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당장 그만둬라
대학 당장 그만둬라
실리콘밸리의 이단아 벤처자본가 피터 틸, 대학 중퇴 조건으로 창업 펠로십 운영…창설 후 6년 동안 138명 펠로 중 대학으로 돌아간 사람 12명뿐 “예일대학을 그만두겠다고?”
폴 구의 부모는 황당해 하면서 벌컥 화를 냈다. 경제학·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며 학교에 잘 다니던 아들이 2011년 전화를 걸어와 ‘틸 펠로십(Thiel Fellowship)’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남다른 재능’을 가진 십대 24명 중에 선발돼 동기생과 함께 구상한 회사 창업 자금으로 2년 동안 10만 달러를 받게 된다. 문제는 학교를 그만둬야 한다는 점이었다.
부모님은 구가 6세 때 중국 허베이성에서 미국 피닉스로 이주했다. 그들은 자유주의 성향의 억만장자 피터 틸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틸은 페이팔을 공동 창업한 뒤 페이스북·스포티파이·옐프 등 IT 업계의 성공기업에 대한 족집게 투자로 계속 대박을 터뜨렸다. 이민이든 아니든 대다수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에선 대학교육이 출세의 밑거름이었다.
그러나 틸에게 오늘날의 명문대학은 혁신의 발목을 잡고 기술 정체를 초래해 장차 경제에 악영향을 초래할 과대평가된 유물이다. 틸은 구 같은 진취적인 젊은이가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중요한 시기에 빚에 치이다가 결국 돈벌이는 쏠쏠하지만 보람 없는 일자리에 정착하는 길을 가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보다는 “사회에 보탬이 되는 파격적인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틸은 똑똑하고 야심적인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더 원대한 목표에 도전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학위를 찍어내는 교육기관보다 더 나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멘토상담·사업지도·네트워킹 기회와 매월 보조금을 지급하는 펠로십(연구장학제도)을 운영해 그들을 지원한다.
미국의 고등교육 시스템에 직격탄을 날림으로써 판세를 흔들려는 틸의 의도가 적중한 듯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학 명예총장은 그의 아이디어를 가리켜 “금세기 중 유일하게 가장 크게 빗나간 자선사업”이라고 평했다. 그는 고등교육 개혁은 필요하지만 자선기금을 내세워 대학중퇴를 조장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덧붙였다.
허황된 꿈을 강매하는 것은 서머스 명예총장 같은 대학 측이라고 틸은 반박한다. 대학 학비는 물가상승률의 2배로 뛰었다. 대학 학자금 융자액은 현재 1조3000억 달러를 웃돈다. 부채증가에 35세 이하 성인의 창업 감소가 맞물렸다. 벤처창업 교육기관 카우프만 재단은 최근 조사에서 이를 ‘잃어버린 창업가 세대(a lost generation of entrepreneurs)’로 불렀다.
IT와 주택시장의 거품붕괴를 예측했던 틸은 다음에는 교육부채 거품이 꺼질 차례라고 본다. “품질은 향상되지 않는데 가격만 터무니없이 치솟았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과대평가와 맹신이 팽배할 때는 항상 거품 신호로 보면 된다.” 서머스 명예총장 같은 교육자들이 걱정하는 한 가지 문제는 틸의 비판이 가장 총명한 학생들로부터 적잖이 공감을 얻는다는 점이다. 펠로십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신청자 6000명 중 약 4분의 3이 예일·하버드·MIT·스탠퍼드 같은 일류대학 재학생이었다.
이들은 경쟁이 치열하지만 치밀하게 짜여진 진로를 따라 일류대학 합격이라는 힘들지만 다소 현실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그 뒤에는 의미보다는 연봉 높은 회사에 취업한다(미국 동부 명문 아이비 리그 졸업생 중 약 3분의 1이 몰리는 금융과 컨설팅은 틸이 냉소적으로 곧잘 인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중 창의적이고 창업지향적인 무리는 캠퍼스에 발을 들여놓은 뒤에야 자신들이 꿈꾸던 이상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입학하기 위해 그렇게 안간힘을 썼던 대학이건만 자신들의 잠들지 않는 두뇌가 갈구하는 탄력성이 결여된 데 실망한다.
에덴 풀 고 또한 프린스턴대학 2학년 때 구와 마찬가지로 2011년 초 틸 펠로십에 관한 소문을 들었다. 대학 조정 대표팀 선수이자 새내기 전기공학도인 풀 고는 약 150㎝에 불과한 작은 체구지만 믿기지 않을 만큼 활력과 자신감이 넘친다. 그녀는 10세 때 태양전지 자동차를 처음 제작했다. 이어 중력기반 급수와 두 가지 금속을 접합한 바이메탈릭 코일을 이용해 전지판이 태양을 추적할 수 있도록 하는 신기술 연구에 착수했다. 전력 생산량을 40% 늘리고 덤으로 깨끗한 식수도 쏟아내는 기술이다. 16세 때 캐나다 앨버타 주 캘거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 기본 모델을 개량하기 위해 케냐 농촌을 찾아갔다.
그녀는 그 선설루터(SunSaluter)를 개도국 세계의 수백만 주민을 위해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으로 구상했다. 그러나 학교 공부에 발목이 잡혔다고 한다. “나 같은 사람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진 경직된 시스템에 맞춰야 했다. 필수과목이 걸림돌이었다. 나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결과물을 내놓는 데 필요한 지식을 배우고자 했다.”
풀 고와 구를 비롯한 80명의 최종 후보자들이 2011년 3월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펠로십 심사위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심사위원 중에는 틸의 IT와 벤처투자 업계 친구들이 많았다. 선정된 아이디어 중 절반가량이 야심적인 과학·공학 프로젝트였다. 존 버넘은 지나쳐가는 소행성에서 광물을 추출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로라 데밍은 틸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노화관련 질병의 퇴치에 초점을 맞췄다. 14세 때 MIT 생물학 과정에 등록한 데밍은 “이론상 사람 수명의 수백 년 연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 같은 IT 혁신가들을 모델로 삼은 듯했다. 둘 다 하버드대학을 중퇴했다. 델·우버·오라클 창업자와 기타 다수의 IT 실력자들 모두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처럼 일찍 대학 생활을 접었다. 잡스는 1학년 때 리드 칼리지에서의 학위 취득 과정이 근로자 계급 부모가 내는 등록금만큼의 값어치를 하지 못한다고 확신했다. 일단 캠퍼스를 벗어나자 그는 “훨씬 더 흥미로워 보이는 과정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인 캘리그래피(손글씨) 강습은 매킨토시 컴퓨터가 활자 디자인에 중점을 두는 초석이 됐다. 애플의 상징적인 강점 중 하나다.구는 자신의 벤처창업 성공 확률이 낮다는 부모님 말씀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역 상거래 웹사이트 아이디어를 갖고 있던 구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펠로십을 받기로 했다. 이제 26세인 그는 “부모님은 아이비 리그 졸업장을 제 발로 걷어차는 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내가 걸어가는 안전한 진로는 성장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나는 더 큰 목표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구의 예일대 동기이자 사업 파트너 대니얼 프리드먼은 처음에는 망설였다. 결국에는 펠로십을 받은 프리드먼은 이렇게 설명했다. “직업적으로는 경력을 얻게 된다. 일이 크게 틀어지더라도 학교로 돌아가면 된다. 정말 아쉬운 것은 가까운 친구들을 떠나게 된다는 점이었다.”
대다수 다른 최종 후보자들과 달리 닉 카마라타는 양면성을 가진 학생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학점 평균이 2.2에 그쳤으며 졸업반 때 학교 결석일수가 60일에 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마라타는 야심만만한 프로젝트를 구상했으며 어릴 때부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자립적이었다. 9세 때부터 자기가 집에서 사용하는 공공서비스(전력·수도 등)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부모에게 주장했다. 10세 때부터는 알고리즘 프로그래밍 실험에 주당 최대 80시간씩 매달렸다. 16세 때는 파일 저장 서비스 드롭박스의 경쟁 서비스를 출범시켜 11개월 만에 이용자 8300만 명을 끌어모았다.
카네기멜론대학 컴퓨터 공대 학장은 그의 그런 실적을 높이 평가해 입학사정 기준을 접어두고 예외적으로 그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신입생 대상의 합숙 오리엔테이션 기간 동안 뚜렷한 목표의식 없는 동기생들에 실망한 카마라타는 틸 펠로십을 신청하기로 했다.
