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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4형제의 미래

SK 4형제의 미래

SK 그룹의 계열 분리가 가까워졌다는 소식이다. 20년 가까이 나온 이야기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다르다. 실질적인 움직임이 있어서다. SK케미칼의 지주회사 전환은 SK 형제들이 둥지를 떠나는 첫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8월 21일 서울 광장동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이천포럼’이 열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한민국의 내일을 고민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개막사는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이 맡았다. 포럼에는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과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도 참석했다. 모처럼 SK그룹의 오너 네 명이 함께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였다. 5일 후 이들은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8월 26일 화성 선산에서 열린 고 최종현 회장 19기 자리다. 최종현 회장 기일에 4형제가 모두 참석한 것은 5년 만이다.

SK 4형제 사이가 어느 때보다도 원만해 보인다. 공식석상에서 이들은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며 서로 양보하고 배려했다. 지난 10여 년간 SK그룹은 다양한 악재에 시달렸다. 분식회계 사건, 외국계 자본의 경영권 공격, 총수 형제의 구속까지 겪었다. 위기를 겪으며 형제간 우애가 더욱 깊어진 느낌이다.

결속을 강조하는 모습 뒤로 또 다른 이야기가 하나 흘러 나오고 있다. SK그룹의 계열 분리가 가까워졌다는 소식이다. 1998년 최종현 전 SK 회장의 타계 이후 SK그룹의 계열 분리설은 끊이지 않고 나왔다. 20년 가까이 나온 이야기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다르다. 실질적인 움직임이 있어서다. 지난 6월 SK케미칼은 지주회사 전환 선언을 했다.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의 행보엔 더욱 속도가 붙었다. 6월 이후 진행한 주요 SK그룹 매입·매각만 10여 건에 달한다.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도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SK네트워크에 대한 지배력을 계속 키우는 중에 SKC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그룹 주식을 전부 처분했다. SK 계열 분리설이 다시 시중에서 높아진 배경이다.

계열 분리를 놓고 SK 형제들이 그렸던 밑그림은 지난 10여 년간 상황에 따라 변해 왔다. SK 형제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밀고 당기는 협상을 벌였다. 합의점을 찾아 계열 분리 청사진이 나올 때마다 SK 형제들은 주식을 매입·매각했다. SK 그룹 오너 일가만큼 주식 매입·매각을 자주 진행한 곳은 재계에서 찾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 19년 동안 SK의 오너들은 주식을 수시로 사고 또 팔았다. 이해관계에 따라 분주히 움직이며 그룹과 가족의 미래를 그렸다. 이 과정에서 SK만의 독특한 특징도 볼 수 있었다. 경영권을 놓고 사촌 간의 언쟁은 있었지만 분쟁은 없었다. 소버린 경영권 공격과 최태원·재원 형제의 수감 중에도 불협화음은 나오지 않았다. SK그룹의 한 퇴직 임원은 “이들은 형제간 의견 다툼을 세상이 모르게 처리했다”며 “형제간 분쟁으로 위기에 몰린 다른 대기업 오너 일가와 다른 SK 문화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98년 형제간 협력으로 경영권 확보
SK그룹 형제 경영은 시작부터 위기였다. 98년 8월 최종현 전 회장이 별세할 당시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형제들 개개인이 보유한 주식으론 기업 경영권을 지키기 어려웠다. 최종건·종현 회장의 아들 5형제와 친인척들은 장례식을 진행하며 후계자를 정해야 했다. 이들은 낮에는 조객을 맞고 밤에는 후계 논의를 벌였다. 먼저 큰형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 (2000년 8월 작고)이 그룹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최 전 회장은 이를 고사했다. 그는 “우리 형제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며 최태원 회장을 추천했다. 사흘째 되던 날 밤 이들은 오너 패밀리가 가진 지분을 최태원 회장에게 몰아줘 그를 주주권 대표에 앉히고, 그룹 회장에는 전문경영인을 앉히자는 결론을 내린다. 최종현 전 회장의 지분은 최태원 회장에게 승계됐고,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과 여동생 최기원씨는 상속포기 각서를 썼다. 그룹 회장에는 구조조정추진본부장을 맡고 있던 손길승 부회장이 추대됐다. 형제들의 도움 덕에 최태원 회장은 2001년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SK C&C 지분 49%를 확보한다. 이를 기반으로 SK㈜와 SK텔레콤, SK글로벌 등 주요 계열사를 장악했다.

