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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자들이 이룬 코뮌

자본주의자들이 이룬 코뮌

미국의 거대 부동산 기업인 보스턴 프로퍼티스(Boston Properties)의 모트 저커맨(Mort Zuckerman·78) 회장은 뉴욕과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등의 대도시에 시가 196억 달러(약 19조 6000억원)에 달하는 고급 오피스 빌딩들을 보유하고 있다.

2013년 6월 어느 날이었다. 그는 아담 노이만(Adam Neumann·34)과 그의 동업자 미구엘 맥켈비(Miguel McKelvey)가 성장시킨 부동산 임대사업체 위워크(WeWork)를 소개 받아 둘러보게 됐다. 노이만은 이스라엘 출신으로 해군장교로 전역했다. 그는 뉴욕 소호에 위치한 위워크 두 번째 사무소 엘리베이터 앞에서 저커맨을 기다리고 있었다. “뻔하지. 사무실 임대 사업 좀 해보려는 애송이야” 저커맨은 이렇게 혼잣말을 했던 자신을 기억한다. 저커맨과 만난 노이만은 자신의 사업모델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낮은 가격에 건물 한두개 층 전체를 임대하고 이를 작은 공간으로 나눠 벤처회사나 소규모 기업에 월세로 임대해주는 방식이었다.

노이만은 저커맨에게 3530㎡ 면적의 위워크 사무실을 보여줬다. 유리벽으로 구획된 작은 사무실에는 청년 벤처 사업가들로 꽉 차 있었다. 커피 라운지는 해피아워 시간이면 청년 벤처사업가들이 함께 모여 맥주와 와인을 마시는 공간으로 변했다. 회의실은 화상회의 장비로 가득 차 있었으며, 사무실 관리자들은 미소를 지으며 배달소포를 처리하거나 무료 커피, 레이저 프린터 관련 사무용품을 채워 넣고 있었다. “대기자 명단이 길어서 입주하려면 수개월 넘게 기다려야 한다”고 노이만이 말했다. 지난해만 7개 도시의 새로운 건물 12개에서 이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갔다.

저커맨의 기분은 달아올랐다. 뉴욕의 파크 애비뉴에 있는 보스턴 프로퍼티스 건물의 세입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니즈를 가진 업체가 수십 개나 몰려 있었다. 이 벤처회사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가 든든한 방어막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에 소속되길 원했다. “새로운 기업문화가 시작됐다는 걸 노이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고 저커맨은 말했다. “업계에서 까마득한 세월(공식적으로 50년 남짓)을 일한 내가 보기에도 대단히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사업이었다.”

저커맨은 노이만을 점심식사에 초대했다. 그리고 다음 점심에 또 초대했다. 4번째 만남을 가질 때쯤 저커맨은 다음 투자금을 모집할 때 자신이 위워크의 개인 투자자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저커맨의 첫 투어 이후 2년이 지난 올해는 보스턴 프로퍼티스가 공동 소유한 브루클린 네이비 야드의 3억 달러짜리 재개발 건물 1만8580㎡ 면적에 위워크가 대표 임차인 자격으로 들어설 예정이다. 샌프란시스코 건물에서도 동일한 파트너십을 맺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고, 보스턴에도 위워크가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올해 말이면 위워크 회원 수는 1만4000명에서 4만6000명으로 3배 이상 증가할 것이다. 2013년만 해도 9개였던 사무실은 현재 21개이고 올해말에는 60개로 늘어날 예정이다. 4년 전 뉴욕 소호에 문을 연 278㎡ 첫 사무실의 경우, 마룻바닥이 삐걱거리는 상태였고, 창업자들이 직접 벽을 청소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위워크는 뉴욕의 신규 오피스 시장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임차인이 됐다. 오스틴, 시카고 등의 다른 도시로 사업을 확장하게 될 올해는 미국 전역을 통틀어 최고로 빨리 성장하는 임차기업이 될 전망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런던, 암스테르담, 텔아비브에도 위워크 사무실이 문을 열 예정이다.
 위워크 장점은 ‘커뮤니티’ 형성
위워크는 올해 매출을 4억 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2월 JP모건은 (비공개로) 무려 1억5000만 달러를 하버드 코퍼레이션, 저커맨, 벤치마크 캐피탈과 함께 위워크에 투자했다. 위워크의 가치를 15억 달러로 평가 하고 내린 투자 결정이었다. 창업자들은 올해 다시 투자금을 모집하게 된다면 기업가치가 60억 달러는 족히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각각 20%의 지분을 갖고 있는 노이만과 맥켈비는 서류상 엄청난 주식부자가 된다.

