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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대담집 단독 입수] 이낙연 인터뷰 “국민 불안시대, 국가가 삶 지켜줘야”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불안 요소 심화 시대
국민생활기준 달성 등으로 국민 삶 지켜야
한계 맞은 균형발전, 지역본사제 시도해 볼만
청년 고통 한스러워…헌법에 주거권 담아야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 도중 메모를 확인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 유력 대선주자 중 한 명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내세운 슬로건이다.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이명박 전 대통령)’, ‘준비된 여성대통령(박근혜 전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의 슬로건과는 결을 달리한다. 후보 개인의 능력을 강조하기보단 국민에 초점을 맞췄다.  
 
이낙연 전 대표의 진단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국민들의 삶은 힘겹다. 코로나19는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이고, 이후의 미래도 어둡다. 기댈 언덕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사회적 안전망은 헐겁기만 하다. 그간 ‘국민들을 위해서’란 달콤한 말로 당선이 된 뒤 약속을 파기하는 지도자가 숱했다. 이 때문인지 나라가 내 삶을 지켜준다는 약속도 허망하게만 들린다.  
 
5월 24일 [이코노미스트]가 이낙연 전 대표를 만난 이유다. 27일 출간을 앞둔 그의 대담집 일부를 먼저 단독으로 입수해 읽고, 그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많았다. 그가 강조하는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는 과연 무엇일까.
 

청년 이낙연의 좌절, 지금 청년도 여전해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국민들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불안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나 4차 산업혁명 같은 예측 불가능한 미래와 가깝게 마주하고 있다. 국민 삶과 직결되는 불안 요소로부터 개개인을 보호하고 이를 정책화하는 것. 이것이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의 핵심이다.  
 
국민 삶이 불안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나.
4월 재보선 이후 전국을 돌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특히 청년세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청년 시절과 견줘보면 내용은 달라도 정서는 같다고 느꼈다. 좌절감이나 사회를 향한 불만은 다르지 않다. 기존 질서가 왜곡됐다고 믿고, 세상에 못된 사람들이 참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4월 한 달은 내게 아픔이었지만, 큰 가르침을 준 시간이기도 했다.
 
책머리에 ‘4월의 약속’이란 시를 실은 건 그 때문인가.
4월은 황폐함 속에서 생명이 자라는 달이다. 우리 현대사에서도 4월은 의미가 깊다.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도 4월, 4·19혁명도 4월에 벌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4월은 우리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5월이 왔지만, 여전히 현실은 황폐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경기가 나쁘다는 말이 돌 정도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까지 줄어드는 추세 아닌가.
4차 산업혁명이 처음 등장했을 때 ‘노동의 종말’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사실 일자리가 꽤 생기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플랫폼 노동이다. 모바일 앱 등을 통해 일거리를 받는 노동 형태를 뜻한다. 배달 라이더나 타다 같은 운송업 등 업종이 다양하다. 문제는 기업들이 이들의 노동에 제값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는 착취에 가깝다. 새로운 형태의 일이 그에 맞는 공정한 보수를 받도록 서둘러야 한다. 그래야 지금 같은 전환기를 견딜 수 있다.
 
청년들이 가장 분노하는 게 집값이다. 청년들 사이에선 서울 사는 게 스펙이 됐다. 이런 절망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청년 시절 독서실에서 의자를 붙여 잠을 청했던 날이 많았다. 지금 청년들의 말을 들어보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스럽게 생각한다. 왜 우리 세대가 바꾸지 못했을까…. 일단 최저주거수준을 서둘러 개선해야 한다. 현재 법으로 정한 1인 가구 최저주거기준이 4평(14㎡) 조금 넘는다. 일본에는 ‘우사기고야(兎室)’, 우리말로 토끼집이라는 단어가 있다. 토끼가 겨우 살 만큼 집이 작단 뜻인데, 그래도 일본의 최저주거기준은 7평(25㎡)이 넘는다. 일본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서 지난 16일 광주에서 헌법에 주거권을 명시하자고 강력히 제안했다.
 
지난 2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제안한 ‘신복지체계’는 주거를 포함한 국민생활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책에선 2030년까지 선진국 수준의 생활기준을 목표로 삼았다.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재원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겠다.
우선은 경제가 빨리 회복해야 한다. 다행인 건 올해 1분기 국세 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조원 가까이 늘었다는 점이다.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다. 증세는 국민 동의가 필요한 일이다. 다만 양극화가 심해진 만큼 초고소득자의 부담을 늘리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 역시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 외에도 한국 사회에 난제가 많다. 가령 청년들은 계속 서울에 몰리는 실정이다. 역대 정부 모두 균형발전을 내세웠지만, 성과가 변변치 않았다.
그간의 균형발전은 각 지자체가 계획하면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식이었다. 한계가 뚜렷한 방식이다. 시·도보다 넓은 지역을 묶어 자족적인 경제권으로, 동시에 활력을 갖는 경제권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지역에서도 좋은 직장을 다닐 수 있고, 청년이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일부 지자체에서 제안하는 메가시티 구상에 찬성하는 이유다.  
 

