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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산업의 탄생(3) | 스카이라운지의 등장] 반도호텔 스카이라운지서 자유당 공천심사

[호텔산업의 탄생(3) | 스카이라운지의 등장] 반도호텔 스카이라운지서 자유당 공천심사

외국인 전용 호텔에 특권층 출입… 높이 경쟁에서 밀린 반도호텔, 결국 호텔롯데에 매각
뉴코리아 호텔 너머로 공사중인 롯데호텔이 보인다. / 사진:서울역사박물관
라운지는 공공건물이나 상업용 건물 등에서 안락의자 등을 갖춰 이용자가 휴식하거나 대화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현재 서울의 호텔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라운지는 2017년 4월 문을 연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호텔 79층에 위치한 ‘더 라운지’다. ‘아름다운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형상화한 작품’ ‘도심 속 최고층에 위치한 힐링 공간’임을 강조하는 이곳은 일상생활에서는 경험해보기 어려운 높이에서 도심을 바라보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특별히 건물의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한 라운지를 스카이라운지라 부르는데, 서울의 호텔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54년 4월의 일이었다.
 반도호텔 스카이라운지 1954년 첫 등장
호텔롯데 전망대 광고. / 사진:서울역사박물관
반도호텔은 1938년 4월 1일 일본 질소비료주식회사의 사장인 노구치 시다가후가 황금정 1정목(지금의 을지로1가)에 건립한 8층 111실 규모의 상업호텔이었다. 이 호텔은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에서 사용했고, 정부 수립 이후에는 ECA 경제협력국 사무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1949년 4월 20일 한·미 양국 정부의 공영과 협력을 상징하는 반도호텔 양여식이 반도호텔에서 거행됐다. 정부는 반도호텔을 미국에 증여했으며, 미국은 서울 내 별도의 호텔을 건축하는 비용 300만 달러를 기증했다. 하지만 1953년 한국전쟁의 휴전 이후 정부는 다시 반도호텔을 매입해 1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수리했다.

폭격으로 인한 수리공사는 육군 제1201 건설공병단이 담당했는데, 당시 이 정도 규모의 건설공사를 진행할 중장비를 갖춘 민간회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설계는 시카고 출신의 노르만 디한이 담당했다. 노르만 디한은 한국전쟁 기간 동안 미 육군에 근무하며 도로 건설 등에 참여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 이승만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국가재건사업을 돕기도 했다. 프란체스카 여사와의 친분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리공사에서 사용한 자재는 주로 미국에서 수입했으며, 세련된 미국식 디자인을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동측 옥상에 스카이라운지를 만들었다. 입면이 모두 유리로 돼있어 일명 ‘유리집’으로 불린 이곳은 당시 한국에서 가장 높은 반도호텔 내에서도 특별한 공간이었다.
 자유당 이기붕 등 권력층이 애용
도쿄 파크하얏트 호텔의 스카이라운지 ‘뉴욕 바’. / 사진:파크하얏트 도쿄 홈페이지
반도호텔은 철저하게 외국인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호텔 저층의 임대공간은 대부분 외국인 상회에 임대됐으며, 투숙객들도 거의 외국인이었다. 물론 한국인 특권층도 출입할 수 있었다. 호텔 내에서는 영어가 기본적으로 사용됐으며, 숙박비는 미국 달러로만 지불할 수 있었다고 한다. 스카이라운지 역시 외국인들이 주로 이용했으며, 그들이 유리창 너머로 도심을 내려다보는 장면이 간간히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도심의 이방인 공간이었다.

