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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집권 메르켈 퇴장... ‘포스트 메르켈’ 독일의 숙제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유럽 재정위기 극복·4차산업혁명 이끈 지도자... 포스트 메르켈 시대,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숙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AP=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67) 독일 총리가 9월 26일 독일 연방의회 선거를 끝으로 은퇴한다. 2005년 11월 22일 총리에 취임한 뒤 15년 10개월 동안 자리를 지킨 거물 정치인의 퇴장이다.  
 
미국 대통령만 따져도 조지 W 부시(재임 2001~2009년), 버락 오마바(2009~2017년), 도널드 트럼프(2017~2021년), 조 바이든(2021~)의 네 명을 상대했다. 함께 유럽연합(EU)을 이끈 프랑스 대통령은 자크 시라크(1995~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2007~2012년), 랑수아 올랑드(2012~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2017~)의 네 사람이다. 영국 총리도 토니 블레어(1997~2007년), 고든 브라운(2007~2010년), 데이비드 캐머런(2010~2016년), 테리사 메이(2016~2019년), 보리스 존슨(2019~) 등 다섯이나 된다.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한 총리다.  
 

16년 재임 메르켈, 독일의 셋째 ‘장수 총리’  

그 사이 독일은 유럽은 물론 전 세계의 지도적인 국가로 부상했다. 독일은 경제·산업·과학기술·교육·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의 존경을 받는 국가로 떠올랐다.  
 
역사적으로 보면 메르켈은 22년 262일 동안 재임한 오토 폰 비스마르크(1815~1898년)와 16년 26일 동안 자리를 맡았던 헬무트 콜(1930~2017년)에 이어 독일에서 셋째로 오래 재임한 장수 총리다. 독일의 첫 총리로 통하는 비스마르크는 통일 전 단계로 1867~1871년 존재했던 북독일연맹(남부의 바이에른과 바덴뷔르템베르크 등은 별도)의 총리와 통일 뒤인 1871~1890년 독일제국의 총리를 지냈다. 콜 총리는 1982년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의 총리에 오른 뒤 1990년 10월 3일 옛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의 각 주가 동독을 해체하고 독일연방공화국에 개별적으로 가입한 재통일을 거쳐 1998년까지 재임했다. 비스마르크와 콜은 역사적 과업인 통일과 재통일을 이룬 총리라는 공통점이 있다. 메르켈은 통일 독일에서 거의 16년을 재임하는 기록을 세웠다.  
 
메르켈은 이미 지난 2018년 10월에 소속정당인 기독교민주당(기민당·CDU)의 대표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연방의회 임기가 끝나는 2021년 총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그해 12월 열린 기민당 대표 선거에서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가 당선했으며, 올해 1월엔 아르민 라셰트가 뒤를 이어 당 대표를 맡고 있다. 라셰트는 1790만 인구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주지사다. 
 
메르켈은 이어 제20대 독일 연방의회(분데스타크)를 구성하기 위해 9월 26일 열리는 연방선거에 출마하지 않음으로써 정계에서도 은퇴한다. 차기 총리는 이 총선의 결과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연정 협상 결과 결정된다.  
 
메르켈은 2000년 기민당 대표를 맡아 2002년 총선에서 패배했지만 2005년 승리해 연속 4기를 집권했다. 독일 연방의회를 구성하는 총선은 소선거구·비례대표 병행제로 실시된다. 독일은 중도 우파 빅텐트 정당인 기민당(정확하게는 기민련)과 바이에른 지역의 중도 정당인 기독교사회당(기사당·CSU·정확하게는 기사련)이 (우니온·Union)으로 불리는 기민·기사연합을 구성해 우파 진영을 이룬다. 기사당은 바이에른에서만 연방선거에 나오는 지역정당이며, 기민당은 바이에른에선 활동하지 않는다. 두 정당은 바이에른을 제외한 전국과 바이에른을 각각 책임지는 자매정당이다.  
 
이념적으로 그 반대편에 좌파인 사회민주당(SPD)이 존재하면서 독일 정치는 좌우 체제를 이루고 있다. 그 외에 환경정치를 앞세우는 녹색당, 자유무역을 강조하는 자유민주당, 옛 동독의 독일사회통일당(SED)과 통일 뒤의 민주사회당(PDS)의 맥을 잇는 좌파당(Die Linke), 반이민·반이슬람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 등 다양한 군소정당이 있다.  
 
전후 독일에선 어느 정당도 과반 의석을 획득한 적이 없다. 군소정당과 연립을 구성하거나 좌우 거대 정당이 대연정을 구성하는 게 일반적이다.  
 
메르켈의 기민당은 2005년 총선 때는 27.8%를 획득해 연방의회 614석 중 226석을, 2009년에는 27.3%를 득표해 622석 중 239석, 2013년엔 34.1%를 확보해 630석 중 311석을, 2017년(연정 구성은 2018년)엔 26.8%의 득표율로 709석 중 246석을 각각 얻었다.  
 