위워크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사무실 공유 트렌드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는 5900개의 공유 사무실 임대업체가 있다. 공유 사무실 트렌드를 분석하는 데스크매그닷컴(Deskmag.com)에 따르면, 6년 전에는 공유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의 수가 전 세계를 통틀어 1만 명 미만이었지만, 현재는 26만 명에 달한다. 틈새업체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라인드(Grind)는 연속 벤처 창업자나 전문직 사업가를 위한 사무공간을 제공한다. 헤라 허브(Hera Hub)는 캘리포니아에서만 여성 기업가 전용 사무실을 3곳에서 제공한다. “사람들은 답답하거나 지루하지 않은 사무 공간을 원한다.” 공간을 최대한 유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무공간을 제공하는 임대업체 브리더(Breather)의 줄리엔 스미스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브리더는 바쁘게 돌아다니다 사무실에 잠깐만 들르는 사람들을 위해 시간 단위로 임대를 해준다.

위워크 회원들은 ㎡당 임대료가 지나치게 높다는 사실을 흔쾌히 인정한다. 사무책상 1개의 월 사용료는 350달러이고 5.9㎡ 사무실 월세는 1인당 650달러다. 그러나 가장 최근 개장한 위워크 런던 사우스엔드 사무실은 개장 때부터 이미 80% 분양을 달성했고, 2개월이 지나자 다른 사무실과 마찬가지로 100% 가까운 임대율을 기록했다. 이는 보안이나 리셉션, 초고속 인터넷, 인쇄비 등의 잡다한 서비스 비용을 계산했을 때 세입자가 매달 수백 달러의 돈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워크의 진정한 특혜는 바로 내 사무실 바로 옆에 만들어질 ‘커뮤니티’다. 위워커(WeWorker)들은 매주 베이글과 칵테일 파티를 통해 인연을 맺어간다. 파티에 오면 회사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줄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찾을 수 있고,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표할 수도 있다. 사무시간에는 광고대행사 등의 외부 파트너로부터 무료 자문을 받을 수도 있다. 회원들의 열렬한 반응 속에 비공식적 계약을 체결하거나 일자리를 알선하는 경우도 있다.

페이스북과 구글을 비롯한 다른 실리콘밸리 기업에서도 넓은 사무공간에 직원들을 몰아넣는 방식을 수년 전부터 애용해왔다. 위워크는 대기업도 이런 흐름에 합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일례로, 펩시코(PepsiCo)는 2011년 위워크 소호 건물에 사무실을 열고 직원을 파견했다. 펩시코는 직원들이 다른 중소 입주기업에 자문을 제공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보다 큰 그림을 위한 헌신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위워크 공동창업자 맥켈비는 말했다.

공유 사무실이 지역 경제에 가져오는 이점을 잘 알고 있는 시정부는 매우 적극적이다. 에드 리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위워크가 어두침침하고 허름한 텐더로인(Tenderloin) 지구에 사무실을 열자 그곳에 입주한 업체 직원의 안전을 위해 경찰 순찰노선을 새롭게 변경했다. 람 엠마누엘 시카고 시장은 미공개 자전거 도로 계획과 벤처회사를 위한 다른 프로젝트를 노이만에게 직접 설명하며 웨스트 루프(West Loop)에 위워크를 유치하기 위한 설득에 나섰다. 마틴 J. 왈쉬 뉴보스턴 시장은 취임 이후 첫 대중연설 장소 중 하나로 위워크 신규 사무실을 고르기도 했다. “혁신 경제는 보스턴에 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위워크가 내세운 새로운 방식을 많은 사람이 보게 될수록 창업 활동도 활발해지리라 생각된다”고 왈쉬는 말했다.