형제들이 후계구도를 빠르게 합의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2세 경영인들이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지분이 적었다. 각자 자기 몫만 생각하다간 경영권을 못 지킬 가능성이 컸다. 둘째는 형제 관계다. 먼저 최윤원·신원 형제가 경영권을 욕심내지 않았다. 여기에 최태원·재원·창원 형제는 유독 우애가 깊었다. 최창원 부회장은 2001년 최태원·재원과의 관계를 묻는 언론 인터뷰에서 “골목에서 형들과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하며 자랐다”고 말한다. 이들은 성인이 된 다음에는 매주 일요일 오후 3시부터 자정까지 경영 공부를 함께 해 왔다. 남은 세 형제 중 가장 연장자이자 이미 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있던 최태원 회장에게 자연스럽게 힘이 실렸다. 이후 SK그룹은 최태원 회장(SK㈜·SK텔레콤·SK해운), 최재원 부회장(SKE&S), 최신원 회장(SKC), 최창원 부회장(SK케미칼·SK건설)이 각각 경영해 나간다.

그룹의 리더를 정하고 한숨 돌리자마자 일이 터졌다. 2003년 2월 SK글로벌(SK네트웍스의 전신)과 SK해운의 분식회계 사건이 발생한다. 최태원 회장과 손길승 회장이 구속되고 기업의 컨트롤타워였던 구조조정추진본부도 해체한다. 이 와중에 오너 일가는 지분의 상당수를 잃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4월 헤지펀드인 소버린자산의 공격이 시작된다.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에 따른 경영 공백을 틈타 SK의 지분을 14.99% 매입하며 2대 주주로 등극했다. 경영진 퇴진 등을 요구하며 SK와 경영권 갈등을 벌였다.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은 2005년 3월에야 진화된다.

결국 SK는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다. 그리고 최태원 회장은 지배구조 개선에 집중한다. 지주사 전환을 시작한 배경이다. 최태원 회장은 “(지주사 전환을 통해) 투자와 사업부문 분리로 사업구조가 명확해지고 사업부문의 전문역량 강화로 경영 효율성이 높아져 기업 가치와 대외신인도 상승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버린 방어를 마무리할 즈음 최신원 회장과 최창원 부회장도 지분을 늘리기 시작한다. 최창원 부회장의 SK케미칼 매입은 2004년 말, 최신원 회장의 SKC 지분 매입은 2005년에 시작된다. 최신원 회장의 SKC 지분은 2005년 0.8%에서 2006년 46만5000주 지분율 1.34%로 늘어났다. 최신원 회장은 최태원 회장의 영향권에 있는 SK네트웍스의 지분도 처분한다.

최신원·창원 형제가 지분을 늘리자 언론에선 계열 분리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SK 관계자들은 한사코 부인했다. 당시 SK그룹 관계자는 “계열 분리나 분가는 98년 최종현 선대회장의 타계 이후부터 계속 오르내린 이야기”라며 “현재 대주주들이 주식을 사고파는 것은 각 회사의 필요에 의한 것으로, 계열 분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지주회사 전환 작업이 한창이던 2006년 상황을 살펴보자. SK케미칼은 SK해운과 워커힐이 보유한 SK건설 주식 377만 9578주를 장외거래로 취득했다. SK케미칼의 SK건설 보유지분은 종전 39.4%에서 58.03%로 늘어난다. 지주회사 전환을 1년 앞두고 최창원 회장은 자신의 몫인 SK케미칼과 건설 지분 확보에 속도를 올렸다. 당시 SK해운은 SK건설 지분 30.94%를 보유한 2대 주주였다. SK㈜가 72.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기업이었다. 지분 매각 과정에서 최태원 회장의 SK건설에 대한 지배력이 크게 줄었다. 최태원 회장의 허락이 있어야만 진행 가능한 일이란 평가다.

