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의 빗썸 과세 그 후] 가상증표라더니 암호화폐 제도화 신호탄?
[국세청의 빗썸 과세 그 후] 가상증표라더니 암호화폐 제도화 신호탄?
‘통화’ 아닌 ‘자산’ 분류, 특금법 통과 때 규정 생겨… 주요국도 자산으로 규제, 중국 ‘추월차선’ 경계감 커져 국세청이 지난 12월 29일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코리아에 803억원 규모의 기타소득 과세를 통보했다. 빗썸이 국내에 거주하고 있지 않은 외국인 거래자의 자산 거래에 원천징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빗썸의 최대주주 비덴트는 “가상화폐 과세에 대한 법령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과된 부당과세”라고 반발하고 있다.
비덴트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세무당국이 세금을 매기려면 증권이든 재화든 암호화폐에 대한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 정부는 암호화폐에 대한 규정은커녕 정의조차 내리지 않았다. 2018년 1월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도 “가상화폐라고 부르는 것도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다. ‘가상증표’ 정도가 맞다고 본다”고 말한 바 있다. 암호화폐는 디지털 코드로 이뤄진 효용 없는 일종의 증표이며, 이에 대해 법적 규정조차 불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2년 가까이 흐른 지금 국세청이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분류하고 세금을 물리겠다는 방침을 공식 천명한 것이다.
국세청은 암호화폐를 ‘부동산 이외의 자산’으로 전제해 세금을 물린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이외의 자산은 주식·채권은 물론이고 상품권 같은 통화대용증권·은행예금처럼 현금화하기 용이한 자산을 의미한다. 암호화폐는 게임아이템처럼 디지털 공간에 존재하지만 물물교환 및 현금화 할 수 있기 때문에 광의의 자산으로 분류한 것으로 풀이된다. 암호화폐 자체는 어떤 자산의 성격을 갖지 못하지만, 거래소를 통해 현금이나 다른 암호화폐와 거래할 수 있다. 실제로 암호화폐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혼·폐업 등에 대비해 자산을 암호화폐로 바꾼 사례가 적지 않게 발생했다. 당시에는 정부가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분류하지 않아, 재산분할이나 청산·과세의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재판부는 이혼소송 등에 있어 암호화폐가 실질적 자산의 기능을 한다고 보고, 소송인의 재산으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암호화폐가 자산이라면 응당 과세의 대상이다. 이번 빗썸에 대한 과세는 ‘비거주자가 국내에 있는 자산을 양도할 때는 관련 소득에 대한 세율 금액을 거래대금을 지급하는 사람이 원천징수할 의무가 있다’는 소득세법에 근거를 뒀다. 미국·중국·일본 등 해외에 거주 중인 사람이 국내 거래소인 빗썸을 통해 암호화폐를 팔아 현금화 한 경우, 이 거래를 중개한 빗썸이 세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거주자는 자산 소득세를 매년 종합소득세 신고납부로 이행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외국인은 일일이 소환해 과세할 수 없어 중개자가 거래 당시에 매매차익의 22%를 거둬 국세청에 납부해야 한다. 세무당국이 암호화폐 투자의 강점으로 꼽혀온 세금이 없고 자유롭게 역외거래를 할 수 있다는 점에 허들을 둔 셈이다. 그간 금융·조세당국은 중국 등지에서 국내로 유입된 암호화폐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국부를 유출한 것으로 판단해왔다.
만약 당국이 암호화폐를 화폐로 간주했다면 거래대금에 과세는 불가능하다. 실제 암호화폐의 본질적 성격과는 별개로 현재 거래되는 양상을 보면, 유가증권처럼 프리미엄을 얹어 거래되고 있어 화폐보다는 자산의 성격이 짙다.
