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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골드러시’

21세기 ‘골드러시’

2012년 크리스마스 직후 알래스카만에 강풍이 몰아쳤다. 76m 높이의 거대한 원유시추선 쿨룩이 메트로놈처럼 좌우로 흔들렸다. 시추선을 끄는 예인선도 15m 높이의 파도에 휩쓸려 속절없이 출렁거릴 뿐이었다. 디젤 엔진 4개가 완전히 해수에 잠겼다. 기간 선원 18명이 탄 시추선은 보초도 쪽으로 떠밀려 갔다. 바위에 부닥칠 경우 두 동강 나면서 엄청난 디젤 연료와 위험 물질이 유출될 상황이었다.

다행히 해안경비대 구조헬기가 도착해 선원을 대피시켰다. 시추선은 며칠 뒤 보초도에 좌초했지만 파손되진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환경 재앙을 피했다. 선원도 전원 무사히 구조됐다.

예견된 사고였다. 그 몇 달 전 환경단체는 쿨룩을 소유한 다국적 석유기업 로열 더치 셸 측에 북극해 시추에 나서면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셸이 북극해의 혹독한 기상 조건을 잘 모른다는 지적이었다.

셸은 이번 달 북극해 시추에 다시 도전한다. 성공한다면 지구의 마지막 남은 미개척지 중 하나인 이곳에서 개발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미국은 다른 북극권 나라에 비해 늦게 북극해의 골드러시에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환경단체가 우려하듯이 다시 사고가 발생하면 앞으로 수 년 동안 미국의 북극해 개발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북극권의 면적은 4000만㎢. 지구 표면의 8%를 차지한다. 북극권은 온난화가 여타 지역보다 2배나 빨리 진행된다. 그곳을 뒤덮은 얼음이 녹으면 이 지역은 21세기의 ‘와일드 웨스트(Wild West, 미국 개척시대 무법이 판치던 서부 지역)’가 될 위험이 크다. 지구 꼭대기에서 자원과 영향력을 둘러싸고 세계 열강들의 치열한 각축전이 예고되고 있다.
 극냉지에서 벌어지는 냉전
알래스카 북부의 송유관. 셸은 해저에서 퍼올린 석유를 운송해 기존 파이프라인과 연결하려면 알래스카 동토 지대에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건설해야 한다.
지난 5월 발표된 미국 외교협회(CFR) 보고서는 “세계 무대에서 북극권이 부상하고 있지만 기업이나 정부가 그에 따르는 위험을 적절히 관리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해군에 따르면 북극해의 얼음은 2050년 여름까지 완전히 사라질 전망이다. 선박이 북극 꼭대기를 통과할 수 있다는 뜻이다. 태평양, 베링해, 북극해의 해안선 7만㎞를 아우르는 985만㎢ 지역인 17구역에서 미국 해안경비대를 지휘하는 데니얼 애벌 소장은 새로 열린 바닷길이 미국의 안보와 재난 우려를 배가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1970년대 이래 너무나 많은 얼음이 사라져 “새로 개방된 해역이 미국 본토 면적의 45%에 해당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북극해의 미국 수역에는 수심이 깊은 심수항이 없다. 따라서 얼음이 녹으면서 긴급대응팀은 남쪽 기지에서 훨씬 멀리까지 출동해야 한다. 험난한 북극해에선 선박 침몰 위험이 매우 크다. 최근 미 해군은 이 해역에서 전쟁연습을 통해 선박을 납치한 테러단, 알래스카 북쪽에서 핵무기를 탑재하고 이동하는 적국 선박, 대규모 원유 유출 등 머지않아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계획을 세웠다.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과거 차단됐던 무역로가 열리고 새로운 천연자원 매장지 접근이 가능해졌다. 막대한 이익이 걸린 문제다. 북극권 국가들은 현재의 평화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동시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목적으로 군사력 강화에 나섰다. 러시아가 가장 적극적이다. 지난 3월 러시아군은 병력 3만8000명, 선박 50척, 항공기 110대 이상을 동원해 북극해에서 대규모 훈련을 실시했다. CFR 보고서는 “러시아가 북극권 군사력 증강을 전략적 우선 목표로 지정하면서 옛 소련 시절 비행장과 항구를 복구하고 그곳으로 해군 자산을 옮긴다”고 지적했다. 최근 러시아의 장거리 폭격기가 알래스카 근해의 미국 영공 부근에서 기동훈련을 재개했다. 냉전 후 처음이다.