교사들이 태블릿으로 쌍방향 강의를 제작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앱 아이디어를 갖고 있던 카마라타는 “틸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일종의 실험인 건가? 무엇이 됐든 대학에 다니는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듯했다.” 틸은 1985년 스탠퍼드대학 1학년 때 실리콘밸리에 발을 들여놓은 뒤로 세상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재편하려 노력해 왔다. 1998년 그가 페이팔을 공동 창업한 것은 단순히 수표와 우편환을 더 간편하게 만들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는 자유주의 저널 ‘케이토 언바운드’에 자신의 창업 비전을 가리켜 “정부의 온갖 통제와 평가절하로부터 자유로운 신세계 통화의 신설, 화폐주권(monetary sovereignty, 통화 공급량 조절을 통한 정부의 경제 관리)의 종식”이라고 말했다.
틸은 2002년 15억 달러에 페이팔을 이베이로 팔아 넘긴 뒤 “기존 사회·정치 질서에 변화를 유도하고 신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다른 닷컴 업체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2004년 그는 외부 투자자로선 처음으로 페이스북에 베팅했다. 앤젤 투자로 50만 달러를 건넨 뒤 4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고 전해진다. 그는 소셜미디어의 유용성에 관해 “전통적인 국민국가(nation-states, 공통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는 국민이나 민족으로 구성되는 독립국가)에 속박되지 않는 새로운 공동체 형성 방법과 새로운 반체제 모드를 위한 공간 조성의 수단”이라는 자유주의적인 관점을 가졌다.
더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해 실리콘밸리의 반감을 샀으며 레슬러 헐크 호간으로 더 유명한 테리 볼레아의 사생활 침해 소송을 막후 지원해 언론계의 속을 긁었다. 9년 전 틸이 동성애자라고 폭로했던 IT 블로그 운영업체인 고커 미디어는 1억4000만 달러 배상판결을 받고 파산했다.
분명 보복이 고커 미디어 소송의 동기인 듯하지만 틸은 종종 페이팔 공동창업자 맥스 레브친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이 하는 일의 역발상적 성격”에 이끌리는 듯하다. 그가 동료와 입사 지망자에게 던지는 특유의 질문 중 하나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 대다수가 진실이 아니라 해도 자신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해보라”는 것이다.틸은 또한 사회 그리고 가장 영향력 있는 구성원 집단이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자신이 발전적인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비행자동차를 원했지만 얻은 건 140자(트위터)였다’는 그의 ‘파운더 펀드’ 성명서는 실리콘밸리의 좀스러운 포부에 대한 그의 실망을 나타낸다.
고등교육에 대한 틸의 도전은 미국이 큰 자랑으로 여기는 제도에 대한 공격이다. 대니엘 스트래크먼과 함께 펠로십 프로그램 운영자로 채용된 마이클 깁슨에 따르면 한번은 직접 대학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틸이 그 구상을 포기한 것은 “너무 복잡하고 시스템에 너무 순종하는 듯했기 때문”이었다고 깁슨은 전한다.
틸은 펠로(보조금 수혜자)들이 어디서 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든 아무런 제약 없이 탄력적으로 펠로십이 운영되기를 원했다. 구, 카마라타, 풀 고를 비롯한 여러 펠로들은 한 두 달 뒤 스타트업 무대의 스타덤에 도전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만안 지역에 속속 도착하는 젊은 인재 대열에 합류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조사에 따르면 뉴욕시 IT 업계의 평균적인 창업자는 먼저 기성업체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한 대졸자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만안 지역으로 몰려드는 젊은이들 사이에선 회사를 창업하기(또는 졸업장을 요구하지 않는 구글이나 기타 다른 IT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대학을 나와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비율이 갈수록 늘어난다. 그들의 해커 마인드(세상은 가변적이고 혁신 무드가 조성됐다)에 갈수록 몰려드는 투자자본이 맞물려 캘리포니아 북부에 탈자격증 경제(post-credential economy)랄 만한 문화가 형성됐다. 틸 펠로들은 매달 4000달러의 보조금과 후원자의 후광 덕분에 상당수 다른 출세주의자들보다 표면상 더 유리한 조건을 갖춘 듯했다. 그러나 다른 지원은 처음에는 거의 없었다. 업무 공간 수배, 멘토 모색, 목표 설정, 달성방안의 강구는 모두 수혜자들 몫이었다. 젊은이들은 분기 단위의 점검 이외에는 어떤 간섭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창업 기반을 마련했다.
펠로 1기 데일 스티븐스는 “그 연령대에선 극소수 그룹에만 그 방식이 주효한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펠로십 신청 당시 제출했던 아이디어를 가리켜 지금은 “항공업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디어였다”고 평한다. 풀 고는 “우리 중 상당수가 항상 시키는대로만 하다가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어 적응하기 힘들어 했다”며 “나는 이메일에 시간을 허비하며 보내는 날이 많았다”고 말했다.
프리드먼과 얼굴 붉히지 않고 갈라선 구의 경우 열정은 차고 넘쳤지만 자기 제품과 회사의 미래상은 불분명했다. “나는 많은 똑똑한 사람들과 점심식사를 함께하며 아이디어 홍보에 열을 올렸다. 처음에는 흥분됐지만 우리는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좌절감이 커졌다. 왜 대학을 중퇴했을까 회의가 일기 시작했다.”
가족과 친구들 곁을 떠나 맨손으로 회사를 세워야 했던 1~2년차 펠로 중 여럿이 우울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카마라타는 “실리콘밸리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싼 셋집을 얻어 살며 하루 종일 그리고 자는 시간을 아끼며 코딩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 데이비드 머필드, 존 마배크와 손잡고 강의 공유 앱을 개발해 ‘태블로’라고 명명했다. “나는 내가 주목을 받아 마크 저커버그와 엘론 머스크의 멘토를 받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수업도 의미 있는 멘토 교육도 없었다. 우리는 어떻게 회사를 세울지 전혀 몰랐다. 내가 원하던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서 파티를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카마라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웨이크 포리스트 대학을 중퇴한 마배크는 실리콘밸리에는 술을 하지 않는 ‘비주류’의 사교 공간이 거의 없음을 금방 깨달았다. “어떤 CEO나 벤처자본가든 만날 수 있는 건 마음에 들었지만 함께 어울릴 만한 사람이 없었다.” 마배크는 펠로십을 중단하고 웨이크 포리스트로 돌아가기로 했다. 데이비드 루안 펠로도 예일로 복귀했다.
온라인 교육 벤처로 방향을 틀었던 프리드먼은 “사업체를 키우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18개월이 지난 뒤 내 친구들은 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들은 내 회사는 어떻게 돼가는지 묻곤 했다. 뭐라 대답할지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2012년 후반 2기 펠로들이 들어올 무렵 틸에게 문하생들은 있었지만 파격적인 혁신 기술은 없었다.
이미 오래 전에 미국 대학 시스템의 전면적인 쇄신이 이뤄져야 했다는 점은 학자들도 인정한다. 리처드 애럼과 조시파 록사는 저서 ‘학문적 표류(Academically Adrift)’에서 24개 대학 학부생 중 45%가 대학 재학 첫 2년 동안 다양한 지적 능력(예컨대 비판적 사고, 복잡한 추론, 글쓰기 등)에서 의미 있는 발전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저자들은 사교활동이나 아르바이트, 그리고 학부 학업을 중시하지 않는 대학문화를 저조한 학업능력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대학에는 다른 어떤 제도보다 우수한 점이 몇 가지 있다. 캠퍼스는 성인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아주며 체계적인 전환기를 제공하고 다양한 사람과 사고를 접하게 해준다. 동기부여가 분명한 학생은 논리 정연한 글쓰기를 배우거나 정량적 지식을 적용해 과학적 발견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대학은 개인의 관심사를 테스트하고 평생의 친구·멘토·이성을 만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틸의 스탠퍼드대학 학사·법학박사 학위는 그에게 상당한 도움이 됐을 듯하다. 그러나 현재 약 17억 달러의 자산가 투자자인 그는 무엇을 배울지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은 ‘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내 앞날에 관해 책임감을 갖고 진지하게 생각해보려 하지 않았다.”
틸이 대학 신입생이 된 뒤 30년 사이 대학에서 자신의 미래를 모색하는 데 드는 비용이 크게 올랐다. 그는 “누구에겐 아직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졸업생이 많다. 그들은 빚을 떠안고 부모 집으로 다시 들어간다. 사람들이 뭔가 잘못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미래의 우버나 에어비앤비 창업을 위해 대학을 중퇴하는 것은 혹할 만한 옵션으로 보이지만 저커버그나 잡스 같은 인물 한 명이 탄생하기까지 원대한 아이디어를 가진 대학 중퇴자 수천 명이 실패의 쓴 잔을 들이킨다. 3000만 명에 달하는 미국 대학 중퇴자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빈곤에 허덕일 확률이 대졸자들보다 훨씬 더 높다. 대학 교육 투자 대비 수익률은 하락세지만 대학 졸업장 없는 성인의 연평균 소득은 2만3900달러에 불과하다. 대졸자 평균소득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3학년을 마치고 브라운대학을 중퇴한 2기 틸 펠로인 딜런 필드는 “펠로십 홍보에서 언급되지 않은 사실은 대학이 많은 사람에게 대단히 유익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나로선 정말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나는 회사를 창업하고 싶었고 펠로십이 그 꿈의 실현을 앞당기는 지름길이었다.”