메르켈의 독일, ‘글로벌 리더십’ 확보  

당 대표인 메르켈 총리의 인기가 높다고 집권당이 압도적인 표를 얻는 건 아닌 셈이다. 이런 체제이니 항상 정당 간 협상력과 대화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특히 연정 협상은 항상 아슬아슬하게 이뤄진다. 정당 간 요구와 정책적 지향점, 정치 철학 등이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정책적 연립이나 양보가 불가피하다. 지켜야 할 가치나 양보할 수 있는 정책, 정책의 우선순위 등이 검토되고 결정되고 협상 테이블에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정책 정당의 정체성이 확보될 수밖에 없다. 독일의 협상과 양보 정치, 그리고 정책 정당의 이미지는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쳐 강철로 단련됐다. 2013년 연정 협상 때는 하도 첨예하게 대립해 독일어 약어로 그로코로 불리는 연정(GrossKoalition)이 그해 ’올해의 단어‘로 선정됐을 정도다.  
 
메르켈은 2005년~2009년, 2009~2013년, 2013년~2018년, 2018년 이후 등 4차례에 걸쳐 집권하면서 2기 때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회당과 대연정을 구성했다. 2기 때만 자유민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했다. 사회당과 대연정을 구성해 안정적인 정부를 운영한 것은 메르켈의 업적을 쌓고 장기 집권한 비결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16년에 걸쳐 업적을 쌓은 메르켈 시대는 독일의 글로벌 리더십 확보와 유럽연합(EU)의 대약진으로 요약할 수 있다. 독일과 유럽은 난민 문제 해결과 글로벌 금융 위기 극복, 다원화한 유럽 구성을 주도했으며, 독일은 경제와 인도주의 모범국으로 자리 잡으면서 유럽을 이끄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독일과 유럽이 일체화한 것으로 보일 정도로 메르켈의 리더십이나 독일에 대한 유럽의 의존이 커졌다.  
 
그 과정에서 메르켈은 국내외적으로 설득력·협상력 등 정치력을 보였으며 탁월한 미래 설계능력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원칙은 인도주의·인권·책임 등 원칙에선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일부의 반대에도 도덕적 원칙을 준수해 독일과 유럽에 관용과 공존의 원칙을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2013년 선거운동 중 독일 남부 뮌헨 인근의 다하우 강제수용소 유적을 생존자와 프랑스인 레지스탕스 등과 함께 찾아 고개를 숙였다.  
 
나치 수용소에 대한 독일 현직 총리의 첫 방문이다. 다하우 수용소는 1933년 나치 집권 뒤 처음 지어진 곳으로 12년 동안 30개국 출신의 20만6206명이 수용돼 이 중 3만1951명이 처형·구타·학대·동사·굶주림·질병으로 숨진 것으로 기록됐다.
 
나치는 이곳에 성직자, 유대인, 점령지의 외국인 정치범과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전쟁포로까지 수용됐다. 동성애자·집시·장애인 등 나치가 반사회적이라며 차별하고 박해한 사람들도 포함됐다. 차별이 왜 인류에 대한 범죄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메르켈은 다하우 수용소 벽에 헌화하고 고개를 숙인 뒤 “깊은 슬픔과 부끄럼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의 방문이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잇는 다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통일과 경제적 번영으로 유럽의 강대국으로 자리 잡고 유로존 재정위기 해결 과정에서 엄청난 국력과 정치력을 보여준 직후의 방문이라 더욱 의미가 깊었다.  
 
독일은 강대국이 됐지만, 과거사에 대해 변함없는 반성의 자세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독일의 정부 수반이 확인한 것이다. 독일은 과거사와 관련해 유럽 각국에 끝까지 겸허한 반성의 태도를 유지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메르켈의 수용소 방문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다하우 수용소 수감자위원회 회장인 막스 만하이머와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인 장 사뮈엘 등이 함께했다. 진정으로 강하고 존경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방문이었다. 메르켈은 역사에 대한 기억은 인류의 의무라는 사실을 새삼 각인시켰다.  
 

메르켈의 나치수용소 방문, 독일 지도자들의 반성 이어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가 2012년 뮌헨 인근의 다하우 나치 강제수용소를 방문해 헌화한 후 묵념하고 있다.[AP=연합뉴스]
 
메르켈의 다하우 방문은 독일 지도자들의 릴레이 과거사 반성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다시 강해진 독일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큰 몫을 했다. 메르켈의 다하우 방문 2주 뒤 요아힘 가우크 당시 독일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4년 6월 10일 당시 나치가 대학살을 벌였던 프랑스 북부 오라두쉬르글란 마을을 찾아 희생자를 추모했다. 이곳에선 200여 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640여 명의 마을 주민을 살해됐다. 독일 지도자가 외국의 나치 만행 현장을 찾은 것도 당시로선 처음이었다.  
 
