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고우면, 좌충우돌, 우왕좌왕
좌고우면, 좌충우돌, 우왕좌왕
#1. 요즘에는 다르지만 1970년대만 해도 중학교에 들어가서 영어를 처음 배우는 게 일반적이었다. 필자도 중학교에 입학해서 영어를 처음 접해보았고 단어 외우기 숙제를 해가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체벌이 기다리고 있어 영어수업은 공포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 당시에 ‘right’이란 단어를 배우면서 그 뜻에 ‘오른쪽’과 함께 ‘옳다’도 있어 신기했다. 당시 버스 안내양은 손님 승하차 때 ‘오라이’라고 힘껏 소리질렀는데 버스기사에게 출발해도 좋다는 신호였다. 이 말도 영어 ‘올 라잇(all right)’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라는 사실도 처음 배웠다.
영어에서 왜 오른쪽이 동시에 ‘옳은’ 것이 되는지는 손과 관련이 있다. 인류의 90% 이상은 오른손잡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왼손잡이는 소수로서 자주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왼쪽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 ‘left’의 어원은 ‘lyft’로서 그 뜻은 ‘약한, 바보스러운’이다. 왼손잡이들도 한때는 편견의 대상이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왼손잡이가 현대에 들어와서 각광을 받는 분야가 생겼다. 바로 프로스포츠이다. ‘남쪽의 손’이라는 뜻의 ‘사우스포(southpaw)’는 왼손잡이 선수들의 별칭이다. 미국 프로야구에서 올해 최고의 시즌을 보낸 류현진도 사우스포다. 소수인 왼손잡이 선수들이 다수인 오른손잡이들을 상대할 때 인체 구조상의 이유로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설이 그럴 듯하다. 이 말은 야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널리 믿어지고 있다. 19세기 말 시카고 ‘웨스트 사이드 파크’의 야구장은 투수가 타자를 상대하는 방향이 서쪽을 향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왼손 투수가 던질 때 그의 팔은 남쪽을 향하게 되는 것을 보고 기자들이 그리 불렀다는 것이다. 시카고 뉴스의 핀리 P. 듄이나 시카고 헤럴드의 찰스 세이무어가 그들이다. 하지만 이도 정설이 아니라고 한다. 이 말은 19세기 초반부터 모든 스포츠의 왼손 선수들에게 붙여지는 별칭이었고, 야구에서도 19세기 중반부터 투수가 아닌 왼손 타자도 그리 불렸기 때문이다.
#2.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유명한 장면이다. 조조에게 왕위를 물려 받은 큰 아들 조비는 재주가 뛰어난 동생 조식을 죽이고 싶었다. 조식을 불러들여 형제를 주제로 하되 이 글자가 들어가지 않은 시를 일곱 걸음 안에 지으면 살려 주겠다고 말한다. 이에 조식은 ‘콩대로 콩을 볶으니 콩은 솥 안에서 운다. 본래 한 뿌리에서 난 것인데 마주 볶음이 어찌 이리 급한가’가 들어가는 ‘칠보시’를 읊어 죽음을 모면한다.
이렇게 글재주가 뛰어난 그가 자국의 장수인 오질(吳質)에게 ‘여오계중서(與吳季重書)’라는 편지를 썼다. 오질은 조비의 왕위 등극에 큰 공을 세워 총애를 받아 크게 출세한 인물이다. 이 편지에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살펴보아도 마치 (견줄) 사람이 없는 듯이 하니, 그 어찌 그대의 큰 뜻이 아니랴(左顧右眄, 謂若無人. 豈非吾子壯志哉)’라는 대목이 나온다. ‘좌고우면’이라는 유명한 사자성어의 유래이다. 한자사전을 찾아보면 마지막 한자인 ‘면’이 ‘곁눈질할’의 뜻이어서 그런지 후세로 내려올수록 ‘앞뒤를 재고 망설임’의 부정적인 뜻으로 정착됐다.
#3. 정치학에서 ‘좌익’ ‘우익’ 또는 ‘좌파’ ’우파’의 유래는 주지하다시피 프랑스 혁명과 관련이 있다. 1789년 프랑스혁명 직후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의장석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에는 왕을 지지하는 왕당파가, 왼쪽에는 혁명을 지지하는 공화파가 앉은 것이 그 기원이다. 공화파가 장악한 1792년의 국민공회에서도 왼쪽에 급진적인 자코뱅파 의원들이, 오른쪽에 보수적인 지롱드파 의원들이 자리 잡았다. 이후 몇 차례의 정치적 격변기를 보내면서 보수적이거나 온건한 세력은 우익으로, 상대적으로 급진적인 세력은 좌익으로 나누는 게 전형적인 것으로 정착됐다고 한다. 좌·우파로 정치 세력을 구분 짓는 것은 유럽 정치에서 관행이 됐다. 지금은 유럽을 넘어 세계적으로 통하는 상식이 됐다. 일반적으로 진보 진영은 좌파로, 보수 진영은 우파로 분류되는 것이다.
