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도는 부동산 정책, ‘분양가상한제 적용’ 제외] 집값은 못 잡고 주택 공급만 억눌러
[돌고 도는 부동산 정책, ‘분양가상한제 적용’ 제외] 집값은 못 잡고 주택 공급만 억눌러
국토부 “공공임대 주택 확대 위한 예외일 뿐”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제외 방침을 밝혔다. 지난 1월 15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도심 주택 공급을 위한 공공재개발 후보지를 공개하며, 이 사업에 분양가상한제 적용 제외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공공재개발 사업에 시행하는 예외 사례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을 잡겠다며 정부가 서울 대부분을 분양가상한제 적용 지역으로 지정했던 것을 고려하면 방침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일각에서는 분양가상한제를 통해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계획의 실패를 일정 부분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분양가상한제는 택지비와 건축비에 건설사의 적정 이윤을 합한 분양가를 산정하고, 그 가격 이하로 분양하게 한 제도다. 2005년 이후 공공택지 안에 짓는 주택 가운데 전용면적 84㎡ 이하 주택에 적용하기 시작해 2006년 2월부터 공공택지 내 모든 주택을 대상에 포함했다. 2007년 9월부터는 민간택지에 짓는 주택에도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했지만, 2015년 4월부터 기준을 대폭 낮춰 사실상 중단됐다는 평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주택시장이 과열되면서 2017년 11월 기준을 강화했다. 2019년 11월에는 적용 대상 지역을 대폭 확대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의 고강도 규제로 분양가를 억지로 떨어뜨리면 주택공급이 줄어 집값이 오를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정부는 분양가상한제 적용 지역을 확대했다. 아파트 분양 가격을 낮추면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지역은 서울 18개구(강남·서초·송파·강동·영등포·마포·성동·동작·양천·용산·서대문·중·광진·강서·노원·동대문·성북·은평) 309개 동과 경기 3개시(광명·하남·과천) 13개 동으로 서울 대부분 지역이 포함된다.
문제는 분양가상한제 적용 이후 부동산 가격이 더 치솟았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정부 말기와 비교해 “문재인 정부에서 임금은 300만원(9%) 증가한 데 비해 아파트값은 5억3000만원(82%) 올랐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노동자가 임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전액을 모은다고 가정했을 때 서울의 25평 아파트를 구입하는데 드는 시간은 36년으로 조사됐다”며 “다른 나라 대도시 평균인 5년보다 7배가 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폭등한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서울 도심에 대규모 주택 공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는 국토부 장관 교체 이후 공공재개발 카드를 빼 들었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기존 정비구역 가운데 역세권에 있지만 사업성 부족, 주민 갈등 문제로 사업에 진척이 없던 8곳을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선정했다. 그러면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지 않는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해 수익성을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분양가상한제 적용이 주택 사업에서 수익성을 떨어뜨리고, 공급 확대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 인정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분양가상한제를 유지해도 주택 공급이 유지되면 정부가 굳이 예외를 허용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임대 주택을 확보한다는 명분이 달렸지만, 정부가 건설사를 유인하기 위해 수익성을 어느 정도 맞출 수 있도록 해준 것”이라며 “민간 개발은 물론 공공재개발 사업도 진행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내놓은 고육책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국토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주택공급을 확대하고 공공재개발 사업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을 시행한 것으로 안다”며 “분양가상한제 정책 기조에 변화가 생겼다거나, 정책 실패를 인정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며 시행했던 분양가상한제 적용 정책에 예외를 두면서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합원과 시공사가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신호를 준 셈인데 수익이 적으면 조합원과 시공사의 반발이, 수익이 많으면 불로소득 논란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월 27일 서울시 동작구 흑석2구역 추진위원회가 공공재개발 사업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의사를 내비쳤다. 흑석2구역은 공공재개발 시범 사업지 8곳 중 알짜로 평가받는 지역이다. 하지만 용적률과 분양가 산정 등에서 정부 제시안이 추진위원회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제안한 평당 분양가는 3200만원, 추진위 기대치는 400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분양가가 기대만큼 높게 책정되기는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는 본지와 통화에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폭리를 보장할 정도로 정부가 풀어주지는 않을 것 같다”며 “택지비 산정 등을 통해 적당한 수준에서 분양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분양가를 무작정 낮출 수도 없는 상황이다. 공공재개발 사업이라고 해도 주변 아파트 시세를 기준으로 분양가를 산정하는데, 이미 후보지 주변 집값과 땅값이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정부 사업의 일환인 만큼 공공재개발을 통해 짓는 아파트의 경우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5~10% 저렴할 수 있지만,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만큼의 파급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공공재개발 후보지인 영등포 양평13구역의 경우 바로 옆 구역에 영등포 중흥S-클래스 아파트가 올해 3월 입주를 앞두고 있다. 2년 전 이 아파트의 분양가는 전용면적 59㎡ 기준 4억9904만~5억5270만원이었는데, 현재 호가는 11억원에 이른다. 