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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 파블로브스키 샤넬 패션부문 CEO

브루노 파블로브스키 샤넬 패션부문 CEO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6월 23일부터 7월19일까지 선보였던 전시 ‘마드모아젤 프리베 서울’은 샤넬만의 창의성을 응집해 보여준 자리였다. 전시 오프닝 행사 참석차 서울에 온 샤넬 패션부문 CEO 브루노 파블로브스키를 만났다.
1990년부터 샤넬에 근무한 파블로브스키는 “샤넬은 창의성을 기반으로 성공한 유일한 패션 브랜드”라는 강한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 사진 : 샤넬 제공
패션에 문외한이라도 이름이 익숙한 브랜드가 있다. 샤넬도 그 중 하나다.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1883~1971)이 1916년 파리의 깡봉 거리에 정식 매장을 내며 시작한 브랜드는 100여 년이 지나 프랑스의 대표적인 패션하우스가 됐다. 명성을 얻는 데는 프레임을 바꾸는 ‘혁명’이 있었다. 디자이너는 클러치백에 체인 끈을 달아 두 손을 자유롭게 했고, 남성 속옷으로 쓰이던 저지 원단을 이용해 편안한 여성복을 만들었다. 또 브루주아의 전용물인 보석을 모조하는가 하면, 세계 최초로 디자이너 향수를 발표하면서 이른바 ‘토털룩’을 완성시켰다.
 증강현실 통해 파리의 샤넬을 현실로 불러들여
전시 ‘마드모아젤 프리베 서울’은 수석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재창조한 고급 여성복 오트 쿠튀르, 샤넬이 생전에 유일하게 선보였던 하이 주얼리 컬렉션. 전설적인 No.5 향수를 집중 조명했다.
전시 ‘마드모아젤 프리베 서울’은 이 한 끗의 창의성을 응집해 보여준 자리였다. 2015년 런던 사치 갤러리에서 첫 선을 보인 이래 두 번째로 서울을 찾았다. 샤넬의 수석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재창조한 고급 여성복 오트 쿠튀르, 샤넬이 생전에 유일하게 선보였던 하이 주얼리 컬렉션. 전설적인 No.5 향수를 집중 조명했다. 지난달 19일 전시 오프닝 행사 참석차 서울에 온 샤넬 패션부문 CEO인 브루노 파블로브스키(Bruno Pavlovsky·55)를 만났다. 그는 “샤넬은 창의성을 기반으로 성공한 유일한 패션 브랜드”라는 강한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1990년부터 샤넬에 근무한 파블로브스키는 2004년부터 14년째 패션부문 CEO를 맡고 있다.

샤넬의 전시는 국내에서 낯설지 않다. 샤넬의 대표 디자인인 트위드 재킷을 입은 명사들을 모델로 한 사진전 ‘리틀 블랙 재킷(2012)’을 시작으로, 2015년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샤넬 여사의 인생 행적과 디자인을 연결시킨 ‘샤넬 문화전-장소의 정신’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서울을 찾았다. 샤넬이 국내에 정식 론칭한 지 이미 20년, 이미 ‘브랜드 홍보’가 차고 넘치게 된 상황에서 전시를 기획하는 이유는 뭘까. 더구나 런던 다음으로 택한 곳이 서울이었다. 기준은 무엇일까.

그는 여기에 ‘각도’라는 단어를 꺼냈다. “콘텐트라는 게 얼마든지 다르게 풀어갈 수 있는 것이다. 샤넬은 이미 너무나 유명하지만 여전히 ‘숨겨진 각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 많은 이들이 모르는, 그렇지만 충분히 놀래킬 만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대체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각도’라는 게 뭘까 싶은 찰나, 그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샤넬이 얼마나 완벽을 기하는 브랜드이며, 어떻게 현대적으로 변모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려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라거펠트가 처음 구상한 디자인이 마지막 완성품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하게 그리고 직관적으로 알려주려 했단다.

실제 전시는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오트 쿠튀르에 대한 전시 콘텐트가 그러하다. 실제 파리 공방에서 사용하는 옷감을 커튼처럼 드리워 길을 만들어 관람객들이 만져보고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또 중간중간 옷감에 그림자 영상을 비춰 오트 쿠튀르 한 벌이 나오기까지의 공정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표현 방식도 방식이지만 패스트패션 시대와 대척점에 있는 모습이 흡사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증강현실을 통해 파리 스튜디오 속 샤넬을 현실로 불러들이는 전시 역시 이러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파블로브스키 CEO는 서울을 찾은 이유에 대해서도 ‘각도’를 언급했다. 전시 자체는 세계 순회전이지만 관람객들이 우리의 메시지와 ‘숨겨진 각도’를 수용할 준비가 됐는가를 따져 정했단다. “샤넬이 한국에 정식 진출한 지 꼭 20년이다. 사람들에게 샤넬을 알리고 이미지를 만드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여긴다. 핸드백은 특히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아이콘인 2.55백이 중요하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샤넬의 DNA는 패션이다. 1년에 8개의 컬렉션을 열고, 새로운 제품이 두 달에 한 번 꼴로 매장에 나온다. 옷 한 벌마다 극단적으로 세세한 부분에 완벽을 기하는 창의적 브랜드라는 점을 알리고 싶다.”
 내년 청담동에 세계 최대 플래그십 매장 오픈
전시 ‘마드모아젤 프리베 서울’은 샤넬만의 ‘숨겨진 각도’라고 할 수 있는 창의성을 응집해 보여준 자리였다.
샤넬이 5년 전부터 전시·컬렉션 등 샤넬 행사를 꾸준히 서울에서 연 것도 이런 맥락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내년 서울 청담동에 세계에서 가장 큰 플래그십 매장 중 하나를 오픈하는데, 이를 통해 브랜드의 총체적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연스럽게 화제가 매장으로 옮겨갔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매장일 것”이라는 그의 확신과 별개로, 럭셔리 패션 업계가 공략하는 무대는 이미 온라인으로 옮겨간 지 오래 전이기 때문이다. 구찌·버버리 등은 물론이고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 그룹까지 계열 브랜드 통합 사이트를 최근 오픈한 참이다. 매치스패션·파페치 등 온라인편집숍이 중요 유통채널로 떠오른 것도 무시하지 못할 변화다. 이러한 때에 ‘세계 최대 규모 매장’이 큰 의미가 있을까. 그는 이에 대해 다른 브랜드와 샤넬 사이에 확실한 선을 그었다.