캘리포니아 주 소노마 카운티에서 성장한 아역배우 출신의 필드는 IT 전문 고등학교를 다녔다(“로봇기술 팀의 인기가 미식축구 팀만큼 높았다”). 그리고 대학 시절 링크드인과 오라일리 미디어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플립북에서 여름 인턴으로 일할 때는 디자이너용 제작도구 세트를 더 좋고 싸게 만들어 소프트웨어 대기업 어도비에 도전하려는 대담한 계획을 내놓았다.
필드를 비롯한 다른 2기 펠로들이 샌프란시스코 만안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인맥이 구축되기 시작했다. 카마라타, 데밍 등 몇몇이 팔로알토에 큰 집을 구해 함께 세를 들었다. 처음에는 다섯 식구였지만 곧 8~9명으로 불어났다. 카마라타는 “한번은 193㎝의 거구가 옷장 속에서 지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새벽 2시에 인생철학을 논하는 등 마치 대학 기숙사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시점부터 그 생활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펠로십 프로그램의 기틀이 잡히며 대학 같은 공백이 일부 메워지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에서 그룹 숙소를 구하는 신참 펠로들이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펠로십이 세미나, 만찬·친목모임을 더 많이 후원하기 시작하면서 펠로들이 동료, IT업계 거물, 앤젤 투자자와 어울릴 수 있었다. 심리학자도 한 명 불러들여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펠로들을 도왔다. 틸은 “우리는 공동체가 펠로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과소평가했다”며 “그것이 첫해 우리의 최대 실수였다”고 말했다.
필드에겐 그런 사회적인 요소가 돈만큼이나 중요했다. “벤처창업 활동은 대단히 고독한 작업이 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함께할 좋은 사람들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된다.” 틸은 자택에서 몇몇 행사를 주최했다. 그 밖의 초대손님으로 앤젤 투자자 케빈 하츠(에어비앤비·핀터레스트·우버), 마피아 워즈 게임과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긱스터 등의 스타트업을 창업한 연쇄 창업가 로저 디키 등이 참석했다. 카마라타는 “우리는 산장의 옥상에서 실리콘밸리를 건설한 억만장자들과 어울렸다”고 말했다. “그들은 젊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게 대단히 즐거운 듯했다. 모두가 도와주고 개입하려 했다.”
한 파티에서 “진이라는 사람을 만났다”고 카마라타는 회상했다. “내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묻길래 나는 ‘지금 회사를 팔려 하는데 인수하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곧 회사의 새 주인이 됐다.
태블로는 펠로십 기간 창업한 기업 중 처음 팔려나간 회사였다. 다른 펠로들에게도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필드도 자신의 회사 피그마에 400만 달러의 자본을 쉽게 조달했다. 당초의 아이디어를 포기했던 구는 다음 프로젝트를 찾던 구글 엔터프라이즈 임원 2명을 만났다. 세 사람이 뜻을 모아 투자자들이 젊은 신진 기업가들을 후원하는 융자 플랫폼에 175만 달러의 종자돈을 조달했다. 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통사람을 위한 킥스타터(소셜펀딩 사이트)”였다.
그 아이디어는 훗날 구가 개발한 혁신적인 알고리즘을 이용해 융자를 제공하는 업스타트(Upstart)로 발전했다. 기존의 신용점수 대신 소득 잠재력과 기타 변수들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구는 궁극적으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 투자자 중 상당 비율”을 펠로십 네트워크를 통해 물색하려 한다.
펠로십이 대학생활의 몇몇 측면을 모방하면서 틸이 성토했던 고등교육 기관들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반대로 대학들이 영향을 받은 징후도 있었다. 지난 6년 사이 틸 펠로십이나 Y 콤비네이터(틸이 파트너로 있는 초기단계 IT 벤처 인큐베이터)에 학생들을 빼앗긴 대학들은 그들을 캠퍼스에 눌러앉히는 한편 벤처창업 열정을 지원하는 다양한 방안을 도입했다.
하버드대학의 ‘이노베이션 랩(i-lab)’은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창업하려는 학생들에게 자금조달과 멘토링 자원 역할을 한다. 예일대학 벤처창업 연구소(Yale Entrepreneurial Institute)의 ‘이노베이션 펀드’는 신생 기업에 최대 10만 달러를 제공한다. 틸 펠로십 참여 1년 만에 떠난 데이비드 루안은 예일대학 펀드 문을 두드려 자신의 비주얼 분석 소프트웨어 업체 덱스트로의 자금을 조달했다. 워튼스쿨·콜럼비아·노스웨스턴과 여러 주립대학도 인큐베이터와 액셀러레이터(벤처기업 육성)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틸은 이런 조치들로는 고등교육의 저변에 깔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전한 등록금 인상, 의심스런 가치, 배타성 등이다. 틸은 “명문대학에는 분명 몇 가지 장점이 있다”며 이렇게 덧붙인다.
“대학교육에 관해 그들이 말하는 핵심적인 거짓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본질적으로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는 주장이다. 실상 그들이 운영하는 건 문 밖에 입장 대기행렬이 길게 늘어섰고 소수가 실내에서 춤추는 스튜디오 54 나이트클럽이나 다름없다. 하버드대학이 세상에 더 많은 혜택을 주고자 한다면 문호를 개방하고 프랜차이즈 계약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하버드대학 총장이 그런 주장을 하면 그 대학 동문들이 야구 방망이를 들고 그의 사무실 앞으로 몰려들 것이다. 그들의 정체성은 배타성에서 나온다.”
하지만 틸은 신입 펠로 수를 1년에 30명으로 제한하는 현재의 한도 해제에는 회의적이다. “우리는 프로그램이 또 다른 획일적인 자격인증 시스템이 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인원이 적어야 그들을 개별적으로 지원하면서 특정한 기회를 창출하고 그들이 만나야 할 사람들과 의미 있는 인맥을 형성할 수 있다.”
큰 잠재력을 지닌 학생들을 ‘체제 순응적인 학위 제조 기관’으로부터 구제하려는 틸의 시도는 펠로들이 빠져나온 어떤 대학들보다 훨씬 더 배타적이랄 수 있는 클럽으로 탈바꿈했다.
틸 사단이라는 배경을 감안할 때 투자자들은 거의 틀림없이 적어도 펠로의 홍보에 귀 기울이고 십중팔구 호의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구의 ‘업스타트’는 3년째 1차 대규모 펀딩 라운드에서 600만 달러를 조달하고 직원 10명을 채용했다. 딜런 필드는 1400만 달러를 추가로 유치하고 디자이너·엔지니어·마케팅 담당을 포함해 피그마의 직원을 14명으로 늘렸다.
베타판이 나오자 디자인 업계에선 피그마의 실시간 협업 편집 기능이 화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도비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대표적인 기능이다. 선설루터를 비영리단체로 만들기로 한 풀 고는 50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원받고 아프리카와 인도에 유통·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동안 100만 마일 비행 기록을 세웠다.
자금조달에 숙달됐지만 회사 운영에 어려움을 겪은 펠로들도 있었다. 스탠퍼드대학 중퇴자 톰 커리어의 도시 공동거주 부동산 관리 벤처기업은 2년 만에 도산해 입주자들이 강제 퇴거됐다. 19세 때 스탠퍼드대학 신경학과 4년차 박사 후보 과정을 밟던 앤드류 쉬는 에어리 랩스라는 교육 게임 스타트업을 창업해 구글 벤처스 같은 거물 투자업체로부터 150만 달러를 조달했다. 하지만 그 회사가 실제론 쉬의 부모가 운영하는 ‘노동착취 공장’이라는 비판 속에 2012년 20명의 직원 대다수를 정리했다.펠로들은 지금은 수입·지출·현금흐름 현황을 프로그램 측에 보고해야 한다. “그런 정보를 알아야만 그들이 악셀을 밟아 더 속력을 높여야 하거나 6개월 버틸 현금밖에 없을 경우 도울 수 있다”고 잭 에이브러험은 말했다. 깁슨과 스트래크먼이 펠로십 수료자와 기타 ‘부적응자 청년 창업가’의 자본 수요에 부응하는 벤처펀드 설립을 위해 떠나면서 에이브러험이 사무국장으로 영입됐다. 그는 포괄적 멘토링 프로그램을 개발해 자본조달, 팀워크 구축, 이용자 확보 등 회사 성장의 더 큰 몇몇 난제에서 펠로들을 돕는다.
