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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산업, 교외에서 도시로

실버산업, 교외에서 도시로

박동현 더클래식500 대표는 호텔업계에 33년 간 종사한 1세대 호텔리어다.
박동현 더클래식500 대표의 사무실은 일반적인 사장실과 너무나도 달랐다. 책상, 테이블, 선반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 신문과 책이 쌓여 있었다. 화려한 예술작품이나 상장 대신 전 직원의 사진과 명단, 대형 중국 지도가 한쪽 벽면을 가득 메웠다. 예상 밖의 광경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층층이 쌓인 책 더미 너머에 앉아 있던 박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옛날엔 (신문을) 많이 봤는데 요샌 꽤 줄었어요.” 놀란 내게 그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박 대표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더클래식500은 서울시 광진구에 위치한 복합주거문화공간이다. 복합상가와 펜타즈 호텔, 시니어 타운의 세 가지 사업군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2009년 6월 문을 연 시니어 타운이다. 전체 50층, 총 447 객실로 막대한 규모의 시니어 타운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보통 한적한 교외에 위치하는 여타 시니어 타운과 달리 더클래식500은 건국대 상권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박 대표를 만나기 전에 가장 궁금했던 것도 그 부분이었다. 번잡한 도시 한가운데에서 시니어 타운이 잘 운영될 수 있을까? 박 대표는 오히려 “도심에 위치한 덕분에 노인들이 더 좋아한다”며 “노인이라고 꼭 조용하고 한적한 곳만 선호하리라는 생각은 편견”이라고 강조했다. “전원형 시니어 타운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 노인은 교외보다 도시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주변에 번화가도 있고, 젊은이들도 있고, 대형 병원이 가까워 이용하기 편하고, 교통편이 좋아 자식들과 손주들을 자주 볼 수 있는 더클래식500의 입지 조건은 시니어 타운으로 아주 적합합니다.”

박 대표는 과거 전원형 시니어 타운 개발에도 관여한 적이 있다. 그가 신라호텔에 근무하던 때다. 그는 1982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타워호텔, 조선호텔, 도쿄호텔 등 33년째 호텔업계에 종사했다. 15년 전 삼성그룹이 경기도 용인에 고급형 시니어 타운 건립을 추진할 때 박 대표도 그 자리에 있었다. “은퇴한 뒤 여생을 쾌적한 자연속에서 보낸다는 콘셉트였죠. 당시 한발 앞서 시니어 타운 사업에 뛰어든 건 좋았는데, 정작 노인들은 주변에 온통 노인뿐인 환경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그쳤습니다.”

그런 경험은 박 대표가 2012년 도심형 시니어 타운 더클래식500의 대표로 취임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더클래식500은 개원 이래 계속해서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더클래식500에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박 대표는 흔쾌히 대표직을 받아들였다. “한국이 고령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시니어 사업이 활황을 맞이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판단은 맞아떨어졌다. 박 대표가 취임한 지 2년이 지난 2014년 더클래식500은 처음으로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2013년, 2014년엔 모든 객실이도 다 찰 정도로 영업이 잘 됐습니다. 지금도 계약이 다 됐고, 청약을 받는 중입니다.”

박 대표는 취임 후 고객의 욕구를 철저히 분석했다. 그 결과 24시간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진료 받을 수 있는 의료지원 체계를 확립하고, 매주 2회 설거지와 빨래를 대신 해주는 생활지원 서비스를 도입해 여성 입주 고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고객이 활발하게 사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각종 동호회와 학습 모임을 만든 것도 반응이 좋았다. 지난 1월엔 검도 동호회 소속 80대 노인들이 대한검도협회에 입단하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업의 특성을 분명히 정의하고, 그 특성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한 덕분에 영업이익 흑자라는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고 박 대표는 자평했다.