2007년 SK는 지주회사로 변신에 성공한다. SK를 SK와 SK에너지로 나눠 그룹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며 ‘제3의 창업’을 선언한다. 형제간 기업도 각각 최태원(SK그룹 회장), 최재원(SKE&S·네트웍스), 최신원(SKC), 최창원(SK케미칼·SK건설)으로 교통 정리된다. 조용한 듯싶었지만 세간에선 다시 계열 분리 이야기가 나왔다. 지주회사 구조에서 SK케미칼과 건설이 빠져 있었다. 이례적인 일이다. 독립을 준비하는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여기에 2008년 11월 최신원 회장이 포문을 열었다. SK네트웍스와 워커힐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소버린 공격과 지주회사 전환
당시 최신원 회장은 최종건 회장 35주기를 마치고 기자들을 만났다. 그는 SK네트웍스와 ㈜워커힐의 경영권을 맡는 대신 그룹의 주력인 에너지와 텔레콤 등 나머지 계열사에 대한 경영권은 확실히 넘겨주겠다는 조정안을 제시했다. 최신원 회장은 SK 증권에 대해서도 포기 의사를 밝혔다. 당시 최신원 회장 측 고위 임원은 “총수일가 간에 책임경영 영역 조정안을 놓고 물밑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최태원 회장 측은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최태원 회장 측 관계자는 “최신원 회장의 뜻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면서도 “사주 가족 간에 대화 내용은 모르지만, 그룹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검토 중인 것은 없다”고 말했다.

최신원 회장의 제의에도 기업 구도엔 변화가 없었다. 2011년 2월 SK네트웍스는 주주총회를 열고 최재원 수석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같은 날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도 SK가스 사내이사로 신규 임명됐다. 이어 18일에는 최창원 부회장이 SK가스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지난해 말까지 최재원 부회장이 대표이사를 맡았던 SK가스에서 최창원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되고, 최신원 회장이 애착을 가진 SK네트웍스에선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사내이사 명단에 올랐다. 이대로 SK그룹의 계열 분리가 이뤄질 경우 최태원·재원 형제가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SK네트웍스, 최신원·창원 형제는 SKC·SK케미칼·SK건설·SK가스 등을 맡게 된다.

2011년 말 최신원 회장은 “이젠 분리할때도 됐다”며 다시 계열 분리 화두를 던진다. 그는 “뿌리 찾기와 책임경영 강화를 위해 SK그룹도 이제는 사촌 간 계열 분리를 할 시기가 됐다”며 계열 분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신원 회장의 주장을 놓고 형제간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하지만 최신원 회장의 행보엔 자신이 넘쳤다. 2011년 SK네트웍스 주총에 참석한 최신원 회장은 “12년 만에 주총에 참석했는데 창업주에 대한 묵념도 없고 성의 없이 진행되는 등 창업정신이 흐려졌다”며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2012년 9월 보유하고 있던 SKC 지분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SK네트웍스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최 회장은 SK네트웍스 지분을 매입하는 이유를 “아들로서 아버지 회사의 주식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내가 물려받은 SK네트웍스 주식은 소각됐기에 다시 사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빚을 갚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SK네트웍스는 2003년 분식회계 사태로 특수관계인이 소유한 주식을 전량 무상소각했는데 최 회장도 당시 11만여 주를 잃은 상태였다.

