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옷이 사람을 만든다

간수들은 많은 재소자가 제 사이즈보다 큰 신발을 끌고 다니며 생리대까지 훤히 비치는 죄수복을 입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속이 보치는 남자 죄수복은 (여성의) 자존감을 훼손한다”고 DOC 대변인 잭 포드는 솔트레이크 트리뷴 신문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래서 DOC는 변화를 주기로 결심했다. 여성 재소자에게 짙은 와인색 죄수복을 입히고 화장품 사용을 허가했으며 수감자가 립스틱과 섀도우, 블러쉬 색상을 선택하도록 했다. 시대착오적 성(性) 고정관념처럼 들릴 지 모르지만 효과가 나타났다. 징계가 필요한 문제 행동이 눈에 띄게 급감한 것이다. 새로운 죄수복 덕분에 여성 재소자는 스스로를 ‘죄수’보다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몸에 걸친 옷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다.
올해 초, 인지심리학자 에이브러함 러트칙은 외과 수술을 참관하다가 화장실에 갔다. 거울을 보며 손을 씻던 그의 눈에 응급실에 들어가기 위해 병원에서 빌려 입은 외과용 수술복이 들어왔다. “태어나서 그렇게 편안한 바지는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단순히 면의 감촉이 좋아서 신체적으로 편안했다는 뜻만은 아니었다. 수술복 자체가 마음을 편안하게 이완시켜 준 것이다. 궤변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그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를 이제 막 마무리했다. 지난해 러트칙은 의복이 착용자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규명하는 연구를 실시했다. 연구팀은 실험 참여자에게 값비싼 맞춤 정장을 입은 경우 다음 날 상금 20달러를 준다고 하면 오늘 12달러를 받지 않고 더 잘 참을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참여자의 추상적 정보처리 능력이 개선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양복 정장을 입은 사람은 CEO나 관리자가 보여줘야 하는 ‘큰 그림 보기’ 능력을 더 잘 발휘한다는 주장이다.
“정장을 입은 사람은 장기 계획을 더 잘한다”고 러트칙은 말했다. 반대로, 낮은 사회적 지위를 연상시키는 옷을 입으면 기본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기계적 사고’가 좋아졌다. 조직에서 중역이나 지도자는 파워 정장을 입고, 우편실 직원은 이름표가 붙은 유니폼을 입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조직에는 추상적 사고로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이를 현장에서 수행하는 사람이 각각 있어야 한다.”
러트칙은 ‘복식 효과(enclothed cognition)’라 불리는 새로운 연구분야의 선봉에 있다. 의복이 남녀의 행동을 좌우한다는 이론이다. 다시 말해 옷이 우리의 생각과 능력, 관계를 규정한다는 논리다. 입는 옷에 따라 우리는 자신감이 상승하거나 위축될 수 있고, 다정하거나 똑똑해질 수 있다. 정장과 외과 수술복 사이 어디 위치하냐에 따라 그 옷을 입은 사람은 법을 세울 수도, 위반할 수도 있다.
우리는 거의 모든 시간을 복식의 영향을 받는다. 옷을 입고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의복의 하위 집단 중 하나인 제복은 각종 사회·직업적 환경에서 우리의 사고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인의 35~40%는 일종의 유니폼을 입고 일한다(나머지 집단에 속하는 사람도 일터에 적합한 의복을 입고 출근해야 한다.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은행가가 슬리퍼를 신고 출근할 수 없는 노릇이다). 미국에서도 전체 학생의 23%가 교복을 입고 등교한다.
제도적 환경에서 제복을 도입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 효과를 본능적으로 안다는 걸 보여준다. “(제복을 입히려는 건) 이를 입는 사람의 행동 범위를 눈에 보이지 않게 통제하려는 노력 중 하나”라고 컬럼비아대학 애덤 갈린스키 사회심리학 교수는 말했다. “다시 말해 개개인의 개성을 몰살하고 모두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들려는 시도다.”
갈린스키 교수는 만화 ‘심슨 가족’ 에피소드 ‘호머팀’을 본 후 유니폼의 영향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 스프링필드 초등학교에서 교복 규정을 바꿔 학생들에게 상·하의 모두 회색으로 된 교복 ‘그라우트핏츠(groutfits)’를 입게 했다. “그러자 학생들의 넘치던 에너지가 사라졌다”고 갈린스키 교수는 말했다. 아이들은 술래잡기할 때도 상대의 팔을 잡고 “잡았다, 이제 네가 술래야”라고 힘없이 웅얼거렸다. 그런데 비가 내리고 교복의 잿빛이 씻겨 내려가자 알록달록 화려하게 염색된 진짜 천이 나왔고, 그걸 본 아이들은 신나게 뛰놀기 시작한다.

코넬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다 현재 스탠퍼드대학 커뮤니케이션 학부로 옮긴 제프리 T. 핸콕 교수도 비슷한 실험을 했다. 가상 현실게임 참여자에게 아바타를 배정해주고 게임하는 걸 지켜보는 실험이었다. 개별 아바타는 어두운 옷, KKK단과 비슷한 옷, 의사 가운, 투명한 가운 중 하나를 배정 받았다. 아바타가 KKK 옷이나 어두운 색의 옷을 입었을 때 참가자들은 잔인하게 굴거나 승부에 집착했고, 팀원을 배신하는 행동을 보다 쉽게 했다. 핸콕 교수는 참가자가 게임을 끝낸 후 무작위로 선정된 사진을 보여주고 글을 쓰게 했다. 이때 부정적 이미지의 옷을 입었던 참가자는 매정하고 못된 어투로 글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특정 역할을 부여하는 의복을 입으면, 어느 정도 그 역할을 수행한다”고 갈린스키 교수는 말했다.