설립 6년만의 첫 흑자를 일궈냈지만 박 대표는 만족하지 않는다. 그의 포부는 “더클래식500을 시니어 업계의 삼성전자로 만드는 것”이다. “한국 산업은 20년 전만 해도 일본에 비하면 아기 수준이었습니다. 소니, 파나소닉, 샤프 같은 전자 업체를 이긴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죠. 그런데 그것이 이뤄졌습니다. 삼성전자가 소니를 제쳤고, 조선과 석유화학 부문에서도 한국이 일본을 앞섰습니다.” 삼성전자처럼 전 세계를 선도하는 한국 업체를 시니어 산업에서 한번 만들어보자는 것이 박 대표의 바람이다.

박 대표는 그 첫 무대로 중국을 택했다. 그의 사무실 벽에 커다란 중국 지도가 붙어 있는 이유다. 더클래식500은 지난해 9월 건국대 병원, 중국 푸싱그룹과 함께 베이징에 최고급 의료복합시설 건립 사업을 위한 3자 협약을 체결했다. 푸싱그룹은 부동산, 의료, 관광, 교육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전개하며 2013년 기준 총 자산 31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그룹이다. 더클래식500의 시니어 산업 노하우와 체계적인 운영 방식을 높이 평가한 푸싱그룹이 먼저 협력의 손길을 내밀었다. “중국도 고령화 속도가 아주 빨라지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도 의료산업을 국가적 과제로 선정해서 적극 독려하고 있죠. 이런 추세에 맞춰 푸싱그룹도 시니어 산업에 무척 관심이 많습니다. 베이징을 시작으로 중국 전역에 100곳 정도의 시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시니어 산업 성장은 비단 박 대표의 이익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한국이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일본을 따라잡았듯, 지금은 중국이 무섭게 한국을 따라오고 있다”고 박 대표는 분석했다. “중국은 산업 발전에 필요한 자본, 사람, 기술을 다 갖췄습니다. 중국이 못 따라오는 게 바로 의료 분야입니다. 한국에선 우수한 인재들이 의사를 많이 지망하고, 의사에 대한 사회적 처우도 좋아 의학 수준이 높은 편이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박 대표는 얼마 전에 만난 하얼빈공대 관계자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하얼빈에만 서울의 두 배가 넘는 4만5000개 병상이 있는데, 그 규모에 비해 의료 수준이 낮아 고급 의료 시설을 유치하길 원한다는 것이다.

중국엔 어마어마한 수요가 있다. 그 수요를 더클래식500이 독차지하는 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박 대표는 생각한다. “더클래식500 같은 도심형 시니어 타운이 많이 생겨야 합니다. 대기업에서도 적극 참여해야 하고요. 지금 한국 호텔 산업은 거의 한계에 달했습니다. 점유율이 떨어지고 매출이 나오지 않으니 고급 호텔 브랜드가 중저가 시장으로 진출하는데, 그보단 고령화 추세에 맞춰 시니어 산업을 해야 합니다.” 대기업이 들어와서 경쟁했으면 좋겠다니, 경쟁은 피곤한 일이 아닌가? 박 대표는 특유의 호탕한 어조로 답했다. “물론 피곤하지만, 여러 곳이 생겨서 경쟁해야 사람들의 인식도 좋아지고 서비스 질도 개선되죠. 그게 경제 발전의 기본 아닐까요?”

물론 박 대표는 경쟁에서 쉽게 밀려날 생각은 없다. 지난달 더클래식500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IT기술 공동연구 협약을 맺었다. 모바일 헬스케어, 원격 진료 시스템 등 첨단 의료 기술을 함께 연구하자는 내용이다. “사물인터넷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시스템을 개발 중입니다. 예를 들어 슬리퍼만 신어도 그 환자의 건강 상태가 자동으로 우리 시설 내 간호사들과 건국대 병원에 전송된다는 겁니다. 지금은 시스템 도입을 준비 중인 단계입니다. 올해는 결과가 나오리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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