북극해의 얼음이 녹으면서 지구 꼭대기에서 자원과 영향력을 둘러싸고 세계 열강들의 치열한 각축전이 예고된다.
각국 해군과 선박회사는 북극해 해빙으로 열리는 지름길 무역로에 눈독을 들인다. 북대서양에서 아시아의 북해안을 따라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러시아의 북동항로에선 2007년 여름 얼음이 사라졌다.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거리를 30%나 단축해 연료를 절약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동시에 해적이 횡행하는 아프리카 해역을 피할 수 있다. 2009년 그 신항로를 운행한 화물선은 5척이었지만 2013년엔 71척으로 늘어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알래스카와 러시아 사이의 베링 해협이 제2의 수에즈 운하가 되길 기대한다. 미국 해군은 그곳을 ‘베링게이트’로 부른다.

새로운 형태의 지정학적 냉전이 시작됐다. 이 전쟁에서 미국이 약세에 처했다. 미국 해안경비대의 폴 F 주쿤프트 대장은 “지금으로선 우리가 러시아의 수준에 크게 미달한다”고 말했다. 북극권에선 여름철에도 수색·구조, 예인, 연구를 위해 이동하려면 쇄빙선이 필요하다. 미국이 보유한 쇄빙선은 겨우 2척이다. 둘 다 낡았지만 “새 쇄빙선을 구입할 예산이 없다”고 미국 북극연구위원회의 프랜 울머 회장이 말했다. “1척 가격이 10억 달러가 넘고 건조에도 몇 년이 걸린다.” 그에 비해 러시아는 쇄빙선 27척을 보유한다. 또 북극권 국가는 아니지만 대망을 꿈꾸는 중국도 내년까지 2척을 보유할 계획이다.

유람선도 북극해 미국 수역의 항해를 시작했다. 이전엔 얼음으로 덮였던 북서항로를 이용한다. 알래스카와 캐나다 북부를 통과하는 1450㎞ 항로다. 서방 탐험가들이 수 세기 동안 찾으려 했던 유럽-아시아 사이의 지름길이다. 그곳은 오랫동안 선박의 묘지였다. 배는 얼음에 파손됐고 선원은 기아와 질병, 추위로 목숨을 잃었다. 비극적인 예로 1848년 북서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출발한 영국 해군 소속 탐험선 에러버스와 자매선 테러가 얼음에 갇혔다. 선원들은 배를 버리고 필사적으로 남쪽으로 향하다가 결국 식인 상태까지 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의 북서항로는 그때와 천양지차다. 독일 유람선이 정기적으로 그 항로를 통해 행락객을 실어 나른다. 내년엔 초대형 호화 유람선 크리스털 시레니티호가 승객 1000여 명을 태우고 알래스카 시워드에서 북서항로를 통과해 뉴욕까지 항해할 예정이다(1인 최저가가 2만1455달러). 민간 요트도 알래스카 북단의 배로곶 근해에 출현하기 시작했다. 해안경비대와 현지 주민도 통보 받지 못한 불청객이다. 그들은 미국의 다른 곳에 도착하는 국제 여행객과 달리 입국 심사 없이 미국 땅을 밟는다. 그중 1명은 “여권을 보여주거나 질문에 답할 필요 없이 그냥 배에서 내렸다”고 내게 말했다. 해안에서 공항까지 거리가 800m도 안 된다. 미국 운전면허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앵커리지로 간 뒤 다음 날 아무런 제재 없이 미국의 어디든 누빌 수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북극권 야망은 관광과 무역로 확보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그곳이 자원의 보고라고 믿는다. 북극해 아래 매장돼 있다고 추정되는 원유와 광물이 해저 ‘골드러시’를 촉발했다. 특히 러시아, 노르웨이, 그린란드, 캐나다 근해 해저에 매장된 탄화수소가 ‘새로운 황금’이다.

