대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학 내 음주 금지 조치에 의문을 제기한다. 김승수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BACCHUS) 사무국장은 “실제 대학생의 음주를 줄이는데 기여하는 바는 미미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평일에 과도하게 술을 먹는 사례는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주로 신입생 환영회, 체육대회, 축제 등 행사 중의 음주인데 개정안에 따르면 이런 경우는 예외조항이다.” 실제 법을 시행한다 해도 누가 감시할 것인지, 벌금은 누가 물릴지도 문제라고 김 국장은 지적했다. “학생들의 심각한 음주 문제는 교내보다 교외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대학 내 주류 반입이 금지된 신학대학에서조차 교외에서 술을 마시고 교내로 들어가는 일이 많다. 학생들이 가방에 술을 넣고 다닌다고 해서 가방을 검사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김 국장은 대학생의 음주문제를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주 문제가 대학만의 문제인 듯 보는 것은 너무 편협하다고 본다. 축제 기간에 보면 대학생들의 술자리는 기성세대의 술판과 흡사하다. 마치 야시장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다. 폭탄주는 기본이고 성적 묘사, 싸움 등 어른들이 술자리에서 벌이는 모든 것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성인들이 그 문화를 유지하는 한 학생들도 이를 유사하게 이어갈 수밖에 없다.” 김 국장이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대학생들의 음주 문제가 비단 대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은 다른 곳에서도 나온다. 정군기 홍익대 교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특유의 우리나라 음주가무 문화가 대학 사회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해마다 대학 축제를 보면서 ‘왜 이럴까’ 생각한다. 3, 40년 전 우리가 대학 다닐 때와 똑같다.” 정명숙 고구려대 사회복지과 교수는 “가족 구성원의 음주 문제나 부모의 음주 태도 등은 학생들의 음주 행동에 큰 영향을 준다”며 학생의 음주문제를 교정하려면 가족의 참여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어려서부터 가족 내 성인을 통해 습득하는 음주 습관이 대학생이 됐을 때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들의 분석은 성인에서 학생으로 끊임없이 전해지는 기형적 음주문화의 맥을 끊는 것이 대학 내 음주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김 국장은 “만약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음주문화가 전통으로 형성돼 있었다면 지금의 음주문화가 이렇게 기형적으로 고착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적으로 많이 마시는 대신 질적으로 잘 마시는 음주문화를 만드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접근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대학 구성원과 학교측이 문제 개선에 합의하고 스스로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정해야 한다.”

그런 모습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각 대학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절주동아리다. 절주동아리는 대학 내 건전한 음주문화 정착을 목표로 절주 캠페인, 주류 판매 현황조사 등 다양한 대외활동을 벌인다. 2005년 일부 대학의 절주캠페인에서 시작해 2007년 전국 15개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절주동아리가 설립되기 시작했고, 현재 전국 60여 개 대학으로 확산됐다.

대학보건협회가 이들 동아리에 활동비를 일부 지급하고 사업을 지원하며 조별 과제를 부여하는 등 운영을 돕는다. 대학 내부에서 자정활동을 일으켜 음주문제를 줄이려는 시도다. 성다현 이화여대 절주동아리 HE WA 공동회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래 “적정 음주량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밝혔다. 절주동아리가 이름 그대로 대학 내 음주를 아예 절연하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양찬모 경희대 절주동아리 ‘경희주도’ 부회장은 세계 맥주 블로그를 직접 운영할 정도로 맥주를 좋아한다. ‘경희주도’에서 활동하는 박윤지 씨는 “스스로 주량을 알고 즐길 수 있는 만큼만 건전하게 마시자는 운동”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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