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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금권정치 국가로 전락했는가

미국은 금권정치 국가로 전락했는가

“베트남전부터 트럼프 대통령 당선까지 7가지 거대 트라우마로 미국은 모범 민주국가라는 이미지 완전히 잃어”
미국은 9·11 테러 이래 전쟁에 6조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전쟁의 기회만 늘었을 뿐이다. / 사진:AP-NEWSI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을 두고 지난 11월 20일 성명을 통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살해를 지시한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미국은 사우디의 변함없는 동반자로 남을 것”이라며 배후설이 제기된 빈 살만 왕세자에게 정치적 면죄부를 줬다. 저명 언론인을 살해하고 시신까지 훼손한 것이 거의 확실한 사우디 ‘금권정치인(plutocrat)’들을 트럼프 대통령이 그토록 쉽게 용서해준 것은 그가 러시아·중국·북한의 권위주의 독재자들과 편안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런 경향은 유럽·캐나다·호주 등 전통적인 민주주의 동맹국들과 그의 불편한 관계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역사적으로 이례적인 인물인 건 결코 아니다. 다만 그는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이 민주주의와 이상을 약화시킨 금권정치로 전환하는 과정을 급진적으로 가속화할 뿐이다.

이런 추세는 미국을 빈부 격차가 아주 큰 ‘전쟁국가(warfare state)’로 바꿔놓는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래 전쟁에 6조 달러를 쏟아부었다. 그러니 공식적으로 미국을 금권정치 국가라고 부를 만하지 않는가?

나의 조부 조셉 P. 케네디 대사는 미국이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 국가이면서 대내적으로는 입헌 민주주의 국가가 절대 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런 불안정한 설정은 중산층을 무너뜨리고, 빈부 격차를 더욱 벌리며, 미국의 헌법과 시민권을 약화시킨다고 그는 지적했다.

미국의 2·3대 대통령 존 애덤스와 토머스 제퍼슨도 그와 비슷하게 대외적인 제국주의와 대내적인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며 “퇴치할 괴물을 찾아 해외로 나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의 삼촌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얼마 전인 1960년 말 퇴임하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갈수록 힘이 막강해지는 ‘군산 복합체’에 맞서 민주주의를 보존하려는 미국인의 투쟁이 힘을 잃어간다고 경고했다.

그 이래 7가지 거대한 트라우마가 미국을 금권정치의 길로 내몰았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모범적인 실험 국가라는 미국의 주장이 완전히 명분을 잃었다. 그 트라우마는 미국을 해외에선 패권을 휘두르는 제국으로, 국내에선 국가안보 국가로 변형시켰다.

존 F. 케네디와 나의 부친 로버트 F. 케네디(두 사람 모두 미국을 평화의 길로 이끌려고 했다), 또 마틴 루터 킹 목사(베트남전을 미국의 빈곤·인종차별주의·폭력·불의와 연결시켰다) 암살이 그 트라우마에 포함된다. 1965년 미국의 전쟁으로 변해버린 베트남전이 네 번째 트라우마였다. 그로써 세계의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되려했던 미국의 희망이 사라졌다.

그 다음 조지 W. 부시가 플로리다 주 재검표 소송 끝에 연방대법원으로부터 승리를 인정 받은 기이한 대통령선거(연방대법원은 5대 4의 표결로 재개표를 중단 시키고 그때까지의 개표 결과를 인정하는 결정을 내려 부시의 승리를 결정했다)와 부시 대통령의 9·11 테러 대응 전략이 미국을 금권정치의 길로 더욱 밀어붙였다.

만약 플로리다주에서 재개표가 이뤄져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해보라.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았을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 결정이 결국 시리아 내전과 난민 위기로 이어져 EU가 분열되고, 적어도 한 세대 동안 유럽의 민주주의와 안정이 위협받지 않았는가?

만약 고어 후보가 대통령이 됐더라면 9·11 테러에 근본 원인 처치로 대응했을 것이다. 그 근본 원인이란 미국의 치명적인 ‘석유 중독’을 말한다. 부시가 아니라 고어가 대통령이었다면 전쟁에 6조 달러를 쏟아붓지 않고 그 돈을 청정에너지 경제로 전환하는 데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고도 5조 달러가 남아 미국에 세계 최고의 학교와 병원, 도로와 인터넷 네트워크 등 인프라를 건설하고 모든 미국인에게 건강보험을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그 막대한 자금을 전쟁에 투자하면서 중산층을 거덜내고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경제 난민을 만들어냈다.

마지막 트라우마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미국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을 뿐 아니라 자율정부에 대한 미국의 실험 전체가 무위로 돌아갔다. 1784년 미국은 세계 현대사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였다. 1865년이 되자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는 6개로 늘었다. 전부 미국을 모델로 했다.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00년엔 세계 전체 국가의 63%가 민주주의 정부의 통치를 받았고, 민주주의는 세계 대다수 인구가 선호하는 시스템이었다. 여전히 미국이 지배적인 모델이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지구상의 모범 국가가 되겠다는 역사적인 염원을 달성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대통령인 지금도 미국이 그렇게 주장할 수 있을까? 그는 어떤 잣대를 대더라도 생존하는 세계 지도자 중 가장 혐오스럽고 두려운 존재이면서 사방에서 업신여김을 받는다. 그런 인물을 최고 권력자로 올려놓는 지금의 미국 정치 시스템을 다른 나라가 채택할 이유가 없다. 그는 호전적이고 책도 잘 읽지 않는다. 단지 돈을 모으는 능력과 인종차별주의, 공포 부추기기, 부족주의의 선동적인 힘으로 백악관을 차지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환멸이 커진다. 현재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는 19개국에 불과하다. 2006년 이래 6개국이 줄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중국에서 환경 문제와 관련해 중국 지도자들을 만나는 중이다. 2014년 이곳을 방문했을 땐 심지어 최고 지도자도 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로 서서히 전환하는 문제를 거론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에서 그런 ‘허영’이 완전히 사라졌다. 중국의 한 관리는 내게 중국 시스템이 모든 차원에서 가장 스마트하고 유능한 테크노크랫(기술관료)을 지도자로 배출한다고 말했다. “어릿광대나 위험한 지도자를 배출하는 (미국 같은) 시스템을 우리가 채택할 이유가 없다.” 2014년 중국에선 과거 절대 권력을 휘두른 독재자였던 마오쩌둥이 폄하되고 그의 유산이 묻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그의 동상과 초상화를 중국 어디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명성이 다시 부활했다. 중국의 어느 환경운동가(과거 그는 민주주의를 열렬히 지지했다)는 그런 태도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중국 우선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마오쩌둥이 우리의 역할모델이다.”

이처럼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 있다. 미국은 전쟁에 6조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지금 미국인은 그 이전보다 더 안전하지 않다. 전쟁의 기회만 늘었을 뿐이다. 금권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전쟁을 원할 것이다. 미국이 이 길을 계속 간다면 더 많은 전쟁이 따를 수밖에 없다.

-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 [필자는 로버트 F. 케네디 전 미 법무장관의 아들이자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조카로 오랫동안 변호사와 환경운동가로 활동했으며, 근저 ‘미국의 가치: 나의 가족으로부터 얻은 교훈(American Values: Lessons I Learned From My Family)’을 비롯해 여러 베스트셀러를 냈다. 이 글은 필자 자신의 견해이며 뉴스위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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