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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무대에 뛰어든 오페라 가수

정치 무대에 뛰어든 오페라 가수

조지아의 파타 브루클라제, 경제성장과 정치개혁·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총선 출사표 던져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서 주연으로 열연하는 파타 부르클라제.
뛰어난 슬라브계 베이스로 정평 난 파타 브루클라제는 그동안 오페라 무대에서 훈족의 왕 아틸라의 황금군단을 이끌고 전투를 벌였으며 불운한 러시아 황제를 폐위시키기도 했다. 이제 그는 오페라에서 벗어나 새 역할을 준비한다. 자신이 조국 조지아를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동포 다수도 그를 지지하고 나섰다.

그는 깊은 베이스 목소리로 “오페라 무대에서 필리포 2세부터 보리스 고두노프까지 황제나 정치인 등 권력자 역할을 수없이 맡았다”고 말했다. “정치에서도 무대에서처럼 갈채와 환호, 칭찬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브루클라제는 오는 10월로 예정된 조지아 총선에서 얼굴만 앞세운 조연 역할이 아니라 주연을 맡을지 모른다. 집권 여당인 ‘조지아의 꿈’과 중도 우파 야당 둘 다 지지도가 형편없는 상황에서 조지아 국민은 새로운 리더십을 찾고 있다. 그중 다수는 브루클라제가 바로 그 리더라고 생각한다.

미국 국제공화당연구소(IRI)의 조사에 따르면 브루클라제가 만든 신당 조지아개발기초당은 아직 공식 승인을 받지도 않았지만 지지도 3위를 달리며 일부 지역에선 2위를 넘본다. 브루클라제 자신도 호감도 75%를 기록하며 조지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브루클라제는 “예술도 그렇지만 정치도 거짓을 배격해야 한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오페라 가수로서 또는 정치인으로서 무대에서 진정성 있게 진심으로 생각을 표현한다면 사람들은 똑같이 반응한다.”

조지아개발기초당은 총선 전에 다른 당과 연대하진 않을 생각이다. 당 대변인에 따르면 목표는 독자적인 힘으로 승리하는 것이다. 다만 투표 후 연대가 필요한지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목표대로 승리한다면 브루클라제가 조지아의 총리가 될 것이다.브루클라제는 총리가 되면 4년 동안 조지아 경제를 10% 성장시키고, 민간 부문에서 새로운 일자리 25만 개를 만들며, 정치를 개혁하겠다고 공약했다. 조지아 국민에겐 전부 솔깃한 약속이다. 또 그는 유럽연합(EU)과 나토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당분간 준회원으로 남아 있으면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 한다. 비판자들은 지금까지 그의 공약이 두루뭉술할 뿐 아니라 포퓰리스트적이며 조지아 국민의 정치 환멸을 교묘히 이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그가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질 수 있는 진실된 사람으로 본다.

조지아의 오페라 가수 파타 부르클라제(왼쪽)는 2010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됐다.
브루클라제는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면서 2004년 가정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를 돕는 자선단체 라브나나(‘자장가’라는 뜻)를 설립했다. 2006년엔 유엔 대사, 2010년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도 임명됐다. 그는 2013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줄곧 권고 받았지만 장고 끝에 포기했다. 그러다가 올해 초 오페라 공연 일정을 취소하고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갑작스레 발표했다.

“조지아 국민으로서 나는 우리 나라가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그러나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정치인, 또 내가 지지하고 뜻을 함께할 수 있는 인물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오페라 활동을 중단하고 정치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브루클라제의 급작스런 부상은 옛 공산국가들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몇몇 정치인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인근의 우크라이나에선 여군 조종사 출신 나디야 사브첸코가 최고 인기 정치인이다. 또 2년 전엔 복싱 챔피언이던 비탈리 클리치코가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인으로 꼽힌 뒤 수도 키예프 시장에 선출됐다. 폴란드에선 펑크록 가수 파베우 쿠키스가 2015년 대선에서 후보자 11명 중 3위를 하면서 돌풍을 일으킨 뒤 자신이 세운 당을 이끌고 의회로 진출했다.

브루클라제는 “그들이 왜 인기 높은지 아는가?”라고 물었다. “그들은 일반인의 언어로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기성 정치인은 늘 하던 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 놓는다. 국민은 그들의 말을 더는 믿지 않는다.”