단연 최대의 변화는 신참 펠로들이 제시하는 프로젝트 유형이다. 틸은 생의학 기술, 교통, 에너지 같은 분야의 발전을 촉진한다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기수가 바뀔 때마다 펠로들은 갈수록 실리콘밸리 그리고 틸을 닮아 간다. 핵융합 에너지, 암치료, 면역요법 등 틸이 프로그램을 창설했을 때 꿈꿨던 ‘파격적인 혁신’에 시동을 걸만한 야심적인 정통 과학 프로젝트는 거의 없다.
실리콘밸리가 140자의 한계를 뛰어넘도록 하겠다던 틸의 의지가 약화된 걸까?
그는 “우리는 과학에서 혁명적 돌파구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관점에서 출발했지만 STEM(과학·기술·공학·수학)에선 뭔가를 독립적으로 시작하기가 더 어렵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소프트웨어는 개인이 컴퓨터와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액의 자금만 있으면 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쉽다. 요즘 우리는 지원자의 아이디어가 영감을 주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뿐 아니라 실행 가능하고 뚜렷한 상업성이 있는지도 고려한다.”
초기 펠로 중 일부는 포토닉스(광통신 등 빛과 관련된 기술), 나노기술, 의학 분야에서 점진적이지만 인상적인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평범한 기술이 최고의 인기를 모았다. 하버드대학 중퇴생 벤 유의 스프레이어블(Sprayable) 카페인은 시장에서 인기만점이다. 투자자들은 비탈릭 부테린의 암호화폐 프로젝트에 수천만 달러를 쏟아붓는다.
제임스 프라우드의 회사 헬로는 대략 4000만 달러를 조달했다. 헬로에서 개발한 수면 트레커 센스는 요즘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첨단 알람 시계 중 하나다. 인도의 리테시 아가르왈은 중저가 브랜드 호텔 대상의 온라인 장터 구축 자금으로 2억2500만 달러 이상을 조달했다.
MIT의 ‘글로벌 파운더스 스킬스 액셀러레이터’ 책임자 빌 올렛은 “이는 제2의 레드불 에너지 음료, 데이팅 앱 개발 또는 우버화(Uberfication, 플랫폼을 활용한 공유경제 창출)를 하고자 할 경우엔 틸 펠로십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하지만 암을 퇴치하거나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할 경우엔 미흡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최근 기수의 펠로들은 처음 2개 기수와는 크게 달라 보인다. 대다수가 지원자 그룹에서 선발되기보다는 샌프란시스코 만안 지역의 틸 인맥을 통해 모집됐다. 더 나이가 많고 상당수가 여러 차례 벤처 창업에 성공한 경력자들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대박 가능성이 큰 실리형 아이디어에 투자하려는 벤처 자본가들이 이미 존재하는데 비영리 펠로십이 과연 필요할까?
의도적이든 아니든 펠로십의 한 가지 현실적인 결과는 ‘틸 주식회사’의 2군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프리드먼의 회사 씽크풀(Thinkful)은 틸이 자본을 조달한 첫 기업이었다(그의 FF 앤젤 벤처자본 펀드를 통했다). 그 뒤로 틸의 펀드는 구의 ‘업스타트’, 토마스 소머스의 렉스 컴퓨팅에 투자해 왔다. 렉스 컴퓨팅은 슈퍼컴퓨팅 응용프로그램용의 고효율 칩을 개발하는 회사다. 클레이 올솝프의 ‘프로펠러’에도 틸의 자금이 투입됐다. 모바일 앱 제작 도구를 개발하는 프로펠러는 2014년 팰런티어 테크놀로지로 넘어갔다. 틸이 공동창업한, 베일에 가려진 데이터 분석 업체다.
그런 기업들은 분명 그 밖에도 더 많다. 데밍에게 그녀의 바이오기술 위주의 론제비티 펀드나 그녀의 면역요법 회사 알렉소 세라퓨틱스에 틸이나 그의 펀드가 투자했는지 물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짐작하는대로”라고 답했다. 풀 고와 다른 펠로들도 팰런티어에 취업했으며 파운더스 펀드 컨설턴트로 일했다.
실리콘밸리 최고의 인재 발굴자라고 할 수 있는 틸에게 그의 비영리 프로그램을 인재와 초기 투자기회를 포착하는 수단으로 간주해도 될지 물었다.
그는 “우리는 비영리 조직과 영리 조직 간의 경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대단히 신중을 기한다”고 말했다. “비영리 조직의 후원자가 어떻게든 결과적으로 이익을 보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경우 그 조직은 결국 사익을 위한 것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 우리 펀드는 사실상 투자를 주도하지 않으며 나는 아주 소극적으로 극히 작은 부분만 투자한다.”
틸 펠로 138명이 총 4억5000만 달러 정도의 투자자금을 조달하고 25억 달러의 지분가치를 창출했다. 대다수 대학 기금보다 많은 액수다. 이 같은 인상적인 실적을 떠나 틸은 펠로십이 벤처창업을 대학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알리는 데 성공했다고 믿는다. “요즘엔 벤처창업이 이력서에 올리는 항목의 하나”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성공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펠로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느냐는 점이라고 틸은 말한다. 기사를 위해 인터뷰한 22명의 펠로(프로그램을 일찍 떠난 사람 포함) 중 1명만 빼고 모두가 그렇다고 명확히 말했다. 하지만 사업 성공을 자신의 최대 소득으로 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대학 생활에서보다 실제 일하고 진짜 문제를 해결하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주장했다.
틸의 실험이 고등교육에 대한 실용적인 대안임을 뒷받침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엄선된 성취욕 강한 이들 별종 그룹의 성공에는 분명 별도의 시간과 자금 그리고 인맥이 윤활유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대다수는 억만장자 후원자가 있든 없든 언젠가는 스스로 상당한 성과를 올렸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을 법하다.
틸의 펠로십에서 비행자동차나 소행성의 광물 채굴 기술이 탄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작에 논의됐어야 할 고등교육의 가치에 관한 토론에 불을 댕기는 역할을 했다. 그것이 그 프로그램이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준 가장 큰 혜택일지도 모른다. 스티븐스는 “부모들이 자녀의 미래에 관해 더 합리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1600만 달러짜리 PR 캠페인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큰 성과로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펠로십이 출범한 지 6년 사이 교육 대안의 범위가 폭발적으로 확대됐다. 신세대 학생들의 수요에 전통 교육기관들이 늑장 대응함에 따라 새로운 교육 서비스 사업자들이 더 보편적인 기술을 이용해 교육을 개발하고 전달하는 방식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일부는 기술 습득에 집중해 직업학교 전통에 IT 시대의 현대적 특성을 가미한다. 그런 교육은 인문 교육에 대한 대체 또는 실용적인 보완 기능을 할 수 있다. 코디 아카데미(컬럼비아대학 중퇴자가 공동창업)와 유데미(Udemy)의 온라인 쌍방향 컴퓨터 코딩 과정에 등록한 학생이 4000만 명을 웃돈다. 그 밖에도 제너럴 어셈블리(General Assembly)와 핵 리액터(Hack Reactor) 같은 신흥 교육벤처들이 다양한 온라인 강좌와 오프라인 ‘부트캠프(boot camps, 단기 집중강좌)’를 제공한다. 이들 부트캠프에선 약 1만5000달러의 12주 집중 코스를 통해 취업 가능한 프로그래머들을 배출한다고 약속한다.
새로 떠오르는 더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교육적 대안 중 몇몇 가장 흥미로운 프로젝트는 틸 펠로의 머리에서 나왔다. 프리드먼의 회사 씽크풀은 온라인 레슨과 코딩 경력자의 1대1 멘토십을 결합해 정보기술 종사자 대상의 원격 학습을 맞춤 설계한다. 큰 성공을 거둔 스티븐슨의 언컬리지(UnCollege)는 “스스로 교육하고 탐구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젊은이 대상의 체계적인 안식년(gap-year, 고교 졸업 후 대학생활을 시작하기 전 1년간 일이나 여행을 할 수 있는 제도)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들 새 옵션이 전통적인 학업 패러다임과 다른 점은 ‘골라잡는’ 특성에 있다. 교육 행정가들이 아니라 학생이 무엇을 배울지 선택한다. 깁슨은 “교육의 대해체”라며 이렇게 덧붙인다. “전에는 대학에서 모든 과목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었다. 지금은 더 싸고 실제적인 교육 대안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이런 폭 좁은 진로에서 탈피하고 있다. 구식의 관료적이고 자의적인 규칙을 따르려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구의 온라인 융자 플랫폼은 5300만 달러 이상의 자본을 조달하고 1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그가 아이비 리그 졸업장을 받지 못하게 된 현실을 부모님이 마침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구는 말한다. 첫 2개 기수 펠로 43명 중 구는 대학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기 회사나 프로젝트에 계속 매달린 25명 중 1명이다. 6명은 기성 IT 업체에 자리를 잡았다(일부는 인수를 통해). 펠로십 창설 후 6년 동안 138명의 펠로 중 대학으로 돌아간 인원은 12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 복귀자 12명 중 프린스턴대학으로 돌아가기로 한 풀 고의 결정이 어쩌면 가장 뜻밖이었다. 그러나 아시아와 아프리카 18개국에서 태양광 전력 생산을 확대하는 선설루터를 설립한 풀 고는 자신의 당초 계획대로 움직였다. “나는 내가 듣고자 하는 과목만 전략적으로 선택해 내게 필요한 기술적 지식을 습득하며 캠퍼스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소화했다.”