“위워크는 동전의 양면을 모두 충족시킨다”고 JP 모건 체이스 부회장인 제임스 리는 말했다. “벤처 지원기관에도 청년 사업가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이들은 자신의 사업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행하고 싶어한다. 위워크는 이들에게 머물 장소를 주고 ‘여기 있어주면 좋겠다. 우리가 당신의 성장을 돕겠다’고 말해준다.”

노이만과 맥켈비는 지금도 신입사원을 뽑을 때면 직접 면접을 본다. 위워크를 단순한 부동산 사업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힘을 진심으로 믿는 이들은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노이만과 맥켈비는 둘다 아버지 없이 각자의 ‘코뮌’에서 자라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이만은 의사였던 이스라엘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어머니가 인디애나폴리스 병원 레지던트로 일하던 2년간 영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이후 모자는 이스라엘로 돌아와 가자지구 근처 니림 키부츠에 둥지를 틀었다.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기숙사 공동생활을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와 여동생 아디는 힘들게 공동체 생활을 배워나갔다. 키부츠에서 단단한 결속을 맺고 있던 아이들은 수개월간 노이만 가족과 어울리지 않았다. “어떻게든 나의 소속집단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가장 들어가기 힘든 그룹 이었다”고 노이만은 말했다.

난독증이 심했고 다른 사람에게 흥미가 없었던 노이만은 뛰어난 윈드서퍼가 되어 학교에서 허락하지 않은 과외활동을 조직하면서 아이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어 병역의 의무를 이행할 때가 되자 그는 엘리트 집단인 해군 장교학교에 지원했다. 그러나 수천 명의 지원후보 중 그는 몸놀림이 가장 둔한 편에 속했다. 다른 지원자들은 수주에 걸친 체험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팀을 만드는 미션이 주어지자 노이만이 앞에 나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600명의 합격자를 호명했을 때 노이만은 가장 나중에 불린 이름 중 하나였지만 5년 뒤에는 3등으로 성공적인 군복무를 마쳤다.

위워크의 공동창업자 맥켈비가 자란 곳은 오리건주 유진(Eugene)이다. 5명의 어머니가 모여서 만든 공동체에서 6명의 아이 중 하나로 보살핌을 받았다. 행복한 어린 시절이었고, 사람들은 정원을 가꾸거나 정부가 준 식량배급표로 생계를 이어갔다. “가난한 어린 시절이었지만, 당시에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맥켈비의 공동체 ‘누이’ 치아 오키프(Chia O’Keefe)는 말했다. 위워크 초창기부터 함께 한 그녀는 현재 혁신 총괄직을 맡고 있다. 맥켈비는 재능 있는 학생이었지만 학교에서는 쉽게 지루함을 느꼈다. 1980년대에 그는 침울한 고향 도시에 서 텅 빈 가게나 문 닫힌 건물을 되살려낼 방법을 상상하곤 했다. 오레곤 대학에서 농구선수 생활을 하며 건축학사 학위를 딴 그는 1990년대 닷컴붐에 뛰어들어 일본과 영국 사람들을 펜팔로 연결시켜주는 웹사이트를 열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브루클린 건축회사에 취직했다.
 맥켈비와 노이만의 운명적 만남
그 사이 노이만은 ‘미스 틴 이스라엘’에 뽑힐 정도로 재원이었던 동생 아디를 따라 뉴욕으로 왔다. 아디는 모델이 되고자 했다. 이후 5년간 노이만은 아디의 집에서 함께 머물며 뉴욕시립대학 바루 칼리지(Baruch College)에서 경영학을 수강하고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동생의 수입을 관리했다. 벤처사업을 여러 번 시도했는데, 무릎 보호대가 들어간 아기용 멜빵바지는 대실패였지만 아동용 고급의류를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에그 베이비(Egg Baby)는 꽤 괜찮은 성공을 거두었다.

