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익 증시 인사이드] 미국 부채 한도와 ‘2011년 8월의 기억’
옐런 장관 발언 일단락되자 시장은 7월말을 주시중
미국 정부 부채 한도 유예 종료 앞두고 선택지는 많지 않아
2011년 8월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증시 폭락 경험
재닛 옐런 미국 재무 장관의 긴축 발언으로 촉발된 충격이 잦아들면서 시장은 이제 7월말을 주시하고 있다. 2019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2년간 미뤘던 미국의 부채한도 적용 유예시한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며 재정 지출을 확대하며 부채 한도를 훌쩍 넘겨버린 미국 정부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문제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미국 정부의 신용도에는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지난 4일(현지시간) 재닛 옐런 미국 재무 장관은 미국 시사지 [더 애틀랜틱]과 인터뷰에서 “경제 과열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이 발언은 즉각 시장에 영향을 줬다. 대형성장주와 고성장주가 주로 포진한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인플레이션과 조기 금리인상 우려에 즉각 영향을 받아 하락했다.
전후 사정을 모른다면,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옐런 장관의 발언은 시장이 의심하던 부분을 긁어준 꼴이 됐다. 시장에서는 올 들어 지속적으로 조기 긴축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종 경제지표가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을 상회하는 호조를 보이는 가운데, 연준에서는 계속해서 조기 긴축 돌입 가능성을 부인했다.
연준은 지난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 이어 4월 회의에서도 만장일치로 현행 통화정책 유지를 결정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향후 몇 달 안에 커질 수 있지만, 일시적인 영향에 그칠 것”이라며 “자신매입축소 등을 포함해 긴축 정책은 아직 논의하기 이르다”고 선을 그었다.
전직 연준 의장이자 현직 재무장관인 옐런 장관의 발언이 시장에 충격을 주자 하루만에 “발언이 금리 인상을 예상하거나 권고한 것은 아니며 원론적 의미였을 뿐”이라며 수습에 나섰다. 이에 증시는 하루만에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사상최고치를 갈아치우는 등 안정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지만, 대형기술주에서 경기순환주로 손 바뀜 기류는 여전했다. 그동안 미국 증시를 주도했던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페이스북 등은 모두 하락한 반면 인플레이션과 연동되는 금속·에너지 등 원자재 관련주가 강세를 나타낸 것이다.
연준이 어떤 언급을 내놓더라도 투자자들은 계속해서 의심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시장은 이제 7월말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2019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유예해놓았던 미국 정부의 부채한도 적용 시점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는 7월 31일까지 부채 한도를 상향 조정하지 않는다면 10월경 정부의 곳간이 말라버릴 것이라 경고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사실상 선택지가 별로 없는 상황이다. 부채 한도를 늘리지 않는다면 디폴트 사태가 기다리고 있다. 이를 피하려면 전례 없는 규모로 부채 한도를 늘리거나 다시 한 번 유예를 선택해야 한다.
미국 정부 부채는 1956년 이후 한번도 감소한 적이 없다는 오명을 갖고 있다. 기축 통화국의 지위를 갖고 있었기에 방만한 재정 운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 의회에서는 1985년 ‘그램루드먼홀링스법’을 통과시키면서 정부의 부채 한도를 설정하게 된다. 의회의 승인을 통해 연방정부의 부채에 한도를 정하고 그 한도를 넘기면 자동적으로 재정감축(시퀘스터)을 단행해야 하는 내용이다.
시퀘스터는 지난 2011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당시에도 문제가 된 적이 있다. 2006년까지만 하더라도 9조 달러에 조금 미치지 못했던 미국 정부 부채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며 2010년 14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에 부채 한도를 상향 조정이 불가피했고 2011년 7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이 우여곡절 끝에 부채 한도 상향에 합의했다. 대신 예산통제법(Budget Control Act)에 따라 2021년까지 예산 상한을 지정하는 예산자동삭감(sequestration)을 시행하기로 했다.