그녀는 졸업을 6개월 남겨두고 다시 중퇴했다. “내게 필요한 지식을 모두 얻었으니 그 기술을 현장에서 활용하고 싶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단지 졸업장을 받으려고 반 년 더 학교에 남아 필수과목을 듣는 건 의미가 없었다. 정신 나간 소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배우기 위해 대학에 왔다. 그런 종잇장 따위는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 톰 클라인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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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구의 부모는 황당해 하면서 벌컥 화를 냈다. 경제학·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며 학교에 잘 다니던 아들이 2011년 전화를 걸어와 ‘틸 펠로십(Thiel Fellowship)’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남다른 재능’을 가진 십대 24명 중에 선발돼 동기생과 함께 구상한 회사 창업 자금으로 2년 동안 10만 달러를 받게 된다. 문제는 학교를 그만둬야 한다는 점이었다.
부모님은 구가 6세 때 중국 허베이성에서 미국 피닉스로 이주했다. 그들은 자유주의 성향의 억만장자 피터 틸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틸은 페이팔을 공동 창업한 뒤 페이스북·스포티파이·옐프 등 IT 업계의 성공기업에 대한 족집게 투자로 계속 대박을 터뜨렸다. 이민이든 아니든 대다수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에선 대학교육이 출세의 밑거름이었다.
그러나 틸에게 오늘날의 명문대학은 혁신의 발목을 잡고 기술 정체를 초래해 장차 경제에 악영향을 초래할 과대평가된 유물이다. 틸은 구 같은 진취적인 젊은이가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중요한 시기에 빚에 치이다가 결국 돈벌이는 쏠쏠하지만 보람 없는 일자리에 정착하는 길을 가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보다는 “사회에 보탬이 되는 파격적인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틸은 똑똑하고 야심적인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더 원대한 목표에 도전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학위를 찍어내는 교육기관보다 더 나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멘토상담·사업지도·네트워킹 기회와 매월 보조금을 지급하는 펠로십(연구장학제도)을 운영해 그들을 지원한다.
미국의 고등교육 시스템에 직격탄을 날림으로써 판세를 흔들려는 틸의 의도가 적중한 듯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학 명예총장은 그의 아이디어를 가리켜 “금세기 중 유일하게 가장 크게 빗나간 자선사업”이라고 평했다. 그는 고등교육 개혁은 필요하지만 자선기금을 내세워 대학중퇴를 조장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덧붙였다.
허황된 꿈을 강매하는 것은 서머스 명예총장 같은 대학 측이라고 틸은 반박한다. 대학 학비는 물가상승률의 2배로 뛰었다. 대학 학자금 융자액은 현재 1조3000억 달러를 웃돈다. 부채증가에 35세 이하 성인의 창업 감소가 맞물렸다. 벤처창업 교육기관 카우프만 재단은 최근 조사에서 이를 ‘잃어버린 창업가 세대(a lost generation of entrepreneurs)’로 불렀다.
IT와 주택시장의 거품붕괴를 예측했던 틸은 다음에는 교육부채 거품이 꺼질 차례라고 본다. “품질은 향상되지 않는데 가격만 터무니없이 치솟았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과대평가와 맹신이 팽배할 때는 항상 거품 신호로 보면 된다.”
‘일이 크게 틀어질 경우엔…’
이들은 경쟁이 치열하지만 치밀하게 짜여진 진로를 따라 일류대학 합격이라는 힘들지만 다소 현실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그 뒤에는 의미보다는 연봉 높은 회사에 취업한다(미국 동부 명문 아이비 리그 졸업생 중 약 3분의 1이 몰리는 금융과 컨설팅은 틸이 냉소적으로 곧잘 인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중 창의적이고 창업지향적인 무리는 캠퍼스에 발을 들여놓은 뒤에야 자신들이 꿈꾸던 이상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입학하기 위해 그렇게 안간힘을 썼던 대학이건만 자신들의 잠들지 않는 두뇌가 갈구하는 탄력성이 결여된 데 실망한다.
에덴 풀 고 또한 프린스턴대학 2학년 때 구와 마찬가지로 2011년 초 틸 펠로십에 관한 소문을 들었다. 대학 조정 대표팀 선수이자 새내기 전기공학도인 풀 고는 약 150㎝에 불과한 작은 체구지만 믿기지 않을 만큼 활력과 자신감이 넘친다. 그녀는 10세 때 태양전지 자동차를 처음 제작했다. 이어 중력기반 급수와 두 가지 금속을 접합한 바이메탈릭 코일을 이용해 전지판이 태양을 추적할 수 있도록 하는 신기술 연구에 착수했다. 전력 생산량을 40% 늘리고 덤으로 깨끗한 식수도 쏟아내는 기술이다. 16세 때 캐나다 앨버타 주 캘거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 기본 모델을 개량하기 위해 케냐 농촌을 찾아갔다.
그녀는 그 선설루터(SunSaluter)를 개도국 세계의 수백만 주민을 위해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으로 구상했다. 그러나 학교 공부에 발목이 잡혔다고 한다. “나 같은 사람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진 경직된 시스템에 맞춰야 했다. 필수과목이 걸림돌이었다. 나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결과물을 내놓는 데 필요한 지식을 배우고자 했다.”
풀 고와 구를 비롯한 80명의 최종 후보자들이 2011년 3월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펠로십 심사위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심사위원 중에는 틸의 IT와 벤처투자 업계 친구들이 많았다. 선정된 아이디어 중 절반가량이 야심적인 과학·공학 프로젝트였다. 존 버넘은 지나쳐가는 소행성에서 광물을 추출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로라 데밍은 틸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노화관련 질병의 퇴치에 초점을 맞췄다. 14세 때 MIT 생물학 과정에 등록한 데밍은 “이론상 사람 수명의 수백 년 연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 같은 IT 혁신가들을 모델로 삼은 듯했다. 둘 다 하버드대학을 중퇴했다. 델·우버·오라클 창업자와 기타 다수의 IT 실력자들 모두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처럼 일찍 대학 생활을 접었다. 잡스는 1학년 때 리드 칼리지에서의 학위 취득 과정이 근로자 계급 부모가 내는 등록금만큼의 값어치를 하지 못한다고 확신했다. 일단 캠퍼스를 벗어나자 그는 “훨씬 더 흥미로워 보이는 과정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인 캘리그래피(손글씨) 강습은 매킨토시 컴퓨터가 활자 디자인에 중점을 두는 초석이 됐다. 애플의 상징적인 강점 중 하나다.구는 자신의 벤처창업 성공 확률이 낮다는 부모님 말씀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역 상거래 웹사이트 아이디어를 갖고 있던 구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펠로십을 받기로 했다. 이제 26세인 그는 “부모님은 아이비 리그 졸업장을 제 발로 걷어차는 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내가 걸어가는 안전한 진로는 성장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나는 더 큰 목표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구의 예일대 동기이자 사업 파트너 대니얼 프리드먼은 처음에는 망설였다. 결국에는 펠로십을 받은 프리드먼은 이렇게 설명했다. “직업적으로는 경력을 얻게 된다. 일이 크게 틀어지더라도 학교로 돌아가면 된다. 정말 아쉬운 것은 가까운 친구들을 떠나게 된다는 점이었다.”
대다수 다른 최종 후보자들과 달리 닉 카마라타는 양면성을 가진 학생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학점 평균이 2.2에 그쳤으며 졸업반 때 학교 결석일수가 60일에 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마라타는 야심만만한 프로젝트를 구상했으며 어릴 때부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자립적이었다. 9세 때부터 자기가 집에서 사용하는 공공서비스(전력·수도 등)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부모에게 주장했다. 10세 때부터는 알고리즘 프로그래밍 실험에 주당 최대 80시간씩 매달렸다. 16세 때는 파일 저장 서비스 드롭박스의 경쟁 서비스를 출범시켜 11개월 만에 이용자 8300만 명을 끌어모았다.