필자의 눈에는 요즘 우리나라의 정국과 경제를 상징하는 사자성어가 ‘좌고우면’ ‘좌충우돌(左衝右突)’ ‘우왕좌왕(右往左往)’ 같아 보인다. 지난 여름부터 한 청와대 인사의 장관 임용을 둘러싸고 청문회부터 시작해서 2달여 간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7월 말 그는 청와대 보직에서 물러나면서 “격무였지만 영광이었다”며 “법과 원칙을 따라 ‘좌고우면’ 하지 않고 직진했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세간의 평가는 그의 말과는 사뭇 다른 듯하다. 그는 퇴임 이후 곧 장관에 내정됐고 이후 청와대 시절 투자한 사모펀드와 자녀들의 입시 문제로 가족까지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됐다. 결국 그는 약 2달 만에 사퇴했지만 검찰 수사는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진행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법무부 장관 관련 수사에 대한 여야 의원의 질의를 받고 “좌고우면 하지 않고 어떤 사건이든 원칙대로 처리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의 사퇴와 그의 부인에 대한 수사를 둘러싸고 10월 한 달은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거리로 뛰쳐나와 대결을 펼치는 양상이 이어졌다. 특히 그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반대 진영뿐 아니라, 같은 편이라도 의견이 다르면 거세게 비난하는 등 ‘좌충우돌’ 하는 모습을 보였다. 진보 진영은 검찰청이 있는 서초동에서 대규모 집회를 가지면서 집회 군중의 수를 과시하자 바로 그 주에 더 큰 규모의 보수 진영 집회가 광화문에서 열렸다. 이런 식의 대결은 거의 한달 내내 이어졌고, 서초동에서는 보수 진영의 맞불 집회도 같이 열려 큰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조마조마한 상황도 연출됐다. ‘좌충우돌’을 순서를 살짝 바꾼 ‘좌우충돌(左右衝突)’의 상황이 온 나라를 흔들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 나라의 경제는 계속 더 깊은 불황의 늪으로 들어가는 양상이다. 올해 2% 성장도 장담할 수 없으며 지금으로선 내년도 별로 나아질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부는 직전 정권의 잘못이라고 핑계를 댈 수 없는 임기 중반에 들어와서도 필연적으로 나라 빚 부담을 크게 늘리려 재정 확대에만 주로 기대는 모습이다. 그나마 지금까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 등의 경제정책이 만들어낸 ‘자초형 불황’을 타개할 방법은 공허한 ‘소득주도 성장’이나 막연한 ‘혁신성장’이 아니라 ‘기업의 기 살리기’ 임을 깨달은 것 같다. 지금까지 적폐청산의 대상이었던 대기업 총수를 찾아가 격려하고 투자를 촉구하는 모습도 보인다. 중소기업에는 주 52시간 도입을 사실상 유예해주려는 움직임도 있다. 어렵게 올렸던 금리도 다시 내리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경제정책의 ‘우왕좌왕’이 아닐까 싶다. 프러시아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의 ‘현명한 자는 (자기 자신이 아닌) 남의 실수에서 배운다’라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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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서 왜 오른쪽이 동시에 ‘옳은’ 것이 되는지는 손과 관련이 있다. 인류의 90% 이상은 오른손잡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왼손잡이는 소수로서 자주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왼쪽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 ‘left’의 어원은 ‘lyft’로서 그 뜻은 ‘약한, 바보스러운’이다. 왼손잡이들도 한때는 편견의 대상이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왼손잡이가 현대에 들어와서 각광을 받는 분야가 생겼다. 바로 프로스포츠이다. ‘남쪽의 손’이라는 뜻의 ‘사우스포(southpaw)’는 왼손잡이 선수들의 별칭이다. 미국 프로야구에서 올해 최고의 시즌을 보낸 류현진도 사우스포다. 소수인 왼손잡이 선수들이 다수인 오른손잡이들을 상대할 때 인체 구조상의 이유로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설이 그럴 듯하다. 이 말은 야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널리 믿어지고 있다. 19세기 말 시카고 ‘웨스트 사이드 파크’의 야구장은 투수가 타자를 상대하는 방향이 서쪽을 향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왼손 투수가 던질 때 그의 팔은 남쪽을 향하게 되는 것을 보고 기자들이 그리 불렀다는 것이다. 시카고 뉴스의 핀리 P. 듄이나 시카고 헤럴드의 찰스 세이무어가 그들이다. 하지만 이도 정설이 아니라고 한다. 이 말은 19세기 초반부터 모든 스포츠의 왼손 선수들에게 붙여지는 별칭이었고, 야구에서도 19세기 중반부터 투수가 아닌 왼손 타자도 그리 불렸기 때문이다.
#2.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유명한 장면이다. 조조에게 왕위를 물려 받은 큰 아들 조비는 재주가 뛰어난 동생 조식을 죽이고 싶었다. 조식을 불러들여 형제를 주제로 하되 이 글자가 들어가지 않은 시를 일곱 걸음 안에 지으면 살려 주겠다고 말한다. 이에 조식은 ‘콩대로 콩을 볶으니 콩은 솥 안에서 운다. 본래 한 뿌리에서 난 것인데 마주 볶음이 어찌 이리 급한가’가 들어가는 ‘칠보시’를 읊어 죽음을 모면한다.