이번 과세 결정은 지난해 빗썸 세무조사 이후 내려진 것으로 1년간의 과세적부심을 거쳐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국세청의 판단일 뿐, 실제 이 과세를 위한 법령이나 근거는 아직 없다. 애초에 근거가 없기 때문에 국세청도 별도의 과세 의무를 고지하지 않았다. 빗썸이 의무를 방기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국세청은 이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개별 납세자에 관한 구체적 세원이나 과세 내용은 밝힐 수 없다”며 원론적 입장을 내놓고 있다. 국세청으로서도 이번 과세는 어쩔 수 없었다. 빗썸이 지난 5년간 중개한 외국인 거래에 과세 제척기간이 2019년까지였다. 이 시한을 넘기면 과세가 불가능하다. 일단 제척기간 전에 과세를 통보한 뒤 다툴 사항이 있다면 함께 따져보자는 것이다. 정부는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새다. 그러나 암호화폐가 자산으로써 어떤 자격과 용도, 증명을 할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지분증권의 경우 기업의 자본금을 일정 액면가만큼 쪼개, 소유자가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산이다. 증권은 법률적 검토와 정부의 인정을 밟아 발행된다. 일종의 중앙집권형 증명을 거친 자산이다. 이 때문에 기업에 대한 권리 행사나 분쟁은 법적 테두리 내에서 벌어진다. 그러나 암호화폐는 자산의 소유나 자격을 입증하지 못한다.
예컨대 달란트라는 재단이 발행한 100억개의 코인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달란트 재단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달란트 코인 거래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역설적으로 소수가 달란트 코인을 과점하고 있다면 이 코인 생태계에는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에는 증권형토큰공개(STO) 논의도 활발하다. 개별 코인에 지분 가치를 부여해 재화에 대한 실질적 권리를 인정해주겠다는 것이다. STO를 통해 불특정 다수가 돈을 모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모나리자를 구입했다면, 이 거래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나리자에 대한 소수의 지배권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 불특정 다수에게 자금을 모으면 ‘유사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이 된다. 또 암호화폐는 현재 법적으로 어떤 자격이 없음에도 STO는 소유·자격 증명을 수반하기 때문에 자본시장법과 충돌할 가능성도 크다.
돈스코이호 사태처럼 사업 주도자가 투자자들을 기망할 위험성은 물론 이더리움이 클래식으로 쪼개진 것처럼 투자자들 간에 의견 대립으로 사업이 무산될 가능성도 크다. 블록체인은 아직 기술적으로 불완전하고, 정부 인증 등 법적 책임이 부여되지 않은 자산이라 암호화폐를 둘러싼 여러 분쟁은 어디까지나 제도권 밖의 일로 취급되고 있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정부는 암호화폐를 게임아이템처럼 별다른 자격·지분 증명의 역할은 없지만, 거래를 통해 소득이 발생하면 과세할 수 있는 자산으로 간주하고 있다. 물론 통화로서도 자격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은 ‘가상통화 및 CBDC 공동연구 태스크포스(TF)’를 발족, 운영 중인데 암호화폐라는 용어 대신 ‘디지털화폐’와 ‘암호자산’으로 분류해 사용하고 있다. ‘암호’(가상)와 ‘화폐’ 두 단어를 연결하지 않았다. 원·달러·엔 등 법정 통화의 디지털 거래는 디지털화폐로 인식하고,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지급결제는 암호자산 영역으로 나눠 연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유관기관은 블록체인에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마냥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화폐 발행 비용을 낮추는 금융시스템을 도입하자는 취지로 연구에 나서고 있다. 일단 법적으로는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개정안은 암호화폐의 호칭을 ‘가상화폐’로 정하는 한편 ‘분산원장 기술을 사용해 교환 및 가치의 저장 수단으로 인식되는 전자적 이전 가능 증표’를 정의하고 있다. 더불어 이를 보관·관리·교환·매매·알선·중개하는 ‘가상화폐 취급업자’에 대한 정의도 두고 있다.
특금법은 자금세탁·공중협박자금조달의 방지 등 범죄의 예방적 조치에 초점을 맞췄지만, 암호화폐에 대한 규정을 한 것만으로도 한 발 나아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국회 회기 내 처리는 불투명하지만 국회의 방향을 가늠하는 한편 차기 국회 통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특금법 처리에 발맞춰 가상자산 소득세 과세 방침을 정하고 올해 세법 개정안에 구체적 과세 방안을 담을 방침이다. 정부 과세는 단기적으로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을 줄일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론 제도권 편입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생기고 있다.