메르켈은 2019년 폴란드 오스비엥침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유적을 찾아 “독일은 나치 범죄를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르켈의 현실정치는 비극의 과거사를 기억해 재발을 방지하고 인종차별과 반대자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막는 데 무게를 뒀다. 나치 시절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21세기 독일을 국제사회를 책임질 수 있는 도덕성을 확보한 국가로 품격을 높였다.  
 
메르켈의 행동은 1970년 12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한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벌어졌던 바르샤바 게토 유대인 봉기 당시 희생자들의 추모비 앞에 갑자기 무릎을 꿇은 일을 연상시킨다. 당시 브란트의 행동은 독일이 과거 전쟁의 피해국들에 진실하게 사조의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이 사건으로 독일은 유럽 각국에 다시 강력해져도 어리석은 침략의 과거사를 반복하지도, 자랑스럽게 여기지도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강한 독일은 반성과 평화에 대한 다짐을 통해 새롭게 비상하고 있다.  
 
메르켈은 도덕과 품격 정치는 과거사에 국한되지 않았다. 메르켈은 차별·혐오를 내세우는 국내의 극우파와 인권탄압을 일삼는 러시아 등 해외 권위주의 국가에도 철퇴를 내렸다. 최근에는 임기 마지막까지 일손은 놓지 않고 미국 등을 다니며 외교적 작별 인사를 나누는 인간적인 정치인의 모습을 보였다. 평소 겸손한 태도와 직접 수퍼마켓에 들러 장을 보는 등 평범한 개인 생활도 국민의 지지를 얻는 힘의 하나다. ‘무터(Mutter·어머니)’ 리더십으로 불리는 메르켈의 한 단면이다.  
 
메르켈은 사실 화려한 훈장이 많은 정치인이다. 2000년 독일 최대 보수정당인 기민당의 첫 여성 대표, 2005년 독일의 첫 여성 총리, 전후 최연소 총리, 옛 동독 출신의 최초 총리 등 여러 가지 정치적 기록을 보유한다.  
 
하지만 인간적인 매력이나, 화려한 훈장이 정치력을 좌우하진 않는다. 메르켈의 리더십의 원천은 힘도 부드러움도 아니고 타이밍으로 분석할 수 있다. 화해와 조정력을 발휘하며 때를 기다리다 결정적인 순간 결정을 내리는 것이 메르켈 정치력의 핵심이다. 필요할 때는 우직하게 참고 대화하고 설득하며 때를 기다리지만 행동해야 할 때는 신속하고 과감하다. 그리고 적극적이다. 상대 발언을 경청하고 협상하는 능력, 그리고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순발력이 메르켈 16년을 만든 힘일 것이다.  
 

메르켈 힘의 원천은 ‘기막힌 타이밍’  

메르켈은 유럽 재정위기 당시 구제금융만 요구하고 구조조정에는 저항하는 그리스 등에도 단호하게 대응해 조건을 관철했다. 메르켈은 EU의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의 정부 수반으로서 유럽 재정위기가 한창인 2011·2012년 이래로 강력한 긴축재정이라는 해법을 들고 위기탈출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수없이 대화하고 때를 기다렸지만 ‘책임’과 ‘신뢰’라는 원칙은 양보하지 않았다. 그리스의 포퓰리스트 정부는 메르켈의 조정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유럽은 재정 문제를 안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유로존 위기 해법의 열쇠를 쥔 메르켈은 유럽 내에서 강력한 정치적·경제적 힘을 제대로 행사했다. 그 결과 베를린의 칸츨러암트(독일 총리 관저)를 유럽의 정치경제 중심지로 만들었다. 24개의 공식 언어를 사용하는 27개 EU 회원국을 때론 설득하고, 때로 윽박지르며 현재까지 이끌었다는 것 자체가 경이적이다.  
 
메르켈은 미래를 위한 준비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메르켈은 2011년 인더스트리 4.0을 제안해 새로운 산업혁명을 주도해왔다. 증기기관을 통한 기계화로 대표되는 1차 선업혁명, 대량생산·조립라인·전기화를 바탕으로 하는 2차 산업혁명, 컴퓨터와 자동화를 활용한 3차 산업혁명에 이은 새로운 4차 산업혁명의 신호탄이다. 4차 산업혁명은 제조업을 비롯한 전통적인 산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한 사이버피지컬시스템(CPS)으로 새로운 지능형 생산시스템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메르켈은 이러한 미래 경제 대비를 위한 연구·개발을 강화하면서 강력한 경제력을 유지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규제와 간섭으로 경제를 정치의 통제 아래 두려는 권위주의적 통치 대신 민주적이며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경제의 바탕을 강조하면서 물길을 터주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이제 메르켈이 떠난 빈자리는 누가 맡아도 쉽게 채우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자리를 맡아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당장 아프가니스탄 난민 문제가 유럽을 기다리고 있다. 포스트 메르켈 시대를 앞둔 독일과 유럽의 과제이자 ‘눈앞의 불안’이다. 독일뿐 아니라 세계가 메르켈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메르켈 시대 16년의 성공이 남긴 정치적 공백이자 공허감이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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