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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대출은 실수요라 규제 면제?…"가계부채 폭탄의 진짜 뇌관"

금융당국 "전세대출은 실수요 자금"…사실상 '규제 사각지대'
전세대출 급증세 지속…부동산·주식시장으로 흘러들 개연성
서영수 이사 "보증비율 낮추고, 은행별 리스크 관리 강화해야"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앞에 전세자금대출 홍보 현수막이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요즘 전세집 구하기가 힘들다보니 부르는 게 값이네요. 빌라 반지하 전세값마저 1억원을 웃도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전세자금대출이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집값 상승이 전세값 상승으로 이어지고 또 전세값 상승이 집값 상승을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의 고착화된 모습이다. 이에 금융당국이 나서 전세대출에 대한 규제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실수요자 대출'이라는 명분에 밀려 제대로 된 논의조차 어려운 형국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뚜렷한 자금 용처를 알기 어려운 전세대출 자금의 속성 상 가계부채 부실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담대·신용대출 급증세 주춤...전세대출은 오히려 증가   

전세대출 자금이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의 구멍이 되고 있다는 지적은 일찍부터 제기돼 왔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급증하는 전세대출이 전체 가계대출의 부실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및 신용대출에 대한 총량 규제로 인해 전세대출 증가세가 더욱 가팔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담보대출 및 신용대출과 달리 전세대출의 경우 차주의 원금 상환 능력을 반영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빠져 있있다 보니 '풍선효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  
 
실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전세대출 잔액은 97조1303억원으로 한 달 만에 2조4007억원(2.5%) 증가했다. 
 
월별 증가액만 따져봐도 8월 전세대출 증가 규모는 1월(2조6514억원) 이후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월별 증가세도 쉽게 꺾이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 5월 1조4275억원 증가했던 전세대출은 6월 1조7374억원, 7월 1조9923억원, 8월 2조4007억원으로 올 상반기 이후 증가세가 점차 가팔라지고 있다.  
 
5대 은행 뿐 아니라 은행권 전체로 봐도 전세대출 증가세는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전세대출은 8월에만 2조8000억원 늘어났다. 7월에도 2조8000억원 증가했는데 6월(2조5000억원), 5월(2조원)과 비교해 하반기 들어서 증가세가 심화되고 있다.  
 
반면 주담대와 신용대출은 정부의 강력한 총량 규제로 인해 증가세가 주춤한 모습이다. 국내은행의 주담대는 8월 한 달간 7조2000억원 늘며 전달 증가액(7조4000억원)보다 감소했다. 신용대출도 8월 한 달 동안 1조5000억원 증가해 전달(4조1000억원)과 비교해 크게 줄었다.  
 
이같은 대출 감소세는 당국의 가계부채 규제가 7월 이후 본격화 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월부터 모든 규제지역의 6억원 초과 집을 살 때 주담대를 받거나 1억원 초과 신용대출을 받을 때 차주별로 DSR을 40%로 제한했다. 
 
서울과 주요 수도권의 대부분의 아파트가 DSR 규제 대상이 된 것이다. 결국 실수요자든 부동산 투자자든 은행에서 돈을 빌려 주택을 구매하는 게 사실상 어려워진 상황이다. 
 
지난 4년 간 국내은행의 각 대출 구성별 순증가 규모와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 전세대출자금이 주택대출과 집단대출, 신용대출보다 빠르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

고삐 풀린 전세대출…갭투자 및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

금융당국이 주담대 및 신용대출과 달리 전세대출 규제에 적극적이지 못한 이유는 대부분이 실수요자 중심의 대출이라는 명분 때문이다. 전세대출을 빌리는 차주 입장에서 전세 계약과 동시에 즉시 집주인 계좌로 입금되는 구조다 보니 '실수요'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것.
 
고승범 금융위원장도 지난 10일 주요 금융지주 회장과의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세대출 규제에 대해서는 일부 선을 그었다. 그는 "전세대출은 실수요자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따로 규제할 계획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 및 일부 전문가의 시각은 완전히 다르다. 현재 시중은행을 비롯해 전세대출을 취급하는 금융사들은 주택금융공사, 서울보증보험 등 보증을 통해 전세자금을 빌려주는데, 주택금융공사는 90%, 서울보증보험은 100%까지 전세대출에 보증을 서고 있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떼일 염려가 없는 대출이기 때문에 최대 대출의 상한까지 대출을 손쉽게 내줄 수 있는 구조다. 대출 한도는 주택보증보험의 경우 2억2천200만원, 서울보증보험은 5억원이다.
 
문제는 전세대출의 경우 차주 입장에서는 '실수요'지만, 집주인에게는 사실상 꼬리표 없는 목돈이라는 점이다. 대규모의 전세대출이 부동산 갭투자나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었을 개연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만약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이 큰 폭의 조정을 받을 경우 전세금 반환이 어려운 '깡통 전세'가 쏟아질 수 있는 셈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도 "은행 입장에서는 떼일 염려가 적다는 점에서 전세대출에 대해서는 리스크 관리가 꼼꼼히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하지만 대규모로 나간 전세대출 자금이 어디로 흘러 들어가는지 알기 어렵다는 점에서 내부적으로도 우려의 시각이 많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전세대출에 대한 보증비율을 낮추는 한편 고객의 신용도, 즉 상환능력을 반영한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서영수 키움증권 이사는 "세계 어느 나라도 가계대출을 선별적으로 규제하지 않는다"며 "이런 방식은 결국 규제의 구멍을 만들고 편법이나 우회 대출을 통한 투자나 투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전세대출의 가장 큰 딜레마는 보증이 높다는 데 있는데, 이 보증 비율을 50~60%로 줄이고 은행이 대출을 스스로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며 "전세대출의 경우 차주의 상환 능력과 무관하게 취급된다는 점에서 일반적 금융상품이라고 보기에 어려울 정도로 관리가 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용우 기자 lee.yongwo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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