“해운회사 본사의 부산 이전 등 지역본사제 시도해 볼만”

 
메가시티도 당장 실현하기 쉽지 않은 구상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정책 중에선 ‘지역본사제’가 있다. 최근 미국의 유명 기업들이 뉴욕이나 워싱턴DC에 있던 본사를 플로리다나 애틀랜타로 옮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기업더러 지역으로 가라고 하면 반발이 만만치 않을 듯한데.
국내에도 지역으로 본사를 옮긴 기업이 있다. 전남지사로 있을 때 유명 교량 설계업체가 나주혁신도시로 본사를 옮겼다. 터키 보스포루스 해협의 다리를 설계할 만큼 기술력이 뛰어난 곳이었다. 업체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고맙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물었는데, 답변이 명쾌했다. “대한민국에 다리다운 다리 놓아야 할 곳이 전남 말고 더 있습니까?” 그 말씀이 맞더라. 전국에서 가장 섬이 많은 광역단체가 전남 아닌가.  
 
또 다른 사례가 있나.
유명 김 가공업체는 전남 신안군의 한 섬으로 본사를 옮겼다. 지난해에만 10개국에 800억원어치를 수출한 곳이다. 이곳 대표에게도 물어봤는데, 역시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김 만드는 회사의 본사가 섬에 있다고 하면 거래처에서 어떻게 느끼겠습니까?” 서울에 본사가 있는 것보다 더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겠나.
 
인센티브가 있다면 일반 기업도 고려해볼 법하다.
행정이나 국회 입법으로 최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본사를 지역으로 이전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다만 앞서 소개한 것처럼 업종에 따라서는 지역에 본사를 두는 것이 자연스러운 기업도 있다. 예를 들어 해운회사의 본사는 부산에 있어도 괜찮지 않겠나. 이 이야기는 지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12주기 추도식이 열린 날 김경수 경남지사와도 나눴다.
 
김 지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균형발전 고민을 나누던 중에 제가 지역본사제 이야기를 꺼냈다. 김 지사께서 유명 콘텐트 개발사가 본사를 경남으로 옮겼다고 말씀하더라. 크게는 초광역권 개발과 이에 대한 중앙의 지원, 그리고 발상을 바꾸는 지역본사제를 논의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24일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연금 투자, 공공조달 시 ESG 지표 도입은 우리 경제의 생존을 위한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박종근 기자]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여전한데, 새로운 위기가 밀려온다. 비대면 경제로 인한 소득 격차, 기후위기 등이 가장 위협적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지난 2월 국민연금 투자와 공공조달에서 ESG 지표 도입을 제안했다. 이것이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또 다른 부담은 안 될까.
ESG 평가는 이제 안 할 수 없는 단계까지 왔다. ‘블랙록’이라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가 국내의 한 방산기업에 “비인도적 무기(집속탄)를 생산하면 우리는 투자를 회수하겠다”라고 통보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 기업이 해당 부문을 독립법인으로 분리했다고 하더라. 이런 식으로 국제 금융기관들이 ESG 투자를 향해 질주한다면 우리 주력 산업 전반이 압박을 받게 될 거다. 우리 주력 산업이 대체로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ESG 지표 도입은 선행을 유도하는 캠페인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생존을 위한 방안이다.  
 

“지지율, 9월까지 상당한 정도로 회복할 것”

 
문재인 정부는 탈탄소·탈석탄에 힘을 쏟았다. 동시에 탈원전에도 나섰다. 국가 전력을 담당한 두 개의 큰 축 모두에 ‘탈’을 씌운 것인데, 원전에 대한 대표의 생각이 궁금하다.  
우선 ‘탈원전’이라는 용어 자체가 과장된 것이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말을 쓴다. 원전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6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긴 세월이다. 그동안에 지금 없는 기술이 나올 수 있다. 그런 긴 호흡으로 봤으면 한다. 다만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제3국의 원전 시장에 공동 진출하기로 합의한 건 반가운 일이다. 실제로 중동 등에 원전을 수출하려고 할 때 여러 가지 실무적인 문제에 부닥치곤 했었다.
 
대북정책의 성과는 현 정부의 가장 아픈 손가락으로 남을 것 같다. 남북협력 돌파구로 개성공단을 의료물품 생산기지로 만드는 방안을 제안했는데.
2018년 국토교통부 관계자와 민간 전문가분들이 북한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북측 관계자들과 함께 북한의 철도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이분들에게 들은 후일담이 있다. 북측에 ‘새마을호가 다닐 철길을 놓으면 어떠냐’고 했더니 북측은 '고속철도(KTX)를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북측에 도와주려는 것과 북측이 받고 싶은 것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도 4차 산업혁명을 모를 리가 없지 않나. 관련한 신산업 중 국내는 물론 주변국까지 설득할 만한 분야가 의약이라고 생각했다. 북한 주민의 건강, 특히 전염병에 대처해야 하지 않겠나.
 
흥미로운 정책과 구상이 많다. 하지만 지지율이 녹록지 않다. 9월이 오기 전 유권자들의 마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렇게 돼야하지 않겠나. 상당한 정도까지 회복되리라 믿는다.  
 
대담 조득진 이코노미스트 편집국장
글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사진 박종근 비주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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