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심각한 뇌 손상을 입고 재활 훈련을 받은 환자 68%가 의식 되찾고 21%는 스스로 생활할 정도로 회복돼 심각한 뇌 손상을 입은 환자 가운데 3분의 2는 부상 때문이 아니라 연명치료 중단으로 사망한다.2006년 5월 매기 워슨(22)은 스미스칼리지 졸업을 일주일 앞두고 뇌졸중을 일으켰다. 기숙사 바닥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 그녀를 반 친구가 발견했다.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CT촬영 결과 워슨의 뇌졸중은 기저동맥의 혈전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기저동맥은 산소가 풍부한 피를 뇌에서 중요 역할을 하는 뇌줄기(brainstem)에 공급하는 혈관이다. 인근 병원의 신경외과의가 그 혈전을 제거하고 혈액의 흐름을 복구하기까지 꼬박 12시간이 걸렸다. 그 뒤로 매기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기능하지 못하는 뇌 대신 산소 호흡기가 그녀의 생명을 붙들고 있었다.
매기의 어머니 낸시 워슨은 “의사가 이런 종류의 뇌졸중을 겪고도 살아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며 “만약 혼수상태가 며칠 동안 계속되면 더 이상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이 거의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낸시는 매기의 예후가 좋지 않자 끔찍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한 의사는 매기의 산소 호흡기를 제거하라고 조언했다. 또 다른 의사는 음식물 공급을 중단하고 매기의 호흡을 돕는 기관 절개술도 포기할 것을 권했다. 장기기증 조직이 매기의 장기이식 동의서에 확인을 받기 위해 낸시를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매기가 회복하리라는 믿음 하나로 그 모든 것을 거부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지 2주가 지나자 매기는 스스로 호흡할 수 있게 됐다. 2주가 더 지난 뒤엔 뇌 재활 시설로 보내질 만큼 건강을 회복했다. 재활 시설에서 매기는 집중적인 물리 치료, 언어 치료를 매일 받았다. 그녀는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에 앉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말을 하지 않고 외부로 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못하자 그녀는 식물인간이란 진단을 받았다. 식물인간은 보험 적용의 대상이 되지 않아 더 이상 재활 치료에 보험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매기는 인근 요양시설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낸시는 매기의 행동을 보며 그녀의 상태가 점점 나아진다고 믿기 시작했다. 매기는 남자친구의 농담에 웃었고, 감동적인 시를 크게 읽어주면 눈물을 흘렸다. “매기는 당시 그녀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할 만큼 반응을 보였다”고 낸시는 말했다. 문제는 그런 행동이 지속적이지도 않고 가족 외엔 아무도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누가 시킨다고 하는 게 아니다”라고 낸시는 말했다. “매기를 돌보는 의료진 대부분은 내가 아이의 상태를 부정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매기의 식물인간 진단에 의문을 제기한 의사가 한 명 있었다. 그는 매기를 뉴욕시의 웨일코넬 의과대학으로 옮기도록 주선했다. 그곳에서 매기는 심각하게 손상된 뇌를 연구하는 임상실험에 등록했다. 의사들은 뇌 활동을 검사하는 최첨단 영상 기기를 준비하고 매기에게 간단한 질문을 몇 가지 던졌다. 결과는 의심의 여지 없이 매기에게 의식이 있음을 보여줬다. 한 의사는 매기에게 안구 움직임을 통해 질문에 대답하도록 요청했다. 낸시는 “의사들이 매기에게 대답이 ‘그렇다’면 아래를 보고 ‘아니다’면 위를 보라고 했다”고 알려줬다. “그들이 매기에게 ‘엄마가 방에 있느냐’고 묻자 매기는 분명히 아래를 봤다. 틀림없었다.”
매기는 식물인간 대신 ‘최소 의식 상태’라는 판정을 받고 다시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녀는 안구 움직임으로 컴퓨터 커서를 움직여 단어를 선택하고 미리 정해진 문장을 골라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익혔다. 비록 매기는 지난해 8월 폐렴으로 31세의 나이에 숨졌지만, 죽기 수년 전부터는 평범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매기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삶을 되찾기 위해 분투했다”고 낸시는 말했다.
웨일코넬 의과대학의 조셉 핀스 의료윤리학과장은 매기와 같은 사례가 뇌를 심각하게 손상당한 사람들을 어떻게 진단하고 돌봐야 할지에 대한 골치아픈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했다. “매기 같은 환자들은 종종 오진을 받고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 기회가 완전히 차단된 시설로 옮겨진다.” 핀스 과장에 따르면 심각한 뇌 손상을 입고 재활 훈련을 받은 환자 68%가 의식을 되찾았으며 21%는 스스로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됐다.
