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평화이고 무지가 힘이라고?
전쟁이 평화이고 무지가 힘이라고?
푸틴은 러시아가 거대한 전쟁에 직면했다는 대국민 선전으로 경제난 등 국내의 불만 억누르면서 정권 연장할 듯 사방의 적에게 포위된 러시아는 존립을 위한 거대한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 적어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민이 그렇게 생각하기 바란다.
러시아 국영 TV는 거의 매일 저녁 시리아 상공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러시아 전투기들의 모습을 뉴스 첫 장면으로 내보내며 사이 사이에 러시아 국경을 넘보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탱크와 군대의 영상을 끼워 넣는다. 최근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높은 TV 대담 프로그램 ‘60분’에 출연한 국제정치 분석가 니키타 아사예프는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거둔 ‘대승리’로 ‘초강대국 지위’를 회복했다고 격찬했다.
푸틴 대통령은 2017년 11월 말 러시아 재계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2017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소치에서 군 수뇌부와 회동을 갖고 “언제든 군수품 생산을 늘릴 수 있는 우리 경제의 능력이 군사 안보의 가장 중요한 측면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모든 전략적 기업만이 아니라 일반 대기업도 철저한 전시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
러시아의 대국민 선전이 대부분 그렇듯이 국가가 전쟁 중이라는 크렘린의 주장은 근거가 전혀 없진 않다. 그러나 그 근거는 아주 작다. 전투기 약 36대로 구성된 러시아 항공대대와 병력 4751명이 2015년 9월부터 시리아 흐메이밈 공군기지에 주둔하며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내전 중인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도 러시아 정규군이 표시 없는 군복을 입고 분리주의 반군 대원들과 함께 순찰 도는 모습이 포착됐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 2017년 11월 중순 ‘작은 녹색인간’으로 알려진 병력 수백 명의 부대가 우크라이나 동부의 반군 장악 도시 루한스크에 나타나 분리주의 지도자들 간의 유혈 권력투쟁을 막았다. 러시아의 실질적인 군사작전 규모가 그처럼 아주 작은데도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야 할 거대한 전쟁이 임박했다고 상기시키는 이유가 뭘까? 가장 분명한 이유는 정치 교과서에 나오는 해묵은 책략이다. 국내의 어려운 상황에서 다른 쪽으로 국민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가공의 외부 적을 내세워 국가를 단합시킨다는 발상이다.
푸틴 대통령이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한 후 서방의 강도 높은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구한 전쟁’이라는 허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푸틴의 정권 유지를 위한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독립 노선 신문 노바야 가제타의 칼럼니스트 파벨 펠겐하우어는 “푸틴이 국민에게 제공할 자금이 달리면서 그들의 가계 소득이 4년 연속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내년 대선에서 러시아가 외부의 적으로부터 공격 받고 있다는 국가안보 우려를 내세워 4선을 향한 선거운동을 펼칠 생각이다.”
그러나 크렘린의 호전적인 언행에 좀 더 우려할 만한 이유도 있다. 그들이 실제로 전쟁이 임박했다고 확신한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내전이 시작되기도 전인 2013년 러시아 국방부의 연례 전략계획 ‘러시아 방어’는 2023년 전에 러시아가 관련되는 중대한 세계 전쟁 또는 지역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영국 옥스퍼드 펨브로크 칼리지와 이탈리아 로마 나토 국방대학의 교수인 앤드루 모나간은 “러시아 고위층은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믿는다”며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전시 체제에 돌입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업계가 전시 군수품 생산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푸틴 대통령의 촉구는 수십년 전 옛 소련의 방위 이론(‘모든 공장은 즉시 탱크, 총알, 비행기를 생산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펠겐하우어는 “소련 시대의 경제와 사회 시스템은 전면전에 대비해 구축됐다”고 설명했다. “그런 시스템으로 인해 소련 경제는 경쟁력을 완전히 잃었다. ... 푸틴이 진짜 러시아 업계에 전시 동원령을 발동한다면 옛 소련이 그랬듯이 러시아도 파산할 것이다. 현대 세계에서 담배 공장을 총탄 제조 공장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발상은 터무니없다.” 그럼에도 현재 러시아 경제의 많은 부분이 직간접적으로 정부의 국방비 지출에 의존한다. 유가 하락과 서방의 제재로 크렘린의 수입이 크게 줄어드는데도 푸틴은 국방예산의 대폭 증액을 지시했다. 