카네기멜론대학 컴퓨터 공대 학장은 그의 그런 실적을 높이 평가해 입학사정 기준을 접어두고 예외적으로 그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신입생 대상의 합숙 오리엔테이션 기간 동안 뚜렷한 목표의식 없는 동기생들에 실망한 카마라타는 틸 펠로십을 신청하기로 했다.
교사들이 태블릿으로 쌍방향 강의를 제작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앱 아이디어를 갖고 있던 카마라타는 “틸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일종의 실험인 건가? 무엇이 됐든 대학에 다니는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듯했다.”
고등교육에 대한 틸의 도전
틸은 2002년 15억 달러에 페이팔을 이베이로 팔아 넘긴 뒤 “기존 사회·정치 질서에 변화를 유도하고 신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다른 닷컴 업체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2004년 그는 외부 투자자로선 처음으로 페이스북에 베팅했다. 앤젤 투자로 50만 달러를 건넨 뒤 4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고 전해진다. 그는 소셜미디어의 유용성에 관해 “전통적인 국민국가(nation-states, 공통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는 국민이나 민족으로 구성되는 독립국가)에 속박되지 않는 새로운 공동체 형성 방법과 새로운 반체제 모드를 위한 공간 조성의 수단”이라는 자유주의적인 관점을 가졌다.
더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해 실리콘밸리의 반감을 샀으며 레슬러 헐크 호간으로 더 유명한 테리 볼레아의 사생활 침해 소송을 막후 지원해 언론계의 속을 긁었다. 9년 전 틸이 동성애자라고 폭로했던 IT 블로그 운영업체인 고커 미디어는 1억4000만 달러 배상판결을 받고 파산했다.
분명 보복이 고커 미디어 소송의 동기인 듯하지만 틸은 종종 페이팔 공동창업자 맥스 레브친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이 하는 일의 역발상적 성격”에 이끌리는 듯하다. 그가 동료와 입사 지망자에게 던지는 특유의 질문 중 하나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 대다수가 진실이 아니라 해도 자신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해보라”는 것이다.틸은 또한 사회 그리고 가장 영향력 있는 구성원 집단이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자신이 발전적인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비행자동차를 원했지만 얻은 건 140자(트위터)였다’는 그의 ‘파운더 펀드’ 성명서는 실리콘밸리의 좀스러운 포부에 대한 그의 실망을 나타낸다.
고등교육에 대한 틸의 도전은 미국이 큰 자랑으로 여기는 제도에 대한 공격이다. 대니엘 스트래크먼과 함께 펠로십 프로그램 운영자로 채용된 마이클 깁슨에 따르면 한번은 직접 대학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틸이 그 구상을 포기한 것은 “너무 복잡하고 시스템에 너무 순종하는 듯했기 때문”이었다고 깁슨은 전한다.
틸은 펠로(보조금 수혜자)들이 어디서 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든 아무런 제약 없이 탄력적으로 펠로십이 운영되기를 원했다. 구, 카마라타, 풀 고를 비롯한 여러 펠로들은 한 두 달 뒤 스타트업 무대의 스타덤에 도전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만안 지역에 속속 도착하는 젊은 인재 대열에 합류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조사에 따르면 뉴욕시 IT 업계의 평균적인 창업자는 먼저 기성업체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한 대졸자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만안 지역으로 몰려드는 젊은이들 사이에선 회사를 창업하기(또는 졸업장을 요구하지 않는 구글이나 기타 다른 IT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대학을 나와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비율이 갈수록 늘어난다. 그들의 해커 마인드(세상은 가변적이고 혁신 무드가 조성됐다)에 갈수록 몰려드는 투자자본이 맞물려 캘리포니아 북부에 탈자격증 경제(post-credential economy)랄 만한 문화가 형성됐다.
네트워킹이 돈보다 더 중요해
펠로 1기 데일 스티븐스는 “그 연령대에선 극소수 그룹에만 그 방식이 주효한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펠로십 신청 당시 제출했던 아이디어를 가리켜 지금은 “항공업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디어였다”고 평한다. 풀 고는 “우리 중 상당수가 항상 시키는대로만 하다가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어 적응하기 힘들어 했다”며 “나는 이메일에 시간을 허비하며 보내는 날이 많았다”고 말했다.
프리드먼과 얼굴 붉히지 않고 갈라선 구의 경우 열정은 차고 넘쳤지만 자기 제품과 회사의 미래상은 불분명했다. “나는 많은 똑똑한 사람들과 점심식사를 함께하며 아이디어 홍보에 열을 올렸다. 처음에는 흥분됐지만 우리는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좌절감이 커졌다. 왜 대학을 중퇴했을까 회의가 일기 시작했다.”
가족과 친구들 곁을 떠나 맨손으로 회사를 세워야 했던 1~2년차 펠로 중 여럿이 우울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카마라타는 “실리콘밸리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싼 셋집을 얻어 살며 하루 종일 그리고 자는 시간을 아끼며 코딩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 데이비드 머필드, 존 마배크와 손잡고 강의 공유 앱을 개발해 ‘태블로’라고 명명했다. “나는 내가 주목을 받아 마크 저커버그와 엘론 머스크의 멘토를 받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수업도 의미 있는 멘토 교육도 없었다. 우리는 어떻게 회사를 세울지 전혀 몰랐다. 내가 원하던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서 파티를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카마라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웨이크 포리스트 대학을 중퇴한 마배크는 실리콘밸리에는 술을 하지 않는 ‘비주류’의 사교 공간이 거의 없음을 금방 깨달았다. “어떤 CEO나 벤처자본가든 만날 수 있는 건 마음에 들었지만 함께 어울릴 만한 사람이 없었다.” 마배크는 펠로십을 중단하고 웨이크 포리스트로 돌아가기로 했다. 데이비드 루안 펠로도 예일로 복귀했다.
온라인 교육 벤처로 방향을 틀었던 프리드먼은 “사업체를 키우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18개월이 지난 뒤 내 친구들은 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들은 내 회사는 어떻게 돼가는지 묻곤 했다. 뭐라 대답할지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2012년 후반 2기 펠로들이 들어올 무렵 틸에게 문하생들은 있었지만 파격적인 혁신 기술은 없었다.
이미 오래 전에 미국 대학 시스템의 전면적인 쇄신이 이뤄져야 했다는 점은 학자들도 인정한다. 리처드 애럼과 조시파 록사는 저서 ‘학문적 표류(Academically Adrift)’에서 24개 대학 학부생 중 45%가 대학 재학 첫 2년 동안 다양한 지적 능력(예컨대 비판적 사고, 복잡한 추론, 글쓰기 등)에서 의미 있는 발전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저자들은 사교활동이나 아르바이트, 그리고 학부 학업을 중시하지 않는 대학문화를 저조한 학업능력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대학에는 다른 어떤 제도보다 우수한 점이 몇 가지 있다. 캠퍼스는 성인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아주며 체계적인 전환기를 제공하고 다양한 사람과 사고를 접하게 해준다. 동기부여가 분명한 학생은 논리 정연한 글쓰기를 배우거나 정량적 지식을 적용해 과학적 발견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대학은 개인의 관심사를 테스트하고 평생의 친구·멘토·이성을 만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틸의 스탠퍼드대학 학사·법학박사 학위는 그에게 상당한 도움이 됐을 듯하다. 그러나 현재 약 17억 달러의 자산가 투자자인 그는 무엇을 배울지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은 ‘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내 앞날에 관해 책임감을 갖고 진지하게 생각해보려 하지 않았다.”
틸이 대학 신입생이 된 뒤 30년 사이 대학에서 자신의 미래를 모색하는 데 드는 비용이 크게 올랐다. 그는 “누구에겐 아직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졸업생이 많다. 그들은 빚을 떠안고 부모 집으로 다시 들어간다. 사람들이 뭔가 잘못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미래의 우버나 에어비앤비 창업을 위해 대학을 중퇴하는 것은 혹할 만한 옵션으로 보이지만 저커버그나 잡스 같은 인물 한 명이 탄생하기까지 원대한 아이디어를 가진 대학 중퇴자 수천 명이 실패의 쓴 잔을 들이킨다. 3000만 명에 달하는 미국 대학 중퇴자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빈곤에 허덕일 확률이 대졸자들보다 훨씬 더 높다. 대학 교육 투자 대비 수익률은 하락세지만 대학 졸업장 없는 성인의 연평균 소득은 2만3900달러에 불과하다. 대졸자 평균소득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3학년을 마치고 브라운대학을 중퇴한 2기 틸 펠로인 딜런 필드는 “펠로십 홍보에서 언급되지 않은 사실은 대학이 많은 사람에게 대단히 유익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나로선 정말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나는 회사를 창업하고 싶었고 펠로십이 그 꿈의 실현을 앞당기는 지름길이었다.”