핀스 과장은 낸시를 포함해 산소 부족이나 뇌 손상 등으로 심각한 의식 장애를 겪은 환자의 가족 50여 명을 만났다. 핀스 과장에 따르면 거의 모든 환자 가족들은 환자를 포기하고 연명치료 중지나 장기기증 동의 등 “성급한” 결정을 내리라는 요구를 받는다. 한 연구에 따르면 심각한 뇌 손상으로 캐나다 병원에 후송된 환자 가운데 3분의 1은 72시간 내에 사망한다. 그중 3분의 2는 부상이 아니라 연명치료 중지로 사망한다. 핀스 과장은 “너무 많은 사례가 의식불명이 곧 죽음이라는 가정 하에 성급하게 처리된다”며 “하지만 의식불명은 회복의 징조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벼운 뇌 손상은 혼란이나 방향감각 상실 등 비교적 작은 장애로 이어진다. 이와 달리 낸시가 겪었던 것과 같은 심각한 뇌 손상은 심각한 의식 장애나 뇌사를 유발할 수 있다. 심각한 뇌 손상을 겪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체로 혼수상태에서 시작해 짧은 의식불명 시기를 거친다. 그로부터 며칠에서 몇 주 사이에 일부는 사망하고, 일부는 의식을 되찾는다. 식물인간이라고 불리는 약간 다른 의식불명 상태로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핀스 과장은 식물인간 상태로 넘어가는 환자들은 깨어 있지만 외부 환경을 알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종종 눈을 뜨고 눈동자를 움직이지만 주변 사물과 상호작용을 할 능력은 없다”고 핀스 과자은 말했다. 식물인간 상태를 일시적으로 겪는 사람도 있지만, 회복의 가능성 없이 평생 그 단계에 머무르는 사람도 있다.
뇌 영상 촬영 기술은 오랜 기간 동안 신경학자들이 추정해왔던 것을 사실로 밝혀냈다. 식물인간 상태인 것처럼 보이는 환자 일부가 사실은 의식불명이었다가 아니기를 반복한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의식이 있다가 없기를 반복하는 상태를 ‘최소 의식 상태’라고 부른다. 이 상태에선 “질문에 대답하거나 자발적으로 말하고, 손짓을 하거나 사물을 향해 손을 뻗고, 사람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며칠이나 몇 주, 몇 달이 걸려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핀스 과장은 설명했다.
최소 의식 상태의 사람들은 그동안 회복 가능성이 없다고 여겨졌으나, 사실은 다양한 정도까지 회복이 가능하다. 극소수는 심지어 10년 이상이 지난 후에도 놀라운 회복세를 보이기도 한다. 테리 월리스(39)는 자동차 사고를 당해 최소 의식 상태에 빠진 지 20년 만에 “엄마”라고 말했다. 그날 이후 월리스는 움직이고 가족과 대화하는 능력을 회복했다. 불타는 지붕에 깔려서 뇌 손상을 입은 소방수 도널드 허버트는 사고 9년이 지나 우울증, 파킨슨병, 주의력결핍증후군 치료제를 섞은 약을 먹고 처음으로 말을 했다. 그는 14시간 동안 가족과 원활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다시 침묵에 빠졌다. 한 이탈리아 남자는 차 사고를 당해 최소 의식 상태에 빠진 지 2년 뒤 진정제를 먹고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약효가 가시기 전까지 간단한 문장을 읽고 이해할 수 있었으며 기초 수학 문제도 풀었다.
뇌 손상 환자들이 어떻게 때로 정신을 되찾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핀스 과장은 “그 환자들은 최소 의식 상태에서 회복 가능한 기간이 무한정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환자가 회복 가능성이 있는지를 미리 알기는 어렵지만 “그들은 우리가 알든 모르든 적어도 어느 한순간만큼은 정신을 차리고 주변 환경을 파악한다”고 핀스 과장은 말했다. 요양원이나 치료소의 환자 40%는 최소 의식 상태임에도 영구 식물인간으로 잘못 판정받는다.
웨일 코넬 의과대학의 신경학자 니콜라스 시프는 그렇게 잘못 판정받는 사람이 한 사람도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의식은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보다 더 끔찍한 상황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는 오진에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주된 원인은 관심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사회 전체가 그런 사람들을 포기한다. 누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그저 ‘저 사람은 벌써 죽었다’고 말하기가 쉽다.”