이 소식이 발표되자 글로벌 신용평가기관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에서는 8월초 미국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 사상 처음으로 신용등급 강등 사태를 맞은 미국 증시도 곧바로 급락하며 반응했다.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감기에 걸리는 한국 시장 역시 시장 충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국 시장은 2009년부터 2011년 상반기까지 ‘차·화·정’으로 대표되는 강세장이었으니 수많은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미국 정부의 부채 규모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늘었다. 미국 의회에서는 2013년부터 4차례 2년짜리 합의로 지출 삭감을 피했다. 마지막 합의였던 지난 2019년에는 부채 한도 적용을 2021년 7월말까지 유예하기로 했다. 재정지출 한도도 2011년 예산법에서 규정한 한도에서 3200억 달러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오는 7월말에도 미국 정부가 부채 한도를 늘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관건은 규모다. 2019년에 이미 22조 달러를 넘겨버린 미국의 부채 규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다시 한 번 급증하며 25조 달러도 넘어버렸다. 과거 명목GDP 대비 부채 한도인 104%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25조원은 넘어서는 안되는 숫자다.
더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초 1조9000억 달러의 추가 경기부양책 통과 이후에도 지난 4월 첫 의회 연설에서 4조 달러 규모의 초대형 지출 계획을 제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자본이득세 인상을 포함한 증세안을 제시했으나 공화당의 반대 속에 인상률은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11년 미국 의회에서 부채 한도 상향 조정에 합의하던 시기와 현재의 시장 상황은 유사한 부분이 있다. 2010년 S&P500 기업의 이익증가율이 38% 를 기록하며 호실적을 보였다. 이는 최근 기업 실적 호조와 오버랩되는 장면이다. 2021년에는 S&P500지수 포함 기업 가운데 5월초까지 실적 발표를 마친 기업의 87%가 예상치를 상회하며 호조를 보이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동부 연안의 자동차 부품사와 정유시설 등이 셧다운 되면서 글로벌 주요 소재 및 부품 공급이 차질을 빚던 시기였다는 점도 유사하다. 최근 반도체 공급차질과 경기 회복 기대감을 반영한 철강 부족 등이 증시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오는 7월말 미국 정부의 부채한도 상향 조정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이후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유사한 이슈가 터진다면 시장의 추세를 꺽어버리는 트리거가 될 수 있다. 2011년 8월의 기억 때문이라도 오는 7월 증시를 조심할 필요가 있다.
정리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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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현지시간) 재닛 옐런 미국 재무 장관은 미국 시사지 [더 애틀랜틱]과 인터뷰에서 “경제 과열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이 발언은 즉각 시장에 영향을 줬다. 대형성장주와 고성장주가 주로 포진한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인플레이션과 조기 금리인상 우려에 즉각 영향을 받아 하락했다.
전후 사정을 모른다면,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옐런 장관의 발언은 시장이 의심하던 부분을 긁어준 꼴이 됐다. 시장에서는 올 들어 지속적으로 조기 긴축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종 경제지표가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을 상회하는 호조를 보이는 가운데, 연준에서는 계속해서 조기 긴축 돌입 가능성을 부인했다.
연준은 지난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 이어 4월 회의에서도 만장일치로 현행 통화정책 유지를 결정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향후 몇 달 안에 커질 수 있지만, 일시적인 영향에 그칠 것”이라며 “자신매입축소 등을 포함해 긴축 정책은 아직 논의하기 이르다”고 선을 그었다.
시장이 의심하던 부분을 긁어준 옐런 장관
전직 연준 의장이자 현직 재무장관인 옐런 장관의 발언이 시장에 충격을 주자 하루만에 “발언이 금리 인상을 예상하거나 권고한 것은 아니며 원론적 의미였을 뿐”이라며 수습에 나섰다. 이에 증시는 하루만에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사상최고치를 갈아치우는 등 안정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지만, 대형기술주에서 경기순환주로 손 바뀜 기류는 여전했다. 그동안 미국 증시를 주도했던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페이스북 등은 모두 하락한 반면 인플레이션과 연동되는 금속·에너지 등 원자재 관련주가 강세를 나타낸 것이다.