한국은행의 경우 디지털 화폐(CBDC) 발행을 검토 중이다. 블록체인 방식 도입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화폐 거래와 관련한 정보의 무결성을 확보하는 측면에서 유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예컨대 현재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5만원권을 디지털 화폐로 발행할 경우 회수율이 왜 떨어지고, 주로 어느 시간대, 어디에서 사용됐으며, 순환주기는 얼마나 되는지 알게 된다. 이런 정보를 수집하면 경제 동향과 방향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어 세밀한 경제정책 수립 및 통화정책 집행이 가능하다. 큰 틀로 보면 정부는 독단적으로 블록체인 제도화를 추진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암호화폐를 비롯한 디지털통화는 국경을 초월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 세계적인 공통 규칙이 세워질 가능성이 커서다. 이에 주요국 정부의 방향에 보조를 맞춘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규칙은 유럽연합(EU)과 미국·일본 등을 중심으로 설계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글로벌 주요국들도 블록체인 육성보다는 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페이스북이 발행한다고 밝힌 암호화폐 리브라에 대한 미 정부의 입장이다. 지난해 7월 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는 혁신보다 부작용의 무게가 더 무겁다며 리브라를 가로막았다. 개인정보 유출을 비롯해 암호화폐 사업자가 대출 및 채용에 이용하거나 익명성 보장에 따른 범죄자금, 탈세 등에 악용될 것을 우려했다. 다만 미 하원도 디지털 통화 기술은 실존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는 막을 수 없으며, 송금 수수료 인하 등의 혁신은 필요하다고 공감했다.
이 일로 리브라의 초기 멤버였던 페이팔·비자·마스터카드·스트라이프 등 파트너사들이 대거 이탈했다. 2018년 초 암호화폐공개(ICO)를 통해 블록체인 프로젝트 ‘톤(TON)’을 준비하던 텔레그램 역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문제 제기를 받았다. SEC는 텔레그램이 증권법을 위반해 법원으로부터 긴급 조치 및 임시제한 명령을 받았다며 제동을 걸었다. 권리가 없는 자산 발행과 유통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SEC는 또 면제조항인 ‘레귤레이션 S’의 적용도 엄격화했다. 레귤레이션 S는 미국에서 미국 외 거주하는 비시민권자에게 증권 공모를 받을 수 있는 규정이다. 이를 통해 국내외 암호화폐 사업자들이 STO를 진행하자 SEC는 12개월 동안 토큰을 양도하지 못하게 하거나 적격 투자자 인증의무 등의 허들을 통해 자금 공모를 어렵게 했다.
최근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IFRS IC)도 암호화폐의 회계기준을 통해 암호화폐의 화폐로서 기능적 측면보다는 재고자산·무형자산 등 자산의 측면이 더 강하다고 봤다. 일본 재무성도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하는 한편, 용어를 가상화폐에서 암호화 자산으로 바꿨다. 더불어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암호화폐가 자금세탁 및 테러조직으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글로벌 암호화폐 추적 시스템을 개발키로 했다. 검은 거래에 쓰일지 모르는 암호화폐를 일단 가두리에 가둬놓고 제도화하겠단 뜻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중국은 암호화폐를 통해 새로운 글로벌 통화패권을 구축할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인공지능(AI)·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 등 첨단산업과 융합을 통한 블록체인기술 산업의 혁신 발전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인민은행은 이르면 올 상반기 중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내놓을 계획이다. 선전과 쑤저우에서 시범 운용할 계획이다. CBDC는 리브라·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가 아닌 디지털통화다. 금융투자 상품이나 자산이 아닌 실물 결제용 디지털 화폐로 결제망에 중국 국영은행과 이동통신사·텐센트·알리바바 등 공룡 IT 기업들을 포함시켰다. 현재 중국은 암호화폐 거래소를 인허가제로 바꿔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한편, 기술 회사에 대거 투자해 기술 격차를 확보하고 있다. 이런 중국 정부의 암호화폐 개발은 세계의 이목을 끌어모으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수단 아니겠느냐는 관측에서다. 이에 중국은 CBDC를 통해 전세 역전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CBDC는 블록체인을 활용했기 때문에 중국외 국가나 유통 흐름을 잡기 어렵다. 이를 통해 달러화 체제에서 한발 물러선 제3세계 국가들을 위안화 네트워크에 묶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보수 진영에서는 중국이 CBDC를 통해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과 이란 등의 나라를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실제 뤼차오(呂超) 랴오닝(遼寧)성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지난해 12월 글로벌 타임스 인터뷰에서 “중국·북한은 블록체인·암호화폐 연구에 협력해 상호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더불어 중국의 블록체인 생태계 강화는 관료들의 부패를 줄이는 한편 중앙당 중심의 집행력을 강화하는 측면도 있다.