자국 연안에서 200해리까지의 모든 자원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배타적 경제수역에 따라 모든 북극해 연안국은 자국 대륙붕 아래의 광물을 채굴할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과학적 증거에 따라 자국 대륙붕의 연장으로 인정될 경우 추가로 200마일에 대한 권리를 더 주장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러시아와 노르웨이가 가장 먼저 그 권리를 주장했다.

유인 소형 잠수정을 북극해 바다로 내리는 러시아의 연구선 아카데믹 표도로프호. 이 잠수정은 4261m를 내려가 북극 밑 해저를 탐사했다.
미국도 비슷한 권리를 주장하려고 몇 년 전부터 매년 여름 국제 과학자들을 미국 쇄빙선 힐리호에 태우고 알래스카 북부 해저를 측정하고 샘플을 채취하고 있다. 잘만 되면 캘리포니아 2배 크기의 해저 지역을 새로 얻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다른 북극해 연안국과 달리 미국은 현재로선 그런 주장을 할 자격이 없다. UNCLOS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상원의 공화당이 수년 동안 UNCLOS 비준을 거부했다. 특히 그들은 심해 시추 감독권을 국제해저기구(ISA)에 부여한다는 조항에 반대한다. 국제기구가 감독권을 가지면 미국 주권이 침해당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이 가입할 경우 ISA 의사 결정에서 거부권을 가질 수 있다는 1994년의 수정협약에도 공화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2012년 UNCLOS 비준건이 다시 미국 상원에 회부됐을 때 공화당 상원의원 34명이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공언하면서 결국 표결도 못하고 무산됐다(비준은 3 분의 2 과반수 찬성이 필요하다).

수 년 동안 다른 나라가 북극권에 더욱 공격적으로 진출하는 것을 지켜본 미국이 마침내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지난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연방 기관들이 범국가적 북극 전략에 적극 협력하도록 행정명령을 내렸다. 또 북극해 시추를 감독하거나 승인하는 연방 기관들 사이의 협력도 강조했다.

지난 4월 미국은 북극권 8개국(미국·러시아·캐나다·노르웨이·덴마크·핀란드·스웨덴·아이슬란드)으로 구성된 북극이사회(Arctic Council)의 의장국이 됐다. 기후변화 문제와 석유·가스 등 자원개발, 북극항로 개척을 논의하는 정부간 협의체다. 지금까지 북극이사회 회원국들은 수색·구조 대응 규약과 해상 원유오염 대비에 합의했다.

그러나 미국 북극연구위원회의 울머 회장은 “다른 국가는 적극적인데 비해 미국은 예산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알래스카와 떨어져 있는 미국 본토의 48개 주는 미국을 북극해 국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예산 확보를 위해 대중의 지지를 얻기가 쉽지 않다.”

지난 5월 댄 설리번 상원의원(알래스카)은 국방장관이 북극권을 위한 군사계획을 세우도록 하는 국방수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설리번 의원은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과 전략을 실제로 강화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스노 글로브(원형 투명 용기의 안에 물을 채우고, 인형·건물 등의 축소 모델과 눈처럼 보이는 것을 넣어 흔들면 눈이 내리는 것 같은 풍경을 만드는 장식품) 증후군이다. 아래쪽 48개 주는 알래스카가 스노 글로브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보기엔 좋지만 진지하게 받아 들이지 않는다.”