브루클라제에 따르면 지금까지 조지아의 지도자들은 거의 비슷한 길을 걸었다. 낙관적인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며 정권을 출범시켰다가 사회 불안이나 전쟁으로 무너졌다. 지금 조지아는 EU와 나토 가입(현재는 둘 다 무한정 보류된 상태)과 러시아와의 관계 회복 사이에서 고민하는 중이다.

브루클라제는 “우리 나라는 25년 전 독립했다”고 말했다(1991년 4월 9일 소련의 해체와 함께 독립을 얻은 조지아는 1995년 8월 24일 새로운 민주헌법을 채택했다). “그동안 여러 지도자를 거쳤고 그때마다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나는 그들 각각을 원칙적으로 지지했다. 그들 나름대로 상황을 조금이나마 낫게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문제가 많았다.”

그는 특히 현 정부에 불만이 많다. “지금 조지아 정부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전혀 진전이 없다. 상황이 악화되진 않는다고 해도 그 자리에 그냥 멈춰서 있다.”

중도 좌파 연합정당인 ‘조지아의 꿈’의 집권 아래서 조지아 화폐 라리화의 가치는 올해 초 2004년 이래 최악의 수준으로 폭락했다. 지난해 말 미국 민주당 국제문제연구소(NDI)의 조사에 따르면 조지아 국민의 76%는 조지아가 발전적인 변화를 거부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다.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말한 응답자는 19%에 불과했다. ‘조지아의 꿈’이 정권을 잡기 전인 2011년엔 그렇게 응답한 조지아 국민의 비율이 60%에 이르렀다. 지금 조지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실업과 빈곤이다.현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이전 정부를 비판했다. 예를 들어 미하일 사카슈빌리 전 대통령은 2014년 부재 중에 권력 남용으로 기소됐다. 그렇다고 사카슈빌리와 그의 통합국민행동당이 더 인기 있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들은 서방과의 관계는 잘 다룬 것으로 평가 받았지만 러시아 문제에선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3년 조지아 대선에서 투표한 미하일 사카슈빌리 전 대통령. 그는 2014년 권력 남용으로 기소됐다.
경제 문제 외에 조지아의 가장 큰 이슈는 분리 독립 지역인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지위다. 러시아가 오랫동안 이 두 자치주를 지원한 것이 조지아와 과거 최대 무역 파트너였던 러시아 사이의 무역과 외교에 걸림돌이 됐다. 이 문제로 조지아는 사카슈빌리가 대통령이던 2008년 러시아와 전쟁을 치렀다.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한 러시아는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점령했고, 아직도 그곳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그에 따라 영토의 완전한 보전이 되지 않아 조지아 국민 다수가 원하는 나토 가입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브루클라제는 ‘조지아의 꿈’ 당이 조지아의 영토 문제를 두고 야당의 정책만 비판할 뿐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조지아의 꿈’은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지 못하고 이전 정부가 잘못한 일만 계속 물고 늘어진다”고 말했다. “그런 비난은 정말 쓸데없는 낭비다. 이전 정부가 실수를 저질렀다는 건 분명하며 그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정치 보복이 돼선 안 된다.”

브루클라제는 친서방주의를 견지한다. “우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 정부는 우리의 파트너가 누구인지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가 서방의 EU나 미국과 손잡아야 하는가 아니면 과거처럼 북쪽의 러시아를 다시 파트너로 선택해야 하는가? 그런 방향은 파트너가 되는 쪽에서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아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파트너는 EU와 나토, 그리고 미국이다.”

조지아의 EU와 나토 가입은 무한정 보류된 상황이다. 그러나 브루클라제의 경제 정책은 서방과의 무역에 크게 기댄다. 마침내 지난 7월부터 조지아와 EU의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됐다. 브루클라제의 다음 목표는 미국을 설득해 같은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와도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우리의 주권·영토 보전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유럽-대서양 외교정책이다. 우리는 통합된 조지아를 원한다.”

