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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오션 품은 하림] 승자의 저주 파고도 넘을까

[팬오션 품은 하림] 승자의 저주 파고도 넘을까

축산업체 하림이 국내 최대 벌크선사 팬오션을 품에 안았다. 팬오션을 발판으로 국내 최초 글로벌 곡물메이저가 되겠다는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의 꿈이 담긴 승부수다. 하림이 ‘승자의 저주’를 피해 곡물메이저가 되려면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끝 모를 불황에 시달리는 해운 업황과 글로벌 곡물시장의 ‘카르텔’을 극복해야 한다. 최근 들어 벌크선 경기가 개선되고, 곡물시장 성장으로 신흥 곡물메이저가 등장하는 점은 하림에게 희망적이다. 과연 팬오션이 하림의 새로운 ‘날개’가 될 수 있을까.
2월 12일 하림·JKL컨소시엄이 팬오션 인수 본계약을 체결했다. 김유식 팬오션 부회장, 김홍국 하림 회장, 정장근 JKL파트너스 대표(왼쪽부터).
하림그룹이 해운업체 팬오션 인수를 사실상 확정 지었다. 6월 12일 서울중앙지법 파산부가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개최한 팬오션 관계인 집회에서 하림의 팬오션 인수를 전제로 마련된 변경회생계획안이 가결됐다. 인수 초기 ‘승자의 저주’ 논란과 막판 감자를 둘러싼 소액주주의 반발을 정면돌파 해서 얻은 결과다. 하림은 오는 8월 팬오션 주주총회, 이사진 구성 등을 거쳐 인수 절차를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1조 넘는 인수가에 하림 단독 입찰
팬오션은 2013년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매물로 나왔다. 지난해 초 삼일회계법인을 매각 주관사로 선정하며 본격적으로 인수 전의 막이 올랐다. 팬오션이 국내 최대 벌크선사라는 강점에다 지난해 3월 정부가 대량 화물 화주가 구조조정 중인 선사를 인수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면서 인수전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됐다. 여기에 법정관리 1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하며 몸값을 높인 상태였다. 이에 따라 해운사인 현대글로비스와 대형 화주인 포스코가 유력한 인수자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예상 입찰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현대글로비스와 포스코가 곧 팬오션 인수에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분위기가 냉각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해 11월 말 팬오션 매각 방식을 ‘8500억원(3억4000만주, 지분율 58%) 유상증자+회사채 발행’ 방식으로 결정했다. 입찰가로 최소 8500억원 이상을 써야 하는 것이다. 시장에선 증자를 포함한 입찰 가격이 1조원이 넘을 것으로 관측했다. 당초 시장에서 예상한 매매가격 6000억~7000억원을 훨씬 웃돌았다. 이로 인해 업계에서는 유찰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이때 하림이 업계 예상을 깨고 공격적으로 인수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사모펀드 운영사인 JKL파트너스를 재무적 투자자(FI)로 컨소시엄을 구성한 하림은 지난해 11월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고, 한 달 후 매각 본입찰에 단독 참여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앞서 예비 입찰에 뛰어든 삼라마이더스(SM)그룹의 대한해운컨소시엄과 도이치증권, 한국투자파트너스, 사모 투자펀드(PEF) 운용사인 콜버그크라비스로버츠(KKR)는 결국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듬해 2월 12일 하림·JKL 컨소시엄은 팬오션과 인수·합병(M&A) 본계약을 했다.

하림의 인수 소식에 일부에서는 재무 부담을 문제 삼았다. 대규모 M&A에 나섰다가 막대한 금융비용으로 낭패를 보게 되는 ‘승자의 저주’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하림이 써낸 인수금액은 1조79억5000만원. 이 중 JKL파트너스가 1700억원을 부담하고, 1579억5000만원은 팬오션이 회사채를 발행해 자체 조달한다. 하림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6800억원이다. 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으로 자금을 충당하더라도 자칫 그룹 전반에 재무적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하림은 “그룹 전체에 8000억원 정도의 현금성 자산이 있기 때문에 걱정할 만큼 부담이 크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또 “전혀 엉뚱한 분야로의 진출이 아니라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측면에서 승자의 저주가 아니라 새로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 기회로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곡물을 실어 나르는 벌크선 인프라를 갖춘 팬오션을 인수하면 운송 비용을 절감하고 유통망을 안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닭고기로 많이 알려진 하림의 주력은 사료사업이다. 전체 4조8000억원의 매출 중 사료 부문이 1조4000억원을 차지한다. 축산업(1조1000억원)보다 많다. 그런데 사료의 원료인 곡물은 95%를 수입에 의존한다. 게다가 소수 곡물 메이저가 곡물 운송 시장을 독과점 하고 있어 고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다. 하림은 “팬오션을 인수해 곡물 운송에 숨통이 트이면 원가를 줄이고 안정적인 추가 매출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25대 1 주식 감자안에 소액주주 반발
승자의 저주 논란을 조금씩 불식시키며 순항할 것만 같던 하림의 팬오션 인수는 막판에 또 다른 암초를 만났다. 소액주주들의 반발로 인수를 위한 변경회생계획안(회생안) 승인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쟁점은 회생채무 조기변제 할인율과 감자안이었다. 팬오션과 하림은 본계약 후 재무제표 실사 등을 거쳐 4월 21일 인수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은 회생안을 서울중앙지법 제4파산부에 제출했다. 그런데 소액주주들이 여기에 포함된 ‘1.25대 1 감자’와 ‘회생채권 변제에 따른 현가할인’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회생안 승인 반대에서 나선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하림이 2023년까지 갚아야 하는 팬오션의 회생채권 예상 금액은 1조1000억원 수준이다. 기존 회생계획에 따르면 10여년에 걸쳐 갚을 돈을 조기에 변제하더라도 할인율을 적용하지 않는다. 이에 하림은 채권단에 채권을 한 번에 갚는 조건으로 조기 변제에 따른 현가할인(18%)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출자전환 주식을 포함한 모든 주식에 대해 1.25대 1(20%) 감자를 하는 안을 회생안에 포함시켰다.