올해 러시아의 국방비 지출은 65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미국의 국방예산 6110억 달러에 비하면 약 10분의 1 정도의 적은 액수에 불과하지만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3.3%에 해당한다. 그것도 최근 신설된 러시아 국가방위군(병력 33만 명으로 내무부 예산으로 운영되며 푸틴이 직접 지휘한다) 같은 준군사 조직이나 항공우주 부문 등 방위 관련 업체에 지원되는 경비는 거기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미국과 유럽의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신형 전함, 잠수함, 헬기, ‘불라바’ 미사일[사거리 1만㎞에 독립목표재돌입탄두(MIRV)를 10발까지 탑재할 수 있다] 등을 어떻게 사용할 생각인지 우려한다. 러시아 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한 인사는 익명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는 희한하게도 일방적인 군비경쟁에 돌입했다. 역사적으로 과거의 군비경쟁은 전부 전쟁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경우는 지금까지 예외다. 그들이 누구와 어디서 싸울 준비를 하는지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그들이 생각하는 전역(戰域) 중 하나는 중동일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는 2017년 3년 동안 그곳에서 군사 주둔을 강화했다. 최근 러시아 국영 TV는 시리아의 작은 도시 데이르 에조르를 찍은 영상에서 시리아 국기 옆에 러시아 국기가 휘날리는 장면을 자랑스럽게 비췄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 충성하는 정부군이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격파하고 그 도시를 해방시킨 직후였다. 그러나 그 영상에서 더 중요한 부분은 탈환한 정부 청사에 내걸린 다른 두 개의 깃발이었다. 하나는 이란 국기, 나머지 하나는 헤즈볼라(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 깃발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2015년 9월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중동의 고조되는 이슬람교 수니파-시아파 투쟁에서 시아파인 이란 편을 택했다.
시리아에 파견된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정예부대 쿠드스군의 사령관인 거셈 솔레이마니 소장(2003∼2015년 이라크에서 미군 5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반미 시아파 민병대를 조직했다)은 2015년 7월 이래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러시아 공군·특수부대와 이란이 파견한 지상군 사이의 작전 조율을 위해 모스크바를 최소 3차례 방문했다. 중동에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더 친밀한 관계를 수립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이의 전쟁이 발발할 경우 이란과 동맹을 맺은 러시아는 미국에 맞설 수밖에 없다. 모나간 교수는 그런 지역 전쟁에서 러시아와 미국이 서로 반대편에 서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그럴 경우 전쟁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있다.”
러시아는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에 대항하는 IS를 상대로 손쉬운 전략적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다른 분쟁에도 개입하고 싶은 유혹이 클 수밖에 없다. 영국의 한 고위 관리는 익명을 전제로 “러시이가 시리아에 투입한 것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이라크에서 쏟아부은 피와 돈에 비하면 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고도 러시아는 거기서 엄청난 외교 자본을 챙겼다. 이제 그들은 러시아의 시리아의 내전 개입을 대승리라고 주장하며 러시아가 중동 무대에 다시 막강한 세력으로 복귀했다고 자랑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당연히 그 묘책을 다른 곳에서도 되풀이하고 싶어할 것이다. 단기간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싫어하는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시리아에서 러시아의 관심은 단순한 아사드 지원이라는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2013년 러시아 국방부는 지중해에 대규모 해군 주둔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5년 이래 러시아는 냉전 시대부터 있었던 시리아 타르투스의 소규모 러시아 해군 기지를 크게 확장했다. 또 인근의 흐메이밈 공군 기지 개보수로 러시아 공군은 지중해 동남부 대부분을 작전 구역으로 포함시켰다.
또 러시아는 시리아의 반군 거점 표적을 명중시키는 정교한 수단을 사용함으로써 중동의 모든 이해당사국에 보란듯이 자국의 하드웨어 위력을 과시했다. 2016년 러시아 해군은 시리아의 고도 알레포 북부에 있던 반군 표적을 타격했다. 카스피해의 포함에서 발사된 크루즈 미사일이 이란과 이라크를 넘어 1500㎞ 이상 떨어진 그곳을 명중시켰다. 또 2017년 11월엔 러시아 공군의 장거리 폭격기 Tu-22M3 백파이어가 시리아 데이르 에조르의 IS 거점을 공습했다. 그 폭격기들은 시리아의 흐메이밈 기지가 아니라 체첸 서부에 위치한 모즈도크에서 발진했다.
