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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지금 물적 분할 中①] 주주 기만일까, 투자유치 전략일까

자금 조달하고 지배력도 유지하고 '꿩먹고 알먹고'
“소액주주 희생으로 지배주주 이익 극대화” 지적도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이 지난 7월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 스토리 데이 행사에서 물적 분할 등 중장기 전략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적 분할은 주주 기만일까 투자 유치 전략일까.  
SK, LG 등 국내 주요 그룹의 계열회사들이 배터리 등 미래 핵심사업에 대한 물적 분할(신설 법인의 지분 100%를 소유하는 분할 방식)을 감행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당장 배터리사업 등의 물적 분할로 주가가 하락해 피해를 입은 주주들은 “주주를 기만하는 사기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반면 물적 분할을 택한 기업들은 “미래 핵심사업 육성 위한 투자 유치 등을 감안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맞서고 있다.  
 

“반대 또 반대”…물적 분할에 성난 ‘동학 개미’

최근 미래 핵심사업에 대한 물적 분할을 결정한 SK이노베이션과 만도 등의 소액주주들은 물적 분할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과 금융소비자원 게시판에는 이들 회사의 물적 분할을 반대하는 의견이 빗발치고 있다. 일부에선 “물적 분할과 관련해 집단소송에 나서야 한다”는 다소 극단적인 주장도 제기된다.  
 
SK이노베이션은 9월 16일 임시 주주총회 승인을 거쳐 배터리와 석유개발(E&P)사업의 물적 분할을 승인하고, 10월 1일 신설법인 SK배터리(가칭)와 SK이엔피(가칭)를 각각 공식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만도는 지난 7월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자율주행(ADAS) 사업 부문을 포함해 무인 순찰, 무인 전기자동차 충전, 플랫폼 부문 등의 물적 분할의 건을 원안대로 승인했다.  
 
지난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SK이노베이션의 물적 분할이 주주자본주의를 해친다는 취지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 글의 작성자는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분쟁을 끝내자마자 성장성이 높은 배터리 부분만 따로 떼어내 기존 주주들의 뒤통수를 치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며 “물적 분할 방식으로 IPO(기업공개)를 할 경우, 기존 배터리사업의 성장성을 보고 투자한 소액주주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성과를 공유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23일 기준 이 청원에 동의한 인원은 4000명이 넘는다.  
 
이달 21일에는 “SK이노베이션의 물적 분할로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입었다”며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을 사임시켜 달라”는 내용의 글도 올라왔다. 금융소비자원의 소비자 감시‧신고센터에도 SK이노베이션의 물적 분할을 반대하는 글이 게재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지난 3일 이사회를 열어 배터리와 E&P 사업에 대한 물적 분할을 결정한 이후 주주들의 불만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만도 주주들의 원성도 거센 분위기다. 이 회사는 최근에 직원들의 상여 지급 목적으로 자사주 7만8365주 처분을 결정하면서 주주들의 불만에 기름을 끼얹기도 했다. 핵심사업 중 하나인 자율주행사업의 물적 분할 전 직원들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전략이라는 평가지만, 일부 주주들은 “주주들의 이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물적 분할에 대해 “약탈적 경영 행위”라며 반대 입장을 밝힌 금융소비자원은 SK이노베이션의 물적 분할을 “재무적 꼼수”라고 비판했다. 금융소비자원 측은 최근 최태원 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 등에게 물적 분할을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낸 상태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장은 “23일까지 답변을 요구하는 공문을 최태원 회장 등에 보냈는데 현재까지 답을 받지 못했다”며 “SK이노베이션 등의 물적 분할 방식은 법의 허점을 이용해 소액주주의 희생을 담보로 대주주의 이익을 꾀하는 재무적 꼼수”라고 지적했다.  
 

왜 물적 분할 택했을까…결국의 돈 문제

 
재계와 금융 전문가들 사이에선 “최대주주의 지배력을 유지하면서도 투자 유치를 통한 자금 확보 등을 위해 물적 분할을 결정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김우찬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은 “지배 구조 관점에서 보면, 결국 지배주주 일가가 돈이 없기 때문에 자회사의 특정사업을 물적 분할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라며 “지주회사(SK)가 유상증자(신주를 발행해 자금을 새로 조달하는 것)를 실시하면 지배주주의 지분율 희석이 불가피하고, 그렇다고 자회사(SK이노베이션)가 유상증자에 나서면 공정거래법의 자‧손자회사의 지분율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고 진단했다.  
 
만약 SK이노베이션이 물적 분할 대신 기존 주주 구성을 유지하는 인적 분할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기존 주주 구성대로 SK배터리는 SK의 손자회사가 아닌 SK가 지분 33.4%(6월 말 기준)을 보유한 자회사가 된다. 이에 따라 인적 분할 후 상장하지 않으면 SK배터리 지분 6.6%를 추가로 확보해야 하고, 상장시에는 지분율 20%를 유지해야 한다.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라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율 요건은 상장회사는 20%, 비상장회사는 40%이기 때문이다. 지분 100%를 보유한 물적 분할과 비교해 유치할 수 있는 자금 규모가 제한적이란 얘기다.  
 
물론 SK이노베이션이 주주 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하고 최대주주인 SK가 지분율만큼 유상증자에 참여할 경우 지분율 희석은 없다. 문제는 역시 돈이다. SK이노베이션이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가정해도 SK는 3000억원 이상을 투입해야 한다. SK배터리의 기업가치가 10조원에서 20조원으로 예측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물적 분할이 대규모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는 최적의 방식인 셈이다.  
 
석유화학 등 기존 사업의 한계와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 요구 등도 물적 분할의 이유로 거론된다. 이 역시 돈 때문이다. 기존 사업의 성장동력이 쇠퇴하는 와중에 탄소중립 등을 위해 친환경 성장 동력을 대폭 키워야 하는데, 이를 감당할 자금이 없기 때문이다. 소액주주의 희생을 담보로 물적 분할을 택한 이유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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