중국의 이런 행보에 미국도 마음이 초조하다. 블록체인을 비롯해 5세대(5G) 이동통신망 구축 등 신기술 분야에서 중국에 비해 뒤처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아디티 쿠마르하버드대 벨퍼과학 및 국제업무센터 소장은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는 실제 개념이 증명이 될 것”이라며 “기술·법적 준비가 돼 있는지,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서구사회도 어떤 방식으로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미국이 디지털 달러를 개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이 중앙집권형 달러 암호화폐를 발행하면 사실상 미국이 전 세계 모든 금융거래를 들여다보게 돼 국제 사회의 적지 않은 반발이 예상돼서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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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덴트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세무당국이 세금을 매기려면 증권이든 재화든 암호화폐에 대한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 정부는 암호화폐에 대한 규정은커녕 정의조차 내리지 않았다. 2018년 1월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도 “가상화폐라고 부르는 것도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다. ‘가상증표’ 정도가 맞다고 본다”고 말한 바 있다. 암호화폐는 디지털 코드로 이뤄진 효용 없는 일종의 증표이며, 이에 대해 법적 규정조차 불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2년 가까이 흐른 지금 국세청이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분류하고 세금을 물리겠다는 방침을 공식 천명한 것이다.
국세청은 암호화폐를 ‘부동산 이외의 자산’으로 전제해 세금을 물린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이외의 자산은 주식·채권은 물론이고 상품권 같은 통화대용증권·은행예금처럼 현금화하기 용이한 자산을 의미한다. 암호화폐는 게임아이템처럼 디지털 공간에 존재하지만 물물교환 및 현금화 할 수 있기 때문에 광의의 자산으로 분류한 것으로 풀이된다.
암호화폐에 과세 판단 근거는
그러나 지난해부터 재판부는 이혼소송 등에 있어 암호화폐가 실질적 자산의 기능을 한다고 보고, 소송인의 재산으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암호화폐가 자산이라면 응당 과세의 대상이다. 이번 빗썸에 대한 과세는 ‘비거주자가 국내에 있는 자산을 양도할 때는 관련 소득에 대한 세율 금액을 거래대금을 지급하는 사람이 원천징수할 의무가 있다’는 소득세법에 근거를 뒀다. 미국·중국·일본 등 해외에 거주 중인 사람이 국내 거래소인 빗썸을 통해 암호화폐를 팔아 현금화 한 경우, 이 거래를 중개한 빗썸이 세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거주자는 자산 소득세를 매년 종합소득세 신고납부로 이행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외국인은 일일이 소환해 과세할 수 없어 중개자가 거래 당시에 매매차익의 22%를 거둬 국세청에 납부해야 한다. 세무당국이 암호화폐 투자의 강점으로 꼽혀온 세금이 없고 자유롭게 역외거래를 할 수 있다는 점에 허들을 둔 셈이다. 그간 금융·조세당국은 중국 등지에서 국내로 유입된 암호화폐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국부를 유출한 것으로 판단해왔다.
만약 당국이 암호화폐를 화폐로 간주했다면 거래대금에 과세는 불가능하다. 실제 암호화폐의 본질적 성격과는 별개로 현재 거래되는 양상을 보면, 유가증권처럼 프리미엄을 얹어 거래되고 있어 화폐보다는 자산의 성격이 짙다.