캘리포니아 주 소노마 카운티에서 성장한 아역배우 출신의 필드는 IT 전문 고등학교를 다녔다(“로봇기술 팀의 인기가 미식축구 팀만큼 높았다”). 그리고 대학 시절 링크드인과 오라일리 미디어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플립북에서 여름 인턴으로 일할 때는 디자이너용 제작도구 세트를 더 좋고 싸게 만들어 소프트웨어 대기업 어도비에 도전하려는 대담한 계획을 내놓았다.
필드를 비롯한 다른 2기 펠로들이 샌프란시스코 만안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인맥이 구축되기 시작했다. 카마라타, 데밍 등 몇몇이 팔로알토에 큰 집을 구해 함께 세를 들었다. 처음에는 다섯 식구였지만 곧 8~9명으로 불어났다. 카마라타는 “한번은 193㎝의 거구가 옷장 속에서 지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새벽 2시에 인생철학을 논하는 등 마치 대학 기숙사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시점부터 그 생활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펠로십 프로그램의 기틀이 잡히며 대학 같은 공백이 일부 메워지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에서 그룹 숙소를 구하는 신참 펠로들이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펠로십이 세미나, 만찬·친목모임을 더 많이 후원하기 시작하면서 펠로들이 동료, IT업계 거물, 앤젤 투자자와 어울릴 수 있었다. 심리학자도 한 명 불러들여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펠로들을 도왔다. 틸은 “우리는 공동체가 펠로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과소평가했다”며 “그것이 첫해 우리의 최대 실수였다”고 말했다.
필드에겐 그런 사회적인 요소가 돈만큼이나 중요했다. “벤처창업 활동은 대단히 고독한 작업이 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함께할 좋은 사람들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된다.”
‘대학들이 말하는 핵심적인 거짓말’
한 파티에서 “진이라는 사람을 만났다”고 카마라타는 회상했다. “내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묻길래 나는 ‘지금 회사를 팔려 하는데 인수하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곧 회사의 새 주인이 됐다.
태블로는 펠로십 기간 창업한 기업 중 처음 팔려나간 회사였다. 다른 펠로들에게도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필드도 자신의 회사 피그마에 400만 달러의 자본을 쉽게 조달했다. 당초의 아이디어를 포기했던 구는 다음 프로젝트를 찾던 구글 엔터프라이즈 임원 2명을 만났다. 세 사람이 뜻을 모아 투자자들이 젊은 신진 기업가들을 후원하는 융자 플랫폼에 175만 달러의 종자돈을 조달했다. 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통사람을 위한 킥스타터(소셜펀딩 사이트)”였다.
그 아이디어는 훗날 구가 개발한 혁신적인 알고리즘을 이용해 융자를 제공하는 업스타트(Upstart)로 발전했다. 기존의 신용점수 대신 소득 잠재력과 기타 변수들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구는 궁극적으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 투자자 중 상당 비율”을 펠로십 네트워크를 통해 물색하려 한다.
펠로십이 대학생활의 몇몇 측면을 모방하면서 틸이 성토했던 고등교육 기관들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반대로 대학들이 영향을 받은 징후도 있었다. 지난 6년 사이 틸 펠로십이나 Y 콤비네이터(틸이 파트너로 있는 초기단계 IT 벤처 인큐베이터)에 학생들을 빼앗긴 대학들은 그들을 캠퍼스에 눌러앉히는 한편 벤처창업 열정을 지원하는 다양한 방안을 도입했다.
하버드대학의 ‘이노베이션 랩(i-lab)’은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창업하려는 학생들에게 자금조달과 멘토링 자원 역할을 한다. 예일대학 벤처창업 연구소(Yale Entrepreneurial Institute)의 ‘이노베이션 펀드’는 신생 기업에 최대 10만 달러를 제공한다. 틸 펠로십 참여 1년 만에 떠난 데이비드 루안은 예일대학 펀드 문을 두드려 자신의 비주얼 분석 소프트웨어 업체 덱스트로의 자금을 조달했다. 워튼스쿨·콜럼비아·노스웨스턴과 여러 주립대학도 인큐베이터와 액셀러레이터(벤처기업 육성)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틸은 이런 조치들로는 고등교육의 저변에 깔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전한 등록금 인상, 의심스런 가치, 배타성 등이다. 틸은 “명문대학에는 분명 몇 가지 장점이 있다”며 이렇게 덧붙인다.
“대학교육에 관해 그들이 말하는 핵심적인 거짓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본질적으로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는 주장이다. 실상 그들이 운영하는 건 문 밖에 입장 대기행렬이 길게 늘어섰고 소수가 실내에서 춤추는 스튜디오 54 나이트클럽이나 다름없다. 하버드대학이 세상에 더 많은 혜택을 주고자 한다면 문호를 개방하고 프랜차이즈 계약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하버드대학 총장이 그런 주장을 하면 그 대학 동문들이 야구 방망이를 들고 그의 사무실 앞으로 몰려들 것이다. 그들의 정체성은 배타성에서 나온다.”
하지만 틸은 신입 펠로 수를 1년에 30명으로 제한하는 현재의 한도 해제에는 회의적이다. “우리는 프로그램이 또 다른 획일적인 자격인증 시스템이 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인원이 적어야 그들을 개별적으로 지원하면서 특정한 기회를 창출하고 그들이 만나야 할 사람들과 의미 있는 인맥을 형성할 수 있다.”
큰 잠재력을 지닌 학생들을 ‘체제 순응적인 학위 제조 기관’으로부터 구제하려는 틸의 시도는 펠로들이 빠져나온 어떤 대학들보다 훨씬 더 배타적이랄 수 있는 클럽으로 탈바꿈했다.
틸 사단이라는 배경을 감안할 때 투자자들은 거의 틀림없이 적어도 펠로의 홍보에 귀 기울이고 십중팔구 호의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구의 ‘업스타트’는 3년째 1차 대규모 펀딩 라운드에서 600만 달러를 조달하고 직원 10명을 채용했다. 딜런 필드는 1400만 달러를 추가로 유치하고 디자이너·엔지니어·마케팅 담당을 포함해 피그마의 직원을 14명으로 늘렸다.
베타판이 나오자 디자인 업계에선 피그마의 실시간 협업 편집 기능이 화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도비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대표적인 기능이다. 선설루터를 비영리단체로 만들기로 한 풀 고는 50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원받고 아프리카와 인도에 유통·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동안 100만 마일 비행 기록을 세웠다.
자금조달에 숙달됐지만 회사 운영에 어려움을 겪은 펠로들도 있었다. 스탠퍼드대학 중퇴자 톰 커리어의 도시 공동거주 부동산 관리 벤처기업은 2년 만에 도산해 입주자들이 강제 퇴거됐다. 19세 때 스탠퍼드대학 신경학과 4년차 박사 후보 과정을 밟던 앤드류 쉬는 에어리 랩스라는 교육 게임 스타트업을 창업해 구글 벤처스 같은 거물 투자업체로부터 150만 달러를 조달했다. 하지만 그 회사가 실제론 쉬의 부모가 운영하는 ‘노동착취 공장’이라는 비판 속에 2012년 20명의 직원 대다수를 정리했다.펠로들은 지금은 수입·지출·현금흐름 현황을 프로그램 측에 보고해야 한다. “그런 정보를 알아야만 그들이 악셀을 밟아 더 속력을 높여야 하거나 6개월 버틸 현금밖에 없을 경우 도울 수 있다”고 잭 에이브러험은 말했다. 깁슨과 스트래크먼이 펠로십 수료자와 기타 ‘부적응자 청년 창업가’의 자본 수요에 부응하는 벤처펀드 설립을 위해 떠나면서 에이브러험이 사무국장으로 영입됐다. 그는 포괄적 멘토링 프로그램을 개발해 자본조달, 팀워크 구축, 이용자 확보 등 회사 성장의 더 큰 몇몇 난제에서 펠로들을 돕는다.
단연 최대의 변화는 신참 펠로들이 제시하는 프로젝트 유형이다. 틸은 생의학 기술, 교통, 에너지 같은 분야의 발전을 촉진한다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기수가 바뀔 때마다 펠로들은 갈수록 실리콘밸리 그리고 틸을 닮아 간다. 핵융합 에너지, 암치료, 면역요법 등 틸이 프로그램을 창설했을 때 꿈꿨던 ‘파격적인 혁신’에 시동을 걸만한 야심적인 정통 과학 프로젝트는 거의 없다.
실리콘밸리가 140자의 한계를 뛰어넘도록 하겠다던 틸의 의지가 약화된 걸까?