물론 셸 같은 기업은 북극권을 아주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막대한 이권이 걸려 있는 데도 다른 기업은 아직 그 차가운 바다에 뛰어들 생각이 없다. 그들은 먼저 셸이 성공하는지 지켜 보려 한다. 석유회사 코노코필립스의 한 임원은 “셸이 경솔하게 뛰어들었다”고 내게 말했다. 만약 셸이 성공한다면 개발 열풍이 거세게 불면서 드디어 본토의 48개 주도 북극권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셸은 2008년 미국 정부에 20억 달러를 지불하고 버거 구역의 개발권을 매입했다. 알래스카 북부 드롱해협과 배로곶 사이의 추크치해 석유·천연가스 채굴권이다. 사실 셸은 1989∼1990년 임대료를 지불한 구역의 채굴권을 정부로부터 다시 매입했다. 이전 계약은 석유가 발견되지 않아 종료됐다. 다른 기업도 잇따라 실패했다. 1981∼2002년 북극해에서 유정 35개를 뚫었지만 석유는 나오지 않았다. 셸의 북극해 담당 수석부사장 앤 피커드는 “천연가스가 나왔지만 우린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포기했다.”

그러나 2008년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새로운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구상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유의 13%와 천연가스의 30%가 북극권 안에 있으며 대부분 해저에 매장됐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북극 대륙붕이 탐사되지 않은 최대 규모의 원유 매장지일 가능성이 크다.”

그때쯤 알래스카의 지상 원유 매장지(한때 미국 수요의 25%를 공급했다)가 고갈되고 있었다. 파이프라인 운송량이 전성기의 3분의 1로 떨어졌다. 셸은 첨단 3D 지진파 촬영기술과 컴퓨터 모델링을 이용해 북극해의 과거 시추 지역을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셸이 얻은 결과는 USGS의 추정과 일치했다. 알래스카 인근의 추크치·보퍼트해 아래 270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됐다는 계산이 나왔다. 셸은 보퍼트해 구역 개발권을 8400만 달러에 사들였다.

그러나 미국에선 개발권을 매입해다고 해도 바로 시추를 시작할 수 없다. 셸은 미국 환경보호청(EPA), 내무부,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등 여러 규제기관에서 30건이 넘는 승인을 받아야 했다. 셸은 그 과정을 무난히 거쳤지만 전략적 실수를 범했다. 알래스카 북부에 사는 에스키모 이누피아트족과 협의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주식인 고래와 해양 포유류가 시추 작업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알래스카 북단 노스 슬로프의 시장을 지낸 에드워드 이타는 “우리에겐 바다가 논밭”이라고 말했다. “우리 DNA에는 자급자족 어업과 수렵채취가 있다. 그게 우리 정체성이다.”

노스 슬로프의 변호사들이 법적 투쟁에 나섰다. 곧 다른 에스키모와 환경단체가 합류했다. 그들은 셸을 법정에 출두시켜 보퍼트해 시추 계획이 해양 포유류에 해를 끼치고 대기·수중 오염물을 유출하는지 과학적인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원주민과 환경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셸은 시추 계획의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더 많은 환경단체가 개입하면서 소송이 증가했다. 연방 기관들이 소송을 우려하면서 승인 절차가 훨씬 까다로워졌다. 대기오염 방지 승인 신청서만 1400쪽에 이르렀다. 셸 직원들이 몇 달에 걸쳐 겨우 작성했다. 2012년까지 셸은 시추를 시작도 못한 상태에서 조사, 신청, 임대, 준비 등에 40억 달러를 지출했다.

셸이 시추 계획을 축소하고 포경 시즌엔 시추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이누피아트 팀이 소송을 취하했다. 그해 여름 셸은 시추를 시작했다. 포경 시즌을 피해 짧은 기간만 작업했다. 그러나 기대하던 원유 매장지를 찾지 못했다. 그 다음 시추선 쿨룩호가 보초도에 좌초하면서 셸은 다시 사업을 포기했다. 미국 연방정부는 쿨룩호 사고를 조사한 뒤 관리 부실과 기술 부족을 지적했다. 셸은 또 다시 계획을 수정했다.