소액주주들은 이미 처음 회생 단계에서 주가 대비 60% 이상의 손실을 감수하고 채권금액의 67%를 주당 1만원으로 출자전환 받았기 때문에 또 다시 감자하면 손실이 늘어난다며 반발했다. 또 팬오션의 재무 안정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주주들의 이익을 희생시켜가며 감자할 필요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팬오션은 지난해 매출 1조6000억원, 영업이익 2158억원, 순이익 7886억원을 기록하며 흑자전환 했다. 올 1분기에도 매출 3878억원, 영업이익 589억원을 거뒀다. 3월말 현재 자산총계는 4조 3895억원으로 자본 1조4450억원, 부채 2조9395억원 등이며 부채비율은 203% 수준이다. 주주들은 이를 근거로 법원에 회생안의 회계상 오류를 지적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감자안 삭제, 조기변제 할인율을 18%에서 0%로 조정, 2500원으로 정한 하림의 유상증자 가격을 주당 3100원으로 600원 상향하는 조정안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하림은 “채권자가 권리의 일부를 포기하는 만큼 주주들의 권리도 축소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정관리 상태에서의 M&A에서 변제 우선 순위에 따라 주주는 채권자의 권리 감축보다 더 불리한 권리감축이 이뤄져야 한다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과 관련 판례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하림은 실사 과정에서 인수를 하려면 1.5대 1(33%)의 감자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지만, 일부 채권단과 주주들이 반발하자 법원이 1.25대 1(20%)로 중재안을 냈다. 채권단의 권리 감축률인 18%보다 2%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하림 관계자는 “소액 주주들의 피해를 고려해 감자비율을 최소화 한데다 법정관리 완료 후 주가 상승 전망을 고려하면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팬오션의 재무상황에 대해서도 “법원의 법정관리를 통해 일부 채무 유예가 이뤄진 것이지 채권단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흑자전환을 했다고 자력갱생이 가능하다고 보는 건 근시안적 판단”이라고 일축했다.
 소액주주 지분율 커져 막판 긴장
회생안은 관계인집회에서 채권자의 3분의 2, 주주 과반수의 동의를 얻으면 최종 승인이 난다. 팬오션의 회생안은 당초 주채권자이자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회생안을 받아들인 분위기여서 인수가 무난히 진행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막바지 이르러 회생안에 반대하는 소액주주들이 우호지분을 모아 팬오션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면서 변수가 생겼다.

팬오션 소액주주권리찾기 인터넷 카페는 관계인집회를 2주 앞둔 5월 29일 주주의결권 행사를 위해 4500만주에 달하는 지분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카페 회원 981명이 위임한 주식 2599만주, 카페 측이 우호세력으로 지목한 새마을금고·농협·신협 등 기관 주식 1200만주, 직접 신고 추정 분 200만주 등을 합한 양이다. 이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관계인집회 참석을 신고한 총 주식 수 1억5000만주의 절반 가량이다. 소액주주들이 산업은행의 지분 2788만주를 제치고 최대 의결권을 갖는 셈이다.

따라서 이들이 관계인 집회에서 반대에 나설 경우 주주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해 회생안이 부결될 가능성이 생겼다. 소액주주들의 반대로 관계인 집회에서 변경 회생안이 부결되더라도 팬오션이 법원에 강제인가를 신청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변경회생계획은 확정된다. 하지만 이 같은 시나리오대로 되지 않을 경우 팬오션 인수가 무효화될 수도 있다. 하림은 감자안이 삭제되거나 조기변제 할인율이 조정될 경우 인수를 포기한다는 방침을 밝혀 팬오션의 매각이 백지화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그러나 막상 투표 결과는 싱거웠다. 6월 12일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개최한 팬오션 관계인집회에서 1.25대 1주식 감자안을 포함한 팬오션 회생안은 채권단 87%, 주주 61.6%의 동의를 얻어 가결됐다. 소액주주들의 강한 반발이 예상됐으나 실제로는 가결 조건인 주주 2분의 1이상의 동의를 쉽게 얻은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은행·우정사업본부 등이 참여한 채권단의 3분의 2이상도 동의했다. 하림은 이보다 앞선 6월9일 팬오션 인수대금 1조79억5000만원을 전액 납입했다. 이로써 하림의 팬오션 인수가 사실상 확정됐다. 7~8월 인수단 파견 등 남은 인수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한편, 이번 인수 성공으로 하림은 내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대기업집단에 편입될 전망이다. 하림의 현재 자산 총액은 4조8000억원. 팬오션은 지난해 12월 말 현재 부채 3조 444억원, 자본 1조3950억원 등 총 4조4394억원의 자산을 갖고 있다. 팬오션을 인수하면 하림 자산 규모는 9조원을 웃돌게된다. 공정위는 매년 4월 자산총액이 5조원 이상인 대기업집단을 새로 지정해 발표한다. 대기업집단으로 분류되면 계열사 간 상호출자와 채무보증 등이 금지되고 공시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으로서 공식 인정을 받게 된다. 닭고기 가공업체로 출발한 하림그룹이 ‘재벌’이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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