“현재 향수 화장품은 국가별로 온라인 판매를 하지만 패션은 아니다. 언젠가 패션 역시 대세를 따르더라도 서두르거나 발전시킬 생각은 없다”고 못박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샤넬은 매장이 아주 특별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고, 손님이 직접 와서 입어보고 만져보며 창의성의 가치를 이해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온라인은 부티크로 손님을 데려오는 역할을 하고, 매장에서만 가능한 서비스를 받는 게 맞다”면서 “매장에서 샤넬 옷을 입어 본 손님이라면 빈 손으로 나갈 가능성이 거의 없을 거라 믿는다. 우리는 오히려 매장 직원들의 교육을 강화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스스로 판단하고 따져보는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방식과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 원칙은 아닐까 싶지만 그는 여기에 대해서도 이미 결론을 낸 듯 했다. 실시간 정보의 홍수 속에서 즉흥적인 소비를 할 것 같은 밀레니얼 세대가 오히려 브랜드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만 제품에 접근한다는 것. 그래서 “샤넬이 어떤 브랜드이고 왜 쉽게 제작될 수 없는가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나면 오히려 양질의 제품에 더 매력을 느낄 것이다”라고 답했다.

디지털과 거리두기를 하는 듯 싶지만 기실 샤넬은 그 어떤 럭셔리 브랜드보다 인터넷 세상에서 발빠르게 세를 넓히는 중이다. 인스타 트위터 팔로어수가 업계 1위다(2016년 기준). 한국에서는 카카오, 일본에서는 라인, 중국에서는 위챗 등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판매는 오프라인, 홍보는 온라인이라는 투 트랙 전략이다. 그는 “온라인 세계가 긍정적인 면이 많은 건 사실이고, 새롭고 재미있는 콘텐트만 만든다면 새로운 세대를 끌어들이기에는 충분한 도전이 된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가령 6명의 인물이 각기 다른 상황에서 똑같은 핸드백을 들고나오는 광고 영상은 잡지나 TV에서는 구현하기 힘든 콘텐트인 것. “동시에 수백 만 명이 본다는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판매는 오프라인, 홍보는 온라인 투 트랙 전략
전시장을 장식한 샤넬 명품 여배우들의 사진들. / 사진 : 샤넬 제공
때로는 그 영향력이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샤넬이 올 봄 1325달러짜리(약 151만원) 부메랑을 내놓자 SNS에서는 “호주 원주민 문화 도용”이라는 비난이 쏟아진 것. 브랜드 측은 SNS를 통해 여파가 커지자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음을 밝히고 공식 사과했다. 이를 계기로 파블로브스키 CEO는 디지털 세상의 파급력을 피부로 느꼈다. “정말 모든 게 빠르게 공유되고 전파된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번 일로 얻은 교훈은 분명하다고 했다. 다른 사람과 의견이 다를 때 재빨리 입장을 설명하고 상대의 의견을 들어주고, 때로 방향을 바꾸는 개방적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온라인은 예측할 수 없는 무한대의 공간이다. 그만큼 긍정적 효과도 크지만 부정적 요소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실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사업은 없는 것을 만들어내야 하기에 예측할 수 없는 실수를 하게 된다. 중요한 건 그것을 인정하고 다시 도약하는 것이다. 창의성은 그런 실패를 이겨내고 가야 한다.”

디자이너가 아닌 경영자가 말하는 창의성이란 어떤 것일까. 그는 26년이나 함께 한 라거펠트에게 매번 놀란다면서 늘 제로 베이스에 시작하는 그의 작업을 ‘마술’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라거펠트의 꿈이 실현되도록 노력하는 게 내 역할이다. 샤넬은 창의성이 생명인 기업이다. 꿈이 잘 배양되어야 하고, 그 꿈이 크면 클수록 매출액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아무리 그러하더라도 라거펠트에게 단 한 번도 ‘NO’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는 대답 대신 한참을 미소 지었다. “우리는 모두 몽상가이자 엄청난 야심가들이다. 꼭 필요한 순간 최대치의 역량을 이끌어 낸다.” 그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라거펠트가 아이디어를 내면 지금이 실현하기 적절한 타이밍인지, 누구에게 맡기는 게 적절한 것인지를 결정한다. “하느냐 마느냐라는 선택은 없다. 언제 어떻게 하느냐라는 문제만 남을 뿐이다.”

-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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