이번 과세 결정은 지난해 빗썸 세무조사 이후 내려진 것으로 1년간의 과세적부심을 거쳐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국세청의 판단일 뿐, 실제 이 과세를 위한 법령이나 근거는 아직 없다. 애초에 근거가 없기 때문에 국세청도 별도의 과세 의무를 고지하지 않았다. 빗썸이 의무를 방기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국세청은 이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개별 납세자에 관한 구체적 세원이나 과세 내용은 밝힐 수 없다”며 원론적 입장을 내놓고 있다. 국세청으로서도 이번 과세는 어쩔 수 없었다. 빗썸이 지난 5년간 중개한 외국인 거래에 과세 제척기간이 2019년까지였다. 이 시한을 넘기면 과세가 불가능하다. 일단 제척기간 전에 과세를 통보한 뒤 다툴 사항이 있다면 함께 따져보자는 것이다.
자산 인정, 제도화로 이어질까
예컨대 달란트라는 재단이 발행한 100억개의 코인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달란트 재단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달란트 코인 거래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역설적으로 소수가 달란트 코인을 과점하고 있다면 이 코인 생태계에는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에는 증권형토큰공개(STO) 논의도 활발하다. 개별 코인에 지분 가치를 부여해 재화에 대한 실질적 권리를 인정해주겠다는 것이다. STO를 통해 불특정 다수가 돈을 모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모나리자를 구입했다면, 이 거래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나리자에 대한 소수의 지배권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 불특정 다수에게 자금을 모으면 ‘유사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이 된다. 또 암호화폐는 현재 법적으로 어떤 자격이 없음에도 STO는 소유·자격 증명을 수반하기 때문에 자본시장법과 충돌할 가능성도 크다.
돈스코이호 사태처럼 사업 주도자가 투자자들을 기망할 위험성은 물론 이더리움이 클래식으로 쪼개진 것처럼 투자자들 간에 의견 대립으로 사업이 무산될 가능성도 크다. 블록체인은 아직 기술적으로 불완전하고, 정부 인증 등 법적 책임이 부여되지 않은 자산이라 암호화폐를 둘러싼 여러 분쟁은 어디까지나 제도권 밖의 일로 취급되고 있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정부는 암호화폐를 게임아이템처럼 별다른 자격·지분 증명의 역할은 없지만, 거래를 통해 소득이 발생하면 과세할 수 있는 자산으로 간주하고 있다. 물론 통화로서도 자격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은 ‘가상통화 및 CBDC 공동연구 태스크포스(TF)’를 발족, 운영 중인데 암호화폐라는 용어 대신 ‘디지털화폐’와 ‘암호자산’으로 분류해 사용하고 있다. ‘암호’(가상)와 ‘화폐’ 두 단어를 연결하지 않았다. 원·달러·엔 등 법정 통화의 디지털 거래는 디지털화폐로 인식하고,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지급결제는 암호자산 영역으로 나눠 연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의 블록체인 도입 방향은
특금법은 자금세탁·공중협박자금조달의 방지 등 범죄의 예방적 조치에 초점을 맞췄지만, 암호화폐에 대한 규정을 한 것만으로도 한 발 나아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국회 회기 내 처리는 불투명하지만 국회의 방향을 가늠하는 한편 차기 국회 통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특금법 처리에 발맞춰 가상자산 소득세 과세 방침을 정하고 올해 세법 개정안에 구체적 과세 방안을 담을 방침이다. 정부 과세는 단기적으로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을 줄일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론 제도권 편입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생기고 있다.
한국은행의 경우 디지털 화폐(CBDC) 발행을 검토 중이다. 블록체인 방식 도입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화폐 거래와 관련한 정보의 무결성을 확보하는 측면에서 유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예컨대 현재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5만원권을 디지털 화폐로 발행할 경우 회수율이 왜 떨어지고, 주로 어느 시간대, 어디에서 사용됐으며, 순환주기는 얼마나 되는지 알게 된다. 이런 정보를 수집하면 경제 동향과 방향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어 세밀한 경제정책 수립 및 통화정책 집행이 가능하다.
