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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전세대란 우려 - 3월부터 강남 4구 재건축 이주 줄 이어

커지는 전세대란 우려 - 3월부터 강남 4구 재건축 이주 줄 이어

지난해 12월 31일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한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2단지. 1월 12일부터 조합원들의 이주 예정일 조사가 진행 중이며 3월에 이주를 시작한다. / 사진:개포주공2단지 재건축조합 제공
#1. 1월 28일 서울 강동구의 대표적인 재건축 단지인 둔촌동 주공아파트. 5930가구에 이르는 이 단지의 전체 전세 물량은 10여 가구에 불과했다. 지난해 12월 2억7000만원에 거래되던 둔촌주공3단지 99㎡형(이하 전용면적)의 지금 시세는 3억원 선이다. 한 달 새 3000만원가량 올랐다. 인근 뉴롯데공인 김복희 사장은 “인근 고덕동에서 이사를 오려는 세입자들이 늘어나면서 전세 물건이 3~4주 전부터 확 빠졌다”며 “전세를 얻으려면 일단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2. 서울 개포동 주공2단지에 전세로 살고 있는 이모(42·여)씨는 요즘 마음이 편치 않다. 최근 집주인한테 “3월 초부터 재건축 이주가 시작되니 그 전까지 집을 비워달라”는 얘길 전해 들어서다. 이씨는 “수시로 전세를 알아보고 있지만 주변에 마땅한 집이 없다”며 “중학생 아들 때문에 동네를 떠날 수도 없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강남 4구(강남·강동·서초·송파) 재건축 이주에 따른 전세대란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이들 지역의 재건축 단지 주민들이 줄줄이 이주를 시작하면서 주변 아파트는 물론 다세대·다가구주택 전셋값까지 들썩이고 있다. 전세 물건도 크게 줄어 전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형국이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 주공4단지(410가구)는 지난해 12월 말 이주를 시작했고, 인근 주공2단지(2600가구)도 3월부터 이주 한다. 명일동 삼익그린1차(1560가구)도 최근 재건축사업의 마지막 단계인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아 3월 이주를 시작할 계획이다. 강동구에서만 올 상반기에 4500여 가구가 집을 비우는 셈이다. 강남구에서는 개포동 주공2단지(1400가구)가 3월 이주를 시작하는 데 이어 개포시영(1980가구)과 개포주공3단지(1160가구)가 이주를 앞두고 있다. 서초구에서도 서초 한양 (456가구)·반포한양(372가구)·잠원 신반포5차(555가구)가 상반기 내 이주 계획을 잡고 있다.
 개포지구 세입자 비율 80% 전후
강남권 재건축 단지 거주자는 대부분 세입자들이다. 특히 개포지구는 세입자 비율이 80% 전후일 정도로 높다. 이주가 임박한 단지 전셋값이 1억~2억원대로 저렴하면서 학군이 좋아 세입자들이 몰린 것이다. 고덕지구와 잠원지구 아파트들도 세입자 비율이 60~70% 선에 달한다. 이들이 재건축 단지 주변 아파트로 몰리면서 전셋값이 치솟고 있다. 사업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딘 고덕주공3단지 55㎡형 전셋값은 1억6000만~1억7000만원 선으로 한 달 새 4000만~5000만원 올랐다. 인근 강일동 고덕리 엔파크 1단지 59㎡형은 3억5000만~3억6000만원에 전세 매물이 나온다. 지난해 12월(2억8000만원 전후)보다 7000만원 정도 뛴 가격이다. 지난해 12월 4억1000만원 선이던 개포주공5단지 74㎡형도 현재 4억3000만원으로 2000만원 올랐다. 개포동 세방공인 전영준 사장은 “재건축 진행이 비교적 늦은 개포주공5~7단지에는 갑자기 수요가 몰리면서 전세 물건 자체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전세 아파트를 구하지 못한 세입자들은 다세대·빌라 등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돌려받은 전세보증금으로는 주택규모를 줄인다 해도 주변 아파트 전세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개 이주가 임박한 재건축 단지는 전셋값이 주변 시세 보다 저렴하다. 특히 고덕주공 2·4단지는 1억원 안팎으로, 서울시내 재건축 단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여기다 자녀들의 통학 때문에 살던 동네를 떠나기 어렵다는 점도 한 몫 한다. 고덕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이 동네 45㎡형 빌라 전셋값이 7000만~1억원 정도”라며 “최근 수요가 몰려 쓸 만한 전세 물건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강남·강동권에서 밀려난 ‘전세 난민’들은 수도권 외곽으로 이동하고 있다. 고덕동 럭키공인 김영실 사장은 “아파트를 고집하는 세입자들은 대출을 조금 끼고 경기도 하남·구리·남양주시로 많이 이사한다”고 말했다. 강남권에서는 송파구나 경기도 분당 일대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게 현지 부동산중개업소들의 귀띔이다. 이 때문에 최근 경기도 전셋값 상승폭이 가팔라졌다는 분석이다. KB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마지막 주 0.03%를 기록했던 경기도 전셋값 변동률은 올 들어 0.04%(1월 5일 기준)→0.04%(12일)→0.06%(19일)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당분간 강남 4구 재건축 이주가 꼬리를 물고 이어질 전망이라는 점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부터 2016년까지 2년간 강남 4구의 재건축 이주 예상 물량은 2만4000여 가구에 달한다. 구별로는 강남구 6960가구, 서초구 6245가구, 송파구 677가구, 강동구 1만32가구 등이다. 송파구는 가락시영아파트가 이주를 거의 마친 상태여서 이주 대기 물량이 비교적 적다. 재건축 이주 예정 단지가 잇따르는 데 반해 서울 지역 입주물량은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는 올해 서울에서 재건축 사업 등으로 5만3000가구가 멸실되는 반면 공급은 4만1000가구에 그쳐 1만2000가구의 주택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강남 4구는 멸실이 공급보다 1만6000가구 정도 많을 것으로 추정됐다.
 올해 서울의 공급 부족 1만2000가구
전문가들은 재건축 이주 수요에 비해 입주물량이 부족해 전세난이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한다. 우리은행 홍석민 부동산연구실장은 “대규모 전세 수요가 순차적으로 퍼져나가면서 강남권을 비롯해 주변 지역의 아파트·빌라 등 전셋값도 진정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주택정책개발센터 측은 “각 구청과 매달 관련 상황을 파악하고 주변 지역의 매물 정보 등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답했다. 강동구청의 경우 지난해 12월 말부터 상일동주민센터에서 전·월세 상담창구를 운영하고 있다. 구청 직원과 은행 직원 등이 매물 정보를 제공하고 전세자금 대출 관련 상담을 지원한다.

또 서울시는 재건축 아파트 이주 시기를 1년 이내에서 조정한다는 방안을 내놓은 상태지만, 이주 예정 단지가 워낙 많고 규모가 커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NH투자증권 김규정 부동산연구위원은 “서울시가 전세난 완화 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이전보다 조금 강화된 이주시기 조정 방안 뿐”이라며 “이 정도로는 수급 불균형에 따른 전세난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전세 세입자들이 내 집 마련으로 돌아서도록 금융 지원 등 환경을 마련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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