이렇게 글재주가 뛰어난 그가 자국의 장수인 오질(吳質)에게 ‘여오계중서(與吳季重書)’라는 편지를 썼다. 오질은 조비의 왕위 등극에 큰 공을 세워 총애를 받아 크게 출세한 인물이다. 이 편지에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살펴보아도 마치 (견줄) 사람이 없는 듯이 하니, 그 어찌 그대의 큰 뜻이 아니랴(左顧右眄, 謂若無人. 豈非吾子壯志哉)’라는 대목이 나온다. ‘좌고우면’이라는 유명한 사자성어의 유래이다. 한자사전을 찾아보면 마지막 한자인 ‘면’이 ‘곁눈질할’의 뜻이어서 그런지 후세로 내려올수록 ‘앞뒤를 재고 망설임’의 부정적인 뜻으로 정착됐다.
#3. 정치학에서 ‘좌익’ ‘우익’ 또는 ‘좌파’ ’우파’의 유래는 주지하다시피 프랑스 혁명과 관련이 있다. 1789년 프랑스혁명 직후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의장석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에는 왕을 지지하는 왕당파가, 왼쪽에는 혁명을 지지하는 공화파가 앉은 것이 그 기원이다. 공화파가 장악한 1792년의 국민공회에서도 왼쪽에 급진적인 자코뱅파 의원들이, 오른쪽에 보수적인 지롱드파 의원들이 자리 잡았다. 이후 몇 차례의 정치적 격변기를 보내면서 보수적이거나 온건한 세력은 우익으로, 상대적으로 급진적인 세력은 좌익으로 나누는 게 전형적인 것으로 정착됐다고 한다. 좌·우파로 정치 세력을 구분 짓는 것은 유럽 정치에서 관행이 됐다. 지금은 유럽을 넘어 세계적으로 통하는 상식이 됐다. 일반적으로 진보 진영은 좌파로, 보수 진영은 우파로 분류되는 것이다.
필자의 눈에는 요즘 우리나라의 정국과 경제를 상징하는 사자성어가 ‘좌고우면’ ‘좌충우돌(左衝右突)’ ‘우왕좌왕(右往左往)’ 같아 보인다. 지난 여름부터 한 청와대 인사의 장관 임용을 둘러싸고 청문회부터 시작해서 2달여 간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7월 말 그는 청와대 보직에서 물러나면서 “격무였지만 영광이었다”며 “법과 원칙을 따라 ‘좌고우면’ 하지 않고 직진했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세간의 평가는 그의 말과는 사뭇 다른 듯하다. 그는 퇴임 이후 곧 장관에 내정됐고 이후 청와대 시절 투자한 사모펀드와 자녀들의 입시 문제로 가족까지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됐다. 결국 그는 약 2달 만에 사퇴했지만 검찰 수사는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진행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법무부 장관 관련 수사에 대한 여야 의원의 질의를 받고 “좌고우면 하지 않고 어떤 사건이든 원칙대로 처리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의 사퇴와 그의 부인에 대한 수사를 둘러싸고 10월 한 달은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거리로 뛰쳐나와 대결을 펼치는 양상이 이어졌다. 특히 그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반대 진영뿐 아니라, 같은 편이라도 의견이 다르면 거세게 비난하는 등 ‘좌충우돌’ 하는 모습을 보였다. 진보 진영은 검찰청이 있는 서초동에서 대규모 집회를 가지면서 집회 군중의 수를 과시하자 바로 그 주에 더 큰 규모의 보수 진영 집회가 광화문에서 열렸다. 이런 식의 대결은 거의 한달 내내 이어졌고, 서초동에서는 보수 진영의 맞불 집회도 같이 열려 큰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조마조마한 상황도 연출됐다. ‘좌충우돌’을 순서를 살짝 바꾼 ‘좌우충돌(左右衝突)’의 상황이 온 나라를 흔들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 나라의 경제는 계속 더 깊은 불황의 늪으로 들어가는 양상이다. 올해 2% 성장도 장담할 수 없으며 지금으로선 내년도 별로 나아질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부는 직전 정권의 잘못이라고 핑계를 댈 수 없는 임기 중반에 들어와서도 필연적으로 나라 빚 부담을 크게 늘리려 재정 확대에만 주로 기대는 모습이다. 그나마 지금까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 등의 경제정책이 만들어낸 ‘자초형 불황’을 타개할 방법은 공허한 ‘소득주도 성장’이나 막연한 ‘혁신성장’이 아니라 ‘기업의 기 살리기’ 임을 깨달은 것 같다. 지금까지 적폐청산의 대상이었던 대기업 총수를 찾아가 격려하고 투자를 촉구하는 모습도 보인다. 중소기업에는 주 52시간 도입을 사실상 유예해주려는 움직임도 있다. 어렵게 올렸던 금리도 다시 내리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경제정책의 ‘우왕좌왕’이 아닐까 싶다. 프러시아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의 ‘현명한 자는 (자기 자신이 아닌) 남의 실수에서 배운다’라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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