연준이 어떤 언급을 내놓더라도 투자자들은 계속해서 의심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시장은 이제 7월말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2019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유예해놓았던 미국 정부의 부채한도 적용 시점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는 7월 31일까지 부채 한도를 상향 조정하지 않는다면 10월경 정부의 곳간이 말라버릴 것이라 경고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사실상 선택지가 별로 없는 상황이다. 부채 한도를 늘리지 않는다면 디폴트 사태가 기다리고 있다. 이를 피하려면 전례 없는 규모로 부채 한도를 늘리거나 다시 한 번 유예를 선택해야 한다.
미국 정부 부채는 1956년 이후 한번도 감소한 적이 없다는 오명을 갖고 있다. 기축 통화국의 지위를 갖고 있었기에 방만한 재정 운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 의회에서는 1985년 ‘그램루드먼홀링스법’을 통과시키면서 정부의 부채 한도를 설정하게 된다. 의회의 승인을 통해 연방정부의 부채에 한도를 정하고 그 한도를 넘기면 자동적으로 재정감축(시퀘스터)을 단행해야 하는 내용이다.
시퀘스터는 지난 2011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당시에도 문제가 된 적이 있다. 2006년까지만 하더라도 9조 달러에 조금 미치지 못했던 미국 정부 부채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며 2010년 14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에 부채 한도를 상향 조정이 불가피했고 2011년 7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이 우여곡절 끝에 부채 한도 상향에 합의했다. 대신 예산통제법(Budget Control Act)에 따라 2021년까지 예산 상한을 지정하는 예산자동삭감(sequestration)을 시행하기로 했다.
이 소식이 발표되자 글로벌 신용평가기관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에서는 8월초 미국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 사상 처음으로 신용등급 강등 사태를 맞은 미국 증시도 곧바로 급락하며 반응했다.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감기에 걸리는 한국 시장 역시 시장 충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국 시장은 2009년부터 2011년 상반기까지 ‘차·화·정’으로 대표되는 강세장이었으니 수많은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미국 정부의 부채 규모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늘었다. 미국 의회에서는 2013년부터 4차례 2년짜리 합의로 지출 삭감을 피했다. 마지막 합의였던 지난 2019년에는 부채 한도 적용을 2021년 7월말까지 유예하기로 했다. 재정지출 한도도 2011년 예산법에서 규정한 한도에서 3200억 달러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오는 7월말에도 미국 정부가 부채 한도를 늘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관건은 규모다. 2019년에 이미 22조 달러를 넘겨버린 미국의 부채 규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다시 한 번 급증하며 25조 달러도 넘어버렸다. 과거 명목GDP 대비 부채 한도인 104%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25조원은 넘어서는 안되는 숫자다.
더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초 1조9000억 달러의 추가 경기부양책 통과 이후에도 지난 4월 첫 의회 연설에서 4조 달러 규모의 초대형 지출 계획을 제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자본이득세 인상을 포함한 증세안을 제시했으나 공화당의 반대 속에 인상률은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2011년과 유사한 시장 상황
지난 2011년 미국 의회에서 부채 한도 상향 조정에 합의하던 시기와 현재의 시장 상황은 유사한 부분이 있다. 2010년 S&P500 기업의 이익증가율이 38% 를 기록하며 호실적을 보였다. 이는 최근 기업 실적 호조와 오버랩되는 장면이다. 2021년에는 S&P500지수 포함 기업 가운데 5월초까지 실적 발표를 마친 기업의 87%가 예상치를 상회하며 호조를 보이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동부 연안의 자동차 부품사와 정유시설 등이 셧다운 되면서 글로벌 주요 소재 및 부품 공급이 차질을 빚던 시기였다는 점도 유사하다. 최근 반도체 공급차질과 경기 회복 기대감을 반영한 철강 부족 등이 증시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오는 7월말 미국 정부의 부채한도 상향 조정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이후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유사한 이슈가 터진다면 시장의 추세를 꺽어버리는 트리거가 될 수 있다. 2011년 8월의 기억 때문이라도 오는 7월 증시를 조심할 필요가 있다.
정리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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