마침내 지난 5월 11일 미국 내무부 산하 환경국은 셸의 시추 계획이 알래스카 북부 근해나 야생동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원유 유출을 신속히 막을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예인선 2대를 동원하며, 연방정부에서 파견된 감독관이 24시간 시추선에 상주한다는 조건으로 시추가 승인됐다. 아울러 셸은 해양 포유류에 미칠 수 있는 영향과 관련해 이누피아트 원로들과 계속 협의하며 2012년처럼 포경 시즌에는 시추를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전 세계가 셸을 주시한다
지난 5월 셸의 시추선이 정박한 미국 시애틀 항구에서 북극을 중심으로 한 지구 그림이 그려진 방수포를 들어 올리며 북극해 개발에 반대하는 시위대.
지난 6월 알래스카 알류샨열도의 항구도시 더치 하버에 셸의 선박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곧 시추선, 공급선, 쇄빙선, 예비용 탱커로 구성된 30척 선단이 알류샨열도를 지나 베링해협으로 항해할 예정이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거리가 약 65㎞밖에 되지 않는 곳이다. 오는 7월 말 이 선단은 추크치해에 도달할 예정이다. 그곳에서 셸 팀은 탐사 유정 2개를 뚫을 계획이다. 지금까지 셸은 북극해 프로젝트에 70억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아직 석유 한 방울도 구경하지 못했다.

피커드 부사장은 “이 지역이 멕시코만과 맞먹는 잠재력을 가졌다”고 말했다. “앞으로 하루 100만 배럴 이상 생산이 목표다.” 그러나 환경운동가들은 셸이 ‘검은 황금’을 발견하더라도 이 프로젝트가 재난으로 끝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비영리 환경법 전문단체 어스저스티스의 에릭 그레이프 변호사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얼음 위에서 원유 유출을 막거나 정화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최상의 준비를 갖춘 업체도 북극해의 조건을 감당하기 어렵다.” 지난 6월 초 어스저스티스와 환경단체들은 셸의 북극해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소송을 냈다.

에스키모 포경 선장들은 이 새 소송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지난 6월 알래스카 에스키모 포경위원회 회장 해리 브라우어는 북극권 북쪽 515㎞ 지점인 미국 최북단에 위치한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길 건너엔 추크치해의 검은 모래해변이 보였다. 봄 포경 시즌이 얼마 전 끝났다. 검은 바닷물과 하얀 얼음의 광경은 4000년 전 그의 조상이 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북극 수염고래가 최근 배로곶을 지나 캐나다 근해의 여름철 색이장(해양생물이 정착, 회유하면서 먹이를 찾고 섭취하는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브라우어 회장은 “답이 없는 의문이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시추 작업과 선박의 소음이 바다 동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석유가 유출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정화 기술로 감당할 수 없을 게 뻔하다. 유출된 석유 정화는 조용한 바다에서 실험된 것이다. 시속 64㎞의 바람과 높이 4m의 파도에 그런 기술이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피커드 부사장은 만약 셸이 올여름 석유를 찾는다고 해도 채굴 승인을 받으려면 모든 신청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저에서 퍼올린 석유를 운송해 기존 파이프라인과 연결하려면 알래스카 동토 지대에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건설해야 한다. 피커드 부사장은 “세계 최대규모의 환경영향 평가가 필요한 공사”라며 “빨라야 2025∼2030년에나 실제 원유 생산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장벽으로 셸은 여러 번 북극해 프로젝트를 포기하려 했다. “사업을 접기 직전까지 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의 자원을 개발하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가 할 것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버거 구역에서 성공한다면 북극해 전체가 개발 대상이 될 것이다.”

셸의 북극해 프로젝트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지구의 마지막 미개척지 중 하나에서 미국이 영향력을 유지하고, 상업적 기회를 활용하며, 환경 보호 과업을 잘 해나갈 수 있을지 결정될 것이다.