가장 악명 높은 감옥 연구 중 하나를 생각해 보자. 1970년대 스탠퍼드대학 캠퍼스에서 일주일간 시행된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다. 이 실험은 변수를 몇 개만 추가하면 평범한 사람을 포악한 간수, 혹은 소심한 수감자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줬다. 실험에서 ‘간수’역을 맡은 참가자는 카키색 제복과 레이밴 선글래스를, ‘수감자’는 머리에 꽉 끼는 모자와 지나치게 큰 샌들, 보기 흉하고 촌스런 작업복을 건네 받았다.
배정해준 옷이 참가자에게 미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러트칙은 “간수복을 입으면 ‘간수처럼’, 죄수복을 입으면 ‘죄수처럼’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죄수복을 입은 참가자는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영국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수감자에게 죄수복을 입히지 않는다고 노팅엄 사법박물관 갤러리의 선임 큐레이터 베브 베이커는 말했다.
죄수복은 미국에서 특히 고정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미디어에서는 (철통 보안 혹은 이감 죄수가 주로 입는) 줄무늬 혹은 주황색 죄수복을 범죄 및 일탈 행동과 연관시켜 그려냈다. 이런 연상 작용은 현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용의자가 주황색 점프수트를 입고 재판을 받으면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연구 결과도 최근 발표됐다. 상대의 옷이 그가 세상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알려준다고 믿는 경우, 우리는 상대에게 고정관념을 갖고 굳이 더 알려 하지 않는다. 그럼 그 옷을 입은 사람 역시 결국에는 자신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게 된다.
죄수복이 수감자의 사회복귀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직장에서 유니폼을 입는 근로자는 직장을 벗어나면 자기 뜻대로 옷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죄수는 다르다. 이들은 하루 종일 같은 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 잠옷을 나눠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율권의 상실, 죄수라는 낙인은 죄수복을 바탕으로 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킨다. 언제나 줄무늬 죄수복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마음 속 줄무늬를 지울 수 없다. 죄수복을 입었을 때 생기는 수치심은 수감자의 자부심을 영원히 손상시키고, 복역을 마친 후 바깥 세상에 나왔을 때 적응이 어려워질 수 있다.
유타 교정국은 수감자가 느끼는 모욕감을 줄이기 위해 죄수복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여성 수감자가 자신을 사람이라 느끼고 자신에게도 가치가 있음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였다. 얼굴에 화장을 하는 건 사적인 행동이자 자율성의 회복이다. 억지로 죄수복을 입었다 하더라도 버건디색은 기존 죄수복이 지닌 수치스런 낙인을 갖고 있지 않다. 누군가 옷의 디자인을 바꿔줬다는 사실은 수감자가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유타 교정국의 새로운 죄수복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수감 시스템이 한걸음 진보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다른 교도소들은 지난 15년간 유타 교정국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옛날 줄무늬 죄수복을 다시 도입한 교도소가 많지는 않지만 분명 있다. 이들 시설의 담당관은 밝은 색 점프수트에 처벌적 의미가 충분치 담겨 있지 않다고 믿는다. 노스캐롤리이나 주 데이비슨 카운티의 제랄드 헤그 보안관은 대중이 “죄수복을 좋아한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2013년 첫 방송) 방영 이후 죄수복을 주황색에서 줄무늬로 바꾼 교도소장도 있다. 그는 드라마 방영 이후 수감자 사이에서 주황색 죄수복이 ‘쿨’하다는 인식이 퍼져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USA 투데이에 말했다. 애리조나 주 마리코파 카운티의 악명 높은 보안관 조 알파이오는 최악의 감옥으로 손꼽히는 피닉스 ‘텐트 시티’ 재소자에게 형광 핑크색 속옷을 입도록 강요했다. 워싱턴 이그재미너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시큰둥한 말투로 “왜 그들이 좋아하는 색을 입혀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지금과 같은 변화가 생기기 이전인 21세기 초에는 미 교도소에서 불필요한 편의를 모두 없애자는 운동이 있었다. 처벌로 범죄를 억제한다는 원칙에 따라 재소자에게는 “스스로 노력해서 얻지 않은” 불필요한 편안함을 절대 제공해선 안 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이런 철학이 시대에 뒤떨어진 데다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추세는 지금이라도 하나씩 변화시킬 수 있다. 의복 효과의 원칙에 따라 새롭게 디자인된 죄수복은 줄무늬 죄수복의 인간성 말살 효과를 완화시키는 역할 이상을 할 수도 있다. 죄수복으로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창의력과 지능, 자존감을 배가시켜서 궁극적으로 재소자가 바깥 세상에서 정상적 삶을 살아가도록 해준다. 유니폼을 통해 이루려는 목적이 이것인지는 교도소나 기업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 수지 닐슨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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