맥켈비와 노이만은 파티에서 만나 친구가 됐다. 노이만은 맥켈비에게 자신의 새로운 사무공간을 설계해 달라고 부탁했다. 맥켈비는 사무실을 브루클린 덤보(Dumbo)로 옮기라고 그를 설득했다. 공유 사무공간을 제공하면 좋겠다는 ‘감’을 잡은 건 2008년 1월이었다. 건물주인 조슈아 구트맨이 길 아래쪽에 위치한 빈 건물을 노이만에게 보여줬다. 그는 5000 평방피트의 건물 각 층을 평방피트당 1달러에 임대해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이만은 “나한테 더 좋은 생각이 있다. 한 층 전체를 우리한테 임대해달라. 15개 사무실로 공간을 쪼개서 각 사무실당 월세 1000달러를 받으면 층당 매달 1만 5000달러의 돈을 벌 수 있다. 건물주에 7500달러, 리셉션 담당자한테 2500달러를 지불하고 남은 수익은 우리가 갖겠다”고 제안했다.

노이만은 그날 오후 맥켈비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얘기했다. 올빼미 타입인 맥켈비는 다음 날 아침 사업 이름과 로고를 정하고 웹사이트를 구축해서 나타났다. 처음 지은 이름은 그린 데스크(Green Desk)였다. 자유무역 커피와 청정세제를 사용하는 친환경 사무실 컨셉이었다. “우리가 보기에 다른 임대 사무공간들은 아주 형편 없었다.” 구트맨도 결국 제안에 동의했다. 대신 조건 하나가 붙었다. 한 층이 아니라 모든 층에 같은 임대방식을 적용해 운영비를 더 감축하라는 조건이었다.

노이만은 그린 데스크 사업을 구축하는 와중에도 에그베이비를 계속 운영했다. 맥켈비는 직장을 그만두고 영화제작자로 있는 노이만의 부인 레베카 펠트로 노이만(배우 기네스 펠트로와 사촌 관계)과 함께 건물 리노베이션에 나섰다. 주말이면 그는 지프 차량을 몰고 이케아로 가서 사무실 책상을 만들 수 있는 원목판을 잔뜩 사가지고 왔다. 그런데 2008년 첫 입주 날짜가 다가왔을 때, 금융위기로 경제가 주저앉았다. “이 사업은 실패할 게 분명해. 불경기에는 사람들이 임대를 하지 않는다네’라고 구트맨이 말했다”고 노이만은 설명했다.

그런데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크레이그리스트에 7개 광고를 내고 입소문을 퍼뜨렸을 뿐인데 사모펀드 투자사 부터 고다미스트(Gothamist) 블로그 웹사이트까지 다양한 업체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그린 데스크는 지금의 위워크 보다 시가총액 20억에 달하는 리저스(Regus)처럼 중역을 위한 고급사무실 임대업체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다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공동 공간도 없었고, 창업주들이 좋아했을 프로그래밍 회의실도 없었다. “그때는 글로벌 브랜드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고 노이만은 말했다. 이를 위해선 사무실마다 특색에 맞는 차별화된 구조를 가지고 여러 이벤트나 편의시설에 훨씬 더 많은 예산을 지출해야 했다. 노이만에 따르면, 구트맨은 다른 곳에서 이미 검증된 모델을 브루클린에도 그대로 적용하길 원했다. 그 결과 지금은 7곳에서 같은 모델의 사무실이 운영되고 있다. 다만 노이만이나 맥켈비가 함께하지 않을 뿐이다.

