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 주민동의서 진위 판별 없이 ‘숫자’만 센다
국토부 “주민동의·요건충족 전례 없을 정도로 빨라”
후보지 주민들 “허위·대리 동의 작성, 확인도 안 해”
지자체 “주민이 LH에 직접 제출해야, 법에도 명시”
전문가 “동의 과정 문제, 소송으로 비화 사례 다분”
문재인 정부의 2·4 부동산대책 중 하나인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 진행과정에서 동의서의 허위·대리 작성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진위 여부 확인 없이 동의서 숫자를 집계해 발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순항하고 있다"며 발표한 주민 동의율에 대해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제출 서류 미비해도 일단 접수, 보완은 나중에
국토부는 지난달 25일 주택 공급 브리핑에서도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 등 3080+ 공공사업은 지방자치단체(지자체)와 주민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이미 서울 도심에서만 13곳, 약 1만9000가구의 후보지가 지구 지정 요건을 충족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오는 21일 시행하는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르면,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은 예정 지구 지정과 본 지구 지정 사이 단계에서 1년 안에 토지 등 소유자 3분의 2이상(면적 2분의 1) 동의를 받아야 한다. 아직 예정지구 지정 전이지만 사업에 찬성하는 주민을 중심으로 동의서를 작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후보지 현장에서는 허위·대리 동의서 작성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양식상 필수 요건을 채우지 못한 동의서가 제출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는 주민들의 지적이 이어진다. 정부가 개발지역 주민들 입장이나 보상책에 대한 조율·반영 없이, 장밋빛 청사진만 일방적으로 제시한 채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동의서를 무리하게 받고 있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어서다.
서울 강북구 후보지의 주민 A씨는 “이 지역에서 수십여 년을 살아온 노인들은 사업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다른 주민에게 동의서 작성을 맡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직접 작성했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 부천시 후보지 주민 B씨는 “현재 공공주택특별법에 포함된 양식에 따라, 동의서를 작성할 때 지장을 찍고 신분증 사본을 첨부하도록 돼 있다”면서 “하지만 신분증 사본을 제출하지 않은 경우에도 지자체가 동의서를 일단 받아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자체 담당자가 (부족한 서류는) 나중에 보완해도 된다고 답변했다”고 덧붙였다.
동의서 진위 여부 확인하는 곳은 극히 일부
문제는 LH가 받고 있는 동의서가 제대로 작성됐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지자체가 동의서를 취합하는 경우는 나은 편이다. 후보지가 위치한 서울 도봉구청 관계자는 [이코노미스트]와 통화에서 “주민들이 동의서를 제출하면 등기부등본으로 소유주를 확인하는 정도로 정리해 LH 측에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류상 확인하는 수준이지 실제 주민 본인이 직접 작성했는지 여부를 파악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엄밀히 따지면 (중앙정부부처 업무여서) 지자체가 할 업무가 아니지만 주민들의 민원이 많아 어쩔 수 없이 맡게 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본래 지자체는 동의서 접수 업무를 맡아야 할 의무가 없다. 해당 사업의 시행 절차나 업무 처리 지침 등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토부·LH와 주민들을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아 지자체가 자발적으로 협조에 나섰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후보지 관할 지자체 모두가 동의서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부천시 관계자는 [이코노미스트]와 통화에서 “동의서의 진위 여부는 사업 시행자를 결정하고 난 뒤 사업 시행자가 검토하는 게 맞다”면서 “현재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LH로 동의서를 전달하는 일만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의서 취합 업무를 아예 하지 않는 지자체도 상당수다. 다수의 후보지로 선정된 서울 은평·강북·성북구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LH에 제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은평구청 관계자는 “법에도 LH에 내도록 명시돼 있다”며 “구청은 동의서를 제출하라고 독려하거나 전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 “절차상 문제로 법적 다툼 가능성 우려”
LH 관계자는 “추후 예정 지구 지정과 본 지구 지정 사이에 동의서 제출 단계에서 진위 여부를 가려낼 것”이라며 “지금도 접수된 동의서들 중에서 가려내려고 하지만 인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동의서에 필요한 첨부서류나 직접 작성 여부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정부가 발표하는 동의율에 허수가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즉, 정부가 정책사업을 원활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LH에 접수된 마구잡이 동의서 개수만 집계해 발표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LH 관계자는 “현재 (정부가 발표하고 있는) 동의율은 사업 현황 관리 차원에서 집계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정부가 현황 관리를 위한 주민 동의율을 가져다 정책 포장에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묻는 [이코노미스트]와 통화에서 국토부 측은 “동의서에 문제가 있다면, 법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며 “(지구 지정 등을 위해 동의서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단계에서) 확인작업을 거쳐 보완 요청을 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동의서 확인 절차 미비에 대해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과)는 “나중에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다른 재개발 사업에서도 개인(민간)이 동의서 숫자를 채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그런데 동의서를 구하는 절차에 문제가 생겨 소송으로 들어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절차상 문제로 추후 법적 다툼이 벌어지면 사업의 앞날이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정지원 인턴기자 jung.jee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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