진단 도구 부족도 의식이 있는지 여부를 판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MRI와 CT촬영이 뇌 손상을 시각화해주긴 하지만 그런 기기들도 의식이 있는지를 파악하진 못한다”고 시프는 말했다. 의식 판정은 병상에서 환자의 자극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고, 위나 아래를 보거나 눈을 깜빡이라는 식의 지시를 해보면서 이뤄진다. 이런 지시는 설령 환자들이 의식이 있다고 해도 수행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의식이 있음을 보여주는 행동들이 종종 “단발적이고 반복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최소 의식 상태의 환자는 비전문가가 보기엔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와 구분하기 쉽지 않으며, 실험 한번으로 환자 상태를 파악하기는 더 어렵다. “만약 가족들이 환자의 움직임을 본다고 해도 의사들은 으레 가족들의 바람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시프는 말했다. 게다가 뇌 손상 환자들의 상태를 다시 판정할 정형화된 규정이 없어 환자들은 식물인간 판정을 받고 병원을 떠난 직후에 최소 의식 상태가 될 수도 있다.이제 상황이 바뀔지도 모른다. 신경 영상촬영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의사들은 기존 병상 실험에선 감지할 수 없었던 인지 과정을 탐지할 수 있게 됐다. 웨스턴온타리오대학의 신경학자 에이드리언 오웬은 신경 영상촬영 기술이 회복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는 식물인간으로 여겨지던 23세 여성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 장치에 넣고 테니스를 치는 자기 자신의 모습, 집으로 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지시했다. 건강한 성인이 테니스 치는 모습을 상상하면 뇌에서 운동을 관장하는 전운동 피질이 활성화되고, 집으로 갈 때는 방향감각을 맡는 해마옆이랑(parahippocampal gyrus)이 활성화된다.
불타는 지붕에 깔려 뇌 손상을 입은 소방수 도널드 허버트는 사고 9년이 지나 우울증, 파킨슨병 등 치료제를 섞은 약을 먹고 처음으로 말을 했다.오웬과 연구자들은 차에 두 번 치여서 다섯 달 동안 아무 반응이 없던 젊은 여성의 뇌 활동이 fMRI에 잡히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웬은 그 여성의 뇌 활동이 “건강한 사람의 뇌 활동과 거의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다른 여러 연구팀도 fMRI을 비롯한 영상 기술을 사용하면서 비슷한 성공을 거뒀다. 가장 전도가 유망한 기술은 두피에 직접 부착한 전극을 통해 뇌 활동을 측정하는 뇌전도(electroencephalogram)다. 뇌전도 측정은 병상 실험에선 탐지할 수 없었던 의식도 알아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뿐만 아니라 뇌전도 장비는 휴대가 간편하고 저렴하며 환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오웬은 뇌전도가 향후 폭넓게 이용되리라고 본다. 뇌 영상 촬영 기술은 의식이 없음을 증명하진 못하지만 의식이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는 있다. 이는 사람의 목숨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오웬은 fMRI를 이용해 환자 몇 명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뇌의 각기 다른 부분을 활성화하는 행동을 생각하라고 지시한 뒤 fMRI 촬영으로 이를 포착하는 방식이었다. 교통사고로 부상당한 한 벨기에 남자는 의식이 없어 보였지만, 그에게 질문을 던진 뒤 답변이 ‘그렇다’라면 테니스 치는 장면을 상상하고 ‘아니다’라면 집으로 걸어가는 장면을 생각하라고 지시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 방식은 생각만으로 조작 가능한 컴퓨터를 개발하는 데도 기초가 된다. 그 기술이 있다면 생각만으로도 항상 의사소통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지금 고통스러운지 등 당장 시급한 질문부터 물어보는 것이 먼저”라고 오웬은 말했다.
시프는 뇌 손상을 입은 환자들과 의사소통할 또 다른 길을 개척하고 있다. 의식과 수면을 담당하는 간뇌의 시상(thalamus)에 전극을 심어 자극을 줌으로써 뇌를 깨어나게 하는 치료법으로 파킨슨병 치료에도 흔히 쓰이는 방법이다. 그는 이 치료법으로 6년 동안 최소 의식 상태에 있던 38세 남성의 의식을 되살렸다. 치료 후 이 남성은 말하는 능력을 회복했고 스스로 식사도 할 수 있게 됐다. 시프는 “그의 뇌는 크게 손상되긴 했지만 일부 신경 회로는 아직 온전했다”며 “우리는 그 회로를 골라 전기 자극을 줘서 그것들이 다시 기능하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시프는 수면제로 주로 쓰이는 약품 졸피뎀으로 의식을 되살리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일부 뇌 손상 환자들에겐 진정제가 거꾸로 뇌를 자극하는 효과를 일으킨다. “꺼져 있는 뇌 회로의 스위치를 켜주는 자극을 일으킨다”고 시프는 설명했다. 그는 파킨슨병의 떨림 증세를 치료할 때 쓰이는 항바이러스제 아만타딘 역시 일부 환자들에게 비슷한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로선 병원에서 이런 치료를 받으려면 먼저 회복 가능성이 있다는 판정부터 받아야 한다.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받지 못한 사람이 아주 많다”고 시프는 말했다. “모든 환자는 똑같이 회복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하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아이미 스와츠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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