1958년 ‘5월 2일 민의원 선거’를 앞둔 3월, 800여 명의 인사가 자유당에 공천을 신청했고 최종 230명을 선별하기 위한 공천심사가 반도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진행됐다. 휴식을 제공하는 스카이라운지가 공천심사장으로 사용된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1958년 경향신문의 기사를 살펴보면 그날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한국에서 제일 높은 반도호텔 옥상에 유리로 지은 스카이라운지, 유리의 장막을 내린 채 자유당 당무위원들은 3일에도 제2차 공천심사를 속행중이다. 맨 아래층 커피숍에는 도당위원장들이 기다리고 앉았다가, 옥상에서 부름이 있으면 서류뭉치를 들고 올라간다. 면회는 물론 일절사절, 반도호텔 근처를 서성거리는 공천신청자들은 문자 그대로 높은데 보좌를 정한 고위층을 향하여 가슴속으로 두손을 비비는 형편, 언제부터 자유당에 이처럼 ‘높은 사람들’이 생겼나?(경향신문 1958년 3월 5일자).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이 호텔은 외국인 전용으로 소수의 한국인을 제외하고는 출입할 수 없었다. 그 소수의 한국인 중 한 명이 이승만 대통령의 비서를 지낸 민의원 의장 이기붕이었다. 그는 이 호텔 809호실에 머물며, 자유당간부회의, 여야 고위 간부 연석회의 등 주요한 의사결정이 진행되는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반도호텔에서 대중시위를 조작하고 부정선거를 기획하던 이기붕이 쫓겨난 1960년 4월 19일, 한 미국인이 스카이라운지에서 경찰이 쏜 유탄에 맞았다. 제임스 월칵스는 도심을 가득 채우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내려다보며 응원하던 중이었다. 중상을 입은 그는 미 8군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1년 후 끝내 사망했다.

현재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호텔의 ‘더 라운지’. / 사진:롯데호텔 홈페이지
1959년 7월 31일 조봉암 선생이 서대문형무소의 이슬로 사라진 그날, 서울의 낮 기온은 섭씨 33도에 달했다. 사람들은 더위로 지쳐가고 있었지만, 반도호텔 스카이라운지는 에어컨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실내온도 15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덕수궁을 내려다보며 시원한 맥주나 주스로 더위를 식히는 사람은 대개가 외국인이었으며, 여전히 영어와 미국 달러가 통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과 정치인들만으로는 호텔의 경영을 이어갈 수 없었다. 수 년 간 적자는 이어졌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1960년 일반인의 출입을 허용했다. 스카이라운지에는 이방지대를 즐기려는 시민들이 하나둘 드나들었다. 때론 그 낯섦에 동화되기도 하고 때론 창 밖으로 보이는 도심의 모습과 현실과의 차이로 공허함을 키우기도 했는데, 당시 신문에 연재되던 소설 속 주인공들이 찾는 주요한 장소로 언급되며 그 이미지는 확대, 재생산됐다. ‘그들은 반도호텔 옥상에 있는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갔다. 그리고 시청 앞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두 사람은 마주앉았다. 지금 자기들이 돌아 나온 덕수궁도 바라 보였다.’(박계주 소설 [장미와 태양])
 1960년대 들어 내국인 출입하며 호텔마다 경쟁적 도입
1. 수리를 마친 반도호텔, 옥상에 스카이라운지가 보인다. / 2. 1961년 반도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는 덕수궁까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 3. 1964년 1월 공사 중인 뉴코리아호텔 모습.
반도호텔 스카이라운지의 명성은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일반인의 출입이 이루어진 지 채 5년도 지나지 않아 인근에 더 높은 뉴코리아호텔 공사가 진행됐다. 반도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정동 쪽을 바라보면 덕수궁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이제는 뉴코리아호텔의 객실이 보일 뿐이었다. 이 호텔은 1965년에 개관했는데 15층에는 스카이라운지도 있었다. 사람들은 더 높은 곳으로 더 새로운 곳으로 옮겨갔으며, 소설 속 주인공들도 그러했다.

앰배서더호텔·타워호텔 등 새롭게 개관하는 호텔들과의 경쟁은 더욱 힘들어졌다. 1970년 영원한 라이벌이던 조선호텔이 최신 시설을 갖춘 호텔로 다시 지어짐에 따라 반도호텔의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스카이라운지는 성매매, 퇴폐적 공연행위 등으로 영업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고 밀수한 양주 90병을 압수당하기도 했다. 유흥업소로 지정돼 공무원의 출입이 금지됐다. 높이 경쟁에서 뒤쳐진 결과였지만, 시련은 너무 빠르게 찾아왔고 사람들은 쉽게 잊었다. 1974년 국제관광공사 소유의 반도호텔은 민영화정책에 따라 41억9800만원에 호텔롯데에 매각된다. 동양최대의 호텔을 새로 짓는다는 계획에 따라 반도호텔은 허물어졌고, 1979년 3월 10일 한국에서 가장 높은 38층 규모의 호텔롯데가 문을 열었다. 가장 높은 38층에는 전망대가 설치됐는데, 휴일에는 2000여 명이 몰릴 정도로 도심의 명소가 됐다. 또 하나의 스카이라운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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