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O 다큐멘터리 ‘게리 섄들링의 참선 일기’…동료와 후배들에게 영감 준 코미디언 게리 섄들링의 삶 돌이켜 섄들링은 첫 시트콤 ‘잇츠 게리 섄들링 쇼’로 미국 코미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 사진:BONNIE SCHIFFMAN/HBO‘오피스(The Office)’ ‘못말리는 패밀리(Arrested Development)’ ‘열정을 억제하세요(Curb Your Enthusiasm)’ ‘방송국 뒷담화(30 Rock)’ ‘팍스앤 레크리에이션(Parks And Recreation)’이 없는 미국 TV를 상상할 수 있을까? 상상이 가지 않는다면 그건 코미디언 게리 섄들링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그의 독창적인 ‘래리 샌더스 쇼(The Larry Sanders Show)’는 미국 시트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상의 심야 토크쇼가 진행되는 스튜디오를 무대로 호화 캐스트(섄들링, 제프리 탬버, 립 톤, 재닌 가로팔로, 세라 실버먼 등)가 출연해 큰 인기를 끈 이 쇼는 1992~1998년 여섯 시즌 동안 방영되면서 TV 코미디의 기본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고정된 카메라로 전지적 시점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촬영 기법, 신랄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대사, 호감이 가지 않는 듯하면서도 끌리는 인물 설정 등 요즘 시트콤의 필수로 인식되는 요소 대부분이 ‘래리 샌더스 쇼’에서 처음 시도됐다.
섄들링이 ‘래리 샌더스 쇼’만 했다고 해도 그는 미국 대중문화의 전당에 충분히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의 첫 시트콤 ‘잇츠 게리 섄들링 쇼(It’s Garry Shandling’s Show)’는 그보다도 더 시대를 앞서 갔다. 1986~1990년 쇼타임에서 네 시즌 동안 방영된 그 쇼는 1980년대 중반의 전형적인 시트콤처럼 보였지만 시청자에게 방청석의 반응을 보여주고 직접 말을 건네는 등 완전히 새로운 자기인식 기법을 도입해 무대와 관객 사이를 가로막았던 가상의 벽을 무너뜨린 선구적인 프로그램이었다. 파격적인 주제곡으로도 유명했다. ‘이건 게리 쇼의 주제곡이야/ 게리 쇼의 주제곡이야/ 게리가 내게 전화를 걸어 주제곡을 써달라고 했어…’
완전히 새로운 시도였지만 이 쇼는 크게 히트했다. 섄들링은 이전에 특유의 콧소리와 부풀린 머리 스타일, 냉소적이고 예리한 관찰력을 가진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서 조니 카슨의 ‘투나잇 쇼’에 단골 출연해 이름을 알린 터였다. 이렇게 쌓아올린 그의 인지도가 ‘잇츠 게리 섄들링 쇼’의 인기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섄들링은 이 쇼를 계기로 여러 세대의 코미디언에게 역할 모델이 됐다. 코미디언이자 영화 제작자인 저드 애퍼토는 “록 밴드 리플레이스먼츠가 여러 뮤지션에게 영감을 줬다면 섄들링은 수많은 코미디언에게 용기를 주고 귀감이 됐다”고 말했다.
애퍼토도 그에게 영감을 받은 코미디언 중 한 명이다. 2016년 66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섄들링은 25년 동안 애퍼토의 친구이자 멘토였다. 애퍼토가 섄들링을 처음 만난 건 고등학생 시절 학교 방송에서 그를 인터뷰했을 때였다. 몇 년 뒤 애퍼토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고 있을 때 섄들링이 그에게 1991년 그래미상 시상식 진행에 필요한 개그 대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1998년 섄들링은 애퍼토에게 ‘래리 샌더스 쇼’를 찍는 첫 임무를 맡겼다. 그 일을 계기로 애퍼토는 TV 드라마 ‘프릭스 앤 긱스(Freaks and Geeks)’와 영화 ‘40살까지 못해본 남자(The 40-Year-Old Virgin)’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Trainwreck)’ 등 코미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애퍼토의 최신작 ‘게리 섄들링의 참선 일기(The Zen Diaries of Garry Shandling)’는 4시간 분량의 2부작 헌정 다큐멘터리로 HBO에서 3월 26~27일 첫 방영됐다. 불교 신자였던 섄들링이 약 40년 동안 기록한 메모에 든 경구와 선문답, 자기비판을 중심으로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는 코미디언 섄들링을 록 스타에 견준다. 애퍼토는 록 밴드 이글스의 결성부터 해산까지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이글스의 역사(History of the Eagles)’를 두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다큐멘터리”라며 “이번 작품에서 내가 섄들링을 이글스처럼 다뤘다고 생각해도 좋다”고 말했다.
섄들링은 전기공학을 전공하다가 마케팅으로 진로를 바꿨지만 결국 코미디언이 됐다. / 사진:COURTESY OF HBO‘게리 섄들링의 참선 일기’는 애리조나주 투산에서 보낸 섄들링의 성장기부터 갑작스러운 사망 후 장례식까지 그의 삶과 코미디언 경력을 공정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조명한다. 섄들링의 열성 팬들조차 처음 접하는 얘기도 들어 있다.