펠겐하우어는 “푸틴에겐 시리아 내전 개입이 세계를 무대로 미국과 맞수를 두려는 전략의 일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 싸움의 일부는 돈과 천연가스, 무기를 약속하며 세계 전역의 옛 서방 동맹국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2017년 11월 러시아와 이집트는 러시아 군용기가 이집트의 영공과 기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수십 년에 걸친 터키와 미국의 동맹 관계를 손상시키려는 러시아의 노림수였다. 이집트는 1973∼2013년 700억 달러 이상의 미국 원조를 받았다(2013년 이집트의 군사 쿠데타 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원조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2016년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모스크바를 방문해 러시아로부터 제트기, 헬기, 미사일 35억 달러어치를 구입하기로 합의했다. 이집트와 러시아는 합동 대테러 훈련도 실시했다. 또 이집트는 러시아의 원전 시설을 구입하는 계약까지 체결했다. 더 위험한 일은 푸틴과 엘시시 두 사람 모두 친서방 노선의 리비아 정부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군벌 할리파 히프테르를 지지한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스가 인용한 미군 소식통에 따르면 소규모 러시아 부대가 히프테르를 지원하기 위해 이집트의 서부 사막에 주둔하고 있다.
게다가 터키도 있다. 2017년 9월 러시아는 나토 회원국인 터키에 20억 달러어치의 최신 미사일을 판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터키는 미국의 오랜 동맹국이었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미국이 시리아의 쿠르드족을 지원하면서 두 나라는 갈등을 빚었다. 또 2017년 10월 러시아는 이란의 숙적이자 미국의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 30억 달러어치의 미사일을 판매함으로써 양다리를 걸쳤다. 예멘 내전에서 정부군을 지원하는 사우디는 후티 반군의 로켓 공격을 막는데 그 미사일을 사용할 계획이다.
1991년 소련 붕괴 이래 어느 때보다 러시아는 국경 지역과 외부에 더 많은 화력을 배치했다. 따라서 우발적인 무력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 2017년 11월 25일 러시아 전투기가 크림반도 해안 10㎞ 정도 떨어진 해상에서 미국 공군 대잠초계기 P-8A 포세이돈을 상대로 요격 비행을 했다. 러시아가 강제 합병한 크림반도는 러시아 외 7개국만 러시아 영토로 인정한다. 펠겐하우어는 “러시아군은 미군 비행기가 크림반도 연안의 러시아 영공을 침입하면 격추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러시아 사령관은 미군 초계기 조종사가 운이 아주 좋아서 살아남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발트해 국가들도 러시아 전투기가 그들의 영공을 자주 침범하면서 위험한 사건이 갈수록 빈번히 발생한다고 항의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6월 러시아 Su-27 전투기 1대가 발트해 공해 상공에서 임무 수행 중이던 스웨덴 정찰기에 약 2m 내의 아주 가까운 거리로 접근해 충돌 위험을 초래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냉전 이래 최저점에 이르면서 사소한 사고가 무력 충돌로 확대될 수 있는 위험이 매우 커졌다. 2016년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한 의혹과 관련해 선거 캠프의 러시아 커넥션 혐의로 비난 받는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를 우호적으로 대할 수 없는 입장이다. 동시에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공격적인 행동으로 러시아가 피해를 입는다고 국민에게 홍보한다. 러시아 국영 TV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반러시아 ‘파시스트’ 세력를 지원한다는 기사를 거의 매일 내보낸다. 또 시리아에서 미국이 은밀히 IS를 돕는다고 주장하는 기사도 자주 보도한다.
러시아의 어린 학생들도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허약한 나라들을 보호하는 용감한 나라라는 러시아의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 동원된다. 최근 러시아에서 인기 있는 인터넷 동영상을 보면 열 살짜리 아이들이 군복을 입고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벌어진 곳에 세워진 러시아 모국상 앞에 서서 이렇게 노래한다. ‘우린 미국의 패권에 진저리가 나요... 블라디미르 푸틴 삼촌, 우린 이 싸움에서 당신을 따를 준비가 돼 있어요.’