피커드 부사장은 알래스카 사업이 성공하든 못하든 이 일만 끝내면 은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상당한 부담감이 있다고 인정했다. “다른 북극권 국가들에 가면 그들은 ‘전 세계가 셸을 지켜본다’고 말한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어려워진다.’ 아무튼 올여름은 역사에 남을 순간이다. 역사적인 부담을 느낀다.”



[ 필자 밥 라이스는 ‘에스키모와 석유업자(The Eskimo and the Oil Man, 2012)’의 저자다.]- BOB REISS / 번역 이원기
 [박스기사] 초읽기에 들어간 셸의 시추


미국 정부, 북극해의 원유 유출 대비한 안전장치 확보 전제로 조건부 승인해지난 7월 22일 미국 정부는 알래스카 북쪽 추크치해에서 로열 더치 셸의 탐사용 원유 시추를 최종 승인했다.

미국 안전환경집행국(BSEE)은 셸의 유정 윗부분 시추는 허용하되 현장에 완벽한 안전장치를 갖추기 전까진 원유를 퍼올릴 수 있을 정도로 깊이 파지 못하도록 하는 마지막 2건의 허가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발표했다. 유정이 유출될 경우 사용할 덮개탑(capping stack)은 현재 쇄빙선 MSV 페니카에 실려 있다. 7월 초 그 배는 선체에 구멍이 난 것이 발견돼 수리를 위해 오리건주로 향하고 있다.

브라이언 살레르노 BSEE 국장은 성명서를 통해 “알래스카 연안에서 이뤄지는 시추 활동은 무엇보다 안전과 환경보호, 긴급대응에서 최고의 수준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필수적인 유정 관리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셸은 원유가 매장된 구역을 시추할 수 없다. 셸이 탐사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우리는 최고 수준의 안전과 환경보호를 보장하기 위해 하루 24시간 감시할 것이다.”

이 결정으로 환경단체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특히 셸의 선박들이 북극해로 가는 도중 시애틀항에 정박한 것에 수 개월 동안 카약을 타고 항의해온 ‘카약운동가’들에게 큰 타격이다.

미국 내무부 산하 해양에너지관리국(BOEM)은 올해 초 추크치해의 장기적인 시추가 향후 77년 안에 중대한 유출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을 75%로 추정했다(BOEM의 모델은 원유 생산 플랫폼 8개와 유정 500개라는 가정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했다). 추크치해의 개발이 상당히 진척되면 4만2000갤런 이상의 유출 사고가 1건 이상 발생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뜻이다.

미국 천연자원보호협의회의 ‘석유를 넘어서(Beyond Oil)’ 캠페인 책임자 프란츠 마츠너는 미국 정부의 셸 시추 승인 직후 발표한 성명서에서 “셸이든 누구든 북극해에서 시추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셸의 시추를 승인한 오바마 대통령의 잘못된 결정은 우리의 기후와 지구의 마지막 미오염 해양에 재앙을 가져오는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다행히도 셸이 북극해 원유의 상업적인 생산을 개시할 때까지는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 장기적으로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지금 북극해의 개발을 막아야 한다.”

현재로선 셸은 데이터를 얻기 위한 시추만 계획하고 있다. 탐사용 유정을 뚫어 데이터를 수집한 뒤 향후 생산용 유정을 어디에 몇 개나 뚫을 수 있을지 결정할 것이다.

2012년에도 미국 정부는 셸에 알래스카 북극해 시추를 승인했지만 시추선이 좌초하는 바람에 취소됐다. 당시 내무부의 사고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셸은 북극해의 험난한 환경에서 몇 가지 기초적인 조치도 제대로 취하지 않았다.

올해 초 백악관은 관련 기관의 최종 승인이 날 경우 셸의 북극해 시추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셸의 새로운 탐사계획을 검토한 결과 만족스런 수준이라고 결론지었다. — ZOË SCHL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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