같은 면적 아파트를 기준으로 지은 지 20년 넘은 주변 아파트도 8억원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또 다른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공공재개발 사업이 더디게 진행되면 공급 확대의 효과도 반감된다. 사업을 빨리 진행하려면 시세와 비슷하게 분양가를 책정해줘야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데, 최근 급등한 주변 집값을 고려하면 불로소득·로또 청약 당첨에 대한 말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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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을 잡겠다며 정부가 서울 대부분을 분양가상한제 적용 지역으로 지정했던 것을 고려하면 방침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일각에서는 분양가상한제를 통해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계획의 실패를 일정 부분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공급 막히고 집값 오르자 분양가상한제 풀어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주택시장이 과열되면서 2017년 11월 기준을 강화했다. 2019년 11월에는 적용 대상 지역을 대폭 확대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의 고강도 규제로 분양가를 억지로 떨어뜨리면 주택공급이 줄어 집값이 오를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정부는 분양가상한제 적용 지역을 확대했다. 아파트 분양 가격을 낮추면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지역은 서울 18개구(강남·서초·송파·강동·영등포·마포·성동·동작·양천·용산·서대문·중·광진·강서·노원·동대문·성북·은평) 309개 동과 경기 3개시(광명·하남·과천) 13개 동으로 서울 대부분 지역이 포함된다.
문제는 분양가상한제 적용 이후 부동산 가격이 더 치솟았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정부 말기와 비교해 “문재인 정부에서 임금은 300만원(9%) 증가한 데 비해 아파트값은 5억3000만원(82%) 올랐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노동자가 임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전액을 모은다고 가정했을 때 서울의 25평 아파트를 구입하는데 드는 시간은 36년으로 조사됐다”며 “다른 나라 대도시 평균인 5년보다 7배가 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폭등한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서울 도심에 대규모 주택 공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는 국토부 장관 교체 이후 공공재개발 카드를 빼 들었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기존 정비구역 가운데 역세권에 있지만 사업성 부족, 주민 갈등 문제로 사업에 진척이 없던 8곳을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선정했다. 그러면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지 않는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해 수익성을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분양가상한제 적용이 주택 사업에서 수익성을 떨어뜨리고, 공급 확대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 인정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분양가상한제를 유지해도 주택 공급이 유지되면 정부가 굳이 예외를 허용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임대 주택을 확보한다는 명분이 달렸지만, 정부가 건설사를 유인하기 위해 수익성을 어느 정도 맞출 수 있도록 해준 것”이라며 “민간 개발은 물론 공공재개발 사업도 진행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내놓은 고육책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국토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주택공급을 확대하고 공공재개발 사업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을 시행한 것으로 안다”며 “분양가상한제 정책 기조에 변화가 생겼다거나, 정책 실패를 인정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수익 많으면 불로소득 논란, 적으면 공공재개발 무산 우려
실제 지난 1월 27일 서울시 동작구 흑석2구역 추진위원회가 공공재개발 사업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의사를 내비쳤다. 흑석2구역은 공공재개발 시범 사업지 8곳 중 알짜로 평가받는 지역이다. 하지만 용적률과 분양가 산정 등에서 정부 제시안이 추진위원회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제안한 평당 분양가는 3200만원, 추진위 기대치는 400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분양가가 기대만큼 높게 책정되기는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는 본지와 통화에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폭리를 보장할 정도로 정부가 풀어주지는 않을 것 같다”며 “택지비 산정 등을 통해 적당한 수준에서 분양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분양가를 무작정 낮출 수도 없는 상황이다. 공공재개발 사업이라고 해도 주변 아파트 시세를 기준으로 분양가를 산정하는데, 이미 후보지 주변 집값과 땅값이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정부 사업의 일환인 만큼 공공재개발을 통해 짓는 아파트의 경우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5~10% 저렴할 수 있지만,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만큼의 파급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공공재개발 후보지인 영등포 양평13구역의 경우 바로 옆 구역에 영등포 중흥S-클래스 아파트가 올해 3월 입주를 앞두고 있다. 2년 전 이 아파트의 분양가는 전용면적 59㎡ 기준 4억9904만~5억5270만원이었는데, 현재 호가는 11억원에 이른다. 같은 면적 아파트를 기준으로 지은 지 20년 넘은 주변 아파트도 8억원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또 다른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공공재개발 사업이 더디게 진행되면 공급 확대의 효과도 반감된다. 사업을 빨리 진행하려면 시세와 비슷하게 분양가를 책정해줘야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데, 최근 급등한 주변 집값을 고려하면 불로소득·로또 청약 당첨에 대한 말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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