러시아 엘리트층의 일부는 군부가 러시아 외교와 선전 정책을 장악했다는 사실에 우려를 표한다. 얼마 전 크렘린이 지원하는 모스크바 소재 싱크탱크 미국·캐나다문제연구소의 세르게이 로고프 소장은 우발적인 무력충돌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과 미국의 도발이 문제라고 비난하면서도 “이런 상황이 언제든 전쟁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절대 기우가 아니다. 푸틴 대통령이 국내의 인기를 얻기 위해 러시아를 영원히 전시 상태로 유지하려고 애쓸수록 그는 더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 오언 매튜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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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국영 TV는 거의 매일 저녁 시리아 상공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러시아 전투기들의 모습을 뉴스 첫 장면으로 내보내며 사이 사이에 러시아 국경을 넘보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탱크와 군대의 영상을 끼워 넣는다. 최근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높은 TV 대담 프로그램 ‘60분’에 출연한 국제정치 분석가 니키타 아사예프는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거둔 ‘대승리’로 ‘초강대국 지위’를 회복했다고 격찬했다.
푸틴 대통령은 2017년 11월 말 러시아 재계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2017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소치에서 군 수뇌부와 회동을 갖고 “언제든 군수품 생산을 늘릴 수 있는 우리 경제의 능력이 군사 안보의 가장 중요한 측면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모든 전략적 기업만이 아니라 일반 대기업도 철저한 전시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
러시아의 대국민 선전이 대부분 그렇듯이 국가가 전쟁 중이라는 크렘린의 주장은 근거가 전혀 없진 않다. 그러나 그 근거는 아주 작다. 전투기 약 36대로 구성된 러시아 항공대대와 병력 4751명이 2015년 9월부터 시리아 흐메이밈 공군기지에 주둔하며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내전 중인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도 러시아 정규군이 표시 없는 군복을 입고 분리주의 반군 대원들과 함께 순찰 도는 모습이 포착됐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 2017년 11월 중순 ‘작은 녹색인간’으로 알려진 병력 수백 명의 부대가 우크라이나 동부의 반군 장악 도시 루한스크에 나타나 분리주의 지도자들 간의 유혈 권력투쟁을 막았다. 러시아의 실질적인 군사작전 규모가 그처럼 아주 작은데도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야 할 거대한 전쟁이 임박했다고 상기시키는 이유가 뭘까? 가장 분명한 이유는 정치 교과서에 나오는 해묵은 책략이다. 국내의 어려운 상황에서 다른 쪽으로 국민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가공의 외부 적을 내세워 국가를 단합시킨다는 발상이다.
푸틴 대통령이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한 후 서방의 강도 높은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구한 전쟁’이라는 허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푸틴의 정권 유지를 위한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독립 노선 신문 노바야 가제타의 칼럼니스트 파벨 펠겐하우어는 “푸틴이 국민에게 제공할 자금이 달리면서 그들의 가계 소득이 4년 연속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내년 대선에서 러시아가 외부의 적으로부터 공격 받고 있다는 국가안보 우려를 내세워 4선을 향한 선거운동을 펼칠 생각이다.”
그러나 크렘린의 호전적인 언행에 좀 더 우려할 만한 이유도 있다. 그들이 실제로 전쟁이 임박했다고 확신한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내전이 시작되기도 전인 2013년 러시아 국방부의 연례 전략계획 ‘러시아 방어’는 2023년 전에 러시아가 관련되는 중대한 세계 전쟁 또는 지역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영국 옥스퍼드 펨브로크 칼리지와 이탈리아 로마 나토 국방대학의 교수인 앤드루 모나간은 “러시아 고위층은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믿는다”며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전시 체제에 돌입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업계가 전시 군수품 생산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푸틴 대통령의 촉구는 수십년 전 옛 소련의 방위 이론(‘모든 공장은 즉시 탱크, 총알, 비행기를 생산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펠겐하우어는 “소련 시대의 경제와 사회 시스템은 전면전에 대비해 구축됐다”고 설명했다. “그런 시스템으로 인해 소련 경제는 경쟁력을 완전히 잃었다. ... 푸틴이 진짜 러시아 업계에 전시 동원령을 발동한다면 옛 소련이 그랬듯이 러시아도 파산할 것이다. 현대 세계에서 담배 공장을 총탄 제조 공장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발상은 터무니없다.” 