둘은 구트맨에게 300만 달러에 그린 데스크를 매각했다. 초기 현금으로 30만 달러를 받았고, 향후 2년간 단계적으로 돈을 받으며 필요한데 사용했다. 한꺼번에 받은 매각대금은 소호 건물에 코뮌 개념의 사무실을 열기 위한 보증금으로 사용했다. 나머지 돈은 신용카드 대출과 친구들에게 받은 투자금을 긁어 모아 충당했다. “내 아파트에서 2주간 지내다 가라”는 초청과 함께 무료 항공권을 받은 아담의 이스라엘 친구들은 신나서 왔다가 어느 순간 석고판이나 판재를 옮기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됐다. “잔뜩 들떠서 왔는데 일주일 중 7일을 일하다 갔다”고 노이만이 말했다.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난 2010년 2월, 처음 순수익을 내기 시작한 위워크는 이후 기세를 멈춘 적이 없다. 이후 초기 투자자인 부동산 개발업자 잭 슈라이버(Jack Schreiber)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건물 건너편에 페르시아계 삼형제가 소유한 저렴한 사무공간을 찾아냈다. 그 곳을 임대하려면 100만 달러를 지불해야 했는데 위워크에게는 그런 돈이 없었다. 슈라이버는 노이만에게 뉴욕에 살고 있는 형제 중 한 명의 마음을 사면 해외에 있는 가족들이 알아내기 전 형제의 허락을 받을 수 있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소호에 있는 위워크 라운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들떠 있었다”고 노이만은 회상했다. 이스라엘 출신 사업가와 이란인 건물주는 수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위스키 반 병을 함께 해치웠다. 그는 끊긴 필름과 서명한 계약서를 남기고 떠났다. 노이만은 다음 날 그가 돌아와서 가족이 자신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을 예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형제들로부터 ‘페르시아 남자들은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 한 마디로 상황은 해결됐다. 위워크는 29일 만에 한 층의 준비를 마쳤다.
 지나친 확장 전략은 최대 리스크
2012년에는 3개 사무실이 더 개장했고, 그 때쯤 되자 벤치마크 캐피탈이 위워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언론 보도를 좋아하지 않는 벤처투자사 ‘벤치마크 캐피탈’은 이베이와 트위터, 우버를 선택해낸 안목을 가지고 있다. 부동산 개발사업에 투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벤치마크 캐피탈의 설립 파트너 브루스 던레비(Bruce Dunlevie)는 위워크가 왜 그렇게 특별한 지 확인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오기도했다. “1997년 이베이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났다”고 던레비는 말했다.

“무언가 특별한 조짐이 느껴졌지만, 그게 뭔지는 정확히 콕 집어 설명할 수 없었다.” 당시 벤치마크가 주도한 투자금 모집에서 1억 달러로 평가 받았던 위워크 기업가치는 투자은행 제프리스(Jefferies)가 합류한 2013년 4억5000만 달러까지 치솟았다고 노이만은 말했다. 이 때 JP모건은 투자기회를 고사했지만 이후 입장을 바꾸었다.

물론 위워크보다 좋은 혜택을 주는 일은 가능하다. 조슈아 애브람과 앨런 뮤레이가 공동 소유한 뉴욕의 노이에 하우스(NeueHouse)는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위워크의 경쟁자다. 이들은 입주업체를 위한 작은 방송 스튜디오를 마련해 놓고 뉴욕에 카페를 두고 있으며 로스앤젤레스에 새로 열게 될 사무실에는 서비스를 완비한 레스토랑까지 열 예정이다. 그러나 2020년까지 사무실 20개를 개장할 노이에하우스의 성장 속도는 의도적이긴 하지만 훨씬 느리다. 반면, 위워크는 빠르게 몸집을 불리고 있다.

위워크는 신규 건물이나 새롭게 재단장한 구역, 혹은 빈곤지역에 사무실을 여는 걸 선호한다. 이런 곳에서는 위워크가 10%의 할인을 받아서 대표 임차업체로 들어서는 계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사에 더 유리한 조건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위워크가 건물에 들어서면 근처 층이나 다른 건물의 가치가 함께 올라가는 장점이 있다.