SK네트웍스에 대한 관심을 계속 보이던 최신원 회장은 결국 2016년 3월 SK네트웍스 회장에 복귀한다. SK유통 대표 이후 17년 만의 복귀다. 4월 7일이 첫 출근이었다. 그는 SK네트웍스 본사 건물 1층에 최종건 창업주의 동상을 세웠다. 이 동상은 SKC에서 가져온 것이다. 먼저 절을 올린 다음 눈물을 흘리며 “SK그룹의 모태기업인 SK네트웍스를 다시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고 말했다. 이후 최 회장은 1층부터 18층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며 전 직원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2017년 들어 SK 형제들의 미래 구도 윤곽이 보다 명확해지고 있다. 최신원 회장은 SK네트웍스 경영을 맡을 전망이다. 다음 단계는 소유권 확보인데, 아직은 갈길이 멀어 보인다. SK네트웍스의 대주주는 39.14%의 지분을 가진 SK㈜다. 현재 최 회장의 SK네트웍스 지분율은 0.63%에 그친다. 최근 계열사 지분 매도로 손에 쥔 현금 240억원을 SK네트웍스 지분 인수에 사용해도 지분율은 1.7~1.8% 정도에 불과하다. 이를 해결하는 것이 최신원 회장의 과제다.

최창원 부회장은 SK케미칼을 중심으로 소그룹을 만들어 SK그룹에서 독립경영을 해왔다. 일찌감치 SK케미칼 지분을 사들인 최 부회장의 지분은 2005년 5월 8.74%를 넘어서며 최대 주주였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제쳤다. 지금은 SK케미칼 지분 18.47%를 가진 최대 주주다. SK케미칼은 지난 6월 지주회사 전환을 선언했다. 12월까지 전환을 마무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상반기엔 SK케미칼 주주들을 대상으로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단행할 계획이다. 여기서 얻은 자금으로 SK케미칼 지분을 20% 이상 확보하면 독립경영의 모든 준비가 끝난다. 내년 상반기에는 ‘최창원 부회장→SK케미칼홀딩스→SK케미칼·기타 계열사’로 이어지는 독립 기업군이 새로 등장하는 것이다. SK케미칼이 SK그룹 둥지를 떠날 때 SK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할지, 아니면 LG와 LIG 같은 사명을 선택할지도 관건이다.
 최신원 회장 “네트웍스 반석 위로”
최태원 회장은 SK텔레콤과 하이닉스, 에너지 사업 전반을 이끈다. 실질적인 SK그룹 총수 역할을 계속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할지도 주목할 일이다. 최 회장은 사면·복권을 받아 경영에 복귀한 반면, 최 수석 부회장은 지난해 7월 출소한 이후 경영 참여는 못 하고 있다. 과거 최 부회장은 SK네트웍스 이사회 의장과 SK E&S 대표이사를 맡았었다. 이 때문에 최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한다면 신재생에너지 등 미래 성장 동력 발굴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지분 보유 여부도 관건이다. 최 부회장은 주요 계열사 보유 지분이 거의 없다. 98년 선친 타계 이후 열린 가족회의에서 리더십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상속 지분을 최태원 회장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최태원 회장은 “선친이 돌아가신 뒤 지분을 모두 포기한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에 투자로 돈을 벌어 나눠주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SK그룹 오너 형제들의 자녀 세대 간 승계율은 1% 미만인 것으로 집계됐다. 오너 3세 중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이는 최신원 회장의 아들인 최성환 SKC 상무, 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장남 최영근 SKC 과장, 그리고 최근 SK바이오에 입사한 최태원 회장의 장녀 최윤정 씨 정도다. 이들이 핵심 경영자로 참여하기 이전에 지분 교통 정리를 해두는 것이 그룹의 미래에도 도움이 된다.

지난 2월 최태원 회장은 계열 분리에 대해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최 회장은 “지분 관계가 전혀 없으면서도 SK 브랜드를 함께 사용하는 느슨한 연대 형태의 지배 구조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말은 여러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최신원 회장처럼 소유한 지분이 적어도 독립경영을 맡길 수 있다는 뜻, 최창원 부회장의 SK케미칼이 독립해도 SK라는 우산 아래에서 함께 경영을 해 나갈 수 있다는 뜻도 된다. SK가의 형제들이 어떤 방식으로 지분과 소유 문제를 풀며 자신의 기업을 이끌어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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