그럼에도 현재 러시아 경제의 많은 부분이 직간접적으로 정부의 국방비 지출에 의존한다. 유가 하락과 서방의 제재로 크렘린의 수입이 크게 줄어드는데도 푸틴은 국방예산의 대폭 증액을 지시했다. 올해 러시아의 국방비 지출은 65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미국의 국방예산 6110억 달러에 비하면 약 10분의 1 정도의 적은 액수에 불과하지만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3.3%에 해당한다. 그것도 최근 신설된 러시아 국가방위군(병력 33만 명으로 내무부 예산으로 운영되며 푸틴이 직접 지휘한다) 같은 준군사 조직이나 항공우주 부문 등 방위 관련 업체에 지원되는 경비는 거기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미국과 유럽의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신형 전함, 잠수함, 헬기, ‘불라바’ 미사일[사거리 1만㎞에 독립목표재돌입탄두(MIRV)를 10발까지 탑재할 수 있다] 등을 어떻게 사용할 생각인지 우려한다. 러시아 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한 인사는 익명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는 희한하게도 일방적인 군비경쟁에 돌입했다. 역사적으로 과거의 군비경쟁은 전부 전쟁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경우는 지금까지 예외다. 그들이 누구와 어디서 싸울 준비를 하는지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그들이 생각하는 전역(戰域) 중 하나는 중동일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는 2017년 3년 동안 그곳에서 군사 주둔을 강화했다. 최근 러시아 국영 TV는 시리아의 작은 도시 데이르 에조르를 찍은 영상에서 시리아 국기 옆에 러시아 국기가 휘날리는 장면을 자랑스럽게 비췄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 충성하는 정부군이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격파하고 그 도시를 해방시킨 직후였다. 그러나 그 영상에서 더 중요한 부분은 탈환한 정부 청사에 내걸린 다른 두 개의 깃발이었다. 하나는 이란 국기, 나머지 하나는 헤즈볼라(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 깃발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2015년 9월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중동의 고조되는 이슬람교 수니파-시아파 투쟁에서 시아파인 이란 편을 택했다.
시리아에 파견된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정예부대 쿠드스군의 사령관인 거셈 솔레이마니 소장(2003∼2015년 이라크에서 미군 5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반미 시아파 민병대를 조직했다)은 2015년 7월 이래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러시아 공군·특수부대와 이란이 파견한 지상군 사이의 작전 조율을 위해 모스크바를 최소 3차례 방문했다. 중동에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더 친밀한 관계를 수립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이의 전쟁이 발발할 경우 이란과 동맹을 맺은 러시아는 미국에 맞설 수밖에 없다. 모나간 교수는 그런 지역 전쟁에서 러시아와 미국이 서로 반대편에 서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그럴 경우 전쟁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있다.”
러시아는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에 대항하는 IS를 상대로 손쉬운 전략적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다른 분쟁에도 개입하고 싶은 유혹이 클 수밖에 없다. 영국의 한 고위 관리는 익명을 전제로 “러시이가 시리아에 투입한 것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이라크에서 쏟아부은 피와 돈에 비하면 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고도 러시아는 거기서 엄청난 외교 자본을 챙겼다. 이제 그들은 러시아의 시리아의 내전 개입을 대승리라고 주장하며 러시아가 중동 무대에 다시 막강한 세력으로 복귀했다고 자랑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당연히 그 묘책을 다른 곳에서도 되풀이하고 싶어할 것이다. 단기간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싫어하는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시리아에서 러시아의 관심은 단순한 아사드 지원이라는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2013년 러시아 국방부는 지중해에 대규모 해군 주둔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5년 이래 러시아는 냉전 시대부터 있었던 시리아 타르투스의 소규모 러시아 해군 기지를 크게 확장했다. 또 인근의 흐메이밈 공군 기지 개보수로 러시아 공군은 지중해 동남부 대부분을 작전 구역으로 포함시켰다.
또 러시아는 시리아의 반군 거점 표적을 명중시키는 정교한 수단을 사용함으로써 중동의 모든 이해당사국에 보란듯이 자국의 하드웨어 위력을 과시했다. 2016년 러시아 해군은 시리아의 고도 알레포 북부에 있던 반군 표적을 타격했다. 카스피해의 포함에서 발사된 크루즈 미사일이 이란과 이라크를 넘어 1500㎞ 이상 떨어진 그곳을 명중시켰다. 또 2017년 11월엔 러시아 공군의 장거리 폭격기 Tu-22M3 백파이어가 시리아 데이르 에조르의 IS 거점을 공습했다. 그 폭격기들은 시리아의 흐메이밈 기지가 아니라 체첸 서부에 위치한 모즈도크에서 발진했다.