위워크의 최대 리스크는 사업의 지나친 확장 가능성이라는데 창업진과 투자자는 동의한다. 지금은 관리가 가능한 규모라서 브랜드 가치와 높은 고객서비스를 유지하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커뮤니티 매니저의 무능, 지나친 자동화로 인한 서비스 저하, 엘리베이터 고장 등이 발생한다면 무료로 도넛을 나눠주는 것만으로는 결코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코치(Coach)전임 CEO를 정식 고문으로 고용해서 급성장 속에서도 기업문화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창업자들이 직접 배우는 중이다. 모건스 호텔그룹의 CEO였던 마이클 그로스를 CFO로 영입해서 예산을 벗어나지 않고 시설에 너무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으면서 세련되고 쾌적한 분위기를 만드는 노하우를 배우고 있다. 그러나 위워크가 미국 25개 대도시와 유럽 십수 개 대도시에 사무실을 다 열고 나면 신시내티나 브뤼허 등의 소도시까지 사업을 확장할 지에 대해서는 이들도 알지 못한다.

언젠가 오게 될 부동산 침체기를 살아남을 수 있을 지 의심하는 실리콘밸리 투자자들도 있다. 임대료가 한창 높았을 때 건물주들과 장기임대계약을 체결한 위워크는 평방피트당 높은 임대료를 세입자에게 적용한다. 한 투자자는 위워크 기업가치가 높게 책정됐기 때문이라기보다 불경기나 저렴한 경쟁기업의 출현으로 세입자들이 물밀 듯이 빠져 나갈까봐 위워크 투자기회를 그냥 넘겼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이만은 전에도 이런 우려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린 데스크를 통해 그는 기업의 예산이 부족할 때가 되면 공유 사무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함을 직접 경험했다. 위워크가 건물주와 체결한 임대계약의 경우 임대세가 사상 최저를 기록하지만 않는다면 뉴욕 등의 대도시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라고 노이만은 말했다. 설사 임대세가 사상 최저수준으로 떨어진다 하더라도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유입과 자기자본이 수백만 달러로 충분하니 월세를 올리지 않더라도 불경기를 버틸 수 있다고 노이만은 주장했다.

위워크의 회원 기반은 제법 안정되어 있고, 매출의 28%는 소기업이 차지한다. 이들은 덩치가 큰 다른 기업들이 독립 사무실을 차려서 나가거나 위워크의 새로운 사무실로 더 큰 공간을 세내어 나가면 이들의 자리로 업그레이드해서 옮겨간다. “위워크에 있으면 훨씬 많은 사업기회를 누리기 때문에 월세를 2배로 올려도 경쟁업체보다 앞서 나갈 수 있다”고 위워크 원더브레드 사무실에 입주한 광고 에이전시 브릴리언트 콜라보레이션의 CEO 조나단 스몰리가 말했다.

노이만과 맥켈비는 의료보험이나 회계, 법무, 클라우드 컴퓨팅 등의 서비스를 입주기업에 제공하면서 매출을 창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입주업체는 위워크가 트라이넷(TriNet)을 통해 제공하는 건강보험으로 매달 200달러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아마존 웹서비스의 경우 첫 1년간 웹호스팅 비용을 5000달러 할인해준다.

위워크도 올해는 새로운 투자금 모집이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의 식량배급표로 음식을 구매하며 자라난 맥켈비는 인생을 바꿔줄 수도 있는 IPO를 고려하기도 했다.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엄청난 재산이 현금으로 바뀌게 된다면 아이티 같은 개도국에 위워크 비영리 사무실을 열어 경제성장을 지원하는 게 맥켈비의 꿈이다. 그러나 미래 계획에서 맥켈비는 노이만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 노이만은 테슬라(Tesla) 전기차와 스페이스X 로켓을 만든 엘론 머스크(Elon Musk)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혹시 머스크와 다시 만나게 된다면 노이만은 우주에 위워크 사무실을 열겠다는 사업제안을 할 예정이다. “머스크가 화성에 사람들을 데리고 간다면 그 곳에 누구도 보지 못했던 커뮤니티를 구축할 것”이라고 노이만은 말했다. “끝내줄 것이다. 그냥 우리를 거기 데리고 가주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우리가 다 알아서 할 수 있다. 절대 그럴 거라 맹세한다.”

- ALEX KONRAD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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