글로벌 주요국도 육성보단 일단 규제
대표적인 사례가 페이스북이 발행한다고 밝힌 암호화폐 리브라에 대한 미 정부의 입장이다. 지난해 7월 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는 혁신보다 부작용의 무게가 더 무겁다며 리브라를 가로막았다. 개인정보 유출을 비롯해 암호화폐 사업자가 대출 및 채용에 이용하거나 익명성 보장에 따른 범죄자금, 탈세 등에 악용될 것을 우려했다. 다만 미 하원도 디지털 통화 기술은 실존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는 막을 수 없으며, 송금 수수료 인하 등의 혁신은 필요하다고 공감했다.
이 일로 리브라의 초기 멤버였던 페이팔·비자·마스터카드·스트라이프 등 파트너사들이 대거 이탈했다. 2018년 초 암호화폐공개(ICO)를 통해 블록체인 프로젝트 ‘톤(TON)’을 준비하던 텔레그램 역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문제 제기를 받았다. SEC는 텔레그램이 증권법을 위반해 법원으로부터 긴급 조치 및 임시제한 명령을 받았다며 제동을 걸었다. 권리가 없는 자산 발행과 유통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SEC는 또 면제조항인 ‘레귤레이션 S’의 적용도 엄격화했다. 레귤레이션 S는 미국에서 미국 외 거주하는 비시민권자에게 증권 공모를 받을 수 있는 규정이다. 이를 통해 국내외 암호화폐 사업자들이 STO를 진행하자 SEC는 12개월 동안 토큰을 양도하지 못하게 하거나 적격 투자자 인증의무 등의 허들을 통해 자금 공모를 어렵게 했다.
최근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IFRS IC)도 암호화폐의 회계기준을 통해 암호화폐의 화폐로서 기능적 측면보다는 재고자산·무형자산 등 자산의 측면이 더 강하다고 봤다. 일본 재무성도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하는 한편, 용어를 가상화폐에서 암호화 자산으로 바꿨다. 더불어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암호화폐가 자금세탁 및 테러조직으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글로벌 암호화폐 추적 시스템을 개발키로 했다. 검은 거래에 쓰일지 모르는 암호화폐를 일단 가두리에 가둬놓고 제도화하겠단 뜻으로 풀이된다.
중국이 암호화폐 경쟁 불 당길까
중국 인민은행은 이르면 올 상반기 중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내놓을 계획이다. 선전과 쑤저우에서 시범 운용할 계획이다. CBDC는 리브라·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가 아닌 디지털통화다. 금융투자 상품이나 자산이 아닌 실물 결제용 디지털 화폐로 결제망에 중국 국영은행과 이동통신사·텐센트·알리바바 등 공룡 IT 기업들을 포함시켰다. 현재 중국은 암호화폐 거래소를 인허가제로 바꿔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한편, 기술 회사에 대거 투자해 기술 격차를 확보하고 있다. 이런 중국 정부의 암호화폐 개발은 세계의 이목을 끌어모으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수단 아니겠느냐는 관측에서다. 이에 중국은 CBDC를 통해 전세 역전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CBDC는 블록체인을 활용했기 때문에 중국외 국가나 유통 흐름을 잡기 어렵다. 이를 통해 달러화 체제에서 한발 물러선 제3세계 국가들을 위안화 네트워크에 묶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보수 진영에서는 중국이 CBDC를 통해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과 이란 등의 나라를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실제 뤼차오(呂超) 랴오닝(遼寧)성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지난해 12월 글로벌 타임스 인터뷰에서 “중국·북한은 블록체인·암호화폐 연구에 협력해 상호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더불어 중국의 블록체인 생태계 강화는 관료들의 부패를 줄이는 한편 중앙당 중심의 집행력을 강화하는 측면도 있다.
중국의 이런 행보에 미국도 마음이 초조하다. 블록체인을 비롯해 5세대(5G) 이동통신망 구축 등 신기술 분야에서 중국에 비해 뒤처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아디티 쿠마르하버드대 벨퍼과학 및 국제업무센터 소장은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는 실제 개념이 증명이 될 것”이라며 “기술·법적 준비가 돼 있는지,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서구사회도 어떤 방식으로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미국이 디지털 달러를 개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이 중앙집권형 달러 암호화폐를 발행하면 사실상 미국이 전 세계 모든 금융거래를 들여다보게 돼 국제 사회의 적지 않은 반발이 예상돼서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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