펠겐하우어는 “푸틴에겐 시리아 내전 개입이 세계를 무대로 미국과 맞수를 두려는 전략의 일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 싸움의 일부는 돈과 천연가스, 무기를 약속하며 세계 전역의 옛 서방 동맹국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2017년 11월 러시아와 이집트는 러시아 군용기가 이집트의 영공과 기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수십 년에 걸친 터키와 미국의 동맹 관계를 손상시키려는 러시아의 노림수였다. 이집트는 1973∼2013년 700억 달러 이상의 미국 원조를 받았다(2013년 이집트의 군사 쿠데타 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원조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2016년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모스크바를 방문해 러시아로부터 제트기, 헬기, 미사일 35억 달러어치를 구입하기로 합의했다. 이집트와 러시아는 합동 대테러 훈련도 실시했다. 또 이집트는 러시아의 원전 시설을 구입하는 계약까지 체결했다. 더 위험한 일은 푸틴과 엘시시 두 사람 모두 친서방 노선의 리비아 정부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군벌 할리파 히프테르를 지지한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스가 인용한 미군 소식통에 따르면 소규모 러시아 부대가 히프테르를 지원하기 위해 이집트의 서부 사막에 주둔하고 있다.
게다가 터키도 있다. 2017년 9월 러시아는 나토 회원국인 터키에 20억 달러어치의 최신 미사일을 판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터키는 미국의 오랜 동맹국이었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미국이 시리아의 쿠르드족을 지원하면서 두 나라는 갈등을 빚었다. 또 2017년 10월 러시아는 이란의 숙적이자 미국의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 30억 달러어치의 미사일을 판매함으로써 양다리를 걸쳤다. 예멘 내전에서 정부군을 지원하는 사우디는 후티 반군의 로켓 공격을 막는데 그 미사일을 사용할 계획이다.
1991년 소련 붕괴 이래 어느 때보다 러시아는 국경 지역과 외부에 더 많은 화력을 배치했다. 따라서 우발적인 무력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 2017년 11월 25일 러시아 전투기가 크림반도 해안 10㎞ 정도 떨어진 해상에서 미국 공군 대잠초계기 P-8A 포세이돈을 상대로 요격 비행을 했다. 러시아가 강제 합병한 크림반도는 러시아 외 7개국만 러시아 영토로 인정한다. 펠겐하우어는 “러시아군은 미군 비행기가 크림반도 연안의 러시아 영공을 침입하면 격추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러시아 사령관은 미군 초계기 조종사가 운이 아주 좋아서 살아남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발트해 국가들도 러시아 전투기가 그들의 영공을 자주 침범하면서 위험한 사건이 갈수록 빈번히 발생한다고 항의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6월 러시아 Su-27 전투기 1대가 발트해 공해 상공에서 임무 수행 중이던 스웨덴 정찰기에 약 2m 내의 아주 가까운 거리로 접근해 충돌 위험을 초래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냉전 이래 최저점에 이르면서 사소한 사고가 무력 충돌로 확대될 수 있는 위험이 매우 커졌다. 2016년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한 의혹과 관련해 선거 캠프의 러시아 커넥션 혐의로 비난 받는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를 우호적으로 대할 수 없는 입장이다. 동시에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공격적인 행동으로 러시아가 피해를 입는다고 국민에게 홍보한다. 러시아 국영 TV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반러시아 ‘파시스트’ 세력를 지원한다는 기사를 거의 매일 내보낸다. 또 시리아에서 미국이 은밀히 IS를 돕는다고 주장하는 기사도 자주 보도한다.
러시아의 어린 학생들도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허약한 나라들을 보호하는 용감한 나라라는 러시아의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 동원된다. 최근 러시아에서 인기 있는 인터넷 동영상을 보면 열 살짜리 아이들이 군복을 입고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벌어진 곳에 세워진 러시아 모국상 앞에 서서 이렇게 노래한다. ‘우린 미국의 패권에 진저리가 나요... 블라디미르 푸틴 삼촌, 우린 이 싸움에서 당신을 따를 준비가 돼 있어요.’
러시아 엘리트층의 일부는 군부가 러시아 외교와 선전 정책을 장악했다는 사실에 우려를 표한다. 얼마 전 크렘린이 지원하는 모스크바 소재 싱크탱크 미국·캐나다문제연구소의 세르게이 로고프 소장은 우발적인 무력충돌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과 미국의 도발이 문제라고 비난하면서도 “이런 상황이 언제든 전쟁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절대 기우가 아니다. 푸틴 대통령이 국내의 인기를 얻기 위해 러시아를 영원히 전시 상태로 유지하려고 애쓸수록 그는 더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 오언 매튜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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