그는 “우리는 과학에서 혁명적 돌파구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관점에서 출발했지만 STEM(과학·기술·공학·수학)에선 뭔가를 독립적으로 시작하기가 더 어렵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소프트웨어는 개인이 컴퓨터와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액의 자금만 있으면 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쉽다. 요즘 우리는 지원자의 아이디어가 영감을 주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뿐 아니라 실행 가능하고 뚜렷한 상업성이 있는지도 고려한다.”
초기 펠로 중 일부는 포토닉스(광통신 등 빛과 관련된 기술), 나노기술, 의학 분야에서 점진적이지만 인상적인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평범한 기술이 최고의 인기를 모았다. 하버드대학 중퇴생 벤 유의 스프레이어블(Sprayable) 카페인은 시장에서 인기만점이다. 투자자들은 비탈릭 부테린의 암호화폐 프로젝트에 수천만 달러를 쏟아붓는다.
제임스 프라우드의 회사 헬로는 대략 4000만 달러를 조달했다. 헬로에서 개발한 수면 트레커 센스는 요즘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첨단 알람 시계 중 하나다. 인도의 리테시 아가르왈은 중저가 브랜드 호텔 대상의 온라인 장터 구축 자금으로 2억2500만 달러 이상을 조달했다.
MIT의 ‘글로벌 파운더스 스킬스 액셀러레이터’ 책임자 빌 올렛은 “이는 제2의 레드불 에너지 음료, 데이팅 앱 개발 또는 우버화(Uberfication, 플랫폼을 활용한 공유경제 창출)를 하고자 할 경우엔 틸 펠로십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하지만 암을 퇴치하거나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할 경우엔 미흡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최근 기수의 펠로들은 처음 2개 기수와는 크게 달라 보인다. 대다수가 지원자 그룹에서 선발되기보다는 샌프란시스코 만안 지역의 틸 인맥을 통해 모집됐다. 더 나이가 많고 상당수가 여러 차례 벤처 창업에 성공한 경력자들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대박 가능성이 큰 실리형 아이디어에 투자하려는 벤처 자본가들이 이미 존재하는데 비영리 펠로십이 과연 필요할까?
의도적이든 아니든 펠로십의 한 가지 현실적인 결과는 ‘틸 주식회사’의 2군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프리드먼의 회사 씽크풀(Thinkful)은 틸이 자본을 조달한 첫 기업이었다(그의 FF 앤젤 벤처자본 펀드를 통했다). 그 뒤로 틸의 펀드는 구의 ‘업스타트’, 토마스 소머스의 렉스 컴퓨팅에 투자해 왔다. 렉스 컴퓨팅은 슈퍼컴퓨팅 응용프로그램용의 고효율 칩을 개발하는 회사다. 클레이 올솝프의 ‘프로펠러’에도 틸의 자금이 투입됐다. 모바일 앱 제작 도구를 개발하는 프로펠러는 2014년 팰런티어 테크놀로지로 넘어갔다. 틸이 공동창업한, 베일에 가려진 데이터 분석 업체다.
그런 기업들은 분명 그 밖에도 더 많다. 데밍에게 그녀의 바이오기술 위주의 론제비티 펀드나 그녀의 면역요법 회사 알렉소 세라퓨틱스에 틸이나 그의 펀드가 투자했는지 물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짐작하는대로”라고 답했다. 풀 고와 다른 펠로들도 팰런티어에 취업했으며 파운더스 펀드 컨설턴트로 일했다.
실리콘밸리 최고의 인재 발굴자라고 할 수 있는 틸에게 그의 비영리 프로그램을 인재와 초기 투자기회를 포착하는 수단으로 간주해도 될지 물었다.
그는 “우리는 비영리 조직과 영리 조직 간의 경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대단히 신중을 기한다”고 말했다. “비영리 조직의 후원자가 어떻게든 결과적으로 이익을 보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경우 그 조직은 결국 사익을 위한 것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 우리 펀드는 사실상 투자를 주도하지 않으며 나는 아주 소극적으로 극히 작은 부분만 투자한다.”
틸 펠로 138명이 총 4억5000만 달러 정도의 투자자금을 조달하고 25억 달러의 지분가치를 창출했다. 대다수 대학 기금보다 많은 액수다. 이 같은 인상적인 실적을 떠나 틸은 펠로십이 벤처창업을 대학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알리는 데 성공했다고 믿는다. “요즘엔 벤처창업이 이력서에 올리는 항목의 하나”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성공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펠로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느냐는 점이라고 틸은 말한다. 기사를 위해 인터뷰한 22명의 펠로(프로그램을 일찍 떠난 사람 포함) 중 1명만 빼고 모두가 그렇다고 명확히 말했다. 하지만 사업 성공을 자신의 최대 소득으로 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대학 생활에서보다 실제 일하고 진짜 문제를 해결하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주장했다.
틸의 실험이 고등교육에 대한 실용적인 대안임을 뒷받침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엄선된 성취욕 강한 이들 별종 그룹의 성공에는 분명 별도의 시간과 자금 그리고 인맥이 윤활유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대다수는 억만장자 후원자가 있든 없든 언젠가는 스스로 상당한 성과를 올렸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을 법하다.
틸의 펠로십에서 비행자동차나 소행성의 광물 채굴 기술이 탄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작에 논의됐어야 할 고등교육의 가치에 관한 토론에 불을 댕기는 역할을 했다. 그것이 그 프로그램이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준 가장 큰 혜택일지도 모른다. 스티븐스는 “부모들이 자녀의 미래에 관해 더 합리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1600만 달러짜리 PR 캠페인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큰 성과로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펠로십이 출범한 지 6년 사이 교육 대안의 범위가 폭발적으로 확대됐다. 신세대 학생들의 수요에 전통 교육기관들이 늑장 대응함에 따라 새로운 교육 서비스 사업자들이 더 보편적인 기술을 이용해 교육을 개발하고 전달하는 방식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일부는 기술 습득에 집중해 직업학교 전통에 IT 시대의 현대적 특성을 가미한다. 그런 교육은 인문 교육에 대한 대체 또는 실용적인 보완 기능을 할 수 있다. 코디 아카데미(컬럼비아대학 중퇴자가 공동창업)와 유데미(Udemy)의 온라인 쌍방향 컴퓨터 코딩 과정에 등록한 학생이 4000만 명을 웃돈다. 그 밖에도 제너럴 어셈블리(General Assembly)와 핵 리액터(Hack Reactor) 같은 신흥 교육벤처들이 다양한 온라인 강좌와 오프라인 ‘부트캠프(boot camps, 단기 집중강좌)’를 제공한다. 이들 부트캠프에선 약 1만5000달러의 12주 집중 코스를 통해 취업 가능한 프로그래머들을 배출한다고 약속한다.
새로 떠오르는 더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교육적 대안 중 몇몇 가장 흥미로운 프로젝트는 틸 펠로의 머리에서 나왔다. 프리드먼의 회사 씽크풀은 온라인 레슨과 코딩 경력자의 1대1 멘토십을 결합해 정보기술 종사자 대상의 원격 학습을 맞춤 설계한다. 큰 성공을 거둔 스티븐슨의 언컬리지(UnCollege)는 “스스로 교육하고 탐구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젊은이 대상의 체계적인 안식년(gap-year, 고교 졸업 후 대학생활을 시작하기 전 1년간 일이나 여행을 할 수 있는 제도)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들 새 옵션이 전통적인 학업 패러다임과 다른 점은 ‘골라잡는’ 특성에 있다. 교육 행정가들이 아니라 학생이 무엇을 배울지 선택한다. 깁슨은 “교육의 대해체”라며 이렇게 덧붙인다. “전에는 대학에서 모든 과목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었다. 지금은 더 싸고 실제적인 교육 대안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이런 폭 좁은 진로에서 탈피하고 있다. 구식의 관료적이고 자의적인 규칙을 따르려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졸업장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들 복귀자 12명 중 프린스턴대학으로 돌아가기로 한 풀 고의 결정이 어쩌면 가장 뜻밖이었다. 그러나 아시아와 아프리카 18개국에서 태양광 전력 생산을 확대하는 선설루터를 설립한 풀 고는 자신의 당초 계획대로 움직였다. “나는 내가 듣고자 하는 과목만 전략적으로 선택해 내게 필요한 기술적 지식을 습득하며 캠퍼스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소화했다.”
그녀는 졸업을 6개월 남겨두고 다시 중퇴했다. “내게 필요한 지식을 모두 얻었으니 그 기술을 현장에서 활용하고 싶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단지 졸업장을 받으려고 반 년 더 학교에 남아 필수과목을 듣는 건 의미가 없었다. 정신 나간 소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배우기 위해 대학에 왔다. 그런 종잇장 따위는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 톰 클라인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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