섄들링이 여덟 살이던 1960년 형 배리가 유전병인 낭포성 섬유증으로 사망했다. 형제간 우애가 좋았지만 부모는 섄들링이 형의 임종 직전 그를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 애퍼토는 “그 때문에 섄들링은 모든 면에서 예민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겐 형과의 관계가 너무나 중요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지 않고 혼자 삭였다. 그래서 그는 늘 수수께끼 같은 사람으로 인식됐다.”이 다큐멘터리에서 섄들링은 형의 죽음에 따른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거기엔 카타르시스의 순간도 있다. 다큐멘터리 막바지에 애퍼토는 섄들링의 일기에서 발견한 편지 한 장을 보여준다. 어른이 된 뒤 자신이 알던 옛날의 형에게 쓴 편지였다. 애퍼토가 읽기 전엔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그 편지를 보자 눈물이 쏟아졌다”고 애퍼토는 말했다. “그의 절절한 슬픔이 그대로 와 닿았다. 그가 그토록 비통한 마음을 어떻게 평생 견뎌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결국 그가 형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형의 죽음이 자신의 삶 전체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그토록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뻤다.”
그의 친구이자 멘티였던 저드 애퍼토와 함께 (1998년). / 사진:LARRY WATSON/HBO이 다큐멘터리는 섄들링이 개인적으로 겪은 깊은 고통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그가 살면서 내린 결정들의 정서적인 근거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애퍼토가 말하듯이 “TV를 두 번이나 완전히 개혁한” 코미디의 귀재였던 그가 처음엔 전기 엔지니어가 될 뻔했다. 그러나 19세에 수학과 원자물리학을 공부한 뒤 심적인 변화가 생겼다. 다큐멘터리에서 섄들링은 이렇게 말한다. “하루는 실험실에서 나온 뒤 다시 들어갈 수 없었다. 평생 이 일을 하며 살아갈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나는 코미디를 좋아하고 모르는 것을 배울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그 능력을 갖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섄들링은 코미디계에 발을 들여놓은 된 뒤에도 계속 그와 비슷한 경험을 반복했다. 그는 당시 가장 인기 높던 시트콤 ‘샌포드와 아들(Sanford and Son)’의 3회분 대본을 쓴 뒤 그만두고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작했다. 그 후 ‘잇츠 게리 샌들링 쇼’로 히트했지만 네 시즌 만에 끝냈다.
또 ‘래리 샌더스 쇼’를 위해 여러 심야 토크쇼에서 진행을 맡을 기회를 포기했다. ‘래리 샌더스 쇼’도 크게 히트했지만 여섯 시즌 후 종영했다.그처럼 계속 새로운 일에 도전하다가 때로는 시청자의 시야에서 멀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겐 “진정한 내가 누군지 찾으려는” 평생에 걸친 탐색의 과정이었을 뿐이다. 그가 쓴 일기는 그 여정의 개인적인 토론장이 됐다. 섄들링은 일기에 ‘어쩌면 내겐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재능이 있는 듯하다’고 적었다.
섄들링은 애리조나주 투산에서 성장했다. 고향에서 어머니와 함께. / 사진:COURTESY OF HBO애퍼토는 “난 늘 섄들링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는 의무를 느꼈다”고 말했다. “우리가 코미디언으로서 성공한 데는 섄들링의 도움이 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가 코미디 발전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섄들링이 멘토링하고 도와주고 영향을 준 코미디언과 배우는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애퍼토 외에도 사샤 배런 코언, 애덤 매케이, 코넌 오브라이언, 케빈 닐런, 존 파브로, 밥 사겟, 데이비드 듀코브니, 제리 사인펠드, 크리스 록, 세라 실버먼, 짐 캐리 등등. 코언은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세계 최고의 코미디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당신은 할 수 있어’라고 말해준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고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 했다. 만화에 나오는 수호천사 같았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홀연히 나타나 ‘당신은 지금 이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잖아’라고 말해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애퍼토는 섄들링이 늘 대본을 읽고 촬영한 장면을 검토한 뒤 작품을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돌이켰다. 다큐멘터리에서 애퍼토는 섄들링이 ‘40살까지 못해본 남자’의 끝부분을 바꾸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고 밝힌다. 그는 스티브 카렐이 연기한 주인공이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그가 처음 경험한 섹스가 어느 누구의 경험보다 더 멋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황홀한 느낌을 주기 위해 그 유명한 ‘노래와 춤’의 마지막 장면이 만들어졌다.
실버먼은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마음이 아주 따뜻하고 늘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멘토링은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 됐다.” 주변 세계에 좋은 영향을 미치려고 애쓰는 섄들링의 행동이 이 다큐멘터리를 이끌어 간다. 애퍼토는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그의 아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늘 나를 도와주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했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형이나 아버지 같은 역할을 했다. 우리는 그를 알게 된 것이 진정한 축복이라고 느꼈다.”
- 단테 A. 시앰팰리아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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