브루클라제는 조지아가 러시아의 개입 없이 압하지야·남오세티야와 대화해야 하며, 그들에게 완전한 분리 독립보다 조지아 내부에서의 ‘강화된 자치권’을 보장하겠다고 제안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러시아의 석유 파이프라인이 조지아를 통과하는 문제와 관련해 현 정부와 달리 러시아의 국영 에너지회사 가스프롬과 협상하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우리는 더 많은 독립을 원한다. 아제르바이잔의 파이프라인이 우리 나라를 통과해 터키와 EU까지 이어지길 바란다. 이건 우리의 에너지 독립에 관한 문제다.”브루클라제는 장기적으로 주권이 침해당할 수 있는 다른 나라의 요구를 조지아 정부가 절대 수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파이프라인과 군대를 동원해 다른 나라의 손발을 묶은 예로 그는 우크라이나 위기를 들었다. “그 외에는 러시아와 모든 것을 협상할 수 있다. 경제든 문화든 테러와의 전쟁이든 전부 다 협력할 수 있다.”

다게스탄 공화국의 차량폭탄 테러. 조지아 북쪽 북캅카스 지역에선 급진 이슬람주의 테러가 큰 문제다.
이처럼 브루클라제는 선의로 러시아와 대화를 재개하고 싶어 하지만 그런 대화는 ‘타협을 모르는’ 중요한 한 사람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지금까지 그는 군사적 개입과 에너지를 주무기로 휘두르며 공격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했다. 브루클라제가 어떻게 그와 대화를 풀어나갈 수 있을까?

브루클라제는 “지도자의 개성에 관한 문제라기보다 러시아가 조지아를 어떻게 생각하며 어떤 정책을 선택할지에 관한 문제”라고 대답했다. “조지아의 주권과 독자적인 외교 권한 문제에선 우리가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푸틴 대통령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아울러 조지아는 적대 정책을 바라지 않으며 러시아와 평화롭게 지내기를 원하고, 북캅카스 지역의 테러 방지에서 러시아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그를 설득해야 한다.”

한편 러시아에선 지금 푸틴 대통령의 인기가 어느 때보다 높다. 또 러시아의 외교정책은 갈수록 공격적이며 러시아에 맞서겠다는 서방의 결의는 이전보다 훨씬 허약하다. 그러나 브루클라제는 러시아 지역, 특히 조지아 국경의 북쪽에서 급진 이슬람주의의 위협이 심상찮다는 점을 감안하면 러시아도 조지아가 중요한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인정할 것으로 생각한다. “러시아로선 강한 이웃과 파트너가 필요하다. 조지아는 나토와 EU에 가입해야 강해지고 안정될 수 있다. 조지아가 없으면 러시아는 이 지역에서 안정을 유지할 수 없다. 러시아로선 북캅카스 지역의 테러가 큰 문제다. 특히 체첸과 잉구셰티야가 골칫거리다.”

러시아 보안기관은 러시아인 4000명 이상이 시리아와 이라크로 가서 이슬람주의 무장단체에 합류했으며, 그중 북캅카스 지역 출신이 가장 많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브루클라제는 “러시아와 지금보다 더 많이 대화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독자적으로 그렇게 하기는 위험하다. 우리에겐 국제 파트너가 필요하다. 우리는 주변 국가들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잠재력을 가졌다. 우리의 개혁이 성공하면 유럽에도 득이 된다. 우리가 민주 국가로서 번창하면 유럽은 강한 파트너를 갖게 된다. 그러면 우리 지역 전체가 더 안정되고 발전할 수 있다.”

브루클라제는 내년 영국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되는 오페라 ‘돈 카를로’에서 필리포 2세로 캐스팅돼 있다. 그는 자신의 대역이 충분히 그 역을 소화할 수 있기 바란다. 자신은 정치에 남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화려한 오페라 경력을 중단했다. 사람들은 내게 정치에 뛰어들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정치는 험하고 지저분하다’며 ‘당신처럼 깨끗하고 진실된 사람이 할 일이 못 된다’고 만류했다. 하지만 조지아의 젊은이들을 위해 내가 정치에 나서야 한다. 정직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해보고 싶다. 지난 25년 동안 조지아 국민은 정부를 위해 봉사하고 정부가 하는 일을 지지했다. 하지만 나는 그 정반대를 원한다. 정부가 국민에게 봉사하고 국민을 지지하도록